2020년을 돌아보며 .. 

겸손함, 을 보충해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감사한 일이 너무나도 많았고 놓친 부분도 많은 듯. 환자들을 지인들을 사회의 누군가를 대하는 나의 마음에 배려가 더 할 수 있었는지, 더할나위 없었다라고 당당히 말 할 수 없는 것이 아쉽다 .. 나의 사회적 안정감이 나의 재량이 아닌데, 그것에 대한 감사함에 보다 생각해야한다. 나를 직 간접적으로 도와주는 위해주는 이들에게 돌려주는 2021년이 되기를.

 

건강, 지난 한 해 나와 가족이 .. 건강했다고 적고 싶지만 그렇지만은 못하였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나아졌지만 아픈 일도 있었고, 불안한 마음도 있었다. 앞으로도 건강하기 위해서는 보다 꾸준히 부지런히 몸과 마음을 가꾸어야한다. 

 

도전, 언제부터인가 도전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다. 이제 고작 30 대인데 왜 나는 도전에 대한 어려움이 있을까. 새로운 것을 해야한다는 선택이 없던 20 대 에는 두려움은 사치였다. 하지만 도전이 선택일 수 있는 지금 나는 그것에 쓰고 싶은 심적 여유가 떨어지는가보다 .. 

 

행복, 하다. 지난 몇 년간 그래왔다. 하루하루 매일 바쁜 일상을 보내고있지만 큰 불안함, 걱정 없이 지낼 수 있음에 감사하고 행복감을 느낀다. 행복함을 감사함으로 .. 보다 나누고싶다. 

 

일, 을 대하는 자세. 수입의 수단이지만 그 이상의 것이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건강이라는 주제가 어느때보다 중요시 된 2020 년을 겪고, 개개인의 건강을 나의 위치에서 어떻게 조금이나마 더 도와 줄 수 있을지 고민하게된다. 내가 보다 공부하고 봉사해야한다는 결론. 준비되어 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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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년 대학생 시절 오바마 캠패인이 시애틀을 투어한다는 소식을듣고 표를 구입해 Michell Obama, Jill Biden 의 luncheon 에 참석했었다.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지만 왜인지 끌려 참석하게된 luncheon 에서 들은 Michelle 의 이야기들은 지금도 기억이난다. 본인의 부모님 그리고 Barack Obama 의 부모님의 희생에 대한 이야기 .. 물론 대중의 관심을 사기위해 디자인된 이야기이겠지만 어딘가 분명히 일상 서민의 이야기였다, 나와 닮았다라는 느낌을 주는 서사 .. 

 

Obama 가 퇴임하고 나온 Michelle 의 책 또한 비슷한 느낌과 내용이다. 그녀와 그녀의 가족의 서민적인 삶. 미국의 대통령, 영부인이되고 느껴지는 새로운 생활에 대한 적응, 그 와중 아이를 키우는 모습. 나도 엘리를 키우다보니 가장 와닿던 부분들은 아이들을 대하는 자세. 아무리 중요한 업무여도 아이들을 우선시하고 아이들의 감정을 중요시하는 점이 .. 닮고싶다. 

 

 

나와는 너무나 다른 삶을 살고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공감 할 수 있는 부분들을 쉽게 읽히게 적어낸 글. 크게 대단하지도, 감동적이지도, 어렵지도 않은 잔잔했던, 오랜만에 편히 읽은 책.

 

2020 대선의 해이다, 이번 11 월에 어떤 새로운 세상이 열릴지 .. 무섭다.

 

 

 

자료 https://www.nytimes.com/2018/12/06/books/review/michelle-obama-becoming-memoir.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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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 특별한 일정 없이도 제법 피곤. 피곤하여 저녁약속 취소 후 따듯한 집으로 귀가. 저녁식사 후 가족과 안부전화. 가족은 건강하고 밝은 목소리로 나에게 안부를 전한다 - 이외에 무엇을 바라겠는가. 더불어 달콤한 매실주와 편안한 밤. 특별할 것 없는 한 해의 마무리와 시작. 점점 편안한 것이 행복인가, 싶은 생각이 든다. 나는 젊은데, 이미 저항이 피곤하다. 몸이 쉬고 싶으면 쉬고, 정신이 쉬고 싶으면 쉬고, 공부하고 싶으면 공부하고, 글 쓰고 싶으면 글 쓰고. 이렇게 하고싶은 것들만 하며 지내니 참으로 편안하다 행복하다. 

아직 밤은 이른데 매실주 때문인지 깊은 듯 하다, 안녕 2011. 아쉬울 것이 없다. 2012, 바라는 것은 없다. 필요한 것도 없다.  건강과 지금의 편안함. 꾸준한 생활이 이제는 익숙하고 나에게 맞는 것이다 싶다. 감사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나의 주위를 안전히하고, 환경에 대한 많았던 불만에도 왠만큼 무뎌지고, 대응하는 방법들을 배우고, 어느 정도 수긍도 한다. 점점 원만해 지어가는 것인가 싶다. 

2011년의 목표는 건강한 식습관과 학교를 순탄히 옮기는 것이었다. 모두 괜찮은 성공이다. 학교와 지역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아쉬움도 컸고 실수인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것이 옳았다, 는 생각이 드는 것이 - 아름다운 친구들과 가족이 있다. 다른 환경과 학교를 선택했더라면, 분명 즐거움도 있었을테지만 지금의 가족과 친구들과의 시간을 갖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것이 다른 모든 긍정적인 요소를 대신하도고 남는다. 이야말로 더 이상 바랄 수는 없는 생활이다. 




오늘 오후의 blackberry apple pie 블랙배리 애플 파이 한 조각과 커피





올 해 가장 잘 한 일은 자동차를 팔고 자전거를 구입한 것. 건강과 환경, 더불어 심적 편안과 생활에 즐거움을 상당히 더하는 사랑 할 수 밖에 없는 소중한 나의 자전거. 
토요일마다 열리는 farmers market 농부들의 장, 시장과 같은 풍경, 을 우연히 들렸다. 나를 기다리는 자전거 녀석과 철장 넘어 공예품을 팔고 있는 장사꾼이 계시다. 전형적인 seattle 시애틀의 풍경.  




farmer's market 대부분 유기농, 직접 기른 농부들이 트럭들로 실어와 야채, 과일, 생선, 치즈, 와인, 계란, 빵 등등 다양한 제품들을 판매. 시장같다, 시장이 문득 그립다.




몇 일 전 방문한 친구의 가게. 음악 공연 건축 지역정보 사회적 요소 등, 문화적인 것들을 많이 소개해 주는 친구, 반갑고 편안한 친구이다. 상당히 간단한 생활을 추구하는 녀석, 배울 점이 많고 고맙다.




이렇게 나는 행복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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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년 큼지막한 일들 중

Egypt and other revolutions 1/25
Japan Earthquake 3/11
Syrian Revolution 3/15
Occupy Wall Street 9/17
Neutrino CERN OPERA paper release 9/22
Turkey Earthquake 10/23
김정일 사망 12/17

올 해 크게 타격을 주었던 일들을 돌아보자니 혁명, 자연재해, 및 과학적 발견으로 나눌 수 있겠구나. 이들 또한 마찬가지 긍정적이라 부정적이라 할 수 없는 것들. 혁명은 보다 나음을 위한 움직임으로 긍정적인 것이지만 부정적인 현실에 대한 고조된 불만의 상징임으로 씁슬하고. 자연재해에 대해서 아쉬울 것은 없지만 그로 인한 사람들의 대처가 안타까울 따름. 특히나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혹독한 현실이다. 빛 보다 빠른 입자 및 입자들에 대한 연구는 긍정적인 것으로 보인다. 과학의 이해가 넓어 질 수록 미궁이지만 움직임, 모멘텀이 있다는 것에 감사. 
음 한 해가 끝에 다다른다.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운가? 글쎄, yes 라 할 수도 no 라 할 수 도 없는 것이 중간 즈음인데 - 상당히 아쉽다. 비율을 주자면 80%. 2011년 1월에 했던 다짐들이 여전히 남아있다 - 늘 그러하듯 건강과 대인관계와 학업에 대한 것들. 일단 건강으로는 힘들었지만 어느 해 보다 배운 것이 많았던 해이다. 심히, 다양히, 빈번히 아팠다. 그 만큼 대처 방법들을 조금씩 익혔고 좋지 않은 건강 습관도 왠만큼 버렸다. 집에서 식사 횟수가 많아졌고 생활 패턴도 얼추 생겼다. 대인관계에 대해서는 만족스럽다. 어려움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현명하게 지났다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모든 관계들이 긍정만은 아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몫은 충분히, 솔직히 했다고 느낀다. 학업에 대해서는 결과가 불만족스럽다. 하지만 배움 자체에서는 만족스러움으로 종합하여 50%라 할 수 있겠다. 앞으로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다시 느끼고 하지만 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깨닫는다. 
근래 현재에 보다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과정이지만 현재의 생활 또한 나의 추억이고 삶이다. 행복을 많이 느낀다. 일상적인 것들에 감사하고 솔직함과 정확함의 비중이 늘었다. '생활'이라는 것의 방법을 이제나마 알게 되는 듯하다. 이러한 생각이 들 때 마다 참으로 가도가도 끝은 없구나 싶은 것이 살면서 심심하지는 않겠구나 싶다.


어제는 친구의 생일을 축하하러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오랜만에 기분이 상당히 좋았던 저녁. 오늘 아침은 오후의 약속을 취소하고 딱히 편치 않은 마음이었지만 정리 할 것은 정리해야한다는 냉정함으로 어느 정도 위로가 되었다. 시간적으로 소비가 매 번 커지는 만남이여서 내키지 않는 마음에 감정전달 및 취소. 내 자신이 냉정키도 한 모습이 매 번 미안하기도하지만 사람은 참 변하지 않는구나 싶다. 이번 일 뿐 아니라 일상 대화 중에서도 해야 하지 않을, 혹은 하지 않아도 될 말들이나 표정들로 상대를 불편케 하는 것은 아닌지 근래 참 신경이 쓰인다. 괜찮다는 위로를 늘 받지만서도 마음 한 켠이 편치 않은 것은 어쩔 수 없다. 시간과 경험은 나를 변하게 했지만 가장 기본적인 것들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보다 오랜 시간 후의 나의 모습은 여전할까.  
한가지 일은 사실상 백가지 일이다. 누군가의 움직임에 있어서 그에 따르는 부수적이고 세부적인 움직임들의 숫자는 상상 이상으로 많다. 한 해 동안 많은 일이 있었고 매 해 처럼 직접적으로 그리고 감정적으로 특별한 일들이 한 둘 쯔음 있었다. 그렇게 2011년은 평범한 해였다. 
새해에 대한 다짐이라면 - 매 해 같다. 건강, 사람들, 공부. simplicity 간단하고 깔끔해야한다. 부수적인 것은 부수적이다 - 어느 방면이던 무관히, 가장 궁극적인 요소들에 집중하자. 






http://en.wikipedia.org/wiki/2011_Syrian_uprising
http://en.wikipedia.org/wiki/Faster-than-light 
http://en.wikipedia.org/wiki/Higgs_bo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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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힘들어. 요즘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피곤하다. 두 주 전에 아팠던 후로 지난 주부터 건강이 좋지 않고 이제는 생활에 너무 큰 영향을 미쳐 정신적으로 스트레스가 된다. 학교 업무는 물론이고 하루 시간의 대부분을 잠과 식사에 사용하다보니 능률이 전혀 없는 생활이다. 물론 물리적 생존이 목적이라면 효율적인 생활이겠구나, 그야말로 생존 mode.
고등학교 시절 부터 자취를 했지만 사실상 자취가 아니었다 싶은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가족이 가까이 있거나, immediate family 가 아니더라도 친지분들이 가까이서 상당히 챙겨주셨기 때문에 불편함을 모르고 지냈던 것이다. 이제서야 혼자, 그야말로 혼자 지내려니, 이것이 자취이구나 싶다. 살림이라는 것이 상당한 에너지와 시간을 요한다. 정리며 식사 준비 위생 등 신경 쓸 것이 종일이다. 더구나 생활에 있어 무시 할 수 없는 것들이기에 보류 할 수도 없는 일들이다.
생활에 있어 '낮은 밖 밤은 집'이 가장 효율적이더라. 업무는 밖에서, 휴식은 집에서 - 밖에서는 밖 옷 집에서는 집옷, 업무는 책상 식사는 식탁 잠은 침대. 각자의 위치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근래 체력적으로 피로하니 집에서 나가기도 싫거니와 나가 앉아있자면 금새 집 생각이 나 바깥에 앉아 있기가 어렵다. 그렇게 요즘은 집으로 쉽게 달려온다.
더불어 기운이 부족하니 집, 가족 생각이 많이 난다. 이렇게 지칠 수록 정신력에 의지해야하는데 둘이 함께 지쳐버렸다, 아.

자취의 사전적 의미 - 이외에도 의미가 많지만 relevant 한 것들만 일단 보자면:
자취 [自炊] [명사] 손수 밥을 지어 먹으면서 생활함.
자취[自取] [명사] 잘하든 못하든 자기 스스로 만들어 그렇게 됨.

두 의미 모두 흥미롭다. 밥을 지어 먹으면서 생활한다는 .. 생활에 있어 식사의 중요성이 반영되었다. 두번째 의미는, '잘하든 못하든'이라는 단락이 불필요한 느낌이면서도 적합하다. '자립'과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이지 싶다.
사람의 생활이라는 것이 '잘잘못'도 중요하지만 그 자체도 중요하다. 지금까지 나 자신의 건강과 생활을 스스로 챙기는 상황도 아니었거니와 그것을 '잘' 할 능력도 없구나 싶다. 생활적 요소들과 학업적 요소를 병행한다는 것이, 대부분 유학생들의 생활일텐데 나에게 큰 어려움을 준다는 것에 부끄럽기도하고, 내 지금까지 얼마나 편안히만 지냈는가 이제서야 느낀다. 특별함 없는 생활이, 가장 기본적인 것들이 나를 지치게 한다니 - 자신에게 실망이다. 잠과 아쉬움이 많은 근래이다, 하. 누가 그러더라 '자는게 남는거다' 얼마 전 나 또한 비슷한 말을했더라 "삶이 힘들고 지칠때 자라'
이 또한 지나리 - 시간이 필요한 것일까. 스스로 만들어 그렇게 .. 되었으면, 앞으로 나의 자취가 익숙해지고 편안해졌으면, 어렵지 않았으면 좋겠다.

2011 11 23 1909 Cafe Solstice
지난 밤 자정 쯔음 두통이 시작되었다. 급격히 정도가 심해지더니 속이 울렁거렸고 수 차례 구토에 이르렀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났는지 참을 수가 없어 진통제를 먹었지만 구토로 약을 다시 먹어야 했다. 심한두통과 구토, 경험 해 본 증상이다. 죽을 것 같지만 죽지 않을 것을 안다. 눈물이 흐르는 것이 걱정드릴테지만 엄마아빠가 보고싶어 전화기를 든다. 받지 않으신다 .. 아프다는 문자를 남기니 잠든 후 인 몇 시간 후에 전화가 울린다. 두 분 목소리에는 걱정이 가득 - 몇가지 조언을 해주셨고 알겠다며 잘거라며 서둘러 끊었다. 그렇게 다시 취침. 오전 수업 시간에 맞추어 눈을 떴지만 다시 눈을 감고 뜨니 오후 두어시 .. 조금 더 누워있자니 세시 쯔음, 하. 두통은 떠났다.
씻고 국을 끓여 마시고 정신을 차린다. 한 밤 중의 병은 어디에 전화 할 곳도 몇 되지 않더라. 자취라는 생활에 대해 상당한 반감을 느끼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리웠다. 근래 집에 대한 생각이 뜸하다 싶었더니, 몸이 나의 기억을 자극시킨다. 집을 기억하고, 근본족인 것들을 기억하기 위한 어려움이었나보다. 가족에 대한 의지를 기억하고, 건강에 대한 중요함을 기억하고, 기본적 생활 요소들에 다시끔 관심을 두자는 신호이지 싶다. 아프지 말아야지, 아프면 안된다. 공부요 행복이요 건강이 기본인 것을 - 건강해야지. 기본적인 것들에 충실해야지.
고통의 연장 속에서 들던 생각은 - 세상은 나와 내가 아닌 것들로 나뉘더라. 아픈사람과 아프지 않은 사람. 다른 모든 분야 또한 마찬가지로 적용가능하다, 배우고 배우지 않음, 행복하고 그렇지 않음, 가난과 부유함, 편안함과 불편함, 진심과 아님, 관심과 무관심 - 그렇게 각자의 세상은 자신과 자신이 아닌 것으로, 나뉘는게 아닌가 싶다. 내가 보는 것들과 내가 볼 수 없는 것들, 내가 보는 것을 볼 수 없는 사람들 .. 그러한 모두의 공존, 이 세상인가보다.
음악을 들으여 카페에 왔다. 나의 선곡이 아닌 음악들을 듣고있자니 기분이 나아진다. 맛있는 커피 또한 기분을 돕는다. 공존이 나를 살리는구나 - 감사하게 건강하게 지내야지, 아멘.



http://alldic.daum.net/dic/search_result_total.do?eq=&LAYOUT_URL_PREFIX=&nil_profile=vsearch&nil_src=dic&type=all&q=%C0%DA%C3%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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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9일 2011년 1953시 - 넥터 라운지 공연 시간 기다리는 스패셜티 샌드위치 저녁을 먹으며

LA에서 친구가 오늘 돌아갔다. 분명 잠을 못 자서 피곤한 것이다. 하지만 일을 갈 수가 없어 그만두었다. 하고싶었던 것인데 피곤해서 그만두었다. 나의 인내 - 존재하지 않는 인내에 대한 실망감, 근래 많은 반성을하지만 참으로 너무하다 싶다. 나의 나이를 고려하야 이제는 나 자신보다 타인, 책임감과 배려심에 치중해야 할 때인데 - 아직도 나의 현재 감정에 상당부분 집중되어있다. 분명 잠을 못 자서 피곤한 것인데 - 큰 틀에서 논리적으로 그만 둘 날은 아니였는데, 한 순간을 지내지 못하여 포기해버린 일. 특별히 중요한 일이라거나 필요한 일이지 않아 다행이지만, 그래서 쉽게 놓았지만, 작은 것을 쉽게 놓으면 큰 것 또한 놓는 습관이 생기지 않을까. 혹은 큰 것을 잡기위해 작은 것을 미리 놓은 것일까 ... 후자이면 얼마나 좋으랴.
사회생활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 얼마나 자질구리하지만 그러한 것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에 도전하고 싶었고 겪고 싶었다. 그런데 나는 그것들을 그러한 자질구리한 사람 간의 감정들 대화들 스캐쥴의 조정들을 소화하지 못 해 모든 것을 휴지통에 던져버렸다. 그들을 과감히 떠밀었다. 몇 가지가 싫어 아르바이트라는 기회를 마다했다. 사회생활 - 우리는 구성원으로써 한 명의 존재로써 큰 구조의 인원으로써 책임이 있고 어울려야만이 만들 수 있는 아름다움이 있거늘, 나에게 맞는 단체는 구조는 아직 찾지 못 한 것 같다. 특별히 한국에서 생활 할 수 있다 - 싶지도 않지만 미국이라고 같은 것 또한 아니다.
미국의 도시들 중 생활하고 싶은 손에 꼽히는 몇 도시들을 모두 여행하고 싶다. 샌프란시스코, 보스톤, 하와이 힐로 정도 .. 시애틀은 아름답다, 공기도 맑고, 등산이 쉽고, 자유로우며, 바다가 있고, 커피가 흐르고, 많은 인종들의 집합이다. 동양음식이 제법 많이 있고, 간편한 위치에 왠만큼 필요한 모든 것들이 배치되어있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서 여전히 무엇이 부족한 것일까. 한 때는 샌프란시스코의 정치적인 성향이 좋아 살고싶었다. 지금 또한 마찬가지이지만 그 때의 강한 끌림을 느끼지는 않는다. 보스톤의 인재적인 지능적인 모습이 좋아 살고싶고 힐로의 넉넉한 따듯함 - 환상적인 자연이 궁금해 지내고싶다.
자취는 독립은 어렵고 힘들고 쉽지않은 생활이다. 무엇보다 어려운 것은 transition 변환점 - 생활의 변화는 어렵다 힘들다 쉽지않다. 환경이 변하였고 생활이 변하였고 식사가 하루가 운동습관이 변하였다. 나의 친구들과 나 자신은 변하지 않았는데 기타의 모든 것이 변하였다. 집에 사람은 있지만 친구가 없고 가족이 없다. 화장실은 하나고 부엌도 하나다. 냉장고가 방에있고 싱크대는 멀리있다.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줄어들며 나를 바라보는 시간이 많아진다. 어쩌면 나에게 주어진 기회, 내가 겪어야하는 과정일 것이다. 나 자신을 외면하던 오랜 시간들 - 그것에서 벗어나려는, 나의 변화과정일 것이다. 내가 변할 것인지, 어느 정도와 어느 방향으로 변할 것인지 알지 못하지만 결과를 추구하기보다 현재로써는 과정의 순탄함을 추구해야하는 것 같다.
시애틀이라는 주요도시에 생활하면서 도시생활의 피곤함이 얼마나 나와 맞지 않은지를 느낄 수 있다. 불과 이주일 가량 지났는데 도시의 소리, 공기, 하늘, 풍경 등 마음에 드는 것은 특별히 없다. 특히나 이 많은 소음과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어렵다 피곤하다 하고싶지 않다.
돈을 너무 많이, 쉽게 쓴다. 많은 돈이 낭비되고있다. 조금이나마 아끼자는 생각에 장을보아 음식을 만들었지만 실패였다. 음식이 어려워서 눈물이 날 것 같고 서글펐다. 음식이 제대로 만들어야 음식이지 음식물 쓰레기와 음식사이에 차이는 종잇장이다. 준비하는 마음 자세 - 이에도 인내와 정성이 필요하다. 긍정적인 기분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맛없는 음식을 만들어서 눈물이 나려했던 것이다. 재료가 울었던 것이다 - 미안하다 재료들. 나 자신에게 친구들에게 직장에게 많은 사람들에게 미안하다. 와중 내 자신에게 가장 미안한 모습이 참 싫다.
공연에 초대받아 가련다 - 음악이나 듣자 싶어서 가보련다. 선물거리를 하나 샀다. 곧게 지내야 싶어서, 바르게 맞게 감사하며 - 나누며 생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선물을 나누련다. 나에게 나누어진 선행에 대해 특별함을 느끼고 그 사람 뿐만 아닌 환경의 하늘의 바다의 베품에 감사함을 가지고 생활해야한다. 감사하다 - 아빠엄마가 특별히 생각나는 하늘이다.
어른들 말은 들어야한다는 생각을 다시한다 - 어른들 말은 들어야함을 다시 실감한다. 어른들 말은 들어야한다. 차 팔아야겠다. 나는 언제 어른일까 - 지금 어른일까..
오랜만에 글을 적으니 글이 제법 길다 -  그 만큼 생활에 틈이 없었음을 알 수 있다. 많은 글이 나의 머리와 마음에서 터질 것 같아 그리 답답하고 자유롭지 못 한 감정이었나보다. 아르바이트 그만두기를 참 잘 했다. 책임감은 버렸찌만 자유를 찾았다. 무엇이 더 중요하냐고 묻지는 않으련다.
곧 추석이고 주일이다, 가족과 친구들과 하늘과 행복하게 아름답게 감사하게 베풀며 - 나누며, 받은 것에 특별함을 느끼며, 옳음만을 추구하며 부지런하고 성실함을 실천하며 생활하자. 많은 이들이 나를 위해 기도하고있고 나 또한 그들에게 되풀면 좋음을 기억하자. 사랑하자 기도하자 아름답자.

 


9월 10일 1657시 따듯한 오후 반스앤노블
공부 몇 시간에 지쳐 집에 가고싶다.
객지생활 - 모국에 생활하지 않는 사람들을 만난다. 자신의 출생지, 혈연지와 관계없이 문화적 환경이 맞는 곳을 추구하는 사람들. 학교를 위해 이동하는 학생들, 음악을 위해 이동하는 음악인들, 새로운 지역을 마라는 사람들의 마음이 흔하기도하지만 기이하기도하다. 집만한 곳이 없다고는 하지만 굳이 집에서 살아야하는 사람은 오히려 드믈다.
여름방학동안 한국에 들어가면 너무나 편안하고 좋다. 아빠도 엄마도 창준이도 - 친구들도 익숙한 풍경들, 맛있는 음식들, 한때의 습관적이였던 생활패턴 들 등. 하지만 내가 지낼 곳은 한국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것을 매 해 느낀다. 얼추 6주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시애틀이 그립기 시작하며 어서 돌아가자 - 는 마음이 든다. 어느 덧 돌아오는, 본 지역은 시애틀이 된 것이다. 나의 손길이 생활이 익숙한 곳보다 문화적 사회적 성향이 맞는 곳을 찾게된다.
떠나서 - 새로움을 접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세상은 너무나 넓고 다양한데 움직이지 않는 것은 그 만큼 어리석다. 책으로 인터넷으로 많은 정보와 영상을 접할 수 있지만 간접경험과 직접경험의 차이는 굉장하다. 어느 것이 더 좋다 - 라기 보다 두 방법 모두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유학생활에 지치기도했지만 움직임으로써 배운 것들이 너무나 많기에 - 불평 할 수 없다. 견문이 넓어졌다는 말은 너무나 추상적이고 광범위하야 아무것도 설명되지 않는다. 늘 세상을 바라보지만 늘 세상을 인지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새로움은 많은 것을 낯설게하고 감각적이게한다. 편안한 동선은 익숙함에서 오는 것이다 - 새로운 움직임을 경험한 후, 익숙한 동선을 따라 움직이는 것은 또 새로운 동선을 경험하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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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1 수요일 0717시 세시간 잠 후 맞는 새벽의 커피숍
스타벅스는 싫지만 커피 볶는 향은 좋구나. 왜인지 모르겠다 - 공삼시에 잠들었는데 공육시 직전 쯔음 깨어 느리지만 빠른 밝아짐을 창으로 바라보고, 다시 잠 들 수 없음을 알기에 샤워를하고 옷을입고 카페에 앉아있는 아침. 눈은 따끔히 피곤하지만 딱히 나쁘지만은 기분. 몸은 피곤치만 누군가의 기도로 움직여진다는 기이하고도 괜찮은 느낌의 하루가 시작된다.
집도 동네도 새로운 곳, 전화기도 새로운 것, 새로운 학교, 새로운 학기. 새롭다하여 사용되지 않은, 느낌은 아니라는 것 - 오히려 오래되고 닳은 느낌의 환경에 천천히 적응이되어간다. 집이라기보다 숙소같은 스튜디오와 학교라기보다 시장같은 캠퍼스. 새롭지만 전혀 새롭지 않은 것들 - 새로움이라는 표현도, 낯설다는 표현도 아닌 .... '다르다'외로는 딱히 표현 할 수 없구나. 하지만 특별하지만 특별하지 않은 것읕 마음이 편안하다는 것 - 모르는 오지의 곳도 아니고 멀지 않은, 익숙하고 감사한 이들과 가깝고 손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곳이기에 편안하다.
모든 일에 그렇지만 이사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집을 찾는 과정은 나의 몫이였지만, 짐을 옮기고, 나의 공간을 만드는데에 많은 선물들을 주셨다. 식기, 세제, 음식, 사무용품 어느 하나 빠지는 분야 없이 기여가 있었다. 하물며 오리털 자켓까지, 하 ! 참으로 감사하고 놀라운 사람들 인연들. 예상치 않았던터라 보다 놀랍고 겹다. 예상치 못했던 것은, 어쩌면 그동안 너무 무심했는지도 - 무심했던 것이 맞다. 많은 감사함에 무뎠던 것이다.
감사하고 겸손해야지, 감사하고 겸손해야지 - 감사하고 겸손해야지. 좋은 아침이다.



9/5 아르바이트 첫 날 너무 일찍 일어난 아침
역시나 알람따위 필요 없다는 듯 - 알람보다 먼저 깬 아침. 오늘은 긴장이 컸는지 무려 2시간이나 일찍 일어났다 하. 준비를하고 카페에 앉아 인터넷 사용 중, 한 시간이나 남았다. 거울과는 거리가 먼 내가 남에게 나를 선보여야한다니 부담이 되었는지 어젯 밤에는 자신감이 바닥을 기더라. 중학생이나 할 법한 외모에 대한 자신감과 고민에 빠져있던 와중 - 그래도 감사히 세상은 나에게 친구를 주었다. 이야기하고 웃어 넘길 수 있는 친구들 덕에 감사하고 다행이다. 처음이 어렵지 잘 할거면서 라며 ... 하 - 무려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건강히 잘 지내냐는, 창준이는 어찌 지내며 엄마와 아빠는 어찌 지낸다는, 주말에는 무엇을 했으며 누구를 만났다는 이야기들. 일상의 이야기들이 나를 외롭지 않게 슬프지 않게 하더라.
미국에 온 지 정확히 이주가 지냈다 - 돈을 정말 많이 썼다 ... 특별히 새로운 일은 아니지만 매 번 놀라운 것은 왜일까. 매 번 반성하지만 하하 지켜지지는 않는다.
생활의 동력을 찾아서 탄력으로 뒹굴뒹굴 실컷 굴렀으면 ! 좋겠다. 윤영 화이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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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1일 비 쏟아지는 1316시
그제는 대전에 가서 DVD 방에서 앤티크를 보고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노래방을 가고 어제는 해장을하고 학교에 들려 버스 아저씨와 식사를하고 천문대를 보고 귀가. 오늘은 저녁 약속. 한국에 와서 공부 요가도 조금씩하고 등산도 몇 번 다니고 분당 대전 천안 전주 대전 충주 괴산을 다녀왔으며 창준이와 수영도 다니고 성당도 다니고 엄마아빠는 꾸르실료를 다녀오셨고 책을 읽었고 잠도 잤고 카페에 죽치고 앉아있고 음악도 듣고 비도 맞고 빨래도하고 쇼핑하고 청소하고 컴퓨터 고치고 맛있는 음식들 먹고 커피마시고 ... 8주의 시간이 총알의 삼십배 속도로 지나가 버렸다. 올 여름은 비가 너무나 굉장히 무섭게 쏟아져서 더운줄도 모르고 지나간 듯.
이제 곧 시애틀로 돌아간다.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개념보다 시애틀로 '돌아간다'는 개념이 생겨버렸다. 하기야 시애틀에서 지내는 시간이 훨씬 길으니 이제는 그러한 개념이 맞는 듯 싶다. 한국..... 나이가 들어서인지 세월에 변해서인지 한국이 이전보다 그립고 편안하고 좋다. 굳이 한국에 들어오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도 했었지만, 굳이 한국에서 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었지만 이제는 왠만하면 한국에서 살고싶다는 생각을한다. 아직은 어리지만 아직은 시간이 비교적 느리지만 점점 빨라질 것이니 천천히 생각을 해보고있다. 내가 확실히 한국인이구나 나는 확실히 한국의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이든다. 하지만 이따금 나와는 다른 한국생활 친구들을 보면서 내가 그들처럼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한다. 하지만 내가 굳이 한국에 산다하여 그 친구들처럼 살아야 한지만은 않기에 - 휴. 궁극적으로 하고싶은 이야기는 떠나기 싫다, 한국이 좋다, 가족이 좋다, 친구가 좋다, 이제는 편안함이 무엇보다 우선순위이고 무엇보다 원한다는 것.
돌아가야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하지만 내가 원하기도 하는 일이다. 궁극적으로 먼 미래에 편안하고 싶지만 지금으로써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들이 있기에 하나씩 차곡차곡 마무리 지어가며 생활 할 수 있음에도 감사 해야겠지 - 한국에서 남은 생활을 즐겁게 보내기를. 쏟아지는 폭우처럼 열심히 ! 쉬고 놀고 돌아가겠음 감사 아멘.

8월 14일 0543시 새벽미사 가기 전
어제 많이 힘들었다. 많이 힘들었다. 다시는 절대 안되라고 다시 한 번 해보는 다짐. 힘들었다. 솔직해지자 - 두렵다. 다시 돌아간다는 생각은 두렵다. 어떻게 무엇을하고 지내야 할 지도 잘 모르겠고 잘 지내지 않을까봐 무섭다. 하지만 난 괜찮다는 생각을 하기도한다. 기운을 내서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사랑해 윤영.


8월 17일 1000시 잠 없이 맞는 아침
대전 다녀 옴 - 채묵 먹고, 블라인드 보고, 술 마시고, 안개 산 오르고 슈슈 샤워하고 새벽버스로 귀가. 아침.... 잘까말까 고민고민. 짐을 대략 싸고 있는데 참 많구나 휴. 슬슬 돌아가야지 싶은 - 오히려 가고싶다는 마음이 드는 것을 보니 때가 때인가보다. 가는 전 날까지 꽉 찬 스케쥴로 달려야 함으로 오늘 짐을 마무리 해야함. 대략 다 챙겼음으로 특별히 걱정되는 것은 없지만 조금 피곤 할 뿐. 시애틀이 나를 기다리는구나, 새로운 시작 새로운 기운, 새로운 에너지로 보다 열심히 화이팅 ^^

8월 19일 1020시 변비한약의 효과로 상쾌한 아침 !
어제 약속 두개 오늘도 약속 두개 내일은 하나 모레는 비행기타기 전 약속 하나 - 휴. 바쁘지만 즐겁고 행복하다. 이렇게나 많은 친구들과 친지들이 나의 곁에 있다니 놀랍고도 감사. 이 이상 무엇을 바라랴 - 감사하고 감사하다. 편안한 마음으로, 준비된 마음으로 떠난다. 돌아가야한다는 마음이 나를 움직이며, 이것이 옳음임을 인지한다.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건간에 시작에는 끝을 맺어야하는 것. 조금은 길게도 느껴지지만 나의 길임을 기억하고 의연히 걸어얀다.
삶이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더라. 한 사람의 평생 바뀔 수 없는 습관들을 나의 의지로 바꾸려하지 않으련다 - 다 놓고 모두 내려놓고 나의 생활에 충실하리. 냉소라 할지라도 차갑다랄지라도 나의 기준은 이러하다.

8월 20일 1037시 가기 전 날, 아침부터 고생은 식탁다리와 엄마 .... 배부른 아침
장어, 멸치볶음, 두부조림, 골벵이, 콩나물 국, 깍두기, 절여진 생선 ....... 무언가 조화는 없지만 상당히 많은 찬들 하하. 아침부터 장어라니 음. 한 상 실컷 차려놓고 아침부터 성당가신 엄마 - 엄마는 없고 가득한 식탁이 나를 맞는 아침. 맛있게 먹고 준비하고 곧 점심약속을 향하여 나가야지. 저녁 약속도 있었지만 식탁을 보니 감동에 일찍 들어와야겠다는 마음 - 으로 저녁 약속 취소. 휴 가고싶다고 했지만 막상 떠나려니 - 그래도 가고싶기는 하구나 하하. 가서 할 일이 많으니 차곡차곡 해야겠지. 화이삼홍삼 ^^ 윤영 기운내 ~

8월 29일 월요일 0522시 시차적응 중
온 지 일주일이 지났건만 시차적응이 되지 않았구나. 와서 이사며 학교 서류정리며 하루도 쉬지 않고 일주일을 달렸다. 오늘에서야 조금 시간이 남아 낮잠을 잤더니 밤잠을 잃었구나. 무튼 시애틀에 도착하여 집을알아보고 신속히 이사를하고 한 숨 돌리는 오늘이다. 마음이 바쁘고 할 일이 잔뜩이였어서 신경적으로 민감키도하고 잠을 들 수 없더라. 공부도 해야하고 개강에 앞서 일자리와 봉사 자리를 알아보아야 하는 일들이 남아있다.
익숙한 환경이지만 나의 환경이 아니던 곳에서 생활하는 것은 괜찮기도하면서 그리워지기도한다. 오늘은 짐을 몇 가지 찾으려 이사콰에 다시 다녀왔는데 그리 좋더라. 성당이며 조용한 길가들이며 눈물이 핑.
근래 드는 생각 중 가장 큰 것은 - 나에게 얼마나 고마운 사람들이 많은지 .... 엄마 아빠 창준의 가족은 물론 친가 외가 가족들, 더불어 고등학교 친구들, 대학교 친구들, 중학교 친구들, 성당친구, 수녀님들까지 너무나 많은 아름다움을 나는 주위에 두고있다. 언제인가 '늘 아름다운 것을 곁에 두라'는 문구를 읽었는데 나는 이를 확실히 실현하고 있지 않나 싶다. 사람만큼 아름다운 것이 또 있으랴. 모든 분들의 기도 염려 도움이 나를 만들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차를 팔고 자전거를 사기로한 계획을 개강 후 시행해야겠다. 차를 사겠다는 사람들이 벌써 몇이나 되는 것을 보면 - 그리 어려운 과정은 아닐지 싶다. 올 해는 금전적 지출이 많은 만큼 수입도 나쁘지 않은듯 싶다. 일자리 또한 구하면 보다 수월하리라.
블로그를 외면한지도 한 주가 넘었고 막상 글을 쓰려 앉아도 쏟아지지 않는 것을 보니 근래 진심 별 생각 없이 지내나보다. 일에 치여 바쁘게 생활한다는 것이 이런 것인 듯 - 이것이 진정 편안한 행복의 생활이리라. 개강 후에도 일과 봉사활동과 시험준비로 분주히 분주히 자신의 생활에 감사하며 - 지낼 수 있기를 그저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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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나에게박수를보낸다세상에홀로내던져진마흔살여자의기적같은?
카테고리 자기계발 > 성공/처세
지은이 정은희 (다산라이프,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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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 일을 보러 나갔다가 소나기가 쏟아져 서점에서 비를 피했다. 가오리의 소설을 흝다가 평소 손에 쥐지 않는 자기계발을 집어보았다. 앉아있는 동안 반을 훌쩍 넘을정도로 읽을만큼 어렵지 않은 책이였다.
내용은 즉 작가의 이혼 후 생활에 대함이다. 근래 결혼에 대해 종종 생각을하고 얘기도 나누곤하는데 결혼이라는 것이 참으로 생을 바꾸는 것이지 않을까 - 싶다. 한 사람과 매일을 함께하고, 하루라는 시간 뿐 아니라 집이라는 공간, 하물며 통장계좌도 함께하는 사람이 생긴다는 것이 꽤나 큰 변화일 것이다.
작가는 주부로써 소박하지만 알뜰하고 안주 할 수 있는 생활을 하였지만 이혼을 하게된다. 누구나 결혼 당시에는 이혼을 하리라 생각 할 수 없을 것이다 - 작가 또한 전혀 예상치 못한 이혼이라 하였고 이에대한 설명은 그다지 길지 않더라. 이혼 후 아이들을 부양 할 경제적 능력이 없던 그녀는 아이들을 남편에게 맡기고 혼자서의 생활을 시작한다. 생활의 기본적인 경재력이 없던 그녀는 아르바이트부터 이런저런 일들을 시작한다. 책의 내용은 그녀의 실패에 대하여 - 그 과정 자체와 그에대한 본인의 감정 등을 서술하였다. 평범히면서도 멋진 삶의 이야기다. 그녀가 이혼을 하는 것 부터 시작하여 쉽지 않았으리라. 마흔의 나이에 아르바이트를 한다거나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것이 어찌 쉬웠으랴 - 이십대인 나도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하여 독립된 생활을 해야한다면 막막할 것이다.
자기계발 서적들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면서도 그들의 어려웠던 과정을 볼 수 있다. 그들의 세세한 특별함들이 궁극적으로 '성공'을 이루고 그들은 그렇게 책을 쓸만큼의 위치에 서게 되었으리라. 책의 서술이 상당히 쉽게 되어있어 아쉬운 것이 그녀의 어려움을 어찌 그 짧은 글들에 담을 수 있었으랴. 첫 직장의 실패를 대여섯 단락에 담는다는 것이 - 조금은 쉽게 표현된 것 같기도하고 보다 훌륭한 서술이였더라면 그녀의 삶에 가까웠을까. 이렇게 쉽게 쓰여진 회상이여서 독자들에게 편안한 것일까. 글쎄 - 책의 서술방법에 대해서도 생각을 하게된다.
전체적으로는 불혹이라는 나이에 대해, 결혼에 대해, 도전에 대해 생각해보게되는 - 쉽게 읽은 책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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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5 월요일


요가로 즐겁게 시작했지만 편하히 끝나지만은 않은 하루 - 한 주의 시작이다 again. 고모 할머니 할버지 댁에 다녀왔다 - 괴산의 어느 동네 ..... 옥수수를 옥시기라며 - 옥시기가 전국적으로 유명한 동네라며 내주셨다. 수박과 빚으신 송편과 오이 냉채도 함께. 늦은 시간에 찾아 뵙는데에도 반가이 맞아주시는 할머니 할버지. 언제 마지막 뵈었는지도 모르겠는 분들이지만 마냥 예뻐해주신다.
근래 피곤하다 - 이래저래 피곤하다. '이래저래'와 '피곤'이라는 의미없는, 복합적인 표현으로 그냥 묻어버리련다. 굳이 글로 남기고 싶지도 않으며, 서술할만큼 자세히 인지하지도 못한 이런저런 이유들. 딱히 중요치는 않다. 내일은 나으리 - 내일은 1mm 걸으리라며 쉬어야겠다. 그림처럼........ 마냥 아름답고 편안하고싶다 플러스 혹은 무엇보다 - 보고십다. 휙 쿵.

7/26 화요일


어제보다 1mm 진보한 오늘이였다네 ^^ 기분 좋게 선선한 바람부는 밤이다. 하늘도 짙고 바람도 느긋하구나. 처음으로 산부인과에 다녀왔다. 엄마와 산부인과에 앉아있는 기분이 .. 기이하면서도 결코 어색하지만은 않더라. 다행히도 별 일은 아니였다는. 아
빠는 오늘도 스트레스 받지 말라는 이야기를하시더라. 정작 본인의 스트레스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 많은 것을 안으시고는 피곤하시다. 몇 가지 놓으시면 편 할 수 있을텐데. 아빠의 몫이리라. 스트레스, 어찌 받지 않으리야 - 하지만 비교적 스트레스를 받으며 생활하는 것 같지는 않다. 이리 아껴주시고 보살펴주시는데 무엇을 더 바라랴. 오늘 문득 참 많은 것을 가졌다는 생각이 들더라. 나에게 과분한 삶이다 - 가족, 친구, 학교, 환경, 정신 모두 나에게 과한 것들이라 느껴진다. 나 자신의 노력은 이리 미미한데, 그에 대한.... 혹은 그와 무관히 주어지는 것들이 보다 많은 것 같다. 무엇을 위하야 노력한다기보다, 주어진 것에 답하는 마음으로 - 보답을 위하야 노력한다는 생각이 드는 하루였다.
할 일이 많고, 피곤하지만, 지낼만하다 싶은 것이 - 일상생활이란 이런거구나를 근래서야 조금씩 느낀다. 감사히 쉬자.

7/27 수요일 1414시
꾸준히 부지런히 라는 생각을 몇 일간 하고있다. 가장 어렵고도 중요한 둘인 듯 싶어 기억하려 되뇌이고있다.
오전 비가 억수로 퍼붓는다. 경기지역은 더 내린다는데에 - 논리적이지않은 기이한 현상이다. 집에서 나갈 일 없는 나는 선선하여 좋지만 생활에 불편할 정도의 비가 쏟아지고있다. 지금은 잠깐 비가 그치고 해가 나려하여, 틈을 타 오늘 입은 옷들을 옥상에 널었다.
비 때문에 요가도 적은 인원이였다. 파트너를 지어 교정을 하였는데 준강사님과 함께 파트너가 되었다. 너무나 잘 도와주셨는데 내가 바쳐드리는 상황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여 넘어지셨다, 죄송해서 기절하고 싶었다, 휘유.
오후에는 창준이가 수영을 가자고 한다. 비고 쏟아지고 시간도 빠듯하고 하여 집에서 공부를 하려하는데 역시나 능률이 높지만은 않다. 그래도 매일 평균 2-3시간 공부를 하려한다. 이것이 꾸준히 부지런히 - 이것을 믿고있는데 하하 하루 2.5시간 너무나 비약하다는 생각이 계속 든다. 시간을 늘리려면 저녁 식사 후 2시간 정도를 넣으면 될텐데 그게 잘 안된다. 하아 공부는 역시나 지능보다 인내와 끈기의 진화인 것 같다.
어제 저녁에는 장 청소와 유사한 효능의 드링크제를 마시고 잤는데 오늘 화장실을 수 차례갔다. 평시 변비로 고생하는 나에게 신세계가 열린 기분 - 참 시원하다.
근래 이렇게 소소히 지내고 있다. 아쉬운 점이라면 공부의 시간과 운동의 시간 - 등 조금 더 연장하여 모든 분야에서 보다 능률적인 활동을 하고 싶은데, 이에는 천천히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 한 듯 십다. 마음 또한 그러하다, 원하는 것은 있지만 절실한 간절함이 없는 듯 하다. 이처럼 기복없는, 격치않은 생활을 원한 것이 사실이지만 보다 열정적인 생활이 동경스럽기도 하다.  한 가지 더하자면 글을 쓸 수가 없다. 글의 주제는 여럿 생각해 두었는데도 불구하고 밀린 단상들이 대여섯이다. 하나씩 차곡히 써내려가야하는데 여력이 없는 것인지 의지가 없는 것인지, 생각만큼 생활에 실천이 부족하다. 이러한 아쉬움들을 일단 내려놓고 - 전체적으로 바쁘지 않고 편안한 생활이여서 좋다. 시애틀, 돌아가고싶지 않다.


7/28 목요일 1841시
엄마가 2박3일 교육을 받으시러 떠났다. 그 동안 먹을 반찬을 종일 만드시고 떠나시는 모습이 굉장했다. 엄마의 빈자리를 몇 일 체험하게 되었다, 부디 엄마도 우리도 무사한 몇 일을 보낼 수 있기를. 아빠는 시외로 봉사활동 가시고 창준이와 둘이 있다. 창준이가 알아서 저녁을 차려먹는다, 기특한 녀석. 오늘 영화를 다운 받았는데 이전에 본인이 받아둔 것인데 왜 받았느냐며 창준이에게 혼이 났다. 흠, 만감이 교차한다. 녀석이 나에게 짜증을 내다니 - 사실 몇 마디도 아니였지만 기이한 기분이다, 이러한 경우가 처음이여서 인가보다.
오전에 수영장에 갔는데 유치원에서 단체로 물놀이를 왔더라. 그 중 유치원 선생님 중 한명이 나의 중학교 동기였다. 얼굴은 낯이 익으나 정확히 누군지 몰랐으나 - 친구는 나에게 인사를 해주었고 나의 이름까지 기억해주었다. 어찌 반갑고 고맙던지, 나중에 인사나 할 겸 몇 마디 나누고 싶었는데 원생들을 돌보느라 친구는 이야기 할 틈이 없어보였다.
중부지방 및 곳곳에서 상당한 양의 비가 쏟아지고 있다. 충북지역은 다행이도 피해가 없는 듯 싶다. 50명 가량이 사망하고 많은 사람들이 실종되었다고 한다. 산사태 소식도 속속 들리고 참으로 다해한 여름 비이다. 많은 이들이 이번 비로 인하여 상처를 받았을지 십다. 몇 일 전의 노르웨이 사건에 이어 아픈 한 주이다.
어제오늘 공부를 하지 못하였다, 아아 꾸준히 부지런해야는데 - 성실해야는데 게으르다. 기운을 내자 ^^ 자신을 위로하며 목요일을 마무리한다.


7/29 금요일 2016시
오늘은 좋은 하루가 아니다 - 나에게는 당연하지만 남에게 당연하지만은 않은 이유로. 창준이와 수영을 다녀와서까지는 좋았는데 해가 질 무렵 괴로워졌다. 옥상 창고 청소를 한 바탕했더니 그나마 좀 나은 것 같다. 오늘이여 어서 끝나기를 바라는 중. 아 쓰러져서 몇 일 기절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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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메일이 하나 왔다. 한 줄의 안부 - 그 어느 내용보다 정신을 자극하더라. 옛 생각도 나도 , 앞으로의 일에 대한 생각도 하게되고. 솔직하게 말하자면 당장 답장을 보내고싶지만 무어라 말을 해야 할 지 모르겠다.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보고십지만 용기가 없다고 말하고 싶다 - 그치만 말을 할 용기조차 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집 바닥에 붙어 블로그에 글이나 쏟아내고 있는 것이 , 부끄럽고 궁상맞지만 현실이다. 무어하고 지내는지 묻고싶지만 조심스러운 마음에 그러하지도 못했다. 머릿 속의 답 없는 질문들은 스스로 상상의 날개를 펼친다. 어떤 모습일지 , 무엇을 계획하고 있을지 이런저런 생각들이 지난 두어시간 동안 머릿 속에 농사를 짓는다..... 상상의 곡식들이 무럭무럭 자라는구나.
이 사람, 추억에 대해 블로그에도 꽤나 몇 번 글을 올린 적이 있고 , 이에 대해 생각을 와왕 - 솔직히 이해하기 싫을 만큼 조금 과히 자주 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야 아무런 상관 없지만 , 생각을 하고 있자면 머릿 속이 복잡한 것이 사실이다. 왜냐 - 이 상황은 싫지만 내가 만든 것임으로 여기서 갈 곳 없는 구멍일 뿐이다. 플러스 연락이 되지 않은지 꽤나 오래되었기에 상황적인 팩트를 아는 바가 없다. 따라서 이른 바와 같이 머릿 속은 공허한 상상따위들로 엉켜있을 뿐 , 정리가 차곡차곡 되지 않는다. 이러한 내 모습이 싫어 만날 용기가 나지 않으며 결국 동그라미의 순환으로 굴레 돌듯 돌 뿐 , 벗어날 수도 정리 될 수도 없는 것이다.
불가능 한 것들 중 한 가지가 자신의 조언을 직접 따르는 것이란다. 어디 몰라서 하는 실수만 있을까 , 알고도 하는 실수가 오히려 많지 않을까 싶다. 나 자신을 보면 알고도 하는 실수가 훨씬 많다. 오늘도 조금 듣기 싫은 말에 아빠에게 금새 짜증을 냈다. 몇 마디 하신 것도 아닌데 내가 너무 인내가 짧았다는 생각이 불과 몇 분이 지나지 않아 들었고 , 아빠와 대화가 끝난 후 몇 시간 동안 그 순간을 곱씹으며 후회를 했다 .... 그랬으면 안되는건데 - 라며. 순간적 판단력을 기르는 것이 철이 드는 것이 아닌가 싶다. 같은 실수가 반복되는 이유는 조급하기 때문이라는데 , 느긋함과 인내를 길러야 함을 자주 기억하지만 참으로 어려운 것 같다. 그것의 난이도가 어찌되었건 시간이 많이 필요한 것은 확실한 것 같다.
무튼, 이메일 하나에 이렇게 자극을 받는 것을 보니 몇 년 전이나 지금이나 나를 움직이는 사람임에는 분명하다. 오히려 이전보다 지금의 나를 쉽게 움직이는 것 같아 이상하기도하고 , 나 자신을 보다 모르게 만든다. 절로 한숨이 난다 하하 , 휴. 그리움인지, 아쉬움인지, 후회, 단순한 추억인지 , 도대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은 것이 긴장이되고 조금은 부담이 된다. 나에게 무엇을 바라는 것도 아닌데 - 이리 과히 반응하는 것을 보면 , 객관성을 찾아야겠다.. 끝 따위는 없는 것이 , 꼭 수평선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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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감독 민규동 (2011 / 한국)
출연 배종옥,김갑수,김지영,유준상,서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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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종옥씨가 엄마이다. 얼굴만봐도 이제는 슬퍼 죽겠다. 죽겠다는 말이 조심스럽지만 슬퍼 죽겠다는 말이 자꾸 머릿 소게 맴돈다 , 정말 슬퍼서 죽을지도 모르겠다.. 너무나 전형적이고 평범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절절한 스토리. 십몇여년 전 '아버지'라는 책이 꽤나 흥을 했었다. 그 또한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병으로 생의 끝을 바라보는 아버지와 그의 가족들의 모습이다. 그 책을 읽으며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나지만 이 영화를 보며 쏟은 눈물만큼은 아니였을지 싶다. 이 영화를 책으로 보면 어떠할지 , 읽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말 그대로 '슬픈' 슬퍼서 괴롭고 힘들고 지치고 슬프고 눈물이 멈추지 않는 그런 이야기..
영화에 그 토록 나 자신이 개입된 이유는 그것이 연출의 목적이였으리라. 관객을 무엇보다 이입시켜 눈물을 흘려보자는 의도였으리라. 그것이 쉽게 당연한 것이 누구나 자신을 극중 캐릭터에 대입 할 수 있을 것이다. 극 중 인물들 - 엄마, 아빠, 딸, 아들, 누나, 동생, 할머니 가 주요 인물이라 싶다. 저 중 하나에도 맞지 않는 사람이 있겠는가.. 나만하여도 딸이고 누나이자 미래의 엄마.. 이다. 극 중 딸을 보며 내 모습과 다르지만 너무도 같음에 속이 많이 상하였다. 나 또한 엄마에게 아빠에게 의지하지만서도 가장 위로 해야 했을 시에 곁에 없었고 , 엄마의 아빠의 마음을 안다하지만 알지 못하였고 , 부모의 아픈 모습을 모두 꺼내 보고서야 마음을 돌린다. 나 또한 효도하고 싶고 미안하고 고마울 뿐이다. 극 중 엄마가 땅을 대하는 모습 또한 너무나 나의 엄마와 꼭 같다. 딸의 생활을 궁금해하고 안녕을 바라고 , 늘 뒤에서 웃고계셨으며 뒤에서 안아주셨고, 나보다 먼저 다가오셨다. 극 중 동생의 청각장애 또한 창준이의 것과 너무 흡사하다. 창준이 또한 편치 않았고 , 그에 대한 아픔은 엄마에게도 아빠에게도 남았다. 그렇게 그들은 아들 딸을 위해 속이 탔고 아팠으리라.
극 중 아빠 역을 보며 , 아빠의 타고있는 속 또한 보인다. 아내를 아끼고 소중시 여기지만 크게 개여하지 않고 , 거리를 둔 것처럼 여겨지는 것은 모든 아버지의 마음일 것이다. 일상이 피곤코 가정이 편안하고 모든 것의 중심이지만 그에만 메달릴수는 없는 것이 현실리리라. 의사이지만 아내가 아프다는 말에 쉽게 넘기려 약국으로 아내를 보낸 것이 얼마나 후회가 되었을까. 세심하지 못했던 것이 아니라 생활에 치였을 뿐이고 , 그러한 가족에 대한 배려가 없는 가장이 아닌, 가정을 보다 위하고싶어 사회에 열심하려다보니 한 순간 한가지를 잡지 못하였을 뿐이리라.



 

엄마가 떠나면 누가 아들과 아들의 여자친구를 아무 말 없이 받아주고, 누가 딸의 결혼을 준비 할 수 있겠는가. 엄마와 아빠는 비교 할 수 없는 두 기둥이고 공존치 않고서야 완전 할 수 없는 것이리라. 어제 엄마가 말하기를 결혼이란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것이라 하시더라. 결혼을 한다고 하여 나의 기준이 너의 것이 되고 , 우리의 사상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엄마의 뜻을 조금 넘어선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 그렇게 들리었다. 둘이 하나가 되는 것 - 조금은 , 솔직히 오래된 생각이라는 생각도 든다. 결혼이라는 결합 후에도 나 혼자서의 여행을 떠나고 싶고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을 것이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하지만 엄마의 뜻은 그런 것이 아니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또한 든다. 나는 나이지만 우리는 같은 곳을 바라보는 , 한 모습이 되어 한 그림을 이루는 , 둘이 항상 함께 모든 곳에 담겨지는 그러한 것을 엄마는 뜻한 것이 아닐까.
언젠가 누군가 나에게 사랑하는 것은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닌 ,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라는 말을 해주었다. 당시 나는 그보다 많은 것을 알고 느꼈다고 생각했고 , 이해하지 못했지만 어물정히 넘어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그 말의 뜻이 조금씩 이해가 되면서 그가 그런 말을 당시에 했다는 것에 되돌아보며 감사하곤한다. 나의 삶에 그러한 친구가 있었다는 것이, 하지만 그의 생각의 깊이를 내가 그만큼 몰라주었다는 것이 고맙고도 미안한 생각이 많이 든다.
이렇게 살며 여러 사람을 만나고 그들과 소중한 추억과 시간을 갖는 것이 삶의 임무이리라..

영화 중 남편 김갑수씨의 옷장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이야 말로 예술이다.. 셔츠에 맞추어진 자켓과 , 조심스럽게 그렇지만 너무나 능숙히 정돈되어있는 넥타이들 - 이를 아름다움이라 하지 않으면 무엇을 아름다움이라 할 수 있을까. 오랜 세월의 사랑을 아낌을, 그것이 습관이고 인생 자체임을 - 고심하였지만 쉽게, 어려운 일이지만 능숙하고 편안하게 표현되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하여 무엇이든 할 수 있을테지만 가장 주기 어려운 것이 정성이리라. 내 아무리 많은 시간을 준다하여도 그 모든 시간에 아낌과 심혈이 깃들기가 쉽겠는가. 엄마와 아빠의 모습, 나와 창준의 모습을 끊임없이 되돌아보며 영화를 보았다. 그 모습들이 너무나 닮아서 - 그 무심하지만 언제나 노력하는, 쉽게 잊지만 가장 쉽게 돌아오는, 끊임없이 생각하지만 가장 가슴의 바닥에 담아두는 그러한 것이 가족이리라. 이유가 필요없고 쉽게 눈물이 나고 가장 아름다우며 가장 괴로운 것이 가족이리라.
극 중 남편역 김갑수씨가 엄마가 먼저 떠나는 일은 오히려 다행이라는 말을 하신다. 그 만큼 고생을 덜고 먼저 편히 쉬는 것이 다행..이라고 하신다. 그렇다.. 그렇다 먼저 편히 쉬시어 얼마나 다행인가 , 하지만 살아서는 그렇게 쉬실 수 없으셨던 것일까 - 살아서는 함께하며 , 조금 더 함께 시간을 보내고 함께 , 나의 곁에서 쉬실 수는 없으셨을까. 그것을 허락하지 않은 것이 가족 모두의 죄책감이리라.







극 중 배종옥씨의 동생 역으로 유준상씨가 나온다. 험한 말과 행패로 자신의 살 또한 얼마나 불만족 스러운지를 끊임없이 표현한다. 언제나 부족하고 못마땅한 듯 돈을 바라고 바란다. 그래도 싫지만서도 , 연을 끊자는 말을 물 마시듯 쉽게 하면서도 끊어지지 않는 것이 혈연이리라. 그 또한 누나의 죽음 앞에서 호두과자를 건네는 동생이다. 혹여나 누나가 호두과자를 먹다가 목이 메일까 음료수를 꼭 건네야만 속이 편안한 , 그 또한 가족이다.




영화의 슬로건 "그 날 이후 우리는 진짜 가족이 되었습니다" 라는 말.. 어려움을 넘어야 애정이 깊어진다는 것이리라. 얼마 전 만난 친구가 한 이야기가 삼촌이 암에 걸리시자 가족이 하나가 되어 감사하다고 하더라. 삼촌의 암은 초기여서 수술을 하셨지만 재발 위험성이 아직 있으시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삼촌의 암이 가족을 만나게하고 서로의 염두에 두게하였고 그것으로 인해 가족의 가족됨을 느꼈다고 하였다. 교회를 중시 여기는 그는 그것이 하늘의 뜻이라는 말 또한 붙였다. 그렇게 우리는 어려울 수록 뭉치고 서로에게 의존하는가보다. 아픔 없이는 서로 또한 필요치 않은, 어쩌면 상당히 이기적이고 전혀 가족적이지 않은 개념이다. 하지만 그 모든 논리가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엄마가 아프면 이렇게 눈물 콧물이 나고 슬퍼 죽겠는데..




효도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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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을 쫓는 아이
감독 마크 포스터 (2007 / 미국)
출연 제케리아 에브라하미,아흐마드 칸 마흐미드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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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을 쫓는 아이 Kite Runner의 책을 읽은 것은 3년 전. 영화를 보며 책의 묘사들이 기억이 났다. 개인적으로 영화가 책보다 재미있었다. 책을 읽으며 나의 머릿 속에 상상되었던 그림들은 사실상 뚜렷하지 않다. 아프간의 문화와 모습들에 대한 배경 지식, 혹은 이미지들이 많이 없기 때문에 상상한다는 것이 너무나 백지장 같았을 것이다. 영상화된 그림들인 영화를 보며, 아프간의 문화와, 그들의 의복, 길거리, 건축, 얼굴 선 들을 직접적으로 보니, 그 문화가 얼마나 고유하고, 멋진지 느낄 수 있어 좋았다. 눈이 매우 즐거웠다.
내용은 간단하면서도 훌륭하다. 사회적 배경을 대중에게 훌륭히 전달하였고, 문화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전쟁으로 인한 사회적 현상들, 물론 미화된, 동화적인 요소가 있는 듯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야기이지 않은가. 생각 해 볼 수 있는 주제거리를 던져준다. 문화적인 것을 떠나 가족, 개인, 친구, 집단성, 사회, 구성원, 등 사람에 대한 사람 향이 짙은 영화이다. 사람들의 움직임 - 사회적 단체들의 행위들, 가족 구성원의 - 각자의 위치, 그리고 그러한 위치들의 상호관계 등이 매우 흥미롭다. 사건에 따라 변하고 변하지 않는 인물들의 감정, 성격 등에 집중하며 보았다.
친구, 형제, 아버지, 하인 ... 거짓말, 사실, 충성심 ... 나라면 어떠했을까를 생각하게하는, 나에게는 너무나도 다른 세상의 일인 듯 하지만, 큰 틀에서 생각해 보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나에게 거짓을 말한 아버지, 나에게 끝까지 믿음과 충성을 준 친구, 하인, 형제 - 그를 위해 내가 얼만큼 할 수 있는가. 나를 위해 목숨도 마다하지 않은 친구를 위해, 나는 얼만큼 움직일까 ...

연을 고르는 Amir Jan




Amir Jan과 Hassan



사진 출처 http://movies.nytimes.com/2007/12/14/movies/14kite.html
http://www.coiana.com/stream/2008/04/the-kite-runner.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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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더스
감독 짐 셰리던 (2009 / 미국)
출연 제이크 질렌할,나탈리 포트만,토비 맥과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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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 심 멋진 영화. 일단 캐스팅.... 나탈리 포트먼, 제이크 질렌할, 토비 맥과이어, 무려 캐리 물리건도 때로 나온다. 더불어 아역 배우들 또한 너무나 사랑스럽 멋지게 역할을 소화했다. 사랑, 가족, 전쟁, 감정, 정신, 심리 - 어쩌면 당연하지만 숨기고 싶은 이야기 들의 섬세한 감각으로 그려냈다.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이러한 주제, 불편하지만 괜찮고, 수긍하고싶지 않지만 이해 할 수 있는 일들. 죽어도 싫지만 눈물과 함께 토해 나누어야만 살아 갈 수 있는 이야기들. 현실적이고 간단하지만, 가장 아프고 괴로운 생활의 모습들...... 딱히 전혀 훈훈하지만은 않은 이야기지만 너무나 매력적이다. 벽난로처럼 따뜻한 가족의 모습이 아닌, 1월의 시멘트 바닥같은 차가운 가족의 모습, 굳이 꺼내지 않는 모습들에 왜 나는 매력을 느낄까.... 당연하지만은 않은, 현실적 아름다움에 잠이 오지 않는다.
전쟁...... 망할 전쟁




사진출처
http://www.reviewstl.com/brothers-movie-review-tobey-maguire-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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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오빠라 부르는 어머니...묶어놓았습니다
소녀가 된 어머니 보살피기... 외할머니, 저 잘하고 있는 걸까요
김수복 
11.04.19 
 

외할머니. 기다리던 휠체어가 집으로 배달되었습니다. 살면서 휠체어를 만져본 적이 거의 없는 저로서는 이틀에 걸쳐 그 조작법을 읽혀야 했습니다. 목욕을 하는 중에도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기 일쑤인 어머니이고 보니 저로서는 제가 아직 모르는 사고를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오늘 오전 날씨가 너무 좋아서 휠체어를 마당에 펴놓은 다음 어머니를 품에 안고 나왔습니다.

 저는 내심 "아따 꽃이 피었네, 좋다" 소리가 어머니의 입에서 나오기를 기대했습니다. 봄이 오고 꽃도 피면 휠체어를 반드시 장만해야 겠다고 생각한 원래의 목적이 사실은 그런 탄성을 듣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어머니는 한 말씀도 없이 그냥 잠들어 버리시는군요. 아니 사실은 제가 품에 안는 순간에만 잠시 깨었을 뿐 어머니는 내내 잠들어 있었습니다.

 이렇듯이 어머니는 일주일 중에 5일은 거의 하루 내내 주무시기만 합니다. 오줌을 누자고 이동식 변기에 앉히면 어머니는 거기서도 잠들어버립니다. 제가 잠시 한눈이라도 팔라치면 졸다가 그대로 굴러떨어지곤 합니다. 목욕통 안에서도 졸다가 물에 빠져 사경을 헤매게 됩니다.

 때문에 이부자리가 아닌 다른 장소에서는 항상 곁에서 지켜봐야 하고, 잠시라도 자리를 떠야 할 일이 있을 때면 보자기 두 개를 어머니의 겨드랑이 사이로 끼워넣어서 의자라든가 변기라든가 그때그때 적당한 기둥에 묶어놓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제 자신이 무슨 고문기술자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어서 암담해져 버립니다. 그러면서도 저는 아직 묶어놓는 것 이상의 좋은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중에 이틀 정도는 또 거의 잠을 안 자고 놀자고만 하십니다. 제가 잠이 쏟아져서 이제 그만 자자고 하면 눈을 '오꿈하게' 치켜뜨면서 아주 단호한 목소리로 놀다가 자겠다고 하십니다. 제가 강제로 품에 안아서 이부자리로 옮길라치면 새처럼 가녀리게 우는 목소리로 "으째 그러셔요, 으째 그러셔요" 하시는데 그럴 때면 저도 모르게 웃음이 쏟아져서 어쩔 줄 몰라하게 됩니다.

 "죽음을 알면 삶이 5천 배는 더 즐거워진다"

 외할머니. 오래 전부터 삶이 아득할 때면 들려오는 외할머니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사람이 죽음을 알면 삶이 5천 배는 더 즐거워진다는 말씀이지요. 언제 어디서 왜 그런 이야기를 들어야 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 외할머니께서 누군가에게 하시는 말씀을 옆에서 듣고 있었다는 것만 어렴풋이 기억할 뿐입니다.

 외할머니의 그 말씀을 들을 때는 아마 건성이었을 것입니다. 죽음이라는 테마를 만지작거리기에는 그때의 제 나이가 많이 어렸으니까요. 그런데 그날 이후 제 안에서 무엇이 어떤 작용을 했는지 외할머니의 그 말씀은 제 삶의 기둥이 되고 있었습니다. 절망이라는 단어가 눈앞에서 어른거릴 때면 으레 외할머니의 그 말씀이 머릿속을 흔들어대며 눈빛을 빛내곤 했으니까요.

 사람이 죽음을 안다는 게 무엇일까요. 조금씩 철이 들어가면서 저는 늘 목이 말랐습니다.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은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나. 그런데 외할머니는 제가 철이 들기도 전에 돌아가시고 안 계셨습니다. 가끔은 외할머니가 원망스럽기도 했습니다. '왜 그렇게 빨리 돌아가셨지?'하고 말입니다.

 세상은 온통 공부 잘해야 한다, 돈 많이 벌어야 한다, 출세를 해라 등 추상적인 충고와 조언만 할 뿐이었습니다. 외할머니처럼 그렇게 죽음이라는 아주 구체적인 사건을 가슴에 비수처럼 푹 꽂아주며 "여기에 삶의 비밀이 있다" 하고 말해주는 이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때는 외할머니에 버금가는 사람을 찾겠다고 산으로 들로 미친 듯이 쏘다니기도 했었지요. 그 즈음의 어느 날 산속에서 '도사'라고 불리는 어떤 사람이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눈을 보니 공부할 때가 되었다고, 그러니 자기를 따라와서 공부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따라가기에 앞서 무슨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냐고 여쭤보았습니다. 그러자 그 '도사' 말하기를 사람 마음을 읽는 게 중요하다는 거였습니다. 사람 마음을 제대로 읽을 줄 알아야 나중에 '철학관' 간판을 걸었을 때 금방 족집게로 소문나고 돈방석에도 앉고 그런다는 거였습니다.

 살아가기 팍팍해서 지푸라기라도 잡겠다고 찾아온 사람들에게 앞날의 방향을 점쳐주는 게 아니라, 찾아온 사람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다급한 게 무엇인지를 금방 감지해서 그것으로 족집게 소리를 듣는 그런 공부를 하라고 권했던 그 '도사'는 결국 자기가 '제자'로 삼고자 하는 애송이의 마음 하나도 읽지 못하고 있었던 셈이었습니다. 그것을 계기로 저는 더 이상 제 자신의 내부가 아닌 바깥에서 무엇을 배우겠다는 생각을 접고 말았습니다.

 "아이고 우리 오빠, 닭이라도 사다 드려야 쓰겄는디"

 외할머니.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져가는 어머니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간이 많아진 이즈막에 이르러서야 죽음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이를테면 어머니가 옷을 갈아입혀줘서 고맙다고 하실 때,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세 번 연거푸 고맙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씀하실 때 저는 어머니를 끌어안고 싶어집니다. 단순하게 그냥 껴안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 부러지도록 있는 힘껏 끌어안은 채로 마구 몸부림을 쳐보고 싶어집니다.

 몇 번인가 실제로 그렇게 해보기도 했지요. 그런데 생각했던 것보다 그리 큰 위안은 없이 매번 눈물만 나오려 하더군요. 그런데다 어머니는 또 "아이고, 이러지 마시오. 나 좀 살려주시오" 하고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애원을 하십니다. 그러면 저는 민망하고 머쓱해져서 다시는 이러지 말자고 혼자 맹세를 하며 어머니를 이부자리 위에 가만히 눕히게 됩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죽어서도 안 잊어 먹을라요, 이 고마움을…."

 죽어서도 안 잊겠다는 어머니의 이 말씀이 저를 숙연하게 합니다. 지난 3년여 동안 아마 3천 번은 들었던 것 같은데 들을 때마다 새로워서 한참 동안 멍해지곤 합니다. 도대체 죽어서도 안 잊겠다는 발언은 어떤 자신감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그렇습니다. 어머니는 지난 시기 그 어느 때보다 확신과 자신감에 차 계십니다. 아들은 의심할 필요 없는 오빠이고, 까마득한 과거에 돌아가신 당신의 친정어머니는 지금 어딘가에 살아 계십니다. 그리고 당신 자신은 아직 옷도 입을 줄 몰라서 아랫도리를 벗고 다니는 아주 작은 소녀입니다. '오빠'가 '소녀'를 안아다가 자리에 눕히거나 목욕을 끝낸 뒤에 머리를 말리고 있을 때 그녀는 또 이런 말로 저를 웃겨주십니다.

 "아이고 우리 오빠, 닭이라도 한 마리 사다 드려야 쓰겄는디."

 사 주고 싶으신 게 항상 닭인 것은 아닙니다. 수박도 사 주고 싶고 오징어도 사 주고 싶고, 풍천장어도 사 주고 싶고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사 주고 싶으신 것 같습니다. 그 중에도 유독 닭을 더 많이 언급하시는 이유가 무엇인지 저는 아직 모릅니다.

 아무튼 어머니가 그렇게 무엇을 사 주고 싶다 하실 때마다 저는 슬쩍슬쩍 장난기가 발동해서 파고들어가 봅니다. 무슨 돈이 있어서 닭을 사 온다는 것이냐고, 돈도 없으면서 거짓말이나 한다고 책망하는 투로 어머니를 놀려보는 것입니다. 그런 때 어머니의 말씀이 이렇습니다.

 "음마, 오빠도 참. 아, 우리 어머니한테 달라고 해야지요."

 그런 말씀을 하실 때의 어머니는 그렇게 진지할 수가 없습니다. 눈을 갸름하게 뜨고 고개를 살짝 틀어서 그것도 모르느냐는 듯이 정색을 하는, 너무도 진지하고 천진난만하기까지 한 그 표정에 저는 그만 헷갈려서 한참씩 눈을 깜빡이게 됩니다. '가만 있어, 외할머니가 지금 살아 계시는 건가?'하고 말입니다. 하긴 이런 어리둥절함이 제게는 그리 낯선 것도 아닙니다.

 오직 한 사람, 어머니에게서 받는 용돈이어야 합니다

 외할머니. 돌아가신 뒤의 외할머니는 살아 계실 당시의 외할머니보다 훨씬 자상하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외손자인 저를 맞아주곤 하셨지요. 제가 밤늦게까지 친구 집에서 놀다가 돌아오면 집 앞의 측백나무 밑에 앉아 계시다가 사르르 일어나시며 "아이고 너무 늦었다, 어서 들어가자"하시는 거였습니다. 저는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왜 이렇게 살아 계신 것처럼 느껴지는가, 의아하고 무서워서 처음에는 도망치기도 했지만, 차츰 익숙해져서 나중에는 일부러 늦게 길을 나서곤 했습니다.

 요즘은 어머니가 외할머니를 품에 안고 '정지간'으로 나가서 목욕을 시키던 날의 풍경이 수채화처럼 떠올라오곤 합니다. 때가 되면 가야 할 곳을 알고 살던 데를 떠난다고 하는 늙은 코끼리처럼 외할머니는 작은 보따리 하나를 들고 우리 곁으로 오셨었지요. 마치 "나 여기서 죽을란다, 괜찮지?" 하는 듯이 말입니다.

 5남 1녀 육 남매, 고만고만한 자식들을 씻기고 먹이면서 부엌일에 들일까지 하시느라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 친정어머니라는 또 한 명의 '아이'를 보살피는 어머니를 보면서 저는 아마 생각이 제법 깊어졌던 것 같습니다. '아이가 자라서 어른으로 살다가 다시 아이가 되는구나' 하는 인식의 순간에 느끼는 감정은 참으로 뭉클하고 거룩했습니다. 죽음이 죽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여태까지와는 다른 생을 예비하는 과정쯤으로 이해되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인지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흘린 눈물은 끈적이지 않고 담담했었다고 기억됩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외할머니의 꽃상여가 마당을 빠져나가던 날 별로 울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도 별로 울지 않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짠하다고 눈물을 많이 흘려주셨지요. 아들 집이 아닌 딸네 집에 와서 돌아가셨다고 말입니다.

 외할머니. 혼자서는 일어나서 앉지도 못하는 상황을 맞이한 이후로 어머니는 돈 쓸 일이 부쩍 많아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돈은 자식을 포함한 그 누구도 아닌 오직 한 사람, 당신의 어머니에게서 받는 용돈이어야만 하는가 봅니다.

 그러니 외할머니께서 지금까지 그래 오신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 아니 좀 더 자주 어머니의 꿈속을 방문해서 위로도 해주시고 용돈도 쥐어주고 그래주십시오. 어머니가 그 돈으로 오빠라는 이름의 아들에게 닭도 사 주고 수박도 사 주고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사 주실 수 있도록 꼭 그렇게 해 주십시오.

꿈에서 당신의 어머니를 만나 행복해하시는 어머니를 보며 나름 즐거워하는 외손자가 혹시 기도만으로는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귀에 미치지 못할까 염려되어 이 한 편의 작은 글로 부탁의 말씀을 드립니다.


출처 : 나를 오빠라 부르는 어머니...묶어놓았습니다 - 오마이뉴스



할머니, 엄마, 나, 삼대. . 할머니는 엄마를 나았고, 엄마는 나를 나았고, 나도 언젠가 생명의 엄마가 될 지도 모르겠다. 엄마라는 존재. . 엄마라는 단어만 생각해도 코 끝이 따뜻한 것이, 엄마 사랑해, 그냥 항상 미안해. . 근래 대학생들의 자살에 대한 이야기가 종종 들린다. 얼마 전 아빠 또한 나에게 이러한 철학은 옳지 않다며 전화너머 긴 위로의 말을 해주셨다. 분명 나는 자살의 생각이 없다고 말씀드렸지만서도, 아빠는 준비한 듯, 아니 마음의 쌓여있던 걱정을 봇물 터지듯 풀어놓으셨다. 듣기 싫었지만 얼마나. . 아빠의 진심이 느껴져 얼마나 속이 따뜻해지던지. . 이렇게 나는 너무나 존경스러운 부모님께서 길러주셨다.
세 해 전,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전, 누워계셨던 할머니, 따라서 어느 정도 예측 할 수 있었던 일이였으리라. 미국으로 오기 전의 여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갈 준비를 하던 여름, 당시 할머니는 누워계셨다. 병원에서 투석을 하던 할머니의 모습을 우리는 모두 보았다. 나는 투석이 무엇인지도 몰랐으며, 상상만으로도 무서운 과정을 조용히 누워 받으시는 할머니를, 곁에서 보았다. 그 해 여름, 병원에서도, 방에서도, 할머니는 늘 누워계셨고, 나는 그 곁에 눕는 것을 좋아했다. 가족들이 할머니와 함께했지만, 할머니 곁에 누웠던 사람은 나 뿐이였던 것 같다. 엄마도 앉아서 할머니의 손을 잡고 대화를 나누고, 다른 손주들도, 나만큼 할머니와 가깝게 지내지 않았던 것 같다. 할머니는 오랜 시간 나와 창준이 가까이에서 우리를 보살펴 주셨다. 다른 손주들과 우리 남매가 할머니 마음에 어떻게 다를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우리 남매가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오랜시간 함께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창준이는 사춘기 남학생이기도하고, 애교라곤 없는 무덤한 성격이여서 안기지 못했으리라. 아무튼 그렇게 할머니 곁에 누워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이하게도 아무런 기억이 나지를 않는다. 하루는 할머니께서 할머니의 사촌분들에 관한, 가족사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사실 나와는 먼 어른들 처럼 느껴져 누가누구인지, 무슨 이야기를 하셨는지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특별히 건강하라, 잘 지내라, 와 같은 조언따위의 말은 없었던 것 같다. 그저 일상적인 이야기. . 과일을 먹으며 우리는 그냥 그렇게 누워서 놀았다. 그 여름, 나는 4주 동안 제주도에서 일을하게 되었다. 따라서 할머니의 곁에 누워있을 수 없었다. 나는 하루도 빠짐 없이 할머니에게 전화를 드렸다. 할머니, 뭐해요? 로 시작해, 우리는 역시나 일상적인 이야기를 했다. 제주도는 비가 많이 온다느니, 청주는 뜨겁다느니. . 아이들이 나를 좋아한다, 할머니는 누워있지. . 점심은 아직 안 먹었다, 오늘은 엄마가 왔다갔다. . 등등.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해는 내가 미국으로 처음왔던 해이다. 내가 속상할까 걱정되었던 엄마는, 사실을 몇 주 후에 알려주셨다. 처음 소식을 접한 날, 겨울의 어느 날이였다. . 당시 엄마가 어떠한 문장으로 소식을 전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상한 기분이였지만 크게 놀라지 않았다, 예상된 일이였으니. . 특별히 슬프지도 않았다, 가슴이 아프다거나하는 느낌이 없었다. 오히려, 할머니가 나와 이 공간에 함께 계시다는 느낌을 짙게 받았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나고, 어느 일요일, 의자에 앉아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의자에 두 다리를 안고 앉아있었다. 갑자기 할머니의 기억이 나면서, 눈물과 울음이 터졌다. 그렇게 두어시간을 나는 의자에 앉아 꺼이꺼이 울었다. 갑자기 할머니가 생각날 이유도 없었고,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였는데, 그렇게 나는 속을 개우듯 울었다.
엄마, 엄마는 어땠을까. . 지난 해 여름 엄마를 만나, 엄마는 그 해 너무나 힘들었다고 이야기 하셨다. 딸을 미국에 보내고, 엄마마저 곁을 떠났으니. . 속이 속이 아니였으리라. . 엄마는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참으로 좋아한다. 함께 장을 보는 것, 엄마가 요리하는 모습을 내가 바라보는 것, 엄마의 음식을 맛있다며 먹어주는 것, 미사를 드리는 것, 엄마와 공원을 걷는 것, 함께 쇼핑을 하는 것, 나의 여름은 대부분 이러한 일들로 가득하다. 특별한 일이 없을 시에는 엄마와 장을 보거나, 음식을 먹거나, 거리를 걷는 시간들이 많다. 와중 우리는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한다. 그러한 나와의 모든 시간이 사라지고, 엄마마저 돌아가셨으니. . 나로써는 상상 할 수 없는 일이다. 
나의 증조할머니, 엄마의 할머니는 90이 넘어서 돌아가셨다. 늘 한복을 입고 지내셨으며 매우 마르고 작으신 분이였다. 담배를 태우셨고, 이빨이 많이 없으셨으며, 항상 머리를 쪽지로 묶으셨다. 지팡이를 짚고 걸으셨으며, 걷는 것을 무척이나 즐기셨다. 앉아계실 적에는 늘 한 무릎을 땅에두고 한 무릎을 세워, 그 위에 팔을 쉬게하셨다. 피부는 그을리신 듯 구릿빛이셨고, 얄팍하고 늘어진 주름들이 많으셨다. 눈은 작고 쳐지셨으며, 머리는 길고 가늘고 하야셨다. 담배를 좋아하셨고 공원을 좋아하셨다. 가끔 웃으셨으며, 말을 매우 씩씩하게 하셨다. 그렇게나 오랫동안 건강하게 사셨다는 것이, 당시 어린 나로써는 아무런 감흥이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상당히 대단하신 분이다. 언젠가 엄마가 증조할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하신 적이있다. 할머니가 늙으시어 몸에 기운 한 줌 없이 누워 계시던 중, 화장실에 가야한다며 몇 번을 가셔도 일을 보지 못하시더란다. 괴로우셨는지 부축을 받아가시며 화장실을 계속 드나드셨지만, 변을 밀어낼만큼의 힘이 없는 할머니는 일을 보실 수 없었다. 힘 없는 할머니는 괴로움을 안고 누워계실 수 밖에 없었더란다. 그런 할머니의 모습이 안쓰러워, 엄마는 장갑을 끼고 할머니의 항문에서 변을 꺼내셨단다. 그 작은 몸에서 얼마나 많은 변이 나오던지, 엄마는 매우 놀랐다고 한다. 그 동안 할머니는 얼마나 답답하고 지치셨을까. 엄마의 손길이, 얼마나 큰 체증을 내려주셨을까. 계산 할 수 없고, 결코 비교 할 수 없는 감정, 느낌들이였을 것이다.
증조할머니는 우리 집에서 돌아가셨다. 내가 본, 첫 사람의 죽음이였다. 엄마는 할머니의 죽음에 대해서 매우 편안히 이야기해주셨다, 엄마는 늘 죽음에 대해서 편안히 이야기하신다. 할머니는 누워계셨고, 조용히, 아픔이 없으신 듯 편안히 돌아가셨다고, 사람이 죽을 수 있는 가장 평안한 방법으로 돌아가셨다고 이야기 하셨다.
죽은사람의 길을 알지는 못하지만, 죽음을 맞이한 산 사람의 길은, 체험하였고, 보았다. 증조할머니의 죽음, 할머니의 죽음, 이외에도 할아버지들의 죽음들이 있었다. 죽음에 대해 특별히 두려움은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죽음보다 무서운 것은 삶이 아닐까라는 생각을한다. 기사 중 절망 앞에서, 할머니의 '죽음을 알면 삶이 5천배는 즐거워진다'라는 말이 기둥이되었다는 대목이있다. 아, 이 얼마나 멋진 기둥인가. 살면서 절망이란 많다, 죽으면 끝일거야라는 생각도들고, 끝이면 편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러한 어려움에도 우리는 죽지 않는다. 나를 죽이지 못 한 괴로움들을 뒤 돌아보며, 어떻게 내가 죽지 않았나라는 경이로움과 더불어, 사람이 죽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힘든가? 죽어라, 힘들다고 징징대려는 순간, 그럼하지마라는 생각은, 투덜거림을 조용히한다. 죽을, 하지 않을 마음도 없으면서, 모순적인 투덜거림은 시간과 에너지의 낭비일 뿐이다. 일을 어서 마치고, 뿌듯함을 만끽하는데에 시간을 사용하면 보다 즐거운 생활을 할 수 있다. 이렇게 의식의 가까운 곳에 죽음을 두는 것은 분명 생활에 영향을 미친다. 살아계신 할머니에게, 잘 해야지라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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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따끈따끈한 햇빛을 스미며 누워있었더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더라. 근래 계속 하는 이야기지만 기분이 상당히 괜찮은 편이다. 물론 모든 것이 만족스럽지 않다. 교통법 딱지, 자동차 사고, 기름값 (차를 갖다 버려야. .), 적자통장, 게으른 나의 모습, 기다려야하는 대학통지, 정리해야 하는 책들, 뭔 소리 하는지 알 수 없는 생물교수. . 이 정도가 근래 생활의 번거로움 인 듯 하다. 왠지 쓰고보니 순위도 딱 저 정도인 것 같다. 결과적으로 차를 버려야한다는 결과가나오는구나. . 아무튼, 딱지를 받은 날에도 딱히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사실 카메라에 찍히는 순간 알고있었고, 기분이 더러웠지만, 무언가 감정의 집착이 사라져버린 요즘. . 이 또한 6개월 후면 쉽게 잊을, 아무런 쓸모없는 에너지, 감정의 낭비라는 생각이, 들지도 않는다. 그저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사실 생활의 번거로움을 찾아보자니 저러한 리스트가 작성되지만, 저들에 대해 나의 에너지의 5%도 쓰이지 않는 것 같다.
근래 나의 기분이 좋은 것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된다. 나의 기분은 왜 좋은가? 얼마전 주위 친구들, 사람관계를 돌아보며, 그것에 블로그를 쓰기도 하였다. (http://watericious.tistory.com/101) 확실히 주위 지인들의 영향이 큰 것 같다. 더불어 사순시기 동안 시간을 들여 읽고있는 김수환 추기경님의 글들에 대한 공감 또한 마음을 비우는데 도움이 되는 듯하다. 그 외에 무엇이 있을까. . 나의 21년 삶을 돌아보면, 나의 전반적 분위기는 중립, 혹은 어둡에 가깝다. 중립보다 어둠에 가깝다고 해도 되리라. 복잡한 지능싸움따위의 영화를 즐겼고, 나 자신을 더럽게 여겼으며, 가볍기보다는 무거운 주제들의 글을 읽고 썼고, 쉬운 일들은 하소롭게 대하였다. 나의 즐거움은 나에게 매우 생소하다. 나의 변화는 분명하다. 무언가 편안한 일이 하고싶어졌고, 나의 생활에 대해 수긍하고있다. 세상의 불합리를 합리로써 이해한지는 오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기는 매우 최근에 일이고, 나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작아지기도 하였다. 안락은 나약함이라 믿었던 기준또한 변하였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또한, 마음의 무게가 변함에 따라 매우 달라졌다. 이렇게, 나는 분명히 어느정도 변하였다. 궁금한 것은 왜, 나는 왜 변하였을까?
사람. . 사람이란, 사람이란 무엇인가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사람이 무엇을 필요로하느냐가 보다 관심두어야 할 이야기이지 않을까. 개인마다 필요한 것에 차이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생활의 근본에, 우리는 모두 사람이기에 공통분모가 있을 것이다.
오늘 '선택'이라는 글을 읽었는데, 내용이언정 30의 싱글이, 말이 통하지만 공부를하고있는 경쟁력이 없는 남자와, 가정과 사회생활이 안정되어있지만 특별히 재미가 없는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글이였다. 글의 댓글 중에는 '돈은 있다가도 없는 것', '경쟁력 무시 못 해', '둘 다 아니야', '나이에 압박받지 말고 천천히 생각해' 등등 다양하지만 흔한 답변들이 있었다. 보기에, 이것은 매우 흔한 질문이며, 매우 흔한 답변들이다. 이러한 질문은 600년 전에도 있었을 것이고, 600년 후에도 있을 것이며, 이에 대한 답 또한, 시대를 반영하겠지만 멀리 차이나지는 않을 것이다. 이렇게 사람들은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
생물의 육체적인 공통분모도 있지만,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감정의 바닥은 외로움과 사랑일 것이다. 모두들 이야기한다, 사람은 누구나 외롭다고. 외로움, 외로움 외로움. 사실, 외로움. . 알다가도 모르겠는 감정이다.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필요한 것은 사랑 뿐. . 사랑 사랑 사랑, 사랑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모르겠다. 한 순간 사랑이라고 느껴지는 감정도, 시간이 지난 후 착각이라 느끼고, 사랑이 아니라 느꼈던 믿음도, 돌아서서 후회를 하기 마련이다. 사랑과 외로움, 누구나 알고있고, 필요하고, 정확히 정의 할 수 없는, 하지만 무엇인지 알 수 있는. . 애매하고도 근본적인 감정들.
외로움에 대하여 - 우리는 외로운가? 이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는 우리는 사람인가? 와 마찬가지로 너무나 당연한 문제이다. 사람은 누구나 외로울 수 있는 것이고 외롭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우리는 때로 배가 고프기도하고, 고프지 않기도 한 것과 같다. 때때로,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누구나 외롭다. 같은 논리로, 인간은 누구나 외롭지 않다. 얼마 전, '외롭지 않은 사람이 없는 것 처럼, 혼자인 사람도 없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라고? 어차피 혼자사는 세상. . 이 또한 외로움과 배고픔과 같다. 우리는 혼자이기도하고, 혼자이지 않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우리는 혼자이지 않다. 우리가 배가 고프지만 궁극적으로 살 수 있는 것은 배고픔 이상의 배부름이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이 만큼 우리는 궁극적으로 혼자이지 않다. 우리에게는 가족이 있으며, 가족이 없는 이더라도, 친구가있고, 친구가 없더라도 지인이 있고, 지인이 없더라도 인류가 있다. 이렇게 우리는 분명 속해있는 존재이고 이러한 단체성은 우리에게 속함 belonging을 제공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한지 얼마 되지않아 한 생각 중, '인류와 동질감을 느낀 후 살만하다'라는 생각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 무척이나 혼자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나의 감정을 뚜렷히 전달 할 곳이 없었다. 나의 이유없는 감정들을 이해하는 사람이 가까이 없었으며, 그렇게 영화, 글, 음악들 속으로 빠지는 것이 보다 편안했고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분명 나의 가까운 지인 중에는 없었지만, 음악, 책, 영화 속에는 나를 닮은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이 특정한 인물들이 아닐지언정, 나의 것과 비슷하다고 느껴지는 감각들이 있었던 것 같다. 대학교에 다니며 배운 것은, 그러한 감각들 뒤에는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음악의 속도, 글자들의 배열, 영화 속 색감의 사용, 그 철학들 뒤에는 사람이 있었다. 왜 그것을 미처 알지 못했는지는, 이상한 일이지만 모르겠다. 그러한 매개체들을, 사람이라고 느끼지 못한데에는, 의식 중 나 자신을 고립하려는 나의 일부가 아니였나 싶다. 무튼 그렇게 나는 '인류와 나' 사이에 어떠한 연관성이 있음을 느끼고 삶이 어느정도 괜찮다라고 느꼈던 기억이있다.
사물도, 자연도, 시간과 세상의 방식들에 마모되고 변화된다. 이처럼, 진화 처럼 나의 변화는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연의 법칙들 처럼, 나를 만진 에너지에는 무엇이 있을까? 내가 아끼는 사람들, 사회, 종교, 자연, 예술. . 이 정도로 추려질 것 같다. 많은지 적은지 알 수 없는, 어느정도 나 자신을 이 것들에게 expose 노출하였고, 그들은 나를, 나의 사상들을 만지고 변화시켰다. 나의 기분이 좋은 것은 나에게 기이하고 새로운 일이다. 하지만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점또한 기이하다. 마치 늘 그랬던 것 처럼, 늘 입던 옷처럼, 편안하다기보다, 아무런 어색함이 없어 인지하지 못하는 기분이랄까. 요즘 근심이 없을 뿐 더러, 불편함이 없다. 번거로움도 마땅히 나를 귀찮게 하지 않고, 할 일들은 그저 하고 지나가면 쉽게 잊을 수 있는 일들. 딱지를 너무 많에 떼어 면허 기록이 더러우면 어떠한가. 어느 대학을 가면 어떠한가. 어느 곳에 살면 어떠한가. 우주가 움직이고 있고, 그 안에 내가 있고, 별들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듯, 나도 나의 자리가 있을 것이며, 그것이 어디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단지 나의 자리가 있다는 것에 안심일 뿐.
글을 쓰다보니 해탈한 듯한 글이 되었지만, 나는 그러한 덕인이 되지 못한다. 해탈이라는 단어의 사용에 대해 평시에도 상당히 조심스럽다. 사실상 사람이라는 것이 모든 것을 버릴 수 없는 것이다. 예수님은 모든 것, 전부 그 자체이셨지만, 아무것도 갖지 않으시고 필요치도 않으셨다고하셨다. 하지만 이는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위치는 아니인것 같다. 딱히 이것이 사람보다 우등하여서라기보다, 그저 사람의 자리가 아닌 것이다. 우주에 앞뒤가 어디있고, 위아래가 어디있겠는가. 내가 앉은 자리가 나의 자리이고, 그대의 자리는 그대 것이니라. 나의 것 이외의 것은 나의 것이 아닌 것, 더도 덜도 아닌 것이다. 그냥 그런 것.
나의 부족함, 나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는 나 자신이 딱히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것이 나의 모습이고, 나는 나를 수용 할 뿐. 이래서 근래 마음이 편안하니 즐거운가보다, 아멘 so be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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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 쉬 파운드 미
감독 헬렌 헌트 (2007 / 미국)
출연 헬렌 헌트,콜린 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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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하고 재미있는 영화. 삶의 일상적인 어려움들과 문제들의 이야기, 소소한 즐거움의 가미로 멋지고 깔끔하게 연출. 감독이 직접 주인공을 연출하여 보다 흥미로운 영화. 중년의 학교 선생님인 주인공은, 이혼을 당하고, 양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임신을 하지만 유산을 하며, 새로운 사랑을 만난다. 이 모든 와중 그녀를 찾아온 친 엄마. 왜 자신을 버렸는지, 자신의 과거에 대해 솔직하고 간단한 이야기를 듣고싶어하지만, 잡다하고 거짓 이야기를 들려주는 친엄마. 40년만에 만난 사람이지만 엄마라는 연결고리는 쉽지만도 불편하지만도 않다.
아이를 매우 원하지만 아이를 가질 수 없는 그녀. 주위사람들은 입양을 권하지만 그녀는 싫다고 말한다. 자신은 입양되었고, 친아들이였던 그녀의 남동생. 양엄마가 자신과 동생을 바라보던 눈빛이 달랐다고 그녀는 이야기한다. 다른 것은 없다, 나는 너희를 동등히 사랑한다, 라고 엄마는 이야기하지만, 그녀는, 그녀의 기억은 달랐다고 이야기하며, 입양은 절대 싫다고 입장의 주인공.
엄마와 아이, 혈연과 길러주신 부모님의 인연, 가족과, 새로이 만들어가는 가정. 이렇게 작은 범위의 사람들에 대한, 소소하지만 그들의 세상의 전부인 사람의 이야기. 입양이라는 조금은 어려 울 수 있는 주제, 가족이라는 무거울 수 있는 주제이지만 재미있게 연출하였고, 눈물을 짜내려는 목적 또한 없는 영화. 매우 편하고 즐겁게, 유쾌하게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친엄마의 이야기가 거짓임을 알고 복합적인 감정의 주인공




유산후 상실의 주인공





억지로라도 임신을 하려는 주인공




아이를 왜 원하는지, 얼마나 원하는지에 대해 친엄마에게 이야기하는 주인공






결국 입양을한 주인공과 그녀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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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40시 - 라떼를 마신 것이 원인인지, 잡념이 원인인지 잠이 오지를 않는다. 영화를 한참 보다가, 책을 읽다가 컴퓨터를 다시 켰다. 차가 말썽이다 - 운전은 참으로 번거롭다. 오르는 기름값도, 보험회사와의 통화도,  예측 할 수 없는 사고도, 싫다. 차를 팔아버리고 자전거를 살 생각이다 - 오늘 자전거를 몇 대 보았는데 꽤나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보다 환경을 위할 수도 있고, 건강에도 좋고, 보다 침착하고 느린 생활에 기여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업보라는 생각이 든다, 많은 것들이 잘못되기도하고, 잘 되기도 한다, 그 모든 것이 나의 업보이니라라는 생각 - 죄는 용서받되 벌은 면하지 못한다고 하였느니라 - 누가 무어라해도 올바르게 살아야한다. 하나 둘 누구나 실수 할 수 있는 일들이지만, 심장이 아프다. 다른 이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점에 심장이 아픈 것인지, 나의 건강이 쇠약해 심장이 아픈 것인지 , 이 잠 오지 않는 새벽에 , 강풍은 창 밖에서 불고 있고 나의 심장은 연필 위의 지우개로 꾹꾹 누르는 듯 아프다. 기이한 일이지만 사실이고, 기이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기이하지 않을 만큼 자주 있는 일이다. 해야 할 일들이 있고, 많이 번거롭지만 해야만한다. 지나고 나면 괜찮아 지리라 믿는다. 이 긴 새벽처럼, 모든 것은 지나가기 마련이고, 잠들지 못한 밤 처럼 나를 늙게하겠지만 그것은 분명 잊혀질 것이고, 한 세월로 둥그러니 기억될테지. 곧 봄의 뒷자락이 올테고, 다음 학기도 끝을 맞이 할 테고, 나는 청주 나의 방에 한가히 누워 맛있는 과일을 녹여 먹으며 책을 읽을 수 있겠지.
가족을 사랑해서 가슴이 아픈 것 같다, 하늘을 사랑해서 가슴이 아픈 것 같다, 그들이 괴로워 나의 가슴이 아픈 것 같다 - 그들을 위함이 진정 나를 위함임을 다시 기억하며, 행복보다는 평화를, 안락보다는 옳음을 향해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이들을 매일 가슴에 매 시간 묻고, 그들과 공감하며 나 자신을 나누고 함께하리 - 아멘.
어제 문득 자동차를 생각하며, 법을 생각하며, 제도, 사회, 규율들을 생각하며 - 모든 것을 떠나 버리고 자유로운 몸과 영혼으로 사회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모든 것을 훌훌털고 , 아무것도 없는 곳 - 아무도 없는 곳 - 행복은 나눌 때에만 사실이라 하였지만, 떠나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드는 것일 것이다. 떠나고 싶다, 훌쩍, 빈 공간으로, 사회도 규율도 , 정해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 떠나버리고 싶다. 사람도 음식도 법도 공장도 회사도 컴퓨터도 없는 곳으로. . 없는 곳으로. . 없어져 버리어라 없어져 버리어라 없어져 버리어사 be gone be gone be gone be gone POO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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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감독 나카시마 테츠야 (2010 / 일본)
출연 마츠 다카코,오카다 마사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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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Tetsuya Nakashima
원작 소설 작가 Kanae Minato

간만에 아오이 유우가 나오지 않는 일본영화를 보았다. 시작은 딸기 우유마시면서 발랄했는데, 피 범벅으로 튀는, 장르는 무려 드라마/스릴러. 내가 조금 더 예술에 미쳐, 감정이 무뎠더라면 환상이라고 훌륭한 점수를 주었을 영화, 고등학교 시절에 보았더라면 좋아라했을 듯 하다. 나이가 들었는지, 비릿내나는 영화에 인상구겨지는 것은 어쩔 수 없나보다. 만점을 줄만큼 '환상적'인 부분은 없지만, 피를 아름답게 사용하였고, 소재를 능숙히 다루었고, 관점이 뚜렸하고, 멈춤없는 전개의, 매우 감각있는 영화이다.

목숨
왕따 / 집단성
자살 / 살인
병 / 병에 대한 인식
청소년 보호 법 / 나이
진정한 지옥
가족 / 부모 / 애정

목숨 - 언제인가 라디오에서 윤도현씨가, 죽음에 관한 음악을 쓰고있다고 이야기하며, 딱히 깊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마치 공중파 라디오에서는 해서는 안되는 얘기인 듯, '충분히 할 수 있는 이야기'라며, 어색한 자세였달까. 죽음이 이야기해도 되는 것인지, 고민한다는 자체가 사실 이상했지만, 사회적 시선은 그런가보다. 우리나라 라디오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 아무튼 죽음, 목숨의 끝, 삶의 끝을 이야기한다. 영화 대사 중
"목숨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보도록." 혹은 "선생님, 목숨은 가벼운 것이에요." 따위의 대사가 있다. 목숨, 과연 무거운 것인가 가벼운 것인가. 물론 답은 없다. 영화에서 다루어지는 목숨의 무게 또한 가늠 할 수 없다. 가족을 잃음으로써, 살아있는 사람들의 삶은 '진정한 지옥'이 되기도하고, 미디어가 가장 시끄럽게 다루는 주제 또한 '살인' '자살' 따위의 죽음이지만, 학살 따위를 꿈꾸고, 문제의 해결을 위해 그 인물을 죽이는 방법을 택하는, 목숨에 대한, 상반되는, 쉬운 태도 또한 그려진다.

왕따 / 집단성 - 반의 아이들은 한 개체로 그려진다. 그들은 함께 웃고, 기겁하고, 움직이고, 같은 타겟을 공격한다. 그들은 서로의 행동을 관찰하지 않고는, 개인의 의견을 만들지 못 할 것이다. 한 아이가 손을 들어, 하겠다고 자발적 행위를 보이면, 나머지는 따른다. 그런 그들에게, 기준이란 수시로 바뀐다, 왕따의 대상이 수시로 변하는 것 처럼. 집단에게 책임을 부여 할 수는 없다. 집단이 행한 행위는 정당성을 얻기 때문이다. "다수가 옳다고 느낀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허무하고 황당한 방법이, 사회에서는 먹힌다.
왕따는 반 전체를 대상하고, 사회는 청소년이라는 집단을 기준으로 시스템을 만든다. 개별적 시스템을 디자인하는 것은 훨씬 많은 비용이 필요 할 것이다. 모든 학생을 개인으로 다루는 것은 경제적으로 불가능하다. 청소년의 가장 작은 단위가 '반'이 아닐까 싶다. 담임이라는 사람은 그 단위를 책임지어야하고, 그것이 사회의 시스템이다. 하지만 그것이 불충분하다는 것을 영화는 매우 잘 보여주고 있다. 물론 반은 집단이지만, 그 안에 반장이 있고 왕따가 있다. 주체 없는 아이들을 뭉퉁그려 바라보는 시선이, 아이들에게 너무 많은 자유를 주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자살 / 살인 - 죽는다는 것, 죽음의 이유에 따라 죽음의 영향은 매우 달라진다. 누구는 병에의해 죽지만 누구는 타인의 자존심, 애정결핍, 따위의 이유로 죽는다. 암으로 죽은이를 보내는 마음은, 타인의 자존심이 죽인 이를 보내는 마음과 다르다. 물론 예외는 있지만, 후자는 보다 수긍이 어렵고, 복수를 부른다.
자살을 생각해보지 않은 청소년은 드믈거란 무서운 상상을 해본다. 갈대같은 기준없는 마음에, 바람이 불면, '죽어버릴래'따위의 생각은 쉽게 할 수 있다. 갈대같은 만큼, '안 죽을래'가 그 뒤를 쉽게 따르기도 한다. '자살은 나약한 자들의 도피'라는 인식이 있다. '자살은 사회로 인한 타살'이라는 인식 또한 있다. 물론 답은 없다. 죽음에 대한 책임을 누구에게 물을 것인가는 답이 없다. 하지만 분명히 모든 죽음에는 이유가있다. 집단이건, 개인의 자존심이건, 받지 못한 사랑이건, 책임을 부여 할 수 있다. 그 책임에 대한 죄책감을 우리는, 누군가는 느껴야 하는가? 글쎄. .

병 / 병에 대한 인식 - AIDS 감염자의 피를 마시더라도, 감염될 확률은 없음에 가깝다고 주인공은 말한다. 하지만 반 학생들은 피 한방울, 키스, 살결이 스치는 것 조차 소스라치게 싫어한다. 기겁하고, 소리 꽥 지르고, 시끄럽다. 감염자의 난처함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예의보다 본인의 감염되지 않은 목숨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알지못하는 것에 대해 겁이있다. 물론 우리는 모든 것의 전문의가 될 수는 없다. 특정한 주제에 대해, 보편적인 인식을 만들어 그 관점으로 그 대상을 바라본다. 예를 들어 '병' 은 무섭고, 더럽고, '병자'는 가까이 가지 않는게 좋다고 생각한다. 병자가 내뱉은 공기만 나눠 마셔도 옮을 것 같고 손길만 스쳐도 불결하다고 생각한다. 전염병이 아닌데도 말이다. '바보'짓이 분명하다. 그 따위의 취급을 받는 병자는, 신체적 병에 심리적 병의 합병증을 앓게되고, 고립이 오히려 마음을 보호하는 방법이된다. 
사회는 관심이 없다. 보편적인 시선으로, 단체를 바라 볼 뿐이다. '장애인' '감염자'따위가 그러하다. 뭉퉁그려 기피하거나 불쌍히 여기는, 어리석고 황당한 현실이다. 개인을 개인으로 보는, 그런 관점을 기대하는 것이, 실망을 부르는, 어리석은 기대일지도 모르겠다. 

청소년 보호 법 / 나이 - 이 또한 시스템의 오류이다. 정부라는 기관을 만들어, 그것이 국가라는 단위의 집단을 지도하고 인솔 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나이로 또 다른 집단을 형성하고, 그 두루뭉술한 집단을 다루는 제도들을 디자인한다. 사회의 가장 보편적인 시스템이다. 물론 청소년은 기준이 없음으로, 옳고 그름의 분별력이 떨어질 수 있다. 하지만 옳지 않은 일을 하였을때, 그것을 처벌하지 않는 것은 오히려 옳지 않은 행위에 괜찮다는 인식을 부여하는, 황당한 제도가 아닐까.

진정한 지옥 - 목숨이 가벼운 이에게, 죽음은 오히려 선물일 수 있다. 복수를 원한다면, 그 사람을 지옥으로 보내고 싶다면, 삶을 지옥으로 만드는 것이 오히려 효과적일 것이다 - 훨씬 고통스러울 것다. 가장 아릅다운 복수의 예로써 올드보이가 있겠다. 그 치욕을 안고 살아야한다니, '죽는게 낫다'라는 생각을 해보지만, 그야 본인의 선택. 복수의 대상을 살려두되, 그가 사랑하는 것을 파괴 할 것 - 딸의 인생, 엄마의 목숨, 유일한 추억 따위가 있겠다.
굳이 누군가의 복수가 아니더라도, '삶이 지옥'이 되는 일은 스스로도 부를 수 있다. 공부에 목을 달고, 학비가 없어 하고싶지 않은 일만을 하는, 삶 따위가 그러 할 것이다. 누구나 하고싶지 않은 일을 하지만, 하고싶지 않은 일'만'하는 삶이 지옥이지 않을까 싶다. 하고싶은 일'을' 주되게하고, 하고싶지 않은 일'도' 취미삼아 사는 삶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삶을 지옥으로 만들지 않기를 - 적어도 나 자신은 이러한 기준으로 행복을 찾아가며 살고있다.

가족 / 부모 / 애정 - 사실 몇 일 전 이 것에 관하여 글을 쓰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마침 영화의 내용과 싱크가 가능하여 여기에 남겨본다. 영화에서도 다루워지듯이, 청소년은 기준이 없다. 그것을 우리는 안다. 하지만 사회가 청소년에게 바라는 것은, 아니, '부모가' 청소년에게 가장 바라는 것은 성적인 것이 현 시대의 현실이다.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부모란, 가족이란, 사회란, 환경이란, 자라나는 정신 - 청소년 - 에게 기준을 심어주어야한다. 지나친 클리셰이지만, 그들에게 공부를 바래서는 안된다. 그들에게 바래야 할 것은 옳고 그름의 정의, 삶의 방식의 기준이다.
부모란, 가족이란, 사회란, 환경이란, 청소년이 의사, 박사, 인문학도, 사회 기여자가 되기를 바래서는 안된다. 왜 자식을 그 딴 것으로 키우고 싶어하는가. 환경은 아이를 '사람'으로 키우면, 그 '사람'은 자신의 꿈을 찾을 것이다. 환경이 공장인가? 왜 직원을 만들려 하는가, 왜 본인이 나은 생명체로 사업을 벌이고 돈을 벌려하는가, '사람'으로 키우면 된다.
물론 나는 부모가 아니고, 이상적인 20대임으로, 비 현실적인 소리를 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 '뭐 모르고 지꺼리네'라는 소리를 들을테지만, 우리는 모두 이상을 향해 가고있지 않은가. 현실이 더럽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이상적인 20대라도 이상적이게 살아야하지 않겠는가. 나만의 논리이다.


영화의 소재로는 위의 것들 이외에도 많이 있다. 하지만 나의 인상에 남은 것들을 위주로 적었다.
본 영화는, 사회의 중요한 주제를 소재로 다루었다. 사회 시스템의 보편성, 그것이 나은 부작용들 - 왕따, 병 기피, 자살, 살인, 미디어, 따위가 있겠다.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것은 시각적 효과이다. 카메라는 앞, 뒤, 사이드, 뿐 아니라 위에서 전지적인 듯 한 시점 또한 그린다. 현 시대의 보편적인 매체, 티비와 핸드폰 또한 유용히 사용되었다. 적절하고 직결되는 음악의 사용 또한 내용을 부각시킨다. 영화를 본 후 음악이 기억나지 않는 것이 가장 훌륭한 ost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bgm이라기에는 비중이 있는 듯한 음악은, 가사를 듣게하고, 영화에 또 다른 입체성을 준다.
또한, 피가 매우 많이 등장하는데, 피의 성질을 매우 훌륭히 활용하였다. 특히나 벽에 칠해진 피, 손에 범벅이된 피, 땅에 떨어진 피의 구도가 매우 잘 계획되었다. 시각 디렉터, 따위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시각적 배치와 물체간의 대비가 매우 감각적이다. 피의 새빨간 색감이 하얀 벽, 학생의 뽀얀 피부와 대비하는, 장면들이 훌륭히 구사된다. 
영화의 끝자락으로 다가가, 폭발 장면의, 쌩뚱맞은 cg효과 또한 재미있다. 시계라는 아이템을 사용하여, 시공을 초월한 주인공을 보여주고, 그의 심리를 표현한다. 유리와 파편들이 느리게 그리고 빠르게 움직이면서 관객의 집중을 사고, 혼란과 역동적인 심리를 묘사한다.
궁금의 여지가 남는 점은, '과연 그녀는 폭탄을 정말로 전달하였을까' 라는 의문이 남는다. 폭탄을 전했다는 소식만으로도 소년은 자괴감에 몸서리친다. 물론 사실이 아니라면, 폭탄이 전달되지 않았다면, 소년은 안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의 관점을 바꾸기에는, 그 거짓말 한 마디, 가상된 사실이 충분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원작이라는 책을 한 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이렇게 피 비릿내 잔뜩 나는, 시뻘건 책을, 읽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무라카미 류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도, 사르트레의 '구토'도 읽으며 악몽을 꾸어, 마저 읽지 못한 나인데 말이다. 소설에 대한 호기심이 두려움을 누르는 날이 올까 - 고등학교 시절이라면 충분히 감정없이 읽었을 것이다. 그때는 그러했다. 조금 더 세월이 지나 - 나의 감각들이 무뎌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때는 읽을 용기가 아닌, 굳은살이 생기겠지 -






Posted by water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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