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힘들어. 요즘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피곤하다. 두 주 전에 아팠던 후로 지난 주부터 건강이 좋지 않고 이제는 생활에 너무 큰 영향을 미쳐 정신적으로 스트레스가 된다. 학교 업무는 물론이고 하루 시간의 대부분을 잠과 식사에 사용하다보니 능률이 전혀 없는 생활이다. 물론 물리적 생존이 목적이라면 효율적인 생활이겠구나, 그야말로 생존 mode.
고등학교 시절 부터 자취를 했지만 사실상 자취가 아니었다 싶은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가족이 가까이 있거나, immediate family 가 아니더라도 친지분들이 가까이서 상당히 챙겨주셨기 때문에 불편함을 모르고 지냈던 것이다. 이제서야 혼자, 그야말로 혼자 지내려니, 이것이 자취이구나 싶다. 살림이라는 것이 상당한 에너지와 시간을 요한다. 정리며 식사 준비 위생 등 신경 쓸 것이 종일이다. 더구나 생활에 있어 무시 할 수 없는 것들이기에 보류 할 수도 없는 일들이다.
생활에 있어 '낮은 밖 밤은 집'이 가장 효율적이더라. 업무는 밖에서, 휴식은 집에서 - 밖에서는 밖 옷 집에서는 집옷, 업무는 책상 식사는 식탁 잠은 침대. 각자의 위치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근래 체력적으로 피로하니 집에서 나가기도 싫거니와 나가 앉아있자면 금새 집 생각이 나 바깥에 앉아 있기가 어렵다. 그렇게 요즘은 집으로 쉽게 달려온다.
더불어 기운이 부족하니 집, 가족 생각이 많이 난다. 이렇게 지칠 수록 정신력에 의지해야하는데 둘이 함께 지쳐버렸다, 아.

자취의 사전적 의미 - 이외에도 의미가 많지만 relevant 한 것들만 일단 보자면:
자취 [自炊] [명사] 손수 밥을 지어 먹으면서 생활함.
자취[自取] [명사] 잘하든 못하든 자기 스스로 만들어 그렇게 됨.

두 의미 모두 흥미롭다. 밥을 지어 먹으면서 생활한다는 .. 생활에 있어 식사의 중요성이 반영되었다. 두번째 의미는, '잘하든 못하든'이라는 단락이 불필요한 느낌이면서도 적합하다. '자립'과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이지 싶다.
사람의 생활이라는 것이 '잘잘못'도 중요하지만 그 자체도 중요하다. 지금까지 나 자신의 건강과 생활을 스스로 챙기는 상황도 아니었거니와 그것을 '잘' 할 능력도 없구나 싶다. 생활적 요소들과 학업적 요소를 병행한다는 것이, 대부분 유학생들의 생활일텐데 나에게 큰 어려움을 준다는 것에 부끄럽기도하고, 내 지금까지 얼마나 편안히만 지냈는가 이제서야 느낀다. 특별함 없는 생활이, 가장 기본적인 것들이 나를 지치게 한다니 - 자신에게 실망이다. 잠과 아쉬움이 많은 근래이다, 하. 누가 그러더라 '자는게 남는거다' 얼마 전 나 또한 비슷한 말을했더라 "삶이 힘들고 지칠때 자라'
이 또한 지나리 - 시간이 필요한 것일까. 스스로 만들어 그렇게 .. 되었으면, 앞으로 나의 자취가 익숙해지고 편안해졌으면, 어렵지 않았으면 좋겠다.

2011 11 23 1909 Cafe Solstice
지난 밤 자정 쯔음 두통이 시작되었다. 급격히 정도가 심해지더니 속이 울렁거렸고 수 차례 구토에 이르렀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났는지 참을 수가 없어 진통제를 먹었지만 구토로 약을 다시 먹어야 했다. 심한두통과 구토, 경험 해 본 증상이다. 죽을 것 같지만 죽지 않을 것을 안다. 눈물이 흐르는 것이 걱정드릴테지만 엄마아빠가 보고싶어 전화기를 든다. 받지 않으신다 .. 아프다는 문자를 남기니 잠든 후 인 몇 시간 후에 전화가 울린다. 두 분 목소리에는 걱정이 가득 - 몇가지 조언을 해주셨고 알겠다며 잘거라며 서둘러 끊었다. 그렇게 다시 취침. 오전 수업 시간에 맞추어 눈을 떴지만 다시 눈을 감고 뜨니 오후 두어시 .. 조금 더 누워있자니 세시 쯔음, 하. 두통은 떠났다.
씻고 국을 끓여 마시고 정신을 차린다. 한 밤 중의 병은 어디에 전화 할 곳도 몇 되지 않더라. 자취라는 생활에 대해 상당한 반감을 느끼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리웠다. 근래 집에 대한 생각이 뜸하다 싶었더니, 몸이 나의 기억을 자극시킨다. 집을 기억하고, 근본족인 것들을 기억하기 위한 어려움이었나보다. 가족에 대한 의지를 기억하고, 건강에 대한 중요함을 기억하고, 기본적 생활 요소들에 다시끔 관심을 두자는 신호이지 싶다. 아프지 말아야지, 아프면 안된다. 공부요 행복이요 건강이 기본인 것을 - 건강해야지. 기본적인 것들에 충실해야지.
고통의 연장 속에서 들던 생각은 - 세상은 나와 내가 아닌 것들로 나뉘더라. 아픈사람과 아프지 않은 사람. 다른 모든 분야 또한 마찬가지로 적용가능하다, 배우고 배우지 않음, 행복하고 그렇지 않음, 가난과 부유함, 편안함과 불편함, 진심과 아님, 관심과 무관심 - 그렇게 각자의 세상은 자신과 자신이 아닌 것으로, 나뉘는게 아닌가 싶다. 내가 보는 것들과 내가 볼 수 없는 것들, 내가 보는 것을 볼 수 없는 사람들 .. 그러한 모두의 공존, 이 세상인가보다.
음악을 들으여 카페에 왔다. 나의 선곡이 아닌 음악들을 듣고있자니 기분이 나아진다. 맛있는 커피 또한 기분을 돕는다. 공존이 나를 살리는구나 - 감사하게 건강하게 지내야지, 아멘.



http://alldic.daum.net/dic/search_result_total.do?eq=&LAYOUT_URL_PREFIX=&nil_profile=vsearch&nil_src=dic&type=all&q=%C0%DA%C3%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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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finished your book yesterday. . . Since I read Von Baer's Essays nine years ago no work on Natural History Science I have met with has made so great an impression on me & I do most heartily thank you for the great store of new views you have given me. . .
As for your doctrines I am prepared to go to the Stake if requisite. . .
I trust you will not allow yourself to be in any way disgusted or annoyed by the considerable abuse & misrepresentation which unless I greatly mistake is in store for you. . . And as to the curs which will bark and yelp -- you must recollect that some of your friends at any rate are endowed with an amount of combativeness which (though you have often & justly rebuked it) may stand you in good stead --
I am sharpening up my claws and beak in readiness


Letter of T. H. Huxley to Charles Darwin, November 23, 1859, regarding the Origin of Species

File:T.H.Huxley(Woodburytype).jpg

"Huxley's support for natural selection is perhaps surprising when contrasted with his earlier attacks on the evolutionary theories put forth by Lamarck and Robert Chambers. Both of these theories advocated some kind of progression -- some kind of general tendency present in all organisms to evolve "upward" into more and more complex forms. Huxley would have nothing to do with such progressionist ideas, which he regarded as being more metaphysical than scientific; this mistrust of progression lay behind his initial skepticism of all evolutionary ideas. Similarly, Huxley rejected the then-popular theory of recapitulation, following Karl von Baer (whose writings Huxley had translated from the German). Huxley wrote, "the progress of a higher animal in development is not through the forms of the lower, but through forms which are common to both lower and higher. . . "

Huxley's most famous writing, published in 1863, is Evidence on Man's Place in Nature. This book, published only five years after Darwin's Origin of Species, was a comprehensive review of what was known at the time about primate and human paleontology and ethology. More than that, it was the first attempt to apply evolution explicitly to the human race. Darwin had avoided direct mention of human evolution, stating only that "light will be thrown on the origin of Man;" Huxley explicitly presented evidence for human evolution. In this, once again, he locked horns with Richard Owen, who had claimed that the human brain contained parts that were not found in apes, and that therefore humans could not be classified with the apes nor descended from them. Huxley and his colleagues showed that the brains of apes and humans were fundamentally similar in every anatomical detail."



Thoms Huxley (1825)

assistant surgeon to HMS Rattlesnake
navy
vertebrae palaeontology
anatomist
"darwin's bulldog'
man's place in nature - man's relationship to apes
the x club


http://www.ucmp.berkeley.edu/history/thuxley.html
http://en.wikipedia.org/wiki/Thomas_Hux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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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팠다. 아팠다 하면 주로 감기 몸살이기 마련인데 오늘은 달랐다. 아침에 수업을 가고. 공강 시간 두시간 동안 요기를하고 공부를하고, 다음 수업을 들어가려는데 속이 슬슬 아픈 것이다. 수업 전에 화장실을 가야겠다 싶어 화장실을 들렸지만 해결이 아니었다. 그렇게 수업을 향해 십 분 정도 듣고 있는데 허리를 펴고 앉아 있을 수가 없다. 내장이 틀리는 것이 녀석들이 리본을 묶는 것인지 아 ... '아프다'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통증이다. 고통스럽다, 지금에서야는 열두시간이 지난 일인데도 생각만으로도 몸이 움추러들고 인상이 구겨지는구나 아 괴로웠다.
자리에서 일어나 자전거로 향한다, 걷는 동안 허리를 펼 수 없다. 엉거주춤히 자전거로 닿아 자물쇠를 푸른다. 지금에서야 이렇게 걸었다, 푸른다, 서술하지만 사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수업은 캠퍼스의 가장 아랫 쪽 건물이어서, 언덕을 어떻게 올라가지 싶은 걱정이 들었던 기억과, 교실과 집의 중점 쯤인 flag pole 에서 아, 많이 왔구나, 더올렸던 기억 외에는 .. 집에 어떻게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무튼 페달을 밟아 집에 도착. 방 문을 여는 순간 목소리가 트이면서 괴성을 질렀다. 아 .. 표현 할 수 없는 고통. 와중 방 문 앞에 도착한 택배가 있었다, 몇 일 전 주문한 책들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녀석들을 박스에서 꺼네 함께 침대에 눕는다. 누우니 훨씬 편안하다. 앉을 수도 설 수도 없던 엉거주춤한 자세, 에서 이제는 웅쿠리고 누울 수 있었다. 누워 친구와 몇 마디 문자를 보내고 책을 읽다보니 마음도 속도 조금씩 편안하다. 그렇게 정오 쯔음 잠든다. 잠에서 깨니, 아 창 밖이 야 밤이다. 해가 확실히 짧구나.
그렇게 나의 하루는 한 순간이 되어버렸다. 사실 오늘 수업 후 친구와 도서관도 가고 혼자 카페에 가서 몇 가지 정리도 하고 공부도 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잠에서 일어나 집을 둘러보니 집에오기를 잘 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 몇 일 집을 외면하였더니 아무래도 방의 정돈된 정도가 다르다. 선반 위 책들의 가지런함, 책상위 스탠드의 자세, 옷 걸이에 걸린 외투들의 정교함.. 과 같은 미세한 차이들. 집이 나를 부르는 방법이었나보다. 그렇게 천천히 여유를 두고 방을 정리, 하고 냉장고에서 음식가지를 꺼내어 먹고, 정신을 차린 후 친구들에게 문자를 나누고 서로의 건강을 챙긴다. 요즘 날씨가 춥기도하고 모두 자취하는 입장이다보니 각자 건강은 본인들이 챙겨야한다. 말로써나마, 건강에 대해 서로 상기하고, 위안을 받는다. 화요일 - 때아닌 주말의 느낌을 받는다. 아무튼 오랜만에 집에 느긋하니 편안하구나.
아픔, 체력이 없는 것은 큰 정신적 영향을 미친다. 무엇보다 아프면 집이 그립다. 손 뻗으면 닿을 곳에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고, 직접 차를 끓여 레몬들 썰어넣지 않아도, 누군가가 마련해주었으면 좋겠고, 목소리가, 대화가 그립다. 더구나 아파트에 관한 책을 최근 읽었는데 - 녀석에 대한 몇 가지를 적다보니 집이 보다 그립다. 친구에게 집에 대한 몇 가지 적고 있다고 하니,
do you miss it?
yes very much
would you be satisfied if you happened to be there again?
no, i do miss the physical space but many things have changed.. about the home as well as myself. i feel content with where i am now, just reminiscent of the time and place.
ah, i understand ... not too many things that can be done about it unfortunately, but many new things to enjoy (in a sense).
아 역시 친구들과의 대화는 생활의 기운, 에너지가 된다. 외에도 친구들의 걱정과 위로를 받으며 기운을 낸다. 응급하면 전화하라는, 필요한 것 이야기하라는, 쉬라는, 밥먹으라는, 잠 자라는, 기운 내라는, 하 - 나의 복받음은 참으로 굉장하다.
 
오늘 아침 '부족한 것이 많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context 라면 내 자신이 보다 잘 할 수 있는데, 보다 노력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 환경보다는 자신에 대한 자책같은 것이었다.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른 만큼 '풍족한 것도 많으니 그것들도 기억하자'라는 역상을 떠올렸는데, 풍족한 것을 생각하니 상당수 환경적인 것들이더라. 물론 내 자신이 풍족한 것, 들도 몇 있지만, 생활에 중점적으로 활력이 되는 것들은 외부적이더라 - 친구들, 가족들, 공부 할 수 있는 여건, 읽을 수 있는 책들. 결국 자책을 위로하려던 역상은 자책을 더 깊게했다.
읽고 싶은 책도 많고, 학교 공부도 하고싶고, 보고싶은 곳도 많고, 오르고 싶은 산도 많고, 자전거 타고 싶은 곳도 많고, 먹고싶은 것도 많고, 입고 싶은 것도 많고, 사고 싶은 것, 만나고 싶은 사람, 많다 - 욕심이 많다. 모든 것을 놓고 학교에만 집중하고 싶지만 글도 쓰고싶고 책도 읽고싶고 자전거도 타고싶다. 아아 요즘 나의 생활이 이러하다. 정리하자면 시간과 노력 체력이 부족하며 고마운 사람들, 재미있는 책들과 공부, 하고 싶은 것들이 풍족하다. 행복하다.
망고 블랙 티, tazo 와일드 오랜지 티 에 레몬을 띄워 마시면 맛있다. 차 끓여 마시기 참 좋은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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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사항들을 찾고 싶지만 아, 시간과 속도의 부족으로 크게 정리.


1회 - 서태지, 이지아와 BBK 의 연관성
검찰이 명예훼손 혐의 청구 기각과 서태지 이지아 사건의 타이밍.
둘의 연관성에 대한 극한 관심 - 정부에 대한 대중의 불신.
레임덕 (?)
후속기사 없는 특종
김경준 8년 형, 추방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합의, 에리카 김
'불법은 성실하다'



2회 - 한나라당 정두언 최고의원 이상득 의원 당선에 대한 반감표현
"수도권의원들 이상득 의원의 공천신청 가만 두지 않을 것이다"
이상득 정두언 이재호
공천
현역의원과 그 후
계보
소장파 친박계 친이
공동 지분형성


3회 - BBK 관련 움직임과 에리카 김의 귀국, 김경준의 추방과 돈
140억 와 190억 도곡동 땅
'다스' 법적 이상은(형), 김재정(고인, 처남, 지분 부인에게 상속, 소량 청계제단)
다스의 BBK 190억 투자 - 전문경영인 대표
김경준의 투자 약정서와 30억의 투자
김경준과 이명박의 동업과 업무에 대한 무지
청계제단 (사위)
다스 1조원 자산가치 - 현대자동차 시트 납품
실질적 다스의 주주
안원국 국장 - BBK 실 소유주를 밝히기 위하야 도곡동 땅, 감옥
친이의 재결집 - 대표
에리카 김의 귀국, BBK, 금전적 거래
유출의 경로 - 미국 판사의 보고, 양측의 변호사 청문회, 국고 절도사건


4회 - 천안함, 음모론, 남북회담
북한에 대한 천안함 사과 바람 -  음모론
금전적 남북회담 제시
3월의 회담, 4월의 총선회
독일에서의 성급한 발표
남북 정상회담 - 북한으로 넘어가는 이득과 줄다리기 능숙함
미국이 넘길 수 없는 유일한 나라, 외교
김대중 노무현 남북 정상회담 - 남북한의 민족적 관점 평화정책 진정성
정상회담을 지지율 상승으로 이용하려는 목적
햇볕정책
청와대와의 거래와 선거의 승패
박지원 대표의 전투력
저축은행
북한의 공격, 측근비리, 청와대의 자탄핵 - 청와대의 패닉


5회 - 남북한 비밀접촉, 정상회담 언급 없었다라는 해명. 북측 남측 해명의 반박
북한의 녹취록, 금전적 거래
김태효의 금전전달 노력과 실패 - 배달사고
검찰 - 권력의 수하, 하지만 검찰은 검찰의 편
정권 말기, 권력의 비리를 찾아 공공정의 vs 다음 정권 심부름
부산 저축은행 및 기타 저축은행 퇴출과 비리
대검 중수부 (대한민국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 - 최근 가속
의원들의 실명 연루 여부 기사화
검찰의 정보 수집 차원, 청와대의 다음 의원들을 잡으려는 노력
정권말기에 검찰을 부리는 과정에서 축적되는 고급 정보
정권의 상황에 따라 청와대로 돌아 올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행
중수부 (전두환 독재 정권 81년) 폐지의 반대
이정권의 정권 이후, 비리가 있다면 - 중수부가 퇴임한 권력을 조사
청와대 입장, 공식적으로 대검 중수부 폐지 반대 - 대검의 우호적 신호
이 후 비리의 독물이 돌아올 것을 예상하여, 여야 압력이 강하다면 못 이기는 척 폐지하자
따라서 저축은행 수사 가속


6회 - 반값 등록금
김영삼 신자유주의 교육개혁 정책
잉여금 쌓고 투자하지 않는 - 공익과 무관한, 그를 돕는 국가
학교들의 적립금 - 건축 상당, 연구 + 정책에 소량, 기타 상당 (토지, 주식 등)
등록금의 순서
1. 대학교 등록금 이상 일단 막음
2. 뻥튀김 등록금 - 옳은 적정 등록금 가이드라인 맞춰서 현재 등록금 삭감
3. 정책에 동의하지 않는 학교들은 국가 지원 끊음
4. 대학 후불제 진행
재단 이사회단의 대학교들로 보내는 공문 - 반대 인원 소집
교과부 장관 이 후 사립 교육기관으로 - 본인 진로를 위한 투자, 자리 봐두기
대학교와 교과부의 유착
민주당의 진정성, 한나라당의 말 바꿈
박근혜 - 지지도의 충성, 확산성의 분포
유시민 - 충성도와 적은 확산성


7회 - 오세훈 시장 - 비장하게 사퇴 후, 대선 목적
경제성 부풀리기, 과다계산
주민투표
한나라당의 오세훈 비호감
박근혜 전대표의 .2 지지율 , 인데 왜 굳이 대선
김문수 지사에 비한 계획적인 대선 준비


8회 - 청계재단
운전면허시험 700m 에서 50m
이전 월 평균 면허 취득 수 13만명, 면허시험 개정 이후 면허 취득 수 26만명
청계재단의 굉장한 재산
이명박 , 집 이외에 사회에 설립하겠다, 이 후 청계재단 설립
이재호 (친구), 이상주 (사위, 실질적 중심), 박미석 , 이병모 (영포 영일빌딩)
서초동 영포빌딩
95년도 도곡동 땅의 실 소유자 이명박이다, 재산 차명 소유
96년 공천, 종로에서 승, 선거법 위반 97년 아웃, 미국, BBK
2002 서울 시장
3-6000억 연 수입
조현준 서래마을 신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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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아파트발굴사종암에서힐탑까지1세대아파트탐사의기록
카테고리 기술/공학 > 환경/소방/도시/조경
지은이 장림종 (효형출판, 2009년)
상세보기
1960년말에서 1970년대 초, 정부나 대기업이 아닌 민간이 작은 규모로 건설한 아파트들은 새로운 시도였다.
언덕 위, 주택가 골목길 그리고 도심 가로 모퉁이에 다양한 모습으로 지어졌다.
아파트 안에 마련된 마당인 중정이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공간으로 활용되거나, 새로운 평면 형식을 취하는 등 지금까지의 아파트에 대한 시각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너무나 가치있는 존재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이제까지 공개적으로 알려지고 논의된 적이 없으며, 안타깝게도 기록과 연구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심하게 훼손되거나 머지않아 재건축 혹은 재개발로 인해 곧 사라질 상황에 처했다.
실제로 상당수의 많은 아파트는 이미 도시 속 삶에서 사라져 버렸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기록과 자료의 확보가 중요하다.
나아가 숨겨져 있는 아파트를 발굴해 내서 논의하고 정리하여 도시의 일부로서, 도시의 문화를 담는 그릇으로서, 도시 생활의 중요한 공간으로서 아파트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고자 한다.
아파트의 깊이는 깊다. 근대화의 산물을 넘어 이제 삶의 모습이자 문화가 되었다. 그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다양한 층위를 통해 축적되어 왔다. 이 책이 그 깊이를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서문 중에서

한국에 제법 관심이 있고 잠시 생활을 하기도 한 친구가 책을 빌려주었다. 비록 읽지는 못하지만 사진들이 좋고 관심분야여서 구입한 책이라고 하였다. 보다싶이 한국의 아파트에 대한 역사를 적은 책이다. 사진들도 제법 많고 흥미로운 내용들이 제법 있다. 아파트의 시발점, 역사적 사회적 배경, 아파트에 대한 시각과 그것의 진화, 아파트 디자인에 반영된 한국적 마인드 등.


당시 서울시장 김현옥은 서울의 주택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반영해 서울 이곳저곳에, 특히 눈에 띄는 산자락 언덕에 시민아파트를 건립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량 공급이 너무나 중시되었던 이 계획은 문제가 많았고, 곧 그것은 여기저기서 문제들을 드러내게 된다. 고정된 아파트의 타입을 지형이나 지질, 주변 여건, 구조적인 해결에 대한 충분한 검토도 없이 공사를 강행했기 때문이다.
전후의 주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재건 주택, 희망 주택 부흥 주택, 국민 주택은 공공단체와 정부가 대량으로 주택을 공급한 효시였고, 이후 아파트 단지의 활성화와 시민 아파트의 공급이 대량생산된 아파트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정치적 권력이 사회에 얼만큼의 영향을 줄 수 있는지 다시 알 수 있는 책이다. 물론 모든 분야에 적용되지만, 정치가 영향을 미치지 않는 사회의 조각은 없다. 공간적 환경과 건축은 그 중에서도 사실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부분 중 하나이지 않나 싶다. 무엇보다 물질적으로 지을 수 있는 것의 한계는 분명 나라의 status 와 상태에 국한된다.
일제 강점기 당시 아파트 형식의 호텔과 같은 건물들로서 새로운 건물의 구조가 발을 들이고, 서울로 몰리는 인구에 대응하기 위하야 아파트들을 짓기 시작한다. 이러한 움직임들의 큰 범위는 정책에서 비롯된다. 또한 나라의 경제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 책에서도 언급하지만 콘크리트 공장들이 생겨나면서 그것을 사용한 건물들이 많은 숫자 올라가기 시작한다.




1966년 박병주가 제안한 무궁화 꽃잎 모양의 새 서울 계획. (http://blog.dreamwiz.com/kakaii/5211972)

서울을 계획 가능한 대상으로 보고, 이상적인 도시의 모습을 구상하여 실제의 계획안을 일반 시민에게 공개하는 것은 시대 정황을 찹작 할 때 획기적인 일이었다. 전시회에 시민의 관심이 쏠렸고, 관람자가 70여 만 명 정도가 될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다. 그만큼 서울시의 책임은 더욱 가중되었고, 동시에 계획안의 실현 가능성을 무시한 채 신도시 건설을 감행하는 듯 서울시의 처사는 계획가들도 이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66년, 도시를 계획한다는 단계에서 무궁화라는 디자인이 나왔다는 것은 흥미롭다, 상당히 이상적이고 추상적이다. 무궁화라는 상징성을 도시에 적용한다는 의견은 충분히 있을 수 있지만 그 모형을 직접적으로 도시의 모형에 적용한다는 것은 떠올리기 어려운 의견이지 않나 싶다. 그 만큼 도시설계가 백지의 단계였음을 보여주는 것일까. 그 만큼 실질적 계산의 마인드가 부족했던 것일까. 얼만큼의 추진력을 염두에 두고 한 설계인지, 배경적 상황 등은 모르겠지만, 조금은 아이같은 목표 같다.




현재 도시 공간이 근대적 개발 이후 과거의 형태를 찾아 볼 수 없는 반면, 물길은 복개가 되어도 대부분 가로의 체계로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도시 속 건물은 그 형태가 그리 오래 유지되지 않지만, 도시 속 길이라는 요소는 재포장되고 정리가 되기도 하면서 그 형태를 꼐속적으로 유지해 가기가 쉽다. 특히 물길이라는 것은 서울을 전반적으로 흐르던 물의 흐름이었기에 도시 속에서의 생명력은 더욱 강하다 할 수 있다.

물의 흐름, 건축건설은 얼만큼 자연을 염두에 두고 이루어졌을까. 한국, 특히 서울은 그러한 여유가 없었다. 모두가 알다싶이 굉장한 속도로 늘어나는 서울의 인구를 감당해야했고 그러한 속도 속에서 가장 궁극적인 목적 이외의 것들은 보이지 않기 마련이다. 그렇게 급하게 콘크리트는 올라갔고 그 와중 소외당한 많은 것들이 있다 - 그것은 자연 뿐만은 결코 아니다. 이에 대해서는 분별된 의견들이 있을테이니 여기까지.


<동대문 아파트>의 중정, 복도에 도르레가 설치되어 중정을 가로지르는 빨래줄을 잡아준다"

(추가적 사진과 설명 위하여 사진 출처 블로그 방문 적극 권장 추천  http://kr.blog.yahoo.com/lazybirdc/493238)


...6층 건물로 대략 18미터의 높이를 가지며, 가로게 면한 부분의 길이는 16미터에서 26미터로 건물의 높이와 규모 변에서 볼 때 사람들이 느끼는 편안한 건물의 범위를 넘지 않았다. 중정의 경우는 높이가 12미터에서 18미터로 일반인이 편안하게 느끼는 17.3 미터보다 대체로 낮거나 거의 근접함을 볼 수 있다.


아파트, 라는 개념과 그의 모습이 얼만큼 기이하고 생소했을까. 아파트라는 건축구조가 새로이 그리고 빠른 속도로 올라가고 있을 무렵 그것에 대한 낯섬을 표현한 문학 작품들이 제법있다. 벽을 하나두고, 나의 윗 층에서, 아래 층에서, 잠을자고 밥을먹고 샤워를하고 - 이렇게나 가까이 있으면서도 서로와 교류 할 시간 없는 현대인의 생활을 담아 놓은 아파트라는 개념, 을 수용하는데에는 분명 적응이 필요했다. 또한 도시 건설을 위해 집을 떠나야 했던 주민들에 관한 작품들도 숫자가 제법이다. 이러한 신도시 건설이라는 사회적 움직임들은 오늘날도 계속된다. 하지만 전환점에서의 그들은 오늘의 그들보다 아프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본다.
하지만 와중, 전환점이니만큼 중점의 - 것을 표현하려는 노력이 보인다. 아파트의 높이라던가, 공동의 공간 '중정'과 같은 디자인들은 환경과, 이웃과 어울리려는 노력이었다.


'나의 집' 하나 갖고 싶은 마음에 모였던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 낸 '우리 마을', '우리 동네', '우리 아파트'.




정재호 <대광맨션아파트>

아파트에 살지 않았다. 어려서 살던 집은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마당을 가운데로 직사각형의 범위를 두른 방들이 있었고 그 중 옥상이 있는 방도 있었다. 마당 텃밭에서는 채소거리를 늘 심었는데 나의 기억에는 고추와 상추만 남아있다. 5*2.5 미터 정도의 텃밭은 겨울이 아니고서야 늘 한 가득이었다. 테두리를 따라 채송화가 피었던 기억이 난다. 그 중 가장 키가 컸던 장미는, 몇 해를 꾸준히 살더라. 할아버지가 장미녀석은 잘도 자란다며, 2미터 가까웠던 녀석의 가지를 종종 치시던 기억이 난다.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콘크리트였고, 계단을 따라 개나리가 피었다. 옆집의 개나리었는데 우리 옥상 계단 너머로 봄 여름 내내 만발이었다. 그렇게 옥상을 올라가면 할머니의 장독대가 20여 독 있었고, 안에는 된장이며 고추장등이 가득이었다. 그렇게 올라간 옥상은 지상 6미터 쯤 되었을까, 옆 집의 단풍나무와 은행나무의 머리 웃 쯤 되는 높이었다. 그리 높지도 않은 높이지만 특별히 높은 건물이 없었던 나의 동네에서 제법 멀리까지 볼 수 있었다. 새해나 성탄, 추석 등 특별한 날이면 근처 천에 있는 터에서 행사를 하며 폭죽을 터트렸는데, 폭죽 소리가 날 때 마다 나와 동생, 때로 놀러온 친척들과 옥상으로 빠르게 뛰어 올라가곤 했다. 그렇게 올라가서 마을들 머리위로 터져 떨어지는 폭죽 불들은 지금 생각하면 식상한 모양들이었지만 연 중 재미있는 행사였다.
내 일곱살 쯤이었을까, 기와 지붕 아래에 제비가 집을 지은 적이 있었다. 녀석은 지푸라기와 흙 따위를 어떻게 그리 꼼꼼히 발랐는지, 제법 튼튼하게 우리의 처마에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녀석은 알을 낳았고 알에서 새끼 제비들이 태어났다. 녀석들 얼마나 시끄럽게 울어대던지, 그 해 여름은 장맛빗 소리와 새끼 제비들의 소리가 인상에 깊게 남았다. 하루는 새끼 제비가 슬슬 날고 싶었는지 둥지에서 기어나왔다. 하지만 준비가 되지 않았던 녀석은 둥지에 몸이 반쪽 나왔지만 기운이 부족했는지 도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걸터졌다. 내 어린 마음에 얼마나 초조하던지 .. 지금 생각해도 무섭구나. 아무튼 그렇게 목을 내밀고 도와달라 소리지르는 녀석을 할머니가 빗자루로 밀어 둥지에 다시 넣어주셨다. 아, 할머니는 나의 영원한 영웅이다.
아 ~ 나의 집 나의 집이여. 그곳에서 아빠는 한의원으로 자전거로 출퇴근하셨고, 나는 버스르라고 초등학교를 다녔다. 가족들이 모여 송편을 빚었고 여름이면 마당에 바람을 불어 넣는 작은 수영장을 펼쳐놓고 동생과 물놀이를 하기도 했다. 그 마당에서 강아지도 키우다가 토끼도 키우다가 병아리도 키웠다.
중학교 이학년의 겨울은 굉장한 폭설이 있었다. 친구와 전화통화하기를 좋아하던 나는 무선 전화기를 들고 모두 잠든 늦은 새벽에 조용히 꾸준히 굉장히 많은 양으로 내리는 눈 을 맞으며 마당을 오가며 친구과 통화하던 기억이 난다. 대문 앞에는 전봇대가 있었는데 녀석의 주황빛 불이 눈 내리는 밤 풍경을 아름답게 했던 기억이 나는구나. 아, 행복이었구나.
그 지역의 개발에 대한 말이 몇 해 전 부터 오가고 있는데 상당히 싫다. 물론 자주 들리지도 않게 되어버렸지만 아끼는 곳이기에, 보호하고싶다.
집이란 그런 것인가보다, 추억이 가득하고, 세상의 유일한. 세상은 집과 집이 아닌 곳으로 나뉘어진다. 집은 그러한 곳, 공간, 모든 것이다. 집에서 울었고 웃었고 행복했고 슬펐고, 지금은 나와 함께하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했고, 아름다웠다. 
개발이라는, 인구수용이라는 목적으로 지어진 아파트들, 물론 형식적인 목적으로 지어젔지만 그 공간들 또한 개인들의 철학, 생활, 추억을 담는 공간들이다. 집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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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턴 유체 "응력과 변형률의 관계가 선형적인 관계이며, 그 관계 곡선이 원점을 지나는 유체"를 말한다. 그 비례 상수가 바로 점성 계수(viscosity coefficient)"
뉴턴 유체의 거동

 \tau = \mu {du \over dx}

τ sheer stress (유체에 작용하는 전단 응력)
μ fluid viscocity (유체의 점성 계수)

 {du \over dx}   the velocity gradient perpendicular to the direction of shear, or equivalently the strain rate [s−1] (전단력에 수직한 방향의 속도의 기울기)

newtonian fluid 는 constant coefficient of viscocity 가 정의 가능한 데에 반해, non newtonian fluid 는 그러하지 않음.

오늘 비뉴턴 유체를 사용한 running 운동화를 만났는데 - 설명인 즉, 압력이 가해 질 수록 편안하다고 하였다. 압력이 증가하면 그 만큼 신발의 밑 창은 compress 되야하는 것이 뉴턴 유체의 속성이지만, 본 신발은 그렇지 않다는 것.
이론적으로 이해는 가지만 그것의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는 사용을 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일단 호기심 유발에는 성공적인 마케팅이었음. 신발은 Brooks 의 DNA technology 이다. 다수 Brooks 의 신발들에 이 기능이 사용 되었다. 왜 이름이 dna 인지에 관해서는 웹사이트에서 찾지 못하여 조금 실망.


http://ko.wikipedia.org/wiki/%EB%89%B4%ED%84%B4_%EC%9C%A0%EC%B2%B4
http://en.wikipedia.org/wiki/Newtonian_flu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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뼛속까지내려가서써라
카테고리 인문 > 독서/글쓰기
지은이 나탈리 골드버그 (한문화,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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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작가소개를 읽자면, 작가는 작가이자 글쓰기 강사이다. 이 책을 쓰며 "미국인들의 글쓰기에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켰다"는데 .. 의심스럽지만 넘어가자.
"글쓰기에 도전해보고자 하는 이들이라면 꼭 읽어보아야 할 새로운 바이블로 떠올랐다출간된 후 20년 가까이 지났지만 독자들의 이런 열기는 식지 않아서 이 책은 현재에도 아마존 베스트셀러 상위를 점하고 있다."
라는데 .. 책이 많이 팔렸나보다, 음. '력명'이나 '바이블'로 설명될 정도의 책은 아니다.

내용적으로는 글을 쓰는 작가에게 도움을 주고자 쓴 글이다. 작가는 작가에게 글을 쓰는 방법을 가르치려한다. 읽으면서 동의하는 바도 있고, 공감하는 바도 있고, 인정 할 수 없는 바들도 있었다. 물론 내가 작가도 아닐 뿐더러 글쓰기 강사도 아니지만 글을 씀에 있어 옳고 그름을 따질 수는 없지 않을까. 물론 보편적인 기준이 있겠지만 전적으로 동의 할 수 없는, 그렇다고 전적으로 부정 할 수도 없는, 나에게는 어중간한 책이었다.

글을 쓰는 것을 즐기는 나에게 충분히 흥미로운 주제였다. 작가의 필독이라고는 전혀 할 수 없다. 오히려 문학을 한 단락 곱씹어 읽는 것이 훨씬 이로울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방법'을 서술한 책들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행복의 방법' '여행의 방법' '성공의 비법' 따위는 참으로 매력이 없다.

나의 동의 여부를 떠나, 공유하고 싶은 문구들은 제법 있었다.
더욱이 규칙적으로 달리기 훈련을 하게 되면, 이 훈련 자체가 저항감을 잘라내고 무시해 버릴 수 있는 또 다른 훈련이 된다. 당신은 계속 달린다. 이렇게 한참 동안 달리다 보면 당신은 어느새 달리기를 사랑하게 된다. 게다가 목적지가 보이게 되면 절대 중간에 포기
하지 않는다. 그리고 골인을 하고 난 후에는 다시 또 달려보고 싶다는 갈증에 사로잡힌다.
사실 글쓰기 뿐 아니라 모든 분야를 연습함에 있어서 그러하겠지만, 특정한 행위를 연습한다는 것에는 굉장한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그 행위와 그 행위에 대한 나의 태도의 관계이다. 내가 특정한 것을 연습 할 때에, 시작은 호기심이었을테고, 그것에 능숙해지고 숙련되기 위해 많은 연습을 할 것이다. 연습은 어려울 것이고 나는 처음의 호기심을 잃어가고 지칠 것이다. 이 때에 나의 그 순간적 감정을 무시하고 행동을 지속하다보면 호기심으로 시작한 지친 연습은 어느 사이에 사랑이 되어있을 것이다. 이것은 작가가 언급한 달리기에서도 마찬가지고, 글쓰기에서도, 모든 운동, 모든 업무에 공통된다고 생각한다. 




지금 나에겐, 1977년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부터 모아 놓은 용수철 노트가 내 키 높이만큼 쌓여있다. 마음 같아서는 이것들을 모조리 버리고 싶다. 습작 시절의 엉클어진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들키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나에게도 5학년 때 부터 쓴 일기장들이 열 권 정도 있다. 불질러버리고 싶은 마음이 수십번도 더 들었지만 그럴 용기가 없다기보다 특별한 이유가 없다. 쉽게 버리기에는 미련이 남고 불을 지르는 등 기이한 행위를 하기에는 동기가 없다. 아무튼 그렇게 나의 일기장들은 존재한다. 블로그를 쓰면서 일기장들이 멈추었구나, 잘된건지는 모르겠다.




"주말 내내 네 노트 읽느라고 혼났어. 아주 친밀한 글이더라. 하지만 어떤 글은 겁에 질려있고 불안감이 배어 있었지. 지금의 네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너의 모습이라고는 상상도 못할 아주 거친 에너지가 들어 있는 생경한 글도 읽었어. 그리고 지금 내 앞에 네가 다시 서있어. 육체를 가진, 하나의 인간으로서 너의 모습은 글과 또 달라."

노트들은 그러하다, 나의 모든 생각을 쏟아버리는 곳. 늘 느끼지만 글을 쏟음은 구토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특정 멈출 수, 막을 수 없는 행위. 깨끗과는 거리가 먼, 나의 악취나는 내면을 밖으로 버리는 현상.




우리는 스스로가 게으르며 불안정하고 자기혐오나 두려움에 쌓인 존재, 정말 말할 가치도 없는 존재라는 사실과 직면하는 순간을 경험할 필요가 있다. 그때 당신은 더이상 어디로도 도망을 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를 것이다. 이제 당신은 별수 없이 자신의 마음을 종이 위에 풀어 놓아야 하며, 그 가련한 목소리가 들려 주는 말을 경청해야 한다.
이런 쓰레기와 퇴비에서 피어난 글쓰기만이 견고한 글이 된다. 당신은 어느 것으로부터도 도망치지 않게 된다. 당신은 예술적 안정성을 지니게 된다. 안에서 울려나오는 목소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바깥에서부터 쏟아지는 어떤 비평도 무섭지 않다.

대학교 일학년 시절, 나의 대부분 글은 반복적인 내용이었다. 나 자신에 대한 혐오감, 그리고 그러한 혐오감에 불구하고 나를 살아가게하는 고마운 존재들. 내 자신에 대한 혐오감이 컸던만큼 그것을 넘어서고 세상에 남게해준 존재들에 대한 고마움도 컸다. 결과적으로 당시의 글들은 상당히 극적이다.
궁금한 것은 나의 이러한 자신 혐오감은 인간에게 보편적인 것일까? 대부분의 인구도 나와 같은 극적인 자신에 대한 더러움을 느꼈을까? 물론 그러한 경험으로써 내 자신의 감정적, 인지적 범위가 넓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만이 견고한 글을 쓰는 유일한 방법일까? 음, 아직 나는 많은 사람을 만나지 않았구나.




겁내지 말고 용기있게 무작정 뛰어들라.




작가와 작품은 별 개다

우리가 실존하고 있다는 생각, 그것은 착각이다. 우리는 우리가 쓰는 글이 견고하며 영구불변한 구조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우리가 쓰는 글은 순간이 만들어 낸 작품이다.

동의하는 바이다. '글을 쏟는다'는 생각을 참 자주하는데, 글을 씀은 나에게 피할 수 없다는 느낌을 준다. 글은 마치 음식을 먹고 소화하는 배출하는 과정처럼, 생활 속에서 인지하는 것들과 생각들을 소화하고 굳이 배출해야 한다. 글로 쏟아지지 않는 조각들은 쌓이고, 그것들은 스트레스가 되기도 한다. 이따금 바쁜 생활에 글을 오랫동안 외면하는 기간들이 있는데, 결코 편안한 상태는 아니다. 녀석은 나의 권한 밖의 기운을 가지고있다.




예술가로 살기란 절대 쉽지 않다. 예술가는 일을 하고 있지 않을 때조차도 절대 그 일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는 존재들이다. 하지만 나는 그래도 예술 작업에 얽매이고 창작에 대한 강박증에 빠지는 것이 술을 마시거나 초콜릿으로 배를 채우는 일보다 훨씬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창작에 대한 강박증은 무언가 가치 있는 길을 찾아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창작에 대한 강박증이라.. 그것이 다수 작가들의 동기인가?
개인적으로는 내가 모르는 것에 대한 궁금증이 강박증이랄까. 이미 존재하는 범위 내에서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너무 많다는 점이 슬프다. 더불어 내가 서술하는 표현의 정확성 따위에 강박증을 느끼기도하고.. 나에게 주어진 물건이나 생각들을 정리하고 싶은 강박증을 느끼기도한다.창작에 대한 강박증은, 나에게 없지 싶구나.





 
작가는 인생을 두 배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먼저 첫 번째 인생이 있다. 길에서 만나는 여느 사람들처럼, 건널목을 건너고 아침에 출근하기 위해 넥타이를 매는 그런 일상생활이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생활의 또 다른 부분이 있다. 모든 것을 다시 곱씹는 두 번째 인생이다. 이들은 글을 쓰기 위해 자리에 앉을 때마다 자신의 인생을 다시 들여다 보고 그 모습을 면밀하게 음미한다. 삶을 이루고 있는 재질과 세부 사항을 들여다본다.

음, 확실히 글을 쓰다보면 나의 범위가 넓어짐을 느낀다. 어떠한 체험을 했을때의 느낌과, 그것을 글로 서술하면서 생겨나는 느낌은 별개이다. 내가 a 를 보고 무엇을 느낀다. 그리고는 a에 대해 글을 적으면서, 연장선이지만 분명 별개의 감정과 경험을 느낀다. 그렇게 범위가 늘어나는, 글을 쓴다는 것은 분명 범위를 늘리는데에 효과적인 방법이다.






평범함과 비범함은 공존한다.

공감.




작가들은 위대한 애인이다. 작가들은 다른 작가들과 수시로 사라엥 빠진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글쓰기를 배우는 방법이다. 그들은 한 작가에게 다가가, 그가 쓴 모든 작품들을 통해 그가 어떻게 움직이고 휴식을 취하는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는지 완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될 때까지 읽고 또 읽는다.
자신에게서 빠져 나와 다른 누군가의 피부 속으로 옮겨 들어가는 것, 이것이 바로 사랑에 빠진 사람의 모습이다.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사랑하게 되는 능력이 당신 안에 있는 능력을 흔들어 깨운다는 뜻이다. 남의 글을 사랑하게 되는 것은 당신을 더 크게 해 줄 뿐 절대 남의 것을 탐내기만 하는 도둑고양이로 만들지 않는다. 다른 작가가 쓴 글이 아주 자연스럽게 당신 것으로 변해 가면, 당신은 글을 쓸 때 그것들을 활용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작위적이어서는 안된다. 위대한 연인들은 자신이 사랑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는다.
아아, 아름다운 글은 얼마나 행복한가. 글의 내용 뿐 아니라, 그것의 서술은 상당히 중요하다. not what you say but how you say it - 바로 그것. 작가의 위대함은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예술가는 외롭고 고통스러운 존재라는 생각 같은 것은 떨쳐버려라. 어차피 인간은 누구나 고통스럽다. 자신만이 고통스럽다고 생각해서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들 이유는 없다.







방안에 있는 고양이가 움직이는 물건을 응시하는 모습을 지켜본 적이 있는가. 고양이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으면서 동시에 모든 감각을 동원해서 보고, 듣고, 냄새를 맡는다. 당신이 거리에 나가 배워야 할 것이 바로 그런 고양이의 태도다.
주위 환경에 대한 인지도를 높히고, 관찰의 단위를 작게하라. 평범함에서 특별함을 찾고, 세밀한 단위에서 관찰하라는 것.






세상이란 언제나 흑백으로 갈라지는 곳은 아니다. 하지만 작가가 되고 싶다면 분명하고 확실하게 진술하는 것이 필요하다. "글쎄, 웃기는 소리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아마 그것이 푸른 말이었을 거라고 생각해" 이런 글은 곤란하다. "이것은 푸른 말이다"라고 자신있게 말하라.
아, 글쓰기에 기준이 있다면 이것일 것이다. 효과적인 전달.



파리에 갔을 때 발길 닿는 곳마다 카페가 많다는 사실에 나는 무척 놀랐다. 그곳의 카페를 보면서 손님을 서두르게 만드는 불친절한 미국 카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가고 싶다 파리.







충분하다고 느낄 때 한번 더

당신이 글을 밀고 나가 그저 적당한 종점에서 끝맺으려고 한다면, 그 글에는 당신의 진정한 숨결이 배어 날 수 없다. 글 쓰기는 자유를 향해 헤엄칠 수 있는 위대한 기회다. 그 기회를 놓치지 말라.

역시나 모든 분야에 적용 될 수 있는 습관 - 능숙함과 숙련됨을 원한다면 subject 대상에 대한 편안함 이상의 편안함에 도달해야한다.







나는 작가다. 작가는 많은 시간을 홀로 글을 쓰는 데 보낸다. 또한 사회라는 틀 속에서 예술가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우리를 더욱 외롭게 만들기도 한다. 모두가 아침이면 일터로 향하거나 각자의 일을 하기 위해 분주하다. 예술가는 제도가 만들어 낸 사회의 바깥에서 살고 있다.
음, 예술가는 사회제도의 바깥이라 .. 곱씹어 볼만한 주제이다. 일단보류.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천국이다

Gore Vidal 은 아주 멋진 말을 남겼다. "모든 작가와 독자들은 글을 잘 쓰는 것이 그들 모두에게 최고의 여행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여러분은 글을 '잘' 쓰는 것에 대해서도 염려하지 말라. 그냥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천국이니까.
글쓰기 강사여서 그러한가 - 상당히 긍정적인 태도이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특히나 글을 씀을 목적으로 두고 일부러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지옥일 수 있다는 것을 당연히 느꼈을텐데, 왜 그에 대한 언급은 없는가. 
오히려 Gore Vidal 의 말이 맞지 싶다 - 잘 쓰는 것이 최고의 여행이다. 잘 쓰이지 않은 글은 독자 입장에서도 안 읽은 만 못하는, 괴롭다.





일본에는 뛰어난 하이쿠를 적은 종이를 병에 담아 강이나 개울에 띄워 보내는 시인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이것은 작가란 모름지기 자기 작품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아주 의미심장한 우화다.

음, 확실히 가벼운 마음으로, 결과에, 최종적 완성에 연연하지 않고 쓰는 글이 과정도 즐겁고 결과도 만족스럽다.








자신이 쓴 글을 다시 읽어보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재확인하는 기회다. 왜냐하면 당신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글쓰기란 생활에 전혀 도움이 안되는 시간 낭비가 아닐까 하는 회의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신은 이제 자신의 소박한 인생에 매료되어 자리를 떠날 줄 모르게 된다. 평범한 존재를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 주는 것, 이것이 바로 예술이 가진 위대한 힘이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인생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이것은 예쑬이 가진 위대한 힘이기도하지만 지식이 가진 위대한 힘이기도하다. 아는만큼 보이는 것이, 평범함을 특별함으로 만들어준다는 말과 같은말이지 않은가. 배울수록 경이롭고 그에대한 감사함 appreciation 이 쌓이며, 새로운 차원의 삶을 지낸다.




만약 우리가 글쓰기를 통해 이런 경지에 오를 수 있다면, 우리는 우리를 계속 작가로 지켜 주는 골인 지점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경지 .. 하아, 나도 경지에 오르고 싶구나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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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nningWithScissors
카테고리 문학>에세이/자서전
지은이 Burroughs, Augusten (St.Martin's,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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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일단 자서전 memoir - 이지만 소설에 가까운 삶이기에, 소설이라는 착각을 가지고 읽은 기억이 난다.
몇 가지 느낀점은:
-제목이 좋다. 위험한 긴장감을 잘 표현한다.
-미국에 대해 상당히 많은 insight 를 받을 수 있다. 미국의 문화적인 요소가 굉장히 풍부하다. 동성애라는 주제부터 시작하여 그것에 대한 관점. 미국 의학, 특정히 심리치료에 대한 문화적 배경이 보여지기도한다. 보편적인 심리치료의 문화는 아니지만 그것의 잘못된 방향, 문화적 부작용이 부각되었다.
-전반적으로 저렴한 느낌. 고급의 글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저렴한 엔터테인먼트랄까. 글에서 특별한 어려움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내용적으로 그의 삶에서 느꼈을 어려움이 조금, 아주 조금은 느껴지지만 그것을 가지고 글을 쓴다는 데에서 아픔을 승화시키는 과정따위는 모르겠다. 때로 재미 .. 라기보다 터무니 없는 웃음, 허탈한 실소가 나오는 부분이 많다. 뭐, USA Today 의 기자는 "screamingly funny"라고 했지만, 수준이 의심스럽다. 작가는 Entertainment Weekly 의 America's 15 funniest people 중 하나란다. 이 나라의 개그코드는 수용 할 수 없다, 하.
-지저분하다. 저렴한 느낌에 더하는 글의 느낌, 깔끔하지 않은 글의 느낌이 싫었다. simplicity 간단하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글이 효과적인 글이라고 생각하는데, 글의 서술에 있어 지저분한 느낌이다. 음, 안타깝지만 이것이 어느정도 현대 미국문학의 수준인가 싶기도하다. 예를들자면
"Life would be fabric-softner, tuna-salad-on-white, PTA-meeting normal."
"Her eyes scared me. They looked radioactive.'
고급과는 멀다 ..

내용적으로는 불안정한 가정에서 자라나는 불안정한 청소년의 이야기. 심리학, 종교, 문화 등 약간의 풍자느낌의 책이다. 영화로 제작되었으며 #1 New York Times Bestseller 이다. 슬프게도 이러한 저렴한 문화들의 번식이 가능한 것이 현대 문화인가보다.
Posted by water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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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 from http://alisina.org/einstein-and-islam/

Iranian mullah says Einstein converted to Shiite Isalm.

In a debate with a learned mullah from Iran my opponent quoted a passage that he claimed is from Albert Einstein.

“Quran is not a book of algebra or geometry but is a collection of rules which guides human beings to the right way, the way which the greatest philosophers are unable to decline it.

I made as search and found that this passage is quoted in many Islamic sites. However, the passage is falsely attributed to Einstein. Einstein’s views of God and religion were radically opposed to Islam. In the following passage he explains his beliefs.

The insight into the mystery of life, coupled though it be with fear, has also given rise to religion. To know that what is impenetrable to us really exists, manifesting itself as the highest wisdom and the most radiant beauty which our dull faculties can comprehend only in their most primitive form — this knowledge, this feeling, is at the center of true religiousness, and in this sense only, I belong in the ranks of devoutly religious men. I cannot imagine a God who rewards and punishes the objects of his creation, whose purposes are modeled after his own — a God, in short, is but a reflection of human frailty. Neither can I believe that the individual survives the death of his body, although feeble souls harbor such thoughts through fear of ridiculous egotism.”

Clearly, Einstein did not believe in a personal god that rewards and punishes, neither he believed in the afterlife. These concepts are fundamental to Islam. Without a personal God and without the Day of Judgment, a lustful paradises and a tormenting hell Islam becomes meaningless.

Islam is entirely based on fear. No other words are repeated more frequently in the Quran than “hell” and “Day of Judgment.” I have debated with thousands of Muslims, some very educated, and some not. The undertone of all these debates was the punishment of God that awaits me. It’s this fear that has paralyzed Muslims and has made them helpless. As long as this fear persists they will not doubt Islam and will not be able to set themselves free.

Einstein believed religion is the product of ignorance and fear. Those comments about Islam are falsely attributed to him. But that does not surprise me. Almost everything Muslims say is a lie. It’s unbelievable that one cannot find a word of truth in this religion.

What surprises me is that this erudit mullah in his previous message to me had posted a long list of all the quotes from several anti-Semites such as Gustav Le Bon and others, to portray that Jews are the most wicked and evil people in the world, utterly dehumanizing them and demonizing them. Le Bon’s theories about race and crowd control greately influenced Hitler in writing his Mein Kampf and it is said the Musolini kept Le Bon’s book by his bedside.

This educated man even believes that Allah transformed the Jews into pigs and monkeys. It’s amazing what Islam does to human brain. And when I tried to prove him wrong, reminding him of all the great things the Jews have done for mankind, he said, aha! Now we know that you are a Jew. Yet among all the people, he picked Albert Einstein, a Jew, to falsely attribute those words of praise about Islam to. If Einstein is racially inferior, as Le Bon says, and as wile as the Quran says, why quote him? If as a Jew he is not worth anything, why should his opinion about Islam matter? The absurdity of the Muslim mind never ceases to amaze me.

To fully comprehend the delusional mind of the Muslims I’d like to inform the reader that the mullahs in Iran claim that Einstein had converted to Shiite Islam. The government controlled site SobheSadegh.ir says that according to an unnamed cleric delivering a sermon at a mosque in Tehran, the nuclear physicist Albert Einstein allegedly converted to Shi’a Islam through the efforts of Grand Ayatollah Boroujerdi, who also had urged Einstein to keep his conversion secret in order not to be assassinated.

However, far from converting to Islam or praising it, as a Jew, Einstein had distinct views on Jesus. Below is a clip of an interview from the Saturday Evening Post, October 26, 1929:

“To what extent are you influenced by Christianity?

As a child I received instruction both in the Bible and in the Talmud. I am a Jew, but I am enthralled by the luminous figure of the Nazarene.

Have you read Emil Ludwig’s book on Jesus?

Emil Ludwig’s Jesus is shallow. Jesus is too colossal for the pen of phrasemongers, however artful. No man can dispose of Christianity with a bon mot [a witty remark].

You accept the historical existence of Jesus?

Unquestionably! No one can read the Gospels without feeling the actual presence of Jesus. His personality pulsates in every word. No myth is filled with such life.”

These Islamic sites post several quotes from famous personalities such as Napoleon Bonaparte, Gandhi, Leon Tolstoy, Bernard Shaw and others that praise Islam. Quoting the opinions of famous people as the evidence of the truth of a religion is a logical fallacy. Even famous people can be wrong, but the fact that none of these people were scholars of Islam or had read its holy book or its history makes their opinion about Islam worthless. Hitler also praised Islam. Hitler’s opinion is the only one that matters because he understood Islam. Would others have still praised Islam had they known that Muhammad was a raider, a mass murderer, a slave maker and a rapist? These facts have come to the public attention only during the last decade or so. When I started writing about them no one believed me. I sounded like a lunatic to them. It just made no sense that a man literally worshipped by 1.5 billion people could be a despicable criminal. But that is the fact the world must come to terms with and it is coming to term with.

These famous people, who have spoken loftily about Islam, have spoken from the position of ignorance. Praising Islam makes Muslim very happy. Muslims constantly seek approval from people in authority and for the unwary people it seems to be a cheap way to endear themselves with Muslims. Sadly, these approvals compound Muslims’ ignorance and make them more fanatical and as the result more violent. The essence of the message of Muhammad is jihad. If you approve Islam, you validate all its evil teachings including jihad and encourage terrorism. Now that the truth is out, no one should ever praise Islam to appease Muslims. Ignorance is no longer an excuse. Praising Islam is treason to humanity.

Another authority quoted by Muslims is the Russian Novelist Leo Tolstoy. He is claimed to have said, “Quran contains clear realties and tenets and human beings can utilize it generally.” As usual, no reference is given. Assuming these are the words of Tolstoy, he has also thought that Islam has become currupted beyond redemption. He has also praised Bab and Baha-u-llah, the twin founders of the Bahai Faith . These prophets are denounced by Muslims. A few months before his death Tolstoy wrote:

I have known about the Bábís for a long time, and have always been interested in their teachings. It seems to me that these teachings, as well as all the rationalistic social religious teachings that have arisen lately out of the original teachings of Brahmanism, Buddhism, Judaism, Christianity and Islam distorted by the priests, have a great future for this very reason that these teachings, discarding all these distorting incrustations that cause division, aspire to unite into one common religion of all mankind.

Therefore, the teachings of the Bábís, inasmuch as they have rejected the old Muhammadan superstitions and have not established new superstitions which would divide them from other new superstitions (unfortunately something of the kind is noticed in the exposition of the Teachings of the Báb), and inasmuch as they keep to the principal fundamental ideas of brotherhood, equality and love, have a great future before them.”

Muhammad Ahmad al Mahdi

Tolstoy mentions the Ahmadiyah movement in Lahor and the Mahdi movement in Sudan and says,

Both these religious teachings contain nothing new, neither do they have for their principal object a changing of the outlook of the people and thus do not change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people, as is the case with Babiism. I therefore sympathize with Babiism with all my heart inasmuch as it teaches people brotherhood and equality and sacrifice of material life for service to God.

The teachings of the Bábís which come to us out of Islam have through Bahá’u’lláh’s teachings been gradually developed and now present us with the highest and purest form of religious teaching.”

So I’d like to ask the Muslims who quote “authorities” to prove Islam is true, why they ignore the same authorities when they praise other faiths, specially the Babi and Baha’i faiths that Muslims regard heretic? If Tolstoy’s opinion about Muhammad is valid, so must be his opinion about Bab and Baha-u-llah.

Relying on “authorities” as evidence of the truth of any proposition is a logical fallacy. It’s called argumentum ad verecundiam. The truth of a religion can be only determined by analyzing its teachings and its author or as Jesus said, by their fruits ye shal recognize them.

When we analyze Islam, we find it to be a religion that promotes hate, spreads through deception, advocates violence, and encourages fighting and bloodshed. When we observe its followers, we see they are backward, violent, ignorant, and uncivilized. These are the bitter fruits of this tree from hell.

Einstein was an atheist Jew and a Zionist. He was everything Muslims hate. Despite that Muslims feel no shame in cashing on his popularity, even through lies. Einstein did not believe in a personal god. His thoughts were diametrically opposed to Islam. He did not convert to Islam and he did not praise it. He had a lot of respect for Jesus, but not for Muhammad. Muhammad deserves no respect. By virtue of how he lived and the legacy of destruction that he left behind he deserves our sco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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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를 가리지 않고 넘나드는 이 사람은 무엇인가 싶어 자료를 찾아보았다.



안철수 (1962)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
안철수 연구소 이사회의장, CLO
노리타운스튜디오 의장

서울대학교 의학 학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원 의학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의학 박사
펜실베이니아대학교 대학원 공학 석사
펜실베이니아대학교와튼스쿨 경영학 석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조교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전임강사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의예과 학과장
일본 규슈대학교 의학부 방문연구원
해군대위
안철수연구소 창립, 대표이사
POSCO 사외이사, 이사회의장
KAIST 기술경영전문대학원 정문술석좌교수
안철수연구서 이사회의장, CLO
미래기획위원회 위원
아름다운재단 이사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 위원
노리타운스튜디오 이사회 의장
포항공과대학교 이사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 디지털정보융합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

한국컴퓨터기자클럽 올해의 인물상
청와대 자랑스런 신한국인상
제4회 한국공학기술상 젊은공학인상
제14회 인촌상
제2차 아시아 유럽 젊은 기업인 포럼 젊은 기업가상
자랑스러운 서울대인상
제1회 대한민국8W사업자대상 경영부문 최우수상
등탑산업훈장
제1회 한국윤리경영대상 투명경영부문대상
제1회 대한민국 브랜드 이미지 어워드 교육부문
세종문화상 사회봉사부문
대전광역시 명예시민패

"지금 학생들은 제 학창 시절보다 호기심이나 모험심, 실력 등 모든 면에서 뛰어나요. 그런데 사회구조가 학생들이 안전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게끔 몰아가고 있어요. 그렇게 된 핵심은 학교 자체보다는 사회구조에서 찾을 수 있어요. 우리나라는 일자리가 2000만개 정도 필요한데 대기업이 뽑을 수 있는 건 200만개에 불과해요. 그마저도 줄이고 있죠. 대기업엔 각종 특혜를 주고 우대하다보니 중소기업, 창업은 설자리가 없어지고…. 더 심각한 건 창의적 인재가 필요하다고 말로만 할 뿐, 사실 대기업엔 창의적 인재가 필요하지 않아요. 그건 우리나라 경제발전과도 연관이 있어요.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패스트 팔로워’였거든요. 가진 게 없으니까 새로운 것에 도전할 여유가 없어요. 실패하면 다 날아가니까 다른 사람, 선진국이 해놓은 것 중 성공한 것을 보면서 전속력으로 쫓아갔고 성공했어요. 그러다보니 추호의 실패도 용납 않고, 실패해서 넘어지면 밟고 지나가고, 앞사람의 머리채를 잡아 쓰러뜨리고 온갖 편법을 동원했어요. 결국 대기업들은 창의적 인재 대신 시키는 대로 한 치의 오차 없이 할 수 있는 스펙과 학벌 좋은 사람을 선호해왔어요. 모든 불행이 거기서 시작된 거죠.

어떤 사람의 말과 생각은 그 사람이 아니에요. 그 사람의 행동과 선택이 그 사람이더라고요. 정치인들 보면 그렇죠. 줄곧 서민정책을 주장하던 정치인이 나중에 표결할 때 보면 부자감세에 손을 들어요. 그래서 저는 뉴스 중에서 한 글자도 안보는 것이 정치인 인터뷰죠. 그 사람 행동만 보고 판단하면 돼요.

사업을 해보니 그래요. 성공이라는 결과를 봤을 때, 내가 공헌하는 것은 일부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사회가 내게 허락해준 것이더라고요. 그런 성공의 결과는 100% 내 것이 아니에요. 그것을 독식하는 것은 천민자본주의죠.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약탈하고, 그런 식으로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겠다는 생각이 지배하고 있잖아요. 그게 제 생각의 출발이었어요.

사업하면서 느낀 거예요. 책에서 관념으로 배웠다면 몰랐을 거예요. 제가 10년 전에 낸 <영혼이 있는 승부>라는 책이 있는데, 그 책을 보면 떳떳한 게 그때나 지금이나 내 생각은 별로 바뀐 게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다른 교수에게 바뀐 게 없다고 자랑했더니 그 분이 저더러 ‘발전성 없는 사람’이라고 하시더라고요.

100년 이상 된 외국의 존경받는 기업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어요. 그 기업이 가진 핵심적인 가치와 가치판단 기준은 전혀 변하지 않았더라고요.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대응방식은 바뀔 수 있지만 가치관을 바꾸는 것은 영혼을 파는 것과 같다고 봐요.

삶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죠. 내가 죽은 뒤에도 나로 인해 사람들의 생각이 좋은 쪽으로 바뀌어 있거나, 내 책이 그때까지 남아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거나, 내가 만든 회사가 함께 사는 사회에 기여하는 존재가 되는 거죠. 나로 인해 어떤 제도가 생겨서 사람들이 혜택을 받고 있다면 그것 역시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이죠.

한마디로 하기는 힘들겠지만 우선 우리가 받는 교육에서 보면 문제풀이 위주에 익숙해 있잖아요. 외국대학 교수님들도 그래요. 한국 학생들이 문제는 기가 막히게 푸는데 주제와 관련해 궁금한 점이 있느냐고 물어보면 완전히 막힌대요. 좋은 질문은 하지 못하는 거죠. 시대의 아이콘인 애플의 핵심은 창의성, 융합성이에요. 내가 모르지만 다른 분야도 나만큼 값어치 있다는 그 인식이 융합의 출발이죠.

스티브 잡스도 탁월한 사람이지만, 전 스티브 잡스를 있게 한 실리콘밸리가 더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사회적 구조가 그들이 성공하게 만들었다는 거죠. 한 번 실패를 해도 다시 기회를 주거든요. 실패를 사회적 자산으로 삼는 것이 미국의 구조죠. 만약 잡스가 우리나라에서 실패했다면 그걸로 끝났을 거예요. 잡스나 마크 저커버그, 빌 게이츠 모두 대학 중퇴자인데 이들이 설 수 있었던 것은 학벌이 아니라 재능을 봤기 때문이에요.

예전에 도쿄대 강상중 교수님이 고민은 축복이라고 했는데 그 말이 처음엔 이해가 안됐어요. 그런데 제가 의대 교수를 그만두고 벤처기업을 창업할 때 하루종일, 6개월 내내 고민했어요. 고민이 괴롭다가 나중엔 고맙더라고요. 고민을 하면 처음엔 아무 답도 없는데, 차츰 답이 보이고 마음이 정리돼요. 자기 인생에서 어떤 게 중요하고 자기가 뭘 원하는지 알 수 있게 되거든요. 그걸 알아야 사람은 행복해질 수 있어요.

내가 매번 학기 때마다 학생들에게 들려주는 조언이 있어요. 공통적인 것을 묶어보면 우선은 첫인상보다 마지막 인상이 중요하다는 거예요. 또 하나는, 실수는 당연하다는 점이에요. 강물이 얼마나 빨리 흐르는지 아는 방법은 뛰어드는 수밖에 없어요. 계획이 아니라 가슴이 따라가는 대로 하면 그게 다 이어지고, 실패 경험조차도 자신의 인생을 지탱하고 만들어준다고 봐요.

지금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은 해야죠. 지금도 계속되는 대기업·중소기업 간 불공정 관행은 해결해야 해요. 현행법 안에서라도 정확하고 공정한 잣대로 견제를 할 수 있다면 사실 문제는 많이 희석될 수 있거든요. 이걸 집행할 의지가 없고 실행할 능력이 없어서죠. 많은 관료가 퇴임 후 삼성 같은 기업이나 김앤장으로 가는 게 일반화돼 있어요. 관료라면 국가·사회를 위해 봉사해야 하는데, 나중에 평생을 보장해주는 기업 편에 서지 않겠어요? 룰과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으니 문제죠. 정부는 약탈행위를 방조하고 있었잖아요. "




음, 가치관에대한 대목은 debatable 한 듯 싶다. 가치관을 바꾼다는 것.. 방향에 따라 필요하지도 않나 싶다, 시작의 방향이 긍정적이었을 경우 가치관을 굽히며 수긍한다는 것은 좋을 것이 없겠지만 반대의 경우 역일테니.
사회에 관한 관점은 상당히 옳다고 본다. 나의 업적은 사회가 나에게 허용한 범위라는 것 - 시스템 적으로 한 사람의 범위의 틀이 정해진다는 것, 아쉽지만서도 현재 시대의 아니, 모든 시대의 구조이다. 또한 한 사람으로써 사회에 기여한다는 마인드는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을 넘어선 사회적 관점으로, 나보다 넓은 범위에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을 염두에 두고 생활하고 살아간다는 것은 나에게도 사회에도 인류에게도 중요하다.
또한 사람으로써 실수의 당연함, 도전의 용기, 말의 무의미함, 행동의 중요성, 마지막 인상의 중요성 등 - 보편적으로 옳은 관점을 보여준다.




안철수연구소 창립 10주년을 맞이하며... (2005)

오랜 산고를 겪고 세상에 태어난 안철수연구소가 이제 열 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기업의 5년 생존확률이 10% 정도이니 10년 생존확률은 1%일 테고, 벤처기업의 생존확률을 일반기업의 1/10 이하라고 본다면 0.1%도 안 되는 확률을 뚫고 살아남은 셈입니다. 안철수연구소가 이렇게 살아남고 자리 잡기까지는 저와 저희 임직원들의 노력뿐만 아니라 저희를 지켜보고 격려해주신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하며, 이 자리를 빌어서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10년 전 창업을 하면서 기업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 나름대로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의사이자 프로그래머로서 혼자 전문 분야의 일을 하는 것에는 익숙했지만 조직이나 경영에 대해서는 완벽한 문외한이었기 때문에, 제가 시작하려는 일에 대해서 저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하고 의미부여를 하지 않으면 일을 시작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기업이 가지는 가장 기본적인 기능은 소속된 구성원들이 생활을 영위하고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장으로서의 역할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프리랜서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모여서 기업이나 조직을 이루어 일하는 진정한 의미는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의미 있는 일을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이루어가는 것’이라고 나름대로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창업을 하면서 ‘기업의 목적은 수익창출’이라는 명제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었습니다. 기업이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먼저 고객들로부터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물건이나 서비스를 만든 다음에 그것을 판매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생각해본다면 수익이란 목적이라기보다는 결과에 해당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히려 수익창출이 목적이 되다보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려고 하면서 사회적으로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는 모습을 우리는 많이 보아 왔습니다. 어쩌면 인간사의 많은 갈등들은 목적과 결과의 혼동에서 빚어지는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는 ‘기업에서의 수익창출은 결과’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본질과 과정에 충실하다면 결과는 따라오는 것이라는 믿음과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합니다.

안철수연구소를 경영하면서 지난 10년간 세 가지를 이루고자 노력해왔습니다. 첫 번째로 한국에서도 소프트웨어 사업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는 워킹 모델(working model)을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지식정보의 가치가 인정받지 못하고 왜곡된 시장구조의 척박한 토양 하에서도 다음 세대를 위한 한 가닥 희망의 빛이라도 남겨놓고 싶었습니다. 두 번째로 현재 한국의 경제 구조 하에서 정직하게 사업을 하더라도 자리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보고자 노력해왔습니다. 투명경영, 윤리경영이 장기적으로 더 큰 힘이 되는 사례를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세 번째로 공익과 이윤추구가 서로 상반된 것이 아니라, 양립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이 세 가지가 안철수연구소 구성원 모두가 이 땅에서 숨쉬고 살아가면서 스스로 인식하고 노력해온 ‘존재 의미’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는 CEO로서 지난 10년간을 절벽을 올라가는 등반가의 심정으로 살아왔습니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까마득하고 무섭지만, 위를 올려다보면 구름에 가려서 정상이 어디쯤인지 짐작도 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힘이 빠지면 떨어져 죽는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매일 스스로에게 던졌던 두 가지 질문이 있었습니다. “우리 회사가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리고 “내가 이 조직에 적합한 사람인가?”가 그것입니다. 여기서 두 번째 질문은 다시 두 가지 질문으로 나눌 수 있겠습니다. 즉, “내게 지금의 회사를 더 발전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와 “내 에너지를 120% 쏟을 수 있는가?”였습니다. 등반가의 심정으로 끊임없이 자기 검증을 하면서 10년을 보낸 셈입니다.

이제 창립 10주년을 맞이하면서 저는 CEO 자리에서 물러나고자 합니다.

지난 3년간 저희 회사에서 COO로서 능력을 검증받은 부사장에게 CEO를 넘겨주고, 저는 ‘이사회 의장’으로서 새롭게 역할을 다하고자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일반적인 통념상의 직접 경영에 관여하는 회장이 아니라, 신임 CEO가 경영의 권한과 책임을 가지고, 저는 본연의 의미에서의 이사회 의장으로서 주주 모두를 위한 좋은 지배구조를 만들고 큰 방향을 제시하는 일을 하고자 합니다.

저는 작년 초에 물러날 결심을 한 후, 지난 일년 동안 이 결심을 제 가슴속에 담아두고 차분하게 준비를 해나갔습니다. 작년 초부터는 회사 운영의 더 많은 부분을 COO인 부사장에게 위임하고, 저는 큰 방향을 잡아나가면서 회사에 필요한 대외 활동을 하는 역할 분담을 해나갔습니다. 지난 해 거둔 사상 최대이자 국내 소프트웨어 업계 최초의 의미 있는 성과도 이러한 역할 분담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결과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올해도 다시 사상 최대의 실적을 이어갈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진 상태에서 다음 주자에게 CEO 자리를 물려줄 수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도 기쁩니다. 또한 CEO로서 살아왔던 지난 10년간의 경험과 생각들을 정리하면서 책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제가 어떤 일을 마무리할 때나 특별한 계기가 있을 때는 그 때까지 배운 것들을 정리해서 책을 써왔습니다. 안철수연구소를 창업하기 직전에 그 전까지 7년간 백신 프로그램을 만들고 무료 배포했던 생각들을 토대로 ‘별난 컴퓨터 의사’를 썼고, 안철수연구소의 창업부터 코스닥에 등록되기 직전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영혼이 있는 승부’를 썼습니다. 최근에 발간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을 쓴 이유도 CEO를 마무리하면서 직원들과 젊은 세대들에게 제가 치열하게 고민했던 편린들을 들려주고 시행착오를 줄이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사회 의장으로서의 임무에 충실하면서, 앞으로 2년 정도의 계획으로 다시 공부를 시작하고 싶습니다. CEO 자리를 넘기는 것도 아직까지 끝나지 않은, 공부에 대한 욕심 때문입니다. 저도 몇 년 만 지나면 노안(老眼) 때문에 돋보기가 필요하게 될 텐데, 그 전에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대학원에 들어가서 학생으로서 열심히 공부할 생각입니다. 이제 다시 옛날 책들을 꺼내놓고 시험공부를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공부를 끝낸 후의 계획은 세워놓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의 의학, BT, IT, 경영 등의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몇 년 동안 열심히 공부를 한다면, 공부를 마친 후에는 그 때의 상황에 적합한 일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안철수연구소로 다시 복귀할 수도 있겠으며, 만약에 받아주시는 곳이 있다면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도 보람 있는 일일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새로운 분야의 도전에 나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http://people.search.naver.com/search.naver?sm=tab_txc&where=people_profile&ie=utf8&query=%EC%95%88%EC%B2%A0%EC%88%98&os=162672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4282131525&code=210000&s_code=af090
http://www.ahnlab.com/kr/site/main/main.do 



Posted by water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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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dplay everything is not lost, (hidden track) life is for living


9월 말에 학기가 시작하고 한 달이 훅 지났구나. 특별히 바쁜 일도 없었지만 자전거에, 학교에, 생활 동선 등에 익숙해지느라 분주하게 지났다. 그 만큼 글을 읽음도 적음도, 여유가 없는 시월이었다. 생활적인 것들에 더하여 정신적으로도 틈이 없었다. Seattle 이라는 곳에 묻혀있으면서 많은 실망을 느꼈다.
학교라는 범위 내에서 세부적으로 나뉘는 부분들을 보면, 강의, 시설, 시설유지, 네트워크 - 가 눈에 띄었다.
일단 강의 학생 인원은 강사와 TA 인원에 비해 많다. 특별히 심하지는 않지만 효과적이지 않다. 강의 자체를 보자면, 수업의 부분들을 온라인 퀴즈, 자료 등으로 돌리는 것 또한 비효과적이다. 물론 수업 시간이 부족하니 그럴 수 밖에 없다. 진도 범위에 비해 수업 시간은 너무 적다. 이것이 학생대 강사 비율보다 심각하지 않나 싶다. 강의 내용만으로는 교과과정의 수박 겉핥기도 되지 않는다. 물론 대학생으로써 어느 정도 독학이 가능하기 때문에 강의의 진도는 큰 틀을 잡아주는 역할이라 하더라도 참으로 슬픈 현실이다. 사회의 배움의 장이고 지식에 대한 호기심이 가장 밀집되는 대학교라는 곳의 역할이 결국 졸업장이더라. 교과서 읽기를 과제로 제시하지만 배움의 깊이는 찾기 어렵다. 그러한 호기심은 사회적, 수강생들의 집단적 단위라기보다 개인적 단위로 교수와 개인적인 단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사회의 현실.
시설, 사실 시설이 좋은 것은 좋지만 특별히 나쁘지 않고서는 불만스럽지 않다. 전반적으로 화려한 시설을 갖춘 곳이 있자면 대부분 준수한 시설이다. 불만족스러운 점이라면 시설의 유지. 오래되고 많이 사용된 시설일 수록 손길과 관찰이 필요한 것인데 오히려 신립 시설에 보다 많은 투자를하는 것 같다. 청소가 가장 심각한 부분이다. 학부생도서관은 학부생도서관이니 만큼 이용인구와 빈도가 높으며, 유일한 24시간 도서관이기도 하여 더불어 사용도가 높다. 그러한 곳의 관리와 청소는 터무니 없다. 먼지와 머리카락을 볼 수 없는 곳이 없으며 화장실은 전쟁터인 듯 더럽다. 지지난 주는 환풍시설이 고장나 도서관 한 가운데에서 대형 선풍기를 돌리는 등 굉장한 소음과 불편이 있었다. 환풍시설의 수리도 처음 수리되기로 한 날짜에서 몇 일이 지나고서도 수리가 진행되었다.
학생수가 많기도하고 학교 자체가 크다 - 하나의 도시라고도 할 만큼. 학교를 위한 power plant 도 있을 정도니 규모가 결코 작지 않다. 그 만큼 네트워크 사용 숫자도 굉장하다. 하지만 이 숫자를 학교의 시스템은 감당 할 수 없다는 것. 평일 오후 학교 컴퓨터에 접속하려면 한 번에 연결되는 경우가 오히려 드믈다. 인원수를 감당치 못하는 네트워크는 오류 메세지를 던질 뿐. 이러한 문제점을 염두에도 두고 있지 않는 것 같다.
학교의 긍정적인 점들도 물론 없지 않다. 인원이 많은 것은 오히려 장점이다. 학교의 구조와 정책들이 그것을 감당 할 수 없을 뿐. 인원이 많음은 그 만큼의 다양성을 체험 할 수 있는 현장이된다. 그것은 몇 분야 뿐 아닌 다 방면의 다 방면을 체험 할 수 있게하니 체험 가능 경험의 숫자는 exponential 하다. 학교 뿐 아니라 지역적으로 번화한 곳에 학교가 있다는 것은 편리하기도하고 그 만큼 재미도 있다. 생활에 다양성이 있으며 여기저기 방문하고 즐길 수 있는 문화적 요소들이 많다.
녹화되는 강의도 좋다. 물론 적은 수업시간 및 강사비율에서 비롯된 노력이겠고, 보다 효과적인 배움방법들이 있겠지만 유용하다.
이러한 세부적인 실망과 만족 속에서 느낀 것은 - 전체적 시스템은 equilibrium 이 아닌 negative 라는 것. 과학에서 배우는 movement towards balance, applying relative extremes as means of activation, ultimate equality 따위는 사회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social net balance is in the negatives, in fact deep negatives.
대화 중, 내가 대학교에서 대학원 수준의 배움을 바라는 것이라고 하더라, 왜 그러한 수준의 배움을 대학교에서는 바랄 수 없는 것인지 이해 할 수 없다. 이해하자면, 사회적 수준이 나의 예상 이하라는 것 외에는 답이 나오지 않느다. 그러하다고 내가 평균 이상의 수준인 것은 아닐 것이다, 나 이외의 세상에게 바라는 점이 전적으로 나 자신의 능력에 기준하지는 않을테니.
다수의 인구가 만족을 가지고 생활하는 이유는 사람의 욕심이 끝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람의 욕심이라는 것이 존재하야 그것을 기반한 시스템을 만들었고 그로 인한 불합리에 불만을 가지는 것이 아닐까. 만족 할 수 있는 기준의 시스템을 가진 사회구조에서도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게 살아갈까? 분명 세상에 규율과 세스템, 국가단위로 분류되지 않은 곳은 없지만 지역마다 다른 시스템 아래 다른 만족도를 가지고 사람들이 살아간다. 사람의 편안함은 기준적으로 균형이 있을때에 존재하고 그것을 주지 못하는 사회가 문제이다. 안철수의 인터뷰 중에서도 본인의 성공은 본인의 몫이기도하지만 사회가 줄 수 있는 분량이라던 - 말이 기억난다. 사람의 안락의, 생활의 범위를 정하는 것은 결국 환경이라는 것. 하지만 내가 지금 속해있는 사회는 긍정과 부정의 불균형 - 따라서 나는 편안하지 않다.
사회적인 생활과 개인적인 생활을 격리 할 수는 없지만 보편적으로 각자 본다면, 개인적인 생활은 만족스러운 편이다. 아무래도 친구들과 가족이 있는 시애틀이 나에게는 적합하고 편안하다. 나를 염두에 두는 많은 사람들이 있고 내가 염두에 두고 위할 수 있는 이들이 가까이에 있다. 함께 이야기 할 수 있고 공부 할 수 있는 여럿이 있다는 것은 사회적 불편함을 충분히 넘어서는 만족스러움, 그 이상의 행복함이다.
또한 행복함이라면 학문적 즐거움. 과학을 배울 수록 그 세밀함에 굉장함을 느낀다. 내가 이해 할 수 있는 것들을 훌쩍, exponential 단위로 넘어선 현상 phenomena 들은 경이롭고, 그것을 접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가을의 낙엽들이 아름답고 밤 공기는 적당히 차다. 자전거는 하루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고 즐거움을 전해주고 음악또한 나에게 감동을 준다.
감사하는 많은 것과 실망한 많은 것들을 비교하자면, net 궁극적으로 균형 .. 이라 할 수 있을까? 음, 할 수 있다. 충분히. 오히려 내가 세상에게 빚을 질 정도로 긍정의 무게가 무겁다면 그러 할 것이다. 사회적인, 인류에대한 실망은 굉장하지만, 논리와 자연현상적 원리, 친구들과 가족에대한 감사함, 그들로 부터 받는 편안함, 외에도 음악과 문화 등 감사 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기에, i owe the world my service of doing my best to bring betterness. 우주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봉사하는 마음으로 생활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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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 so beautiful beauty ....





















Oh morning Come bursting The clouds amen Lift off this blindfold, let me see again And bring back the water that your ships rode in In my heart she left a hole The tightrope that I'm walking just sways and ties The devil as he's talking with those angel's eyes And I just want to be there when the lightning strikes And the saints go marching in And sing Slow-owow-owow-owow-it down Through chaos as it swirls It's just us against the world Like a river to a raindrop I lost a friend My drunken has a Daniel in a lion's den And tonight I know it all has to begin again So whatever you do, don't let go And if we could float away Fly up to the surface And just start again And lift off before trouble just erodes us in the rain Just erodes us in the rain Just erodes us, and see roses in the rain Sing Slow-owow-owow-owow-it down Oh, slow-owow-owow-owow-it down Through chaos as it swirls It's us against the world Through chaos as it swirls It's us against the world
 
 
http://www.wikicoldplay.com/Us_Against_The_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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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 things of many things on my mind recently: intelligence and organization

intelligence

"a very general mental capacity that,a mong other things, involves the ability to reason, plan, solve problems,think abstractly, comprehend complex ideas, learn quickly and learn from experience, it is not merely book learing, a narrow academic skill, or test-taking smarts. rather, it reflects a broader and deeper capability for comprehending our surroundings - "catching on," "making sense" of things, or "figuring out" what to do" (mainstream science on intelligence, 1994).

"Individuals differ from one another in their ability to understand complex ideas, to adapt effectively to the environment, to learn from experience, to engage in various forms of reasoning, to overcome obstacles by taking thought. Although these individual differences can be substantial, they are never entirely consistent: a given person's intellectual performance will vary on different occasions, in different domains, as judged by different criteria. Concepts of "intelligence" are attempts to clarify and organize this complex set of phenomena. Although considerable clarity has been achieved in some areas, no such conceptualization has yet answered all the important questions, and none commands universal assent. Indeed, when two dozen prominent theorists were recently asked to define intelligence, they gave two dozen, somewhat different, definitions" (intelligence: known and unknowns, 1995).


none of the definitions seem to help define intelligence in its essence. perhaps its usage in the culture is much to general to be specified.


Cattel Horn Carroll theory (CHC theory)
categorizes "stratum abilities" into ten categories and 70 subcategories.
Ten broad abilities:
1. Fluid Intelligence - reason, form concepts, solve problem using unfamiliar information or novel procedures
2. Crystallized Intelligence - breadth and depth of acquired knowledge, ability to communicate knowledge, ability to reason using learned experiences or procedures
3. Quantitative Reasoning - ability to comprehend quantitative concepts and relationships and to manipulate numerical symbols
4. Reading & Writing Ability
5. Short-Term Memory
6. Long-Term Storage and Retrieval
7. Visual Processing - ability to perceive, analyze, synthesize, and think with visual patterns, store and recall visual representations
8. Auditory Processing - analyze, synthesize, discriminate auditory stimuli, ability to process and discriminate speech sounds that may be presented under distorted conditions
9. Processing Speed - ability to perform automatic cognitive tasks under pressure to maintain focused attention (typically measured in 2 minute intervals)
10. Decision / Reaction Time / Speed - reflect immediacy to stimuli (typically measured in fractions of seconds)

recently thought about relationships between intelligence and width / depth of perception / detail. refering to - noticing details on smaller scales as well as being able to make connections on several levels.
interesting that CHC theory takes notice of disciminating auditory stimuli as one of its ten broad abilities. seems recognizing, remembering, and retrieving visual representation is a commonly mentioned aspect of intelligence, but not so much auditory. likely because more number of people in the population are rather visually abled than auditorily. clarification - more number of people in the population are relatively better visual processors than auditory processors. within the relatively intelligent - if i can label such a group - then within the group more are able to visually process than auditorily process.

expanding on initial thouguhts on intelligence - was curious about relationships between intelligence and organization.


organization
it is depressing to find that googling organization leads to "social group which distributes tasks for a collective goal" on wikipedia.

another odd definition of organization on wiki "act of rearranging elements following one or more rules."
continuing on wiki "anything is commonly considered organized when it looks like everything has a correct order or placement. but it's only ultimately organized if any element has no difference on time taken to find it. in that sense, organizing can also be defined as to place different objects in logical arrangement for better searching."

now organization is described in terms of rates and servicing a purpose of finding - which seems relatable to descriptions of intelligence in a sense of timeliness in retrieval.

사실 intelligence 지능에 대한 포스팅을 쓰고 싶었던 이유는 근래 특정 친구를 만남에서 비롯되었다. 늘 똑똑함에 대한 - 닿을 수 없는 정도에 대한 환상따위를 가지고 있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그 무엇에서보다 정신적 정보 처리 capacity 에서 상당한 매력을 느낀다. 사람이 삶에 있어 똑똑함, 지혜로움으로 생활에 수월함을 가져온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것은 사실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것은 균형이 있고 수월함 만큼이나 어려움은 한 치의, 한 톨의 차이도 없이 같지 않을까 - 나는 모르겠다.

근래 친구를 만나며 드는 생각은 정리하자면 1. intelligence 지능이란 무엇인가 2. 그것이 무엇이건간에 - 그것의 이득은 손해와 양적, 질적으로 어떻게 비교되나.

intelligence 를 정의 할 수는 없다 - 영어에서도 한글에서도 그것은 너무나 넓은 의미를 포함하며 사용되고 있다. 어쩌면 그 만큼 지능적 세밀함이 사회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증거일 것이다. 세밀적으로 분류 할 만큼 그것을 접하지 못하였기에 그것을 위한 설명이 부족한 것이다. 그 만큼 intelligence 는 우리에게 생소한 것이 아닐까.
굳이 정의하자면 분명한 것은 그것은 분명 spectrum 이다. 모두 그 spectrum 에 포함되어있지만 대부분 average 평균에 밀집되어있다. 근래 느끼는 점은 average 와 average 이하의 인구 수가 average 이상의 인구수보다 많다는 것이다. 모든 bell curve 에 outlier 들은 존재하지만 양쪽의 차이가 상당하다는 것.

 normal bell curve


skewed bell curve



bell curve 이미지를 검색하던 와중 흥미로운 글을 발견. 1994년 출판된 The Bell Curve 라는 책에 대한 글. (저자 richard Herrnstein and Charles Murray) 책을 소개하는 글에 따르면 미국사회의 지능에 대한 통계적 수치들을 정리하고 분석한 것. 숫자들을 분석하여 궁극적으로는 사회의 지향방향을 제시하였는데 당시 제법 논쟁거리가 되었던 듯. 그럴만한 것이 그들은 인구의 낮은 지능인구가 사회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들을 직접적으로 서술하였을 분 더러 - 지능이 낮은 인구들을 인종 별로 분류하기도 하였다. 상당히 흥미로와보이는 책이다, 꼭 읽어보고 싶다.

content
Introduction - assuptions about intelligence
part 1 - the cognitive elite
part 2 - iq and social problems
(poverty, schooling, unemployment, idleness and injury, family matters, welfare dependency, parenting, crime, civility and citizenship)
part 3 - iq and race
(ethnic differences in cognitive ability, the demography of intelligence, social behavior and the prevalence of low cognitive ability)
part 4 - iq and social policy
(raising cognitive ability, the leveling of american education, affirmative action in higher education, affirmative action in the workplace, the way we are headed, a place for everyone)
part 4는 바닥 한 번 치고 훈훈하구나


introduction 중
  1. There is such a difference as a general factor of cognitive ability on which human beings differ.
  2. All standardized test of academic aptitude or achievement measure this general factor to some degree, but IQ tests expressly designed for that purpose measure it most accurately.
  3. IQ scores match, to a first degree, whatever it is that people mean when they use the word intelligent, or smart in ordinary language.
  4. IQ scores are stable, although not perfectly so, over much of a person's life.
  5. Properly administered IQ tests are not demonstrably biased against social, economic, ethnic, or racial groups.
  6. Cognitive ability is substantially heritable, apparently no less than 40 percent and no more than 80 percent.

The authors state that their main motive is, " the quest for human dignity." (p. 551). Their concluding paragraph seems to support this motive:

"Inequality of endowments, including intelligence, is a reality. Trying to pretend that inequality does not really exist has led to disaster. Trying to eradicate inequality with artificially manufactured outcomes has led to disaster. It is time for America once again to try living with inequality, as life is lived: understanding that each human being has strengths and weaknesses, qualities we admire and qualities we do not admire, competencies and incompetencies, assets and debits; that the success of each human life is not measured externally but internally; that all of the rewards we can confer on each other, the most precious is a place as a valued fellow citizen." (pp 551-552)


분명 지능적으로 우월한 인구가 있고 그렇지 않은 인구가 있다. 책의 주장은 - iq 를 잣대삼아 높은 지능이 높지 않은 지능보다 사회적 이득임을 전재하에, 인구를 높은 지능으로 이끌어 갈 수 있도록 정치적 방향과 방법들을 제시한 것.

과연 높은 지능은 높지 않은 지능보다 '좋은' 것일까. 개인적으로 흔히 말하는 '지능', 세분화하자면: 판단력, 분별력, 기억력, 사고능력, 세밀함, 정리력, 정보 처리 능력, - 그리고 이러한 사고적 운동을 진행하는 속도가 빠른, 사람을 선호하고 나 자신이 그러하기를 지향하는 바이다. 하지만 사회는 특별히 그러하지 않은 것 같다. 분명 사회는 머리가 좋은 사람들을 바라지만 그것은 개인적 이득, 흔히 금전적 이득을 위한 것이지, 사회라던가 인류의 방향에 대해 관심을 두는 인구는 비교적 상당히 적다 - 여기에서도 skewed curve를 찾을 수 있다.

세상의, 사회의 기준은 낮다. 이것은 사실이다 - 인간이 지향 할 수 있는 theoretically possible standard 에 비하여 현실의 기준은 상당히 낮다, 서글프도 터무니 없을 정도로. 그 이유의 상당부분은 지능이라고 생각된다. 넓은, 먼 시간을 염두에 두지 못하는 mental capacity 의 차이 때문이지 않을까. 인류는 해야 할 일이 많다. 아무리 과학적으로 발전하였다고 해도 새 발의 피라기보다 제로 0 에 가깝지 않을까. 인구의 대부분은 논리가 아닌 코 앞의 돈에 목숨을 걸고 있고 그렇게 하루살이들처럼 인류는 번식하며 참으로 불필요한 방향에 에너지를 소모, 낭비하고있다.

친구의 생각을 대변 할 수 없지만, 자본주의에 사회가 기반한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 누군가 이득을 보아야 돌아가는 시스템에서 공존과 공동 움직임은 일어날 수 없다는 것. 정신적 의지를 둘 곳을 두는 것은 나쁘지 않지만 종교라는 집단 지배 시스템을 견딜 수 없다는 것. 더불어 그 집단은 논리 없는, 수용없는 blind 믿음에 기반한다는 것에 반감을 표현했다.
man 이 일어나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움직이기를 바랬으며, 인류는 바닥을 향해 상당히 높은 velocity 로 떨어지고 있고, 그것을 바라보는 입장에서 cynical 하지 않을 수 없으며, hope 은 없다고 하였다. 그렇게 그는 인류의 현명치 못함을 한탄했다.

outlier 의 정의 자체가 보여주듯이 그들은 다수의 밖, 인 소수이다. 세상이 outlier 에 비하여 지능이 낮다고하여, 다수는 소수를 따라야하는가? 그것은 잘못된 질문이다. 이것은 다수와 소수에 관한, quantitative 한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good and bad 긍정과 부정의 스펙트럼의 개념이다. 인류는 부정의 방향을 지향하고있고,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은 그 만큼의 net mental capacity 부족하기 때문이다. 다수가 옳지 않은 기준을 가지고 옳지 않은 방향으로 향하는 와중에도 다수라는 이유로 옳지 않은 기준과 방향에 전체가 맞추어 normalize 하는 것은 어이없는 논리 - 아니 논리가 아니다.

근래 느끼는 점 한 가지 꺼내자면 - 미국에 살 수록,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굉장한 실망감을 느낀다. 미국, 한국, 특정한 나라로써 개념을 이해하는 것은 터무니 없는, 상당히 nationalistic 국가주의적인 개념 (근래 느끼는 또 다른 점이다, 얼마나 사람들의 사고가 국가주의 적인지 ..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쓰기로하자,) 이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미국의 기준은 상당히 낮다. 미국이 생산 제품들, 서비스, 음식, 교육 - 그들의 평균적 생활의 모든 기준이 낮다는 것이다. 강의실대 교수의 비율, 교과 범위와 수업시간 비율은 터무니 없고, 학교의 시설들 또한 마찬가지인 경우가 많다. 긍정적인 부분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상당 부분의 교과과정 진행이 온라인 과제로 진행되는 점 또한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아쉽다. 배움, 교육의 공간이라기보다 점수습득의 공간이다. 이것이 오늘의 사회이고 다수가 그것을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인다.
내가 '쉽게 실망한다' 라고들 한다. 하지만 실망하지 않는 것을 나는 이해 할 수 없다. 터무니 없는 대접을 받았을때에 그것에 수긍하는 것, 은 또 하나의 터무니 없는 일일 것이다. 그 만큼 평균적인구는 사회의, 세상의 높지 않은 기준에 익숙하다는 것이다. i had higher expectations for humanity - 라 느끼는 인구 또한 소수인 skewed bell curve 일까.
이에 연장선으로 - 나는 그 동안 다른 별에서 살았는가? 나는 왜 세상의 낮은 기준을 이제야 인지하는가 - 에 대한 생각을 근래 해본다. 참으로 편하게 살지 않았나 싶다. 가정적으로 교육환경적으로 생활환경적으로 부모님의 기준이 나의 기준이 되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국립학교들도 다녔지만 평균 이하의 환경을 접해본 적은 없지싶다. 뿐만 아니라 책, 글, 영상, 등 - 늘 읽고싶은 것 보고싶은 것 나의 기준에 맞다 싶은, 싫은 것은 철저히 배재하는 생활을 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조금이라도 싫으면 바로 놓고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이 나의 성격이다. 미련이 없달까, 여러 이유로 '싫어'하여 쉽게 버리고 떠난 것이 상당히 많다.
실망감 속에서, 이러한 낮은 기준을 수긍 accept 해야하는가? 친구가 인류의 방향에 대해 한탄하야 내가 물은 질문은 is that acceptable? 이였고 대답은 빠르고 확고한 NO 였다. 받아들일 수 없다 - unacceptable 안된다. 이러한 기준들은 받아들일 수 없다, 방향을 틀어야한다. 하지만 그것의 실현 가능성이 있는가? 없다, 제로 zero 0. 희망은 없다 hopelessness. 몇 일 전 그는 이러한 희망의 부재에 죽고싶었지만 그러기에는 자신의 논리가 허용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않을 것이라 하더라, 하 재미있는 녀석이다. 와중, 그는 답 없는 질문을 하였다, 해결책을 달라고. 희망 없는, motivation 동기 없는 생활에 대한 해결책을 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친구의 생활을 보면 바꿀 수 있는 것이 없다 - 아니 바꿀 수 있는 것이야 많지만 그래야 할 이유가 없다. 일, 공부, 음악, 등 상당 부분이 필요에 의한 취미들이고 궁극적으로 실용적인 것들이다. 하야, 나는 바꿀 수 있는 것이 없다하였고 친구는 아인슈타인이 말하였듯이 같은 실험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바랄 수 없다더라. 하지만 상황은 바뀔 수 없다 - 녀석의 일상은 같을 것이고 사회의 기준은 반짝하며 변하지 않을 것이며 녀석은 평생 인류에게 희망을 걸 수 있는 순간을 찾지 못 할 것이다. 


희망은 없다. 이러한 스케일 scale 의 관점에서, 이러한 scale 의 변화를 바란다는 것은 불가능 zero 0 에 가까울뿐더러 zero 자체이다. 그래도, 어쩌면 슬프게도 우리는 coexist 해야한다, 지능적 spectrum 의 어디에 앉아있다고 하더라도 - 우리는 모두 지구라는 행성에 묶여있다. 이 행성 모든 곳이 tainted 되었고 어느 사람 하나 국가, 자본, 권력, 지배, 시스템에 포함되지 않는 이가 없다. 아쉽게도 그것들이 이 행성을 정리하는 기준들이고, 나는 우리는 이 오염된 행성에서 지속해야한다, 죽음이라는 방법 외에는 - 떠날 수 없다.

'똑똑함'은 늘 개인적으로 중요한 인격 중 하나였고 지금도 그러하다. 근래 새로이 느끼는 점 하나라면 외로움은 인격과 무관하다는 것. 똑똑하다면 - 상황적 판단력과, 전체적 논리, 인지력, 분별력이 뛰어나다면 외로움도 덜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사람의 외로움은, 더 할 수도 덜 할 수도 없나보다 - 라는 생각이 든다. 더불어, 그러한 지능적 능력에 따르는 부정적인 어려움의 크기는 과연 얼만큼일까? 어려움 또한 현명함으로 포용하면 비교적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의구심이 조금씩 들기 시작한다.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느끼는 것, - 인지 범위가 넓은 만큼 받아들일 수 없는 기준의 많은 것들을 수긍해야 할텐데 얼마나 괴롭고 불편할까? 아, 안타깝다.

human dignity 인류 존엄 - 에 기여하고싶다.




should read better sources ha
http://alisina.org/einstein-and-islam/
http://www.indiana.edu/~intell/bellcurve.shtml
http://onlinestatbook.com/chapter1/distributions.html
http://en.wikipedia.org/wiki/Cattell-Horn-Carroll_theory
http://en.wikipedia.org/wiki/Intellig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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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공연 관람을 한 금요일 밤. 공연 단체는 Saint Genet, 이번 공연이 처음이라고 한다. 본 날 부터 4 주 동안 금요일마다 시애틀 곳곳에서 performace가 예정되어있음. 내가 본 공연은 첫 performace 로 First Conversion: Aphoria. 위치는 Seattle Internationla District. 첫 (본) 공연은 18세 이상 관람 가능 - 이 후 공연들은 전체 관람가능. King County 에서 후원을 받았다고 한다. 전체적 주도는 감독 Kate Ryan 이외 collaborators 가 30명 정도.
Implied Violence 라는 이름으로 사람의 한계, 악의 원천, 추악함의 수긍 - 이러한 방향으로 만들어진 performance. 단체의 이름인 Saint Genet 는 Jean Paul Sartre 작의 책으로 - Jean Genet 에 관한 책이다. 읽지는 않았지만 Sartre 의 Genet 에 관한 의, 혹은 정은 특별했던 것 같다. Jean Genet 는 입양아로 자라 후에 매춘, 절도 등으로 감옥에 수 차례 지내며 - 궁극적으로 평생 감옥형을 받았는데 Picasso 를 비롯하여 사르트르 Sartre 는 프랑스 정부에 Genet 의 자유를 요구하였고 Genet 는 자유를 얻기도 했다고 한다. 시인, 작가, 아티스트로써 Jean Genet 은 절도에 관한, 더러움, 인간의 궁극에 대해 업적을 남김.
Sartre 에 대해서라면 Nausea 구토를 이년 전 구입하였는데, 읽는 동안 악몽을 꾸는지라 끝내지 못 한 책이다. 악몽을 주는 책은 평생 두권이었는데 구토와 무라카미 류의 한없이 투명한 블루. 공연을 보기 전에 구토를 일부 다시 읽었는데 확실히 쏟은 느낌의 글이다 - 아져야만 하는 폭포처럼 쏟아지는 글이랄까. 글을 쓰지 않으면 안되는 이의 글의 느낌. 생각보다 많은 작가들에게서 이러한 느낌을 종종 받는다. 무튼 나에게 사르트르는 악몽을 주는 글을 쏟은, 그러한 작가.



프로그램의 일부:


"악은 타협하지 않는다."



또한 프로그램의 일부 중 "Being nothing Saing Genet posses nothing, while secretly pursuing the the emanate possession of everything. Saint Genet is the truth of the blood - marriage between our patriarchal, existential mind, and our maternal, essential ever breaking heart. Both Satan and pestilence. Preferring nothingness to being, tension to enjoyment, substance and will, soul and consciousness, magic and freedom, concept and judgment collide, gnash, beat upon, and scream out again and again our dursed black history. We steal everywhere against everyone, no one is spared."
해석치는 않겠지만 본 단체가 추구하는 방향을 표현 한 단락이다. 아무것도 추구하지 않으며 모든 것을 의식에 담고있는, 존재와 허상, 아름다움 추악함 - 등을 가장 염두에 둔 듯. 아무래도 Genet 와 Sartre 를 중심으로 구성된 것을 봄으로써도 알 수 있듯이 존재론적인 철학이 큰 것 같다.
이와 같은 사상들을 형상적으로 - Aesthetic 미적으로 표현한 데에 중점을 둔 듯 싶다. 역사적 인물들과 사건들은 그들의 연관성을 염두에 두고 움직임으로, 이미지로 표현한 performace 라고 정리하면 요약이랄까 -



4가지 이치(?) 어떻게 해석해야하지.. 무튼 Maxim 은 잡지이름만이 아니라는 하하




일찍 도착하여 아직 사람들이 없다. 촛불들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Ryan - performance 의 전체적 담당자이다. 극 중 나레이션, 연기, 등 끊임없이 참여한다. performance 가 시작하는 시간은 9시, 갤러리는 6시에 열었는데 - 갤러리가 연 후 부터 계속 저렇게 앉아있었다고 한다. 프로그램에 쓰인 글 중 "... ritualistric process of leeching, burning, drinking and urinating." 해석하자면 - '거머리ing, 태움, 마심과 배뇨 의식적인 과정' 정도로 해석 가능..... 앉아서 팔에 거머리를 붙이고 피를 흘리고 있다. 촛불을 손으로 만지면서 손을 그을리고, 끊임 없이 수 병의 와인을 마시며, 통에 배뇨도 한다. 그러면서 6시부터 앉아있었다는 것이다. 음 - 이 정도면 전반적 분위기를 알 수 있지 않은가.




performers - 전체적으로 흰 의상들을 입고있으며, 금박지, 동물창자, 레이스 조각, 피부에는 문신과 같은 그림들 등을 입고 있음. 비교적 평범한 드레스를 입은 - 춤이라기보다 풍선을 불어주고 다른 역할을 하는 역들도 있음.




움직임들은 발레 위주였는데 대부분 perfromer 들은 발레 슈즈를 신고 있었다. 프로그램 중의 움직임에 대한 설명을 읽자면:
"Modes of Being & Movement: Trangible sets of movement related to homogeneous hypnotic cycles revealing impossible Poetic Images and Actions in both actual and dramatic time utilizing balletic training with literal and references, and the development of actions through the actors body with hysteric actions achieving the sublime."
팔을 끊임 없이 앞 뒤로 움직이는, 고개를 기울고 엉덩이를 들고 걷는, 등 기이한 자세들 - 자연스럽지만은 않은 자세들이 대부분. 내가 가장 좋아했던 performer 는 아래 사진의 왼 쪽 - 움직임이 상당히 유연하고 자연스러웠으며, 아름다운 근육을 가지고 있었다, 반했다. 누구인지 찾고 싶지만 유명한 사람은 아닌지라 찾기가 쉽지 않다 - 아쉽다. 사진에 특별히 보이지 않지만 왼쪽 performer 는 등에 창자같은 얇은 피부를 걸치고 있다.





나레이션 읽듯 한 곳에 서 있던 감독이 위치를 옮기어 꿀을 팔에 흘리고 있다. 보이다 싶이 주요 빛을 나의 정면에서 비춰지던 조명이다. 쏟아지는 꿀에 반사된 빛이 아름다웠는데 사진에는 잡히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어두워서 사진들이 너무 별로이다 - 많이 아쉽다. 상당히 고급스럽고 깔끔하면서도 몽환적인 공간이었는데 말이다.



이외에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역사적 상징이 많았다 - 공부 했다면 더 재미있었을텐데. 친구 말로는, 그리고 프로그램 상으로는 The Manson Trials, Genet's biography, Jones Tragedy 에 관한 은유, 상징들이 포함되어있다고 한다.


18금이었던 것이 - 술도 판매하고, 성기노출, 직접적인 성적표현, 피의 사용, 흡연, 등 때문이었던 것 같다. 예술적 성기노출은 영화들을 제외하고 이번이 두번째인데 첫 경험에 비해서 상당히 편하게 받아들여졌다. 처음 접했던 것은 New York 의 Museum of Modern Art (MoMA) 에서 나체인 성인 남 여 모델이 서로를 마주하고 1m 간격을 두고 서있고 관객들이 그 사이를 걸어가는 전시였다. 이외에도 자해 비디오, 칼 날로 만들어진 사다리 등 고통스러운 방향의 전시였는데 아쉽게도 아티스트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튼 본 공연에서는 성기를 노출한 perfromer 가 걸어 움직이는 장면들, 그리고 performer 가 성기를 어떠한 통에 넣고 다른 performer 가 그 통을 입에 물고 움직이는 장면이 있었다. 이상했지만 뉴욕에서의 징그럽다라는 겁(?) 은 들지 않았다. 내가 나체 사이를 걸어가는 것 처럼 체험적이 아닌 관람적인 입장이여서였을까.

인상적이었던 것이라면 상당히 많은, 그리고 추상적인 것들을 표현하려 한 것이 어쩌면 조잡스럽거나 너무 - 그야말로 추상적이어서 허무 할 수가 있는데 그러지 않았다는 것. 일단 역사적 사건들 그리고 인물들에 대한 이해가 충분했던 것 같고, 전체적인 공간적 / 움직임의 표현이 깔끔하고 고급스러웠다. 추상적이고 tangible 하지 않았지만 분명히 아름다움을 크게 염두에 둔 인상을 받았다. 더불어 performer 들의 연습과 노력이 그야말로 쉽게 보이는, impressive 한 수준의 공연이었다. 무엇을 표현하건 그것이 깔끔하고, 전달되는 감각이 고급스럽고, 확실한 이해/철학이 있고, 전체적 흐름이 있어야 하지 좋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상당히는 아니지만 기대 이상, 어느 정도 흐믓한 만족.


단체는 아무도, 아무 것도 없는 외각진 곳에서 몇 시간동안 뛴다거나 극적인 행위적 체험으로 훈련했다고 한다. 그 중 많은 아이디어와 연출이 구성되지 않았나 싶다. 오랜만에 존재론적인 문화경험을 하니 그리 나쁘지 않은 것 같다 - 고등학교 때는 참으로 즐겼는데, 언제부터인가 편한 것이 편하더니, 이제는 둘 다 나쁘지 않다. 범위가 넓어진 것일까 하하.

여름방학의 끝이 다가오고있다 - 알차게 보내고 있는 것 같아 좋다! 초대 해 준 친구에게 감사하고 나의 여름은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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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ttle 에서 I 90 east - exit 80
Head north on Salmon la Sac Road (State Route 903)
about 15 miles, passing through Roslyn / past Cle Elum Lake
Turn West (Left) onto Forest Road 46 (이러한 표지판은 없었음, Cooper Lake 표지판을 따라 좌회전하여 다리를 건넘)
crossing Cooper River
continue 1 mile past upper loops of campground to the trailhead

Mount Si 만해도 exit 38 이니까 제법 운전을 해야 한다, 1.7 시간 정도 .. 종일 걸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Issaquah 나서는 속도제한이 70mph 이니 비교적 밟으면 너무 멀지는 않은 거리. 오늘 무려 날씨도 높고 좋았음 - 쏘 굳.



가는 길 중 멈추어 감탄하며 바라 본 Cle Elum Lake


상당히 맑고 투명하다 - 초록빛 환상 !



트레일 자체는 elevation 이 거의 없고 trailhead 에서 Pete Lake 까지 4mile. 전혀 어렵지 않은 코스 - 고도변화가 없으니 풍경변화도 특별히 없고 조금은 지루 할 수 있는 거리. 말이 많이 다니는지 말의 소화된 풀의 흔적이 정말 많았다. Pete Lake 이외에 근처에 호수들이 많으며 물이 상당히 맑음. 목적지도 예뻣지만 가는 길 따라 흐르는 강과 호수들도 굉장한 풍경 - 오히려 강들이 맑고 넓음으로 가는 길 멈추어 한참을 바라보았다. Pete Lake 자체는 수풀들이 오히려 작은 규모.


Pete Lake - 두어시간의 고도 변화 거의 없는 트레일 후의 보상 풍경. 앉아서 가져 온 샌드위치 섭취. 음식 싸 오기를 잘 했다, 특별히 어려운 트레일은 아니지만 출출하달까, 앉아서 시간 보낼 적절한 구실.

 

 


이제 개인적인 이야기 -

이 친구와 함께 야외활동을 하기는 처음 - 친구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 나와 참으로 다른 친구. 다름은 당연히 수용하는 것이지만 부정적인 친구의 말을 오래 듣기는 버거움이 있었다. 특별히 침묵을 어색하거나 꺼리지 않는 나로써는 친구의 이야기들에 실망하여 더 이상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았는데 침묵이 싫다며 녀석은 피곤한 정신과 말을 쉬지 않고 길게 이음. 공공 교육기관에 대해, 사람관계에 대해, 종교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는데 종교 외에는 긍정적인 입장들이 아니었다. 공공 교육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았고 사람관계에 대해서도 자신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사람들을 만나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친구 ... 동의 할 수 없는 나와는 너무 먼 입장들에 - 휴, 이제는 웃음만 나온다. 아무튼 4 mile 이면 특별히 긴 거리도 아닌데 늘어난 거리감의 이유는 대화 때문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주제 중 하나는 나의 직설적 direct 한 성격. 움 ..... 나 자신을 위하야 softer 한 성격을 선택하는 것이 좋을거라던 친구 - 그렇지만 be yourself 라는, 나보고 어쩌라는 .. 크크 의 조언을 해 준 친구. 솔직히 .... 성격개선에 대해 근래 의견들이 다양한데 - 바꿀 수 있는 것이라면, 진심으로 내가 원했다면 바뀌었을 부분인 것 같다. 직설적인 내가 편하다 휴, 앞으로 문제가 되는지 두고 볼 일.

더불어 우리는 참으로 역시나 여전히 어리구나라는 생각 - 이 드는 트레일였다. 굳이 사회, 사람관계, 종교와 같은 무게감있는 주제를 꺼내 뻔한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며, 나와 이렇게나 다른 사람을 처음 만났다는 사실 .. 나이가 들어나, 경험이 많으면 다른 모습의 내가 되는 것일까.

그나저나 풍경은 완벽한 환상이었으며 바라보는 동안만큼은 마냥 행복했고 감사했던 하루였다. 불과 몇 시간 전이지만 돌아보면 웃음이 나는 하루 -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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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도 굳이 후기를 쓰지 않으면 보았다는 사실조차 잊혀지는 영화들이 있다.  일단 후기를 쓸 만큼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것이 대부분, 잊기에는 아쉬우니 적자.

써니 - friends , says it all.
drive - Carrie Mulligan and the guy from Blue Valentine. Beautification of ordinary movements, semi okay sound track. somewhat pretty film - filmed slowly and with intention.
Gerry 
모래시계
Schindler's List 
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 
Pineapple Express - James Camron, funny CA
Painted Veil - Edward Norton healed my soul 
Under the Same Moon
the red violin
sayonara itsuka - lady from tokyo byori, bangkok setting
the ramen girl - brittany murphy
awakening - robin williams 
Rabbit hole - John Cameron Mitchel, Nicold Kidman, Aaron Eckhart 
Step up 3
The Fighter - 
Agora 
Kite runner 
Elizabethtown
My name is Khan
Keith 
Malvin's Room - Dicaprio, Merryl Streep 
No Strings attached - Ashton Kutcher, Natalie Portman, cuteness 
Brothers - toby mcguire, jakc gillenhall
Wild China - 홍토지, 계단논
South 180 - Conservacion Patagonica, The North Face, Patagonia
Beyond Borders - Angelina Jolie, Clive Owen
Boys are Back - Clive Owen, comfortable
Life in a Day - LG sponsor, youtube
Last Emperor - amazing .. Ryuichi Sakamoto,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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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많은 자전거를 보았던 때는 - 북경여행 중. 도로에 차의 숫자도 많지만 한 방향으로 쏟아져 달려가는 자전거의 숫자는, 사자에게 쫓기는 산양때 같달까 .... 상당히 많은 숫자의 자전거들이 도로의 몇 차선을 붐비게 질주하던 모습이 여전히 기억에 남는다. 그 더운 여름 날, 대부분 낡은 천 조가리를 입고 페달을 밟던 북경의 시민들 - 어쩌면 흔한 상징의 모습이기도 하구나. 중국도 그러하고 대다수 동양권 국가들은 자전거에 크게 의존한다 - 자전거 없는 세상이라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어쩌면 피 할 수 없는 발명은 존재하는 것 같다.
어려서 타던 자전거는 낮고, 검정색 폭신한 의자가 두명이나 태울 수 있었으며, 안전 바퀴가 있었고, 바퀴에 구슬들을 잔뜩 끼워 굴러가면 소리가 투루룩 나던 것이었다. 벨 소리도 동그랗고 빨간 버튼을 누르면 다양한 게임효과음에 흡사한 소리들이, 순서에 따라 변하였다. 열 살 무렵 - 동네에서 동생을 잃고, 동생을 찾겠다고 온 동네 어른들이 순찰을 돌았던 적이 있다. 해가 긴 여름날 이었는데 - 나는 이른 오후 즈음 부터 해가 진 후까지 자전거를 타고 눈물을 흘리며 동생을 찾아 헤메었던 기억이 난다. 동생을 잃을 뻔한 유일한 - 삶에서 가장 괴로웠던 순간이었다.
일본 여행 중 - 묵던 우에노의 숙소에서 늦게까지 잠이 오지 않아 친구와 새벽 길을 걸었다. 두세시 쯤이었는데 거리는 한적했고 편의점들과 술집들이 길을 밝히고 있었다. 친구와 동네 주택가의 길을 걷던 중 묶여있지 않은 검은 자전거를 발견. 앞에 바구니가 있고 안장이 편하지는 않지만 낮은 자전거였다. 친구와 일본의 새벽 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를 타고 사진을 찍으며 새벽을 보냈던 기억이 난다.
청주에 살면서 무심천을 따라 자전거를 한참 탔다 - 중학교 때 부터 고등학교 시절까지, 매일은 아니지만 일주일에 한 번 쯤은 꼭 탄 것 같다. 무심천을 따라 다져놓은 길은 곧고 긴 - 그야말로 음악을 들으며 질주 할 수 있는 물가의 길. 여름 저녁이면 많은 시민들이 이용하고, 추운 겨울이면 드믄히 근육이 다져지신 아저씨 분들께서 많이 달리시는 길이다. 무튼 그 길을 참 많이 자전거로 달렸구나. 혼자도 달리고 친구와도 달리고. 어느 여름은 친구가 거기에서 물과 아이스크림 장사를 해보겠다고 아이스박스를 들고 있던 친구와 한참을 서있던 여름도 있었구나. 집에서 아이스박스와 아이스크림과 물을 택시로 무심천까지 이동하던 - 택시비가 수입보다 많았던 친구의 추억이다. 대전으로 이사하며 자전거와 멀어졌구나.



확실히 자전거의 발명은 굉장한 것이다 - 사람의 두 다리가 아닌 바퀴로 움직일 수 있다는, 새로운 차원의 움직임. 오 굉장해. 물리학적 관점에서만 보아도 - 나의 물리에 대한 이해로써는 정확치 않겠지만 아인슝타인 Einstein 이 한 말 중에도 - "Life is like riding a bicycle. to keep your balance you must keep moving." 물리학자의 관점이니 - 자전거는 참으로 멋진 도구임에 확실하다......? 쿠 아무튼  


Bicycle

human-powered, pedal-driven, single-track vehicle
Two wheels attached to one frame - one behind the other
Introduced in 19th century
principal means of transportation in many regions
프랑스 혁명 당시 상류 사회인사들이 애용
이후 레저용구로 널리 보급

 


트러스 구조: 자전거의 뼈태 frame
스트레스를 지탱하기 위해 트러스트 구조 (두개의 삼각형을 겹친구조) 를 이용
캠버: 앞 바퀴가 끼워진 틀 - 안정성을 위하야 비스듬 함
자전거가 넘어지지 않고 주행 할 수 있는 이유 - 의 중심은 탄 사람이 평형을 잡기 때문

패달 - 사람과 자전거 사이의 동력을 정확히 전달, 넓은 면적을 활용하여 특정부위의 응력을 감소, 마찰력 증대
크랭크 (패달이 끼워진) - 사람 발의 직선운동을 회전운동으로 변화
기어와 체인 - 크랭크에 전달되는 회전력을 구동축 (뒷바퀴축과 뒷바퀴)에 전달
타이어 - 자전거의 구동력을 지면에 전달, 힘의 손실 없이 자전거를 구동


기어 - 바퀴 톱니의 '디테일러'라는 변속장치. 핸들의 시프트와 케이블로 연결되어있고 축과 평행하게 이동. 작은 톱니바퀴가 한 바퀴 도는 것과 큰 톱니바퀴 한 바퀴 돎의 차이를 이용하야 속도를 조절. 예를 들어 연필을 깍아 - 안 깍은 부분을 손에 얹고 다른 손으로 연필심을 잡아 손가락으로 돌린다. 그리고 깍은 중간 쯤을 손가락으로 돌린다. 그리고 깍지 않은 부분을 돌린다 - 이에서 가장 빠른 것은 연필심을 잡고 돌렸을 때.

주어진 거리를 자전거로 이동한다면 - 속도와 무관히 일의 양은 동일. 뒷 바퀴의 작은 톱니를 선택하면 빠르지만 힘이 더 듦. 큰  톱니를 선택하면 힘은 덜 들지만 속도가 느림. 결국 일의 양은 동일.


http://en.wikipedia.org/wiki/Bicycle
http://100.naver.com/100.nhn?docid=131970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13&dirId=130104&docId=41740917&qb=7J6Q7KCE6rGwIOybkOumrA==&enc=utf8&section=kin&rank=2&search_sort=0&spq=0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13&dirId=130705&docId=113271567&qb=7J6Q7KCE6rGwIOybkOumrA==&enc=utf8&section=kin&rank=1&search_sort=0&spq=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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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고 보니 앞 뒤 없는 ..... 자료의 모음. 근래 관심가는 주제지만 시간을 들일 여유가 없음으로 일단 포스팅.

Coal mining (채탄, 석탄 채굴) 의 목적은 토양에서 에너지로 사용 할 수 있는 석탄 coal 을 채취하는 것. 경제적인 이득을 위한 석탄 채굴은 석탄 층 (seam) 의 깊이, 질, 지형적, 환경적 요소에 따라 결정 됨. 지표면에서 채굴하느냐 지하에서 채굴하느냐에 따라 과정이 달라짐. 지표면에서 지하에서 채굴된 모든 석탄은 coal preparation plant 에서 washing 이 필요함. 50-100m 지하의 석탄은 deep mine 으로 여겨지지만 때로 지표면 채굴 기술을 이용 할 수 있기도 함.

근래 Naomi Klein 의 책을 읽고 인터뷰를 들으면서 발견한 굉장한 사실은 - 미국의 대부분 석유를 수출하는 나라는 캐나다라는 것. 본인이 캐나다인이면서 미국과 세계의 사회적 움직임들을 큰 스케일에서부터 작은 스케일까지, 그녀의 이해도에 매 번 놀란다. 본 운동에서도 그녀의 역할이 큰 움직임이 된다.

Bituminous sand
Unconventional petroleum deposit
Sands contain mixtures of sand, clay, water, viscous petroleum
전형적이지 않은 석유 자원 - 모래와 섞인, 토양에 가까운 petroleum
사실상 본 석유자원은 석유자원이라 할 수 없는 것이 - 그것을 추출하는 과정이 너무나 잔인하다. 숲을 밀고 땅의 겹겹을 벗기고 Tar Sand 를 화학물질에 씻어야만 석유자체를 분리 할 수 있음. Iraq 에 있는 이미 액체 상태의 석유보다 - Oil sand 상태의 석유자원을 액체로 변환하는데에 있어 3배의 연료가 소모됨.
Iraq 전쟁 이전에 - Canada의 석유 자원은 세계 석유자원에 포함되지 않았음. 물론 Oil sand 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그것의 추출 과정이 너무나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 석유를 얻기 위하야 오히려 사용회는 연료와 물이 많아 비합리적이라고 판단했던 것. 하지만 전쟁이 시작되고 석유 값이 오르기 시작하면서 마치 Canada 의 석유자원을 처음 발견한 마냥 그것은 세계 석유 자원에 포함되었고 미국의 최대 공급원이 됨. 이와 함께 캐나다는 세계 최대 석유 보유국가가 됨.
이것은 North America Free Trade Agreement 의 조약 중, Canada 는 본 국가의 연료자원이 부족하더라도 US 에게 연료자원을 주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법적으로 미국으로의 석유 수출을 거부 할 수 없음. Canada는 이 토양에 베어있는 석유를 파내기 시작하면서 미국과 더불어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높은 나라들 중 하나가 되었음. 이러한 Canada 의 석유 배출에 의존하는 또 다른 주요 국가는 중국 China.


Athabasca oil sand mining operations - 벗겨진 땅.

Canada 중에서도 집중 할 것은 Alberta, Canada. 본 지역이 가장 Oil Sand 추출을 목적으로한 환경적 피해를 보고 있음. 숲을 밀고 쉽게 말하야 지층을 벗기고 있음. 1m3의 synthetic crude oil 을 추출하기 위해 2 - 4.5 m3 의 물이 소요.
가장 터무니 없는 것은 이러한 사실들에 대한 낮은 인지도와 캐나다 측의 허위 광고. 일단 대중적 미국의 의견은 대부분의 석유 수출국이 Saudi Arabia 나 Mexico라고 알고 있는 것. Canada 와 Oil sand 에 대한 존재 조차 모르는 것이 과반수.
숲을 파괴한다는 것은 나무를 파괴하고 토양을 파괴하는 것을 떠나 Ecosystem 자체를 파괴 - 결국 동물에서 미생물까지의 파괴와 disruption 인데 그것의 파장을 알 수 없다는 것이 오류. 특히나 Gulf of Mexico 에서도 보았듯이 많은 이들은 조류, 물고기 등에게 집중하였지만 미생물 생태계의 파괴가 오히려 굉장한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 너무나 많은 관심이 닿아야 할 곳에 닿지 않고 있다.

Venezuela 의 Oil Sand 보유량도 Alberta 와 유사.



(아래는 인터뷰 비디오를 보며 노트 적은 것 - 순서 없는 노트지만 글에 첨부)
iraq does not have an oil law - they cannot sign long term exploration agreements. they only have illegal contracts. it has been a major push of the US government for iraqis to sign a US based oil law. sold as iraqi unity. iraqis resis this oil law because nationalizing oil law is their core arab nationalism. that victory is protected by many iraqi political powers. they own the ownership control.
iraq is incredibly accessible oil - they also know how to collect it themselves.
since invation of iraq- number 1 supplier or oil to US is not saudi arabia, not mexico - it's canada. it's close, absolutely secure source. locked into North America Free Trade Agreement - clause says illegal for canada to turn off the tap even if we face an oil crisis and are not able to supply our citizens. legally binding agreement so that canada's tap will stay open. it holds in common that it's ecologically devastating - this oil alberta tar sands. the oil sands. oil in alberta is very linked to the high price of oil. huge oil deposit was not counted as oil reserve - becasue so expensive to process thick tarlike substance into liquid oil. it didn't make sense to count as oil reserve - iraq war started, oil of canada became global oil reserve. now counted the largest oil deposit in the world.
better left in the ground. takes 3 times amount of burning fossil fuel to process 1 barrell of oil from as it does to process iraqi oil. canada has been climate renogate along with united states. carbon intensive and water intensive to do dirty processing - argument, it should be left alone. even with this going on - canadian econimy is doing better. but has nothing to do with the oil price.

http://www.youtube.com/watch?v=K9Gsa0fzVCU&feature=related 
http://en.wikipedia.org/wiki/Oil_sands
http://en.wikipedia.org/wiki/Athabasca_oil_sa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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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hattan Project 에 대해서 생각하자면 그야말로 세계적인 - 굉장한 규모의 프로젝트이다. 주최는 United States Army Corps of Engineers. 무엇보다 당대 최고의 머리들을 한 자리에 모았다는 것 만으로도 상당한 역사적 현상이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과학자들 중 가장 대표적으로는 Albert Einstein, Enrico Fermi, Richard Feynman, J. Robert Openheimer, Harnold Urey, Neils Bohr, Linus Pauling, Ernest Lawrence, Theodore Hall, Rudolf Peierls, David Bohm, Mark Oliphant 등.
프로젝트는 미국이 주도하고 영국과 캐나다의 협동으로 이루워졌으며 2차 세계 대전 당시 최초의 원자폭탄 설계를 위한 프로젝트. 1939 즈음 시작된 프로젝트는 130,000 명 이상의 인력이 사용되었고 $2billion 의 자금이 투자되었다. 자금은 공장들과 연구소 인력 등에 사용되었으며 연구와 제작은 30 지역 - 공개와 비공개된 - 지역에서 행해졌다. 지역들은 미국, 영국, 캐나다 영토의 여러 곳에 위치. 연구는 상당한 경비와 보안 하에 진행되었지만 - 소련의 atomic spies 원자력 스파이들은 여전히 정보를 꺼낼 수 있었다고한다.

Manhattan Project 를 위해 설립된 미국과 캐나다 시설들의 위치.


당시 uranium-235에 대한 초기 연구가 한창 진행되었고 plutonium 이 발견되기도 한 시기이다. National Defense Research Committee 는 uranium 연구 - 그 중에서도 Uranium-235 isotope -에 상당한 투자를하기 시작했다. 또한 당시 University of Birmingham 의 Otto Frisch 와 Rudolph Peierls 는 Uranium 235 의 critical mass 에 대한 혁신적인 발견을 하였고 - 프로젝트에 참여하게된다.
진주만항 공격과 미국의 일본과 러시아에 대한 전쟁 선포 당시 uranium 235 와 uranium 238 분리 연구는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Earnest O. Lawrence 의 팀은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에서 electromagnetic seperation 을, Jesse Wakefield Beam의 팀은 Columbia University 에서 geseous diffusion 을 Philip Abelson 의 팀은 Carnegie Institution of Washington 에서 thermal diffusion 을 연구하였다. 또한 nuclear reactor technology 와 heavy water 에 대한 연구도 한창이였으며 이에는 Princeton University,University of Illiniois, University of Chicago 등 상당한 교육기관들과 인재들이 투자되었다.
연구, 제작, 과 실험을 위하야 상당한 숫자의 지역들이 연구소와 방사능 처리장으로 세워졌다. 지역에는 Oak Ridge, Los Alamos, Argonne, Hanford 가 있으며 캐나다에 위치한 기관들과 Heavy water sites 들 또한 도 상당수다.

미 대통령 Harry S. Truman 이 Atomic Energy Act of 1946 를 서명하는 모습 - United States Atomic Energy Commission 의 설립.


쉽게 볼 수 있다 싶히 - 본 연구들은 물리학의 가장 기본적인 분야들이며 물리라는 학문에 이렇게나 많은 기관들이 열을 올렸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과학의 발전은 항상 사회적인 압력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것 같다. 천문을 바라보던 갈릴레오에게 어떠한 사회적 압력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 본 물리 연구를 보아도 그러하고, 대부분 현대과학의 연구는 사회적 관심이 깊은 곳에 집중된다. 예를들어 환경 과학 또한 최근 굵어지는 환경적 문제들에 인해 투자가 높아지고 있고 - 상당수의 의학적 연구 또한 암이라는 '핑계'를 두고 이루워지는 경우가 많다.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연구에 대한 투자나 관심이 두어지지 않는 것이다.
맨하탄 프로젝트는 분명 물리적 연구에 상당한 기여를 하였다 - 하지만 그것은 많은 과학자들을 두려움에 몰기도하였다. 여기서 관심을 두어야 할 것은 과학자들의 두려움과 그것의 스케일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정치인들 사이의 gap 이다. 이러한 연구를 진행한다는 자체가 과학자들의 입장으로써 얼만큼의 긴장감 - 어떤 면에서 죄책감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투자의 규모를 보아서는 정치인들의 관심은 오로지 목적에 있고, 과학적 능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도 하지만 관심조차 드믈어 보인다.
확실히 Manhattan Project 는 과학과 사회의 융합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프로젝트 - 어쩌면 모든 과학 프로젝트의 prototype 이라고 생각되기 까지 한다. 어쩌면 아쉬운 현실 - 하지만 근래의 물리적 연구의 방향은 조금 다른 것 같기는 하다. 상당 부분 실용과학에 치우쳐있기는 하지만 parallel universe 나 string theory 에 대한 상당한 관심은 과학적 순수 사랑 - 우리 사회가 과학을 대하는 입장의 희미한 긍정적 관심이 아닌가 싶다.


자료 출처 http://en.wikipedia.org/wiki/Manhattan_Project#After_the_war 
http://gk12.rice.edu/trs/science/Atom/man.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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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월 15일 0128시 - 새로운 친구와 즐거운 데이트 후 새벽

딱히 맛있지는 않은 밥을 먹고 , 마실 것을 마시러 갔지만 조용한 곳을 찾지 못하야 대략 귀가. 나는 외모지상주의 임을 심히 느끼는 요즘이다 - 구여운 친구는 좋고 그렇지 않은 친구는 그다지니 말이다 ...
친구는 어둡고 슬픈 것을 좋아한다 - 음, 간만에 어둡고 슬픈 것들을 기억하며 이리저리 관심의 방향과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시험은 다가오는데 읽고 싶은 책이며 하고싶은 놀이며 보고싶은 곳이며 많다 쿠.. 크 ! 행복하다 감사하다 겸손하자 아멘 -

 


09월 18일 2348시 - 자전거의 하루 

역시나 알람보다 일찍 일어나 끄적거리다가 성당에 미사를 드리고 내리막 길을 슝 내려가 - 좋은 사람들과 좋은 자전거와 좋은 풍경을 보며 슈슈 즐거운 하루가 지났구나.
하 .... 체력의 한계는 일상과 너무 가깝다 - 참으로 자주 느끼는 운동의 필요성. 다음 학기도 꾸준히 계획을 두고 운동을 해야겠다는 - 차분히 무어든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확실히 고등학교 때에 비해 생각들이 어렵지 않고 간단히 정리되는 것이 - 마음이 편안하고 이런게 어른이 됨인가 싶지만서도 갈 길이 멀고 멀다. 음 ~ 오늘은 잘 잘 것 같은 좋은 예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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