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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말에서 1970년대 초, 정부나 대기업이 아닌 민간이 작은 규모로 건설한 아파트들은 새로운 시도였다.
언덕 위, 주택가 골목길 그리고 도심 가로 모퉁이에 다양한 모습으로 지어졌다.
아파트 안에 마련된 마당인 중정이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공간으로 활용되거나, 새로운 평면 형식을 취하는 등 지금까지의 아파트에 대한 시각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너무나 가치있는 존재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이제까지 공개적으로 알려지고 논의된 적이 없으며, 안타깝게도 기록과 연구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심하게 훼손되거나 머지않아 재건축 혹은 재개발로 인해 곧 사라질 상황에 처했다.
실제로 상당수의 많은 아파트는 이미 도시 속 삶에서 사라져 버렸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기록과 자료의 확보가 중요하다.
나아가 숨겨져 있는 아파트를 발굴해 내서 논의하고 정리하여 도시의 일부로서, 도시의 문화를 담는 그릇으로서, 도시 생활의 중요한 공간으로서 아파트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고자 한다.
아파트의 깊이는 깊다. 근대화의 산물을 넘어 이제 삶의 모습이자 문화가 되었다. 그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다양한 층위를 통해 축적되어 왔다. 이 책이 그 깊이를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서문 중에서
한국에 제법 관심이 있고 잠시 생활을 하기도 한 친구가 책을 빌려주었다. 비록 읽지는 못하지만 사진들이 좋고 관심분야여서 구입한 책이라고 하였다. 보다싶이 한국의 아파트에 대한 역사를 적은 책이다. 사진들도 제법 많고 흥미로운 내용들이 제법 있다. 아파트의 시발점, 역사적 사회적 배경, 아파트에 대한 시각과 그것의 진화, 아파트 디자인에 반영된 한국적 마인드 등.
당시 서울시장 김현옥은 서울의 주택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반영해 서울 이곳저곳에, 특히 눈에 띄는 산자락 언덕에 시민아파트를 건립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량 공급이 너무나 중시되었던 이 계획은 문제가 많았고, 곧 그것은 여기저기서 문제들을 드러내게 된다. 고정된 아파트의 타입을 지형이나 지질, 주변 여건, 구조적인 해결에 대한 충분한 검토도 없이 공사를 강행했기 때문이다.
전후의 주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재건 주택, 희망 주택 부흥 주택, 국민 주택은 공공단체와 정부가 대량으로 주택을 공급한 효시였고, 이후 아파트 단지의 활성화와 시민 아파트의 공급이 대량생산된 아파트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정치적 권력이 사회에 얼만큼의 영향을 줄 수 있는지 다시 알 수 있는 책이다. 물론 모든 분야에 적용되지만, 정치가 영향을 미치지 않는 사회의 조각은 없다. 공간적 환경과 건축은 그 중에서도 사실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부분 중 하나이지 않나 싶다. 무엇보다 물질적으로 지을 수 있는 것의 한계는 분명 나라의 status 와 상태에 국한된다.
일제 강점기 당시 아파트 형식의 호텔과 같은 건물들로서 새로운 건물의 구조가 발을 들이고, 서울로 몰리는 인구에 대응하기 위하야 아파트들을 짓기 시작한다. 이러한 움직임들의 큰 범위는 정책에서 비롯된다. 또한 나라의 경제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 책에서도 언급하지만 콘크리트 공장들이 생겨나면서 그것을 사용한 건물들이 많은 숫자 올라가기 시작한다.
서울을 계획 가능한 대상으로 보고, 이상적인 도시의 모습을 구상하여 실제의 계획안을 일반 시민에게 공개하는 것은 시대 정황을 찹작 할 때 획기적인 일이었다. 전시회에 시민의 관심이 쏠렸고, 관람자가 70여 만 명 정도가 될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다. 그만큼 서울시의 책임은 더욱 가중되었고, 동시에 계획안의 실현 가능성을 무시한 채 신도시 건설을 감행하는 듯 서울시의 처사는 계획가들도 이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66년, 도시를 계획한다는 단계에서 무궁화라는 디자인이 나왔다는 것은 흥미롭다, 상당히 이상적이고 추상적이다. 무궁화라는 상징성을 도시에 적용한다는 의견은 충분히 있을 수 있지만 그 모형을 직접적으로 도시의 모형에 적용한다는 것은 떠올리기 어려운 의견이지 않나 싶다. 그 만큼 도시설계가 백지의 단계였음을 보여주는 것일까. 그 만큼 실질적 계산의 마인드가 부족했던 것일까. 얼만큼의 추진력을 염두에 두고 한 설계인지, 배경적 상황 등은 모르겠지만, 조금은 아이같은 목표 같다.
현재 도시 공간이 근대적 개발 이후 과거의 형태를 찾아 볼 수 없는 반면, 물길은 복개가 되어도 대부분 가로의 체계로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도시 속 건물은 그 형태가 그리 오래 유지되지 않지만, 도시 속 길이라는 요소는 재포장되고 정리가 되기도 하면서 그 형태를 꼐속적으로 유지해 가기가 쉽다. 특히 물길이라는 것은 서울을 전반적으로 흐르던 물의 흐름이었기에 도시 속에서의 생명력은 더욱 강하다 할 수 있다.
물의 흐름, 건축건설은 얼만큼 자연을 염두에 두고 이루어졌을까. 한국, 특히 서울은 그러한 여유가 없었다. 모두가 알다싶이 굉장한 속도로 늘어나는 서울의 인구를 감당해야했고 그러한 속도 속에서 가장 궁극적인 목적 이외의 것들은 보이지 않기 마련이다. 그렇게 급하게 콘크리트는 올라갔고 그 와중 소외당한 많은 것들이 있다 - 그것은 자연 뿐만은 결코 아니다. 이에 대해서는 분별된 의견들이 있을테이니 여기까지.
<동대문 아파트>의 중정, 복도에 도르레가 설치되어 중정을 가로지르는 빨래줄을 잡아준다"
(추가적 사진과 설명 위하여 사진 출처 블로그 방문 적극 권장 추천 http://kr.blog.yahoo.com/lazybirdc/493238)
...6층 건물로 대략 18미터의 높이를 가지며, 가로게 면한 부분의 길이는 16미터에서 26미터로 건물의 높이와 규모 변에서 볼 때 사람들이 느끼는 편안한 건물의 범위를 넘지 않았다. 중정의 경우는 높이가 12미터에서 18미터로 일반인이 편안하게 느끼는 17.3 미터보다 대체로 낮거나 거의 근접함을 볼 수 있다.
아파트, 라는 개념과 그의 모습이 얼만큼 기이하고 생소했을까. 아파트라는 건축구조가 새로이 그리고 빠른 속도로 올라가고 있을 무렵 그것에 대한 낯섬을 표현한 문학 작품들이 제법있다. 벽을 하나두고, 나의 윗 층에서, 아래 층에서, 잠을자고 밥을먹고 샤워를하고 - 이렇게나 가까이 있으면서도 서로와 교류 할 시간 없는 현대인의 생활을 담아 놓은 아파트라는 개념, 을 수용하는데에는 분명 적응이 필요했다. 또한 도시 건설을 위해 집을 떠나야 했던 주민들에 관한 작품들도 숫자가 제법이다. 이러한 신도시 건설이라는 사회적 움직임들은 오늘날도 계속된다. 하지만 전환점에서의 그들은 오늘의 그들보다 아프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본다.
하지만 와중, 전환점이니만큼 중점의 - 것을 표현하려는 노력이 보인다. 아파트의 높이라던가, 공동의 공간 '중정'과 같은 디자인들은 환경과, 이웃과 어울리려는 노력이었다.
'나의 집' 하나 갖고 싶은 마음에 모였던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 낸 '우리 마을', '우리 동네', '우리 아파트'.
정재호 <대광맨션아파트>
아파트에 살지 않았다. 어려서 살던 집은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마당을 가운데로 직사각형의 범위를 두른 방들이 있었고 그 중 옥상이 있는 방도 있었다. 마당 텃밭에서는 채소거리를 늘 심었는데 나의 기억에는 고추와 상추만 남아있다. 5*2.5 미터 정도의 텃밭은 겨울이 아니고서야 늘 한 가득이었다. 테두리를 따라 채송화가 피었던 기억이 난다. 그 중 가장 키가 컸던 장미는, 몇 해를 꾸준히 살더라. 할아버지가 장미녀석은 잘도 자란다며, 2미터 가까웠던 녀석의 가지를 종종 치시던 기억이 난다.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콘크리트였고, 계단을 따라 개나리가 피었다. 옆집의 개나리었는데 우리 옥상 계단 너머로 봄 여름 내내 만발이었다. 그렇게 옥상을 올라가면 할머니의 장독대가 20여 독 있었고, 안에는 된장이며 고추장등이 가득이었다. 그렇게 올라간 옥상은 지상 6미터 쯤 되었을까, 옆 집의 단풍나무와 은행나무의 머리 웃 쯤 되는 높이었다. 그리 높지도 않은 높이지만 특별히 높은 건물이 없었던 나의 동네에서 제법 멀리까지 볼 수 있었다. 새해나 성탄, 추석 등 특별한 날이면 근처 천에 있는 터에서 행사를 하며 폭죽을 터트렸는데, 폭죽 소리가 날 때 마다 나와 동생, 때로 놀러온 친척들과 옥상으로 빠르게 뛰어 올라가곤 했다. 그렇게 올라가서 마을들 머리위로 터져 떨어지는 폭죽 불들은 지금 생각하면 식상한 모양들이었지만 연 중 재미있는 행사였다.
내 일곱살 쯤이었을까, 기와 지붕 아래에 제비가 집을 지은 적이 있었다. 녀석은 지푸라기와 흙 따위를 어떻게 그리 꼼꼼히 발랐는지, 제법 튼튼하게 우리의 처마에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녀석은 알을 낳았고 알에서 새끼 제비들이 태어났다. 녀석들 얼마나 시끄럽게 울어대던지, 그 해 여름은 장맛빗 소리와 새끼 제비들의 소리가 인상에 깊게 남았다. 하루는 새끼 제비가 슬슬 날고 싶었는지 둥지에서 기어나왔다. 하지만 준비가 되지 않았던 녀석은 둥지에 몸이 반쪽 나왔지만 기운이 부족했는지 도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걸터졌다. 내 어린 마음에 얼마나 초조하던지 .. 지금 생각해도 무섭구나. 아무튼 그렇게 목을 내밀고 도와달라 소리지르는 녀석을 할머니가 빗자루로 밀어 둥지에 다시 넣어주셨다. 아, 할머니는 나의 영원한 영웅이다.
아 ~ 나의 집 나의 집이여. 그곳에서 아빠는 한의원으로 자전거로 출퇴근하셨고, 나는 버스르라고 초등학교를 다녔다. 가족들이 모여 송편을 빚었고 여름이면 마당에 바람을 불어 넣는 작은 수영장을 펼쳐놓고 동생과 물놀이를 하기도 했다. 그 마당에서 강아지도 키우다가 토끼도 키우다가 병아리도 키웠다.
중학교 이학년의 겨울은 굉장한 폭설이 있었다. 친구와 전화통화하기를 좋아하던 나는 무선 전화기를 들고 모두 잠든 늦은 새벽에 조용히 꾸준히 굉장히 많은 양으로 내리는 눈 을 맞으며 마당을 오가며 친구과 통화하던 기억이 난다. 대문 앞에는 전봇대가 있었는데 녀석의 주황빛 불이 눈 내리는 밤 풍경을 아름답게 했던 기억이 나는구나. 아, 행복이었구나.
그 지역의 개발에 대한 말이 몇 해 전 부터 오가고 있는데 상당히 싫다. 물론 자주 들리지도 않게 되어버렸지만 아끼는 곳이기에, 보호하고싶다.
집이란 그런 것인가보다, 추억이 가득하고, 세상의 유일한. 세상은 집과 집이 아닌 곳으로 나뉘어진다. 집은 그러한 곳, 공간, 모든 것이다. 집에서 울었고 웃었고 행복했고 슬펐고, 지금은 나와 함께하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했고, 아름다웠다.
개발이라는, 인구수용이라는 목적으로 지어진 아파트들, 물론 형식적인 목적으로 지어젔지만 그 공간들 또한 개인들의 철학, 생활, 추억을 담는 공간들이다. 집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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