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투 더 와일드
감독 숀 펜 (2007 / 미국)
출연 에밀 허쉬,빈스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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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전개에는 서두가 없으나 주인고잉 바라는 점은 하나이고 분명하다. 주인공은 명문 대학교를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고, 대학원비를 대주겠다는 부모님을 뒤로하고 떠난다. 차르 타고 떠난다, 일단 서쪽으로. 모든 돈을 기부, 물질적인 것들을 떠나고 싶은 욕망. 사회의 규율에 대해, 직업이란 현대사회의 창조물이라는, 그 따위의 것은 필요 없다는 주인공. '영혼의 혁명' spiritual revolution을 향하여, 걷고, 일을하고, 사람을 만나고, 혼자임을 바라고, 야생에서의 생활을 바란다. 야생 열매를 먹고, 작고 큰 동물들을 먹는다. 물을 마시고 얼음을 녹여 마시고, 물을 데워 목욕을 한다.  돈을 불태운다. 책을 읽으며 일기를 쓴다. 아기가 있는 짐승을 쏘지 못한다.
부모에 대한 반항감, 사회에 대한 저항. 젊은이의 열정이라기에, 그의 것은 너무나 뜨겁다. 열정과 이성의 중심따위는 없다. 그에게 이 자유에 대한 욕망은 열정이자 이성이고, 모든 것이다. 가족도, 인연도, 여자도, 어떠한 것도 그는 마다하고 '단순한 아름다움' simple beauty를 향하여 계속 걷는다. 그를 만나는 이들은 그에게 가족이 있느냐며, 가족이 되자며, 사랑을 하자며 그를 설득하려 하지만, 혼자의 길을 떠나는 주인공.


사과에게 대화를 하며 씹어먹는 모습. 나도 사과가 먹고싶다.



두려움이라던 물에서 카약을 질주하며, 멕시코까지 내려간다. 국경도 막을 수 없는 것이다.




두려움도 부수고, 국경도, 사회적 인식도, 가족의 틀, 친구의 우정, 돈의 허용범위, 법, 모든 것을 버리고 부순다. 그것들을 깨고 자신만의 이야기 story 를 쓰러 그는 움직인다. 아파도 다쳐도 괴로워도 슬퍼도, 자연에 대한 기쁨이 모든 것을 용서하는 듯 하다. 멕시코에서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북쪽으로 향한다 - 알라스카. 그야말로 횡량함을 찾아 떠나 움직이는 주인공. 아무것도 누구도 없는 곳에서 자신의 내적 혁명을 향한다.
알라스카에서 '매직 버스'를 발견하고, 그곳에서의 생활. 커다란 동물을 잡아 먹으로 쏘지만, 그것은 구더기로 엉망이되고 먹을 수 없게된다. 인생의 최대의 실수라며, 인간에게 혀용되지 않은 야생의 범위에, 괴로움을 느낀다. 그 동안 자신이 깨트린 수 많은 범위들, 하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불가능이라는 제한. 하지만 그러한 벽에 부딫히면서도 그는 기뻤으리라 - 자연의, 야생의 단조로움에, 극단적임에, 그는 기뻤으리라.
"calling each name by its right name - by its right name" 제 것의 올바른 이름으로 부르는 것. 우리는 돈을 행복이라하고, 직업을 필수라하고, 사람을 사랑이라고 한다. 가정을 안정이라하고, 종교를 평화라하고, 권력을 힘이라한다. 착각이다. 모든 것은 본질이 있으며, 그것을 제대로 간과하여 보는 것에 우리는 익숙치 않다. 그것의 영향에 집중하는 경향이 훨씬 크고, 그 영향은 작은 일부일 경우가 허다하다. 극 중, 모든 것을 떠나고 주인공은 자신을 위하여 Alexander 라는 이름을 짓는다. 죽음 앞에서 그는 본명인 Christopher 로 자신을 칭한다. 그렇게 그는 떠났지만 그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던 것이다.
"when you forgive, you love." 용서는 사랑이라한다. 용서는 사랑 - 괴로워도, 미워도, 싫어도 수용 할 수 있는 것이 사랑이리라.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는 일은 쉽고, 더러운 것을 받아드리기는 어렵다. 어려운 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사랑이리라 - 사랑이 아니면 그 어떠한 것으로 더러움을 어려움을 괴로움을 부정을 세상에서 외롭지 않게 하겠는가.
그는 삶의 행복은 인간관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하였고, 죽음의 순간에서 남긴 문구는 'happiness is not real unless shared' 나누지 않은 행복은 사실이 아니다. 혼자임을, 횡량함을 갈망하여 알라스카까지 갔지만, 그 또한 loneliness 외로움에 대하여 글을 썼다. 외로움이란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 - 뛰는 심장과 같은 것이리라.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부정이거나 인식하지 못한 아둔함이지 않을까.
"not to be strong, but to feel strong" 자신감이라는 말을, 어감 때문인지, 딱히 좋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뜻을 보면 매우 중요한 것임을 알 수 있다 - 자신을 믿는 마음. 자신감이 때로 싫은 것은, 그것과 자만감의 경계가 모호하고, 둘을 넘나드는 것이 너무나 쉽기 때문이다. 자신을 믿되, 자신으로 가득차면, 타인과 옳은 기준들이 들어올 틈이 없음으로, 자신을 믿되 겸손이라는 마음으로 늘 자신을 다시 비워야한다. 강할 순 없다, 강할 수록 상대적으로 강한 이가 있으며, 우리는 영원을 향해 늘 움직인다. 하지만 강하고 싶지 또한 않다, 그저 자신을 믿는 마음이 강할 수 있으면  - 하는 바람이다. 그 만큼 나를 믿고, 사랑하고, 수용하면 강함도, 약함도, 용기도, 굉장함도, 이러한 특정 형용사 따위는 모두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면 족하다, 나에 대한 믿음.
틀을 벗어난 그의 모습에서, 편리함을 추구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서, 간단함을 아낄 줄 아는 모습에서 - 나 안의 그러한 것들 또한 자극을 받는다. 자유, 자유, 자유, 자유 도전 창조. 미니멀한 삶에 대한 동경을, 담는다.



Posted by water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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