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내려 일주일동안 학교를 쉬었다. 교과서를 뒤지면서 진도내용을 듣지만, 워낙 부족한 강의시간이 줄어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뒤숭숭한 와중 즐거운 방학 하하. 몇 일 친구들을 만났더니 몇 일 혼자 있어야겠다는 생각이든다. 그저 순서적인 것들, 굴레처럼 하나 이 후 반대의 것이 진행되어야한다. 오전에 카페에 앉아 정리해야 하는 일들 중 미루었던 것들을 몇 가지 정리. 

오늘의 하이라이트, 올 해의 하이라이트라면 창준이가 오늘 D.C. 에 도착했다. 짧게나마 빌린 전화로 통화를 했는데 목소리에서 별 다른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녀석 걱정보다 기대가 많은 듯 했는데, 잘 지낼 것 같아서 다행이다 하하. 녀석이 같은 나라의 반대편에 있다는 생각이 드니 왠지 가까워졌다는 느낌에 사무치게 보고싶다.  
졸업은 일년이나 남았지만 일년 밖에 남지 않았다. 졸업이라는 단계 이후 가능성이 상당히 넓어진다. 가고싶은 곳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다. 천천히 차분히 생각해야한다는 생각을한다. 나의 선택들이 나 자신을 제한한다. 내가 보고싶은 시험, 가고싶은 학교들의 지역, 배우고 싶은 범위의 프로그램을 제안하는 학교들, 모두 나의 선택의 범위를 작게한다. 그것이 부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제한은 제한이다 it is what it is. 할 수 없기에 하고 싶은 것이 오히려 많은 요즘이다.  


여행을 위해 가고싶은 지역:

미국
일본
중국 몽골
호주
인도 네팔
 
직업을 위해 가고싶은 지역:

미국
뉴질랜드
일본
중국
호주
인도  

모든 것은 나의 위주이다. 내가 하고싶은, 내가 보고싶은, 내가 원하는, 내가 궁금해하는, 내가 알고싶은, 나나나나나. 늘 나의 세상과 결정들은 나의 위주이고 그 뿐이다. 숨을 길게 쉬어본다, 정리가 되지 않지만 글로 적으니 천천히 체계가 잡힐 것이다. 
솔직하게 학교가 지겹다. 하지만 지금 학교를 마무리 짓는다면 일생 후회 할 것이 분명하다. 기억하자, 아직은 아니다. 몇 년만 손에 꼽히는 숫자만 더 투자하자. 사실상 학교 밖에서도 할 수 있는 공부가 상당하고 배움자체로써 학교의 기능을 존중 할 수 없는 단계에 왔다. 학교를 옮기면서 그러한 생각이 더 든다. 대학교가 받는 존중에 비해 학교의 역활은 상당히 미흡하다. 오히려 굉장한 것은 대학교가 아니라 개인단위의 학생들과 교수들의 에너지와 역량이다. 학교자체의 공간은 말 그대로 그저 공간이고 '장'이더라. 학교가 아닌, 개인단위에 대한 존경이 생기면서 학교에 남고싶다는, 학교에대한 로망 따위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분명 학교는 그러한 개인들의 집합임으로 물론 아름답다. 그저 그에대한 가치가 사회적으로, 혹은 지금까지 내의 시야에서 과대평가되었다. 졸업장이라는, 학위라는 것에 대한 인식 .. 물론 사회적으로 편리한 도구이지만 그 자체에 대한 긍정적인 의견이 줄어들었다, 한 마디로 실망.

사람을 만남에 대해: 대화에 있어 나의 의견에 반대의견을 듣는 일이 피곤한 경우들이 있다. 물론 반박 할 수 있는 것들, 이미 고려된 반대 방향들을 직접 다시 듣는 것은 시간과 에너지의 낭비로, 괜함으로 여겨진다. 이렇게 점점 혼자있는 시간이 편리해지거나, 이러한 나의 성향에 맞는 사람들을 만나게된다. 점점 범위가 좁아짐을 느끼는 요즘, 이러한게 '나이'나 '세월'따위에 연결된 고리들인가보다. 이십대 20s. 즐겁고 벅차고 안정의 시작이며 변화의 연속. 그야말로 '모든 것'의 공존, 격하면서도 10대의 충동이 마무리되어 안정의 시작이기도한 기이한 시점이다. 성장의 과정 와중이면서도 정착에 가까워지는 .. 행복하다고하자, 행복하다 하!.

시간에 대해:
나의 시간의 사용:

가족과 쉼
가족과 의미를 두고 만남 - 행사 기념일 등
글 씀 생각정리
독서
공부 자료검색 및 정리 
친구들와 놂
친구들과 대화
일상을 벗어남 
사회적 필요를 충족 - 서류정리, 학위를 위한 학업 등
 
시간의 사용, 이 정도로 정리 .. 가 되는구나. 나는 왜 블로그 포스팅 따위에, 생각 따위에 이런 아쉬운 시간을 투자하는가. 아니, 나는 왜 사회적 필요 충족에 이런 아쉬운 시간을 허비하는가 .. 시간 아 ..


궁극적인 생각: 늘 어떠한 선택 후 모든 것은 괜찮을 것이라는, '사실'이 마음에 자리잡아 나를 편하게한다. 절대적임으로 논리적이지는 않지만, 경험으로 보장된, 나에게는 '사실'이다. 경험이 나은 것인지, 관점이 나은 것인지, 성격인지, 어찌되었건 나의 궁극적 생각은 괜찮다는 것. :-) 주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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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친구는 남다르다. 시간 세월이라는 것이 특별한 나눔이 많던 적던 많은 혹은 모든 것을 전설 미화 시키고 기억은 추억이 되어 그것만이 남는다. 성당 친구, 초등학교 친구, 중학교 친구, 고등학교 친구, 대학교 친구들 많은 친구들을 떠나기 직전인 근래 만나느라 바쁘고 행복하다! 나는 복받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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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1일 비 쏟아지는 1316시
그제는 대전에 가서 DVD 방에서 앤티크를 보고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노래방을 가고 어제는 해장을하고 학교에 들려 버스 아저씨와 식사를하고 천문대를 보고 귀가. 오늘은 저녁 약속. 한국에 와서 공부 요가도 조금씩하고 등산도 몇 번 다니고 분당 대전 천안 전주 대전 충주 괴산을 다녀왔으며 창준이와 수영도 다니고 성당도 다니고 엄마아빠는 꾸르실료를 다녀오셨고 책을 읽었고 잠도 잤고 카페에 죽치고 앉아있고 음악도 듣고 비도 맞고 빨래도하고 쇼핑하고 청소하고 컴퓨터 고치고 맛있는 음식들 먹고 커피마시고 ... 8주의 시간이 총알의 삼십배 속도로 지나가 버렸다. 올 여름은 비가 너무나 굉장히 무섭게 쏟아져서 더운줄도 모르고 지나간 듯.
이제 곧 시애틀로 돌아간다.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개념보다 시애틀로 '돌아간다'는 개념이 생겨버렸다. 하기야 시애틀에서 지내는 시간이 훨씬 길으니 이제는 그러한 개념이 맞는 듯 싶다. 한국..... 나이가 들어서인지 세월에 변해서인지 한국이 이전보다 그립고 편안하고 좋다. 굳이 한국에 들어오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도 했었지만, 굳이 한국에서 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었지만 이제는 왠만하면 한국에서 살고싶다는 생각을한다. 아직은 어리지만 아직은 시간이 비교적 느리지만 점점 빨라질 것이니 천천히 생각을 해보고있다. 내가 확실히 한국인이구나 나는 확실히 한국의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이든다. 하지만 이따금 나와는 다른 한국생활 친구들을 보면서 내가 그들처럼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한다. 하지만 내가 굳이 한국에 산다하여 그 친구들처럼 살아야 한지만은 않기에 - 휴. 궁극적으로 하고싶은 이야기는 떠나기 싫다, 한국이 좋다, 가족이 좋다, 친구가 좋다, 이제는 편안함이 무엇보다 우선순위이고 무엇보다 원한다는 것.
돌아가야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하지만 내가 원하기도 하는 일이다. 궁극적으로 먼 미래에 편안하고 싶지만 지금으로써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들이 있기에 하나씩 차곡차곡 마무리 지어가며 생활 할 수 있음에도 감사 해야겠지 - 한국에서 남은 생활을 즐겁게 보내기를. 쏟아지는 폭우처럼 열심히 ! 쉬고 놀고 돌아가겠음 감사 아멘.

8월 14일 0543시 새벽미사 가기 전
어제 많이 힘들었다. 많이 힘들었다. 다시는 절대 안되라고 다시 한 번 해보는 다짐. 힘들었다. 솔직해지자 - 두렵다. 다시 돌아간다는 생각은 두렵다. 어떻게 무엇을하고 지내야 할 지도 잘 모르겠고 잘 지내지 않을까봐 무섭다. 하지만 난 괜찮다는 생각을 하기도한다. 기운을 내서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사랑해 윤영.


8월 17일 1000시 잠 없이 맞는 아침
대전 다녀 옴 - 채묵 먹고, 블라인드 보고, 술 마시고, 안개 산 오르고 슈슈 샤워하고 새벽버스로 귀가. 아침.... 잘까말까 고민고민. 짐을 대략 싸고 있는데 참 많구나 휴. 슬슬 돌아가야지 싶은 - 오히려 가고싶다는 마음이 드는 것을 보니 때가 때인가보다. 가는 전 날까지 꽉 찬 스케쥴로 달려야 함으로 오늘 짐을 마무리 해야함. 대략 다 챙겼음으로 특별히 걱정되는 것은 없지만 조금 피곤 할 뿐. 시애틀이 나를 기다리는구나, 새로운 시작 새로운 기운, 새로운 에너지로 보다 열심히 화이팅 ^^

8월 19일 1020시 변비한약의 효과로 상쾌한 아침 !
어제 약속 두개 오늘도 약속 두개 내일은 하나 모레는 비행기타기 전 약속 하나 - 휴. 바쁘지만 즐겁고 행복하다. 이렇게나 많은 친구들과 친지들이 나의 곁에 있다니 놀랍고도 감사. 이 이상 무엇을 바라랴 - 감사하고 감사하다. 편안한 마음으로, 준비된 마음으로 떠난다. 돌아가야한다는 마음이 나를 움직이며, 이것이 옳음임을 인지한다.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건간에 시작에는 끝을 맺어야하는 것. 조금은 길게도 느껴지지만 나의 길임을 기억하고 의연히 걸어얀다.
삶이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더라. 한 사람의 평생 바뀔 수 없는 습관들을 나의 의지로 바꾸려하지 않으련다 - 다 놓고 모두 내려놓고 나의 생활에 충실하리. 냉소라 할지라도 차갑다랄지라도 나의 기준은 이러하다.

8월 20일 1037시 가기 전 날, 아침부터 고생은 식탁다리와 엄마 .... 배부른 아침
장어, 멸치볶음, 두부조림, 골벵이, 콩나물 국, 깍두기, 절여진 생선 ....... 무언가 조화는 없지만 상당히 많은 찬들 하하. 아침부터 장어라니 음. 한 상 실컷 차려놓고 아침부터 성당가신 엄마 - 엄마는 없고 가득한 식탁이 나를 맞는 아침. 맛있게 먹고 준비하고 곧 점심약속을 향하여 나가야지. 저녁 약속도 있었지만 식탁을 보니 감동에 일찍 들어와야겠다는 마음 - 으로 저녁 약속 취소. 휴 가고싶다고 했지만 막상 떠나려니 - 그래도 가고싶기는 하구나 하하. 가서 할 일이 많으니 차곡차곡 해야겠지. 화이삼홍삼 ^^ 윤영 기운내 ~

8월 29일 월요일 0522시 시차적응 중
온 지 일주일이 지났건만 시차적응이 되지 않았구나. 와서 이사며 학교 서류정리며 하루도 쉬지 않고 일주일을 달렸다. 오늘에서야 조금 시간이 남아 낮잠을 잤더니 밤잠을 잃었구나. 무튼 시애틀에 도착하여 집을알아보고 신속히 이사를하고 한 숨 돌리는 오늘이다. 마음이 바쁘고 할 일이 잔뜩이였어서 신경적으로 민감키도하고 잠을 들 수 없더라. 공부도 해야하고 개강에 앞서 일자리와 봉사 자리를 알아보아야 하는 일들이 남아있다.
익숙한 환경이지만 나의 환경이 아니던 곳에서 생활하는 것은 괜찮기도하면서 그리워지기도한다. 오늘은 짐을 몇 가지 찾으려 이사콰에 다시 다녀왔는데 그리 좋더라. 성당이며 조용한 길가들이며 눈물이 핑.
근래 드는 생각 중 가장 큰 것은 - 나에게 얼마나 고마운 사람들이 많은지 .... 엄마 아빠 창준의 가족은 물론 친가 외가 가족들, 더불어 고등학교 친구들, 대학교 친구들, 중학교 친구들, 성당친구, 수녀님들까지 너무나 많은 아름다움을 나는 주위에 두고있다. 언제인가 '늘 아름다운 것을 곁에 두라'는 문구를 읽었는데 나는 이를 확실히 실현하고 있지 않나 싶다. 사람만큼 아름다운 것이 또 있으랴. 모든 분들의 기도 염려 도움이 나를 만들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차를 팔고 자전거를 사기로한 계획을 개강 후 시행해야겠다. 차를 사겠다는 사람들이 벌써 몇이나 되는 것을 보면 - 그리 어려운 과정은 아닐지 싶다. 올 해는 금전적 지출이 많은 만큼 수입도 나쁘지 않은듯 싶다. 일자리 또한 구하면 보다 수월하리라.
블로그를 외면한지도 한 주가 넘었고 막상 글을 쓰려 앉아도 쏟아지지 않는 것을 보니 근래 진심 별 생각 없이 지내나보다. 일에 치여 바쁘게 생활한다는 것이 이런 것인 듯 - 이것이 진정 편안한 행복의 생활이리라. 개강 후에도 일과 봉사활동과 시험준비로 분주히 분주히 자신의 생활에 감사하며 - 지낼 수 있기를 그저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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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일 화요일 1036시 매미우는 햇빛 뜨거운 아침


어제 음악을 들었다. 초등학교와 고등학교 당시에 음악듣는 것을 가장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는 버스로 학교를 다니면서 워크맨 카세트 플레이어로 서태지를 들었던 기억이 가장 깊게 남는다. 버스에서 다른 사람들의 헤드폰사이로 흘러나오는 소리들을들 듣으면서 저것은 무슨노래일까 싶었던 기억도 난다. 중학교 동안은 음악을 특별히 듣지 않았다. 친구들은 동방신기를 좋아했는데 나는 해외 팝 정도 들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다닐 시절에 음악을 가장 열심히 들었던 것 같다. 당시 테크노를 좋아하였고 일렉트로닉 시부야케 등 여러 장르를 발견하였던 때라 가리지 않고 들었던 기억이 난다. 새로운 음악 찾는 즐거움이 시간가는 줄 몰랐고 늘 음악을 꽂고 있었다. 대학교에 와서는 음악을 특별히 듣지 않는다. 고등학교때 즐겨 들었던 음악 중 편안한 류의 소리 위주로 이어 듣는 것이 대부분이다. 새로운 음악을 들은 것이 참으로 오래 전 이야기 같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음악이 듣고싶더라. 지산이 흥하고 있어서 인가보다. 가요 50선 같은 것도 훑어보고 몇가지 인디음악들도 들으며, 스키조를 발견 하였다. 이정현 1,2 집과 델리스파이스는 언제나 아무리 들어도 매력적이다. 오랜만에 듣지않던 음악을 들으니 참으로 신선하고 좋다. 델리스파이스의 공연은 언젠가 꼭 가보고싶다. 락을 좀 더 열심히 들어보고 싶은데 고등학교 당시의 열정이 생길지는 모르겠다. 음악을 듣다가 그 동안 음악에 대해 생각 할 틈이 없었나 싶더라. 혹은 새로움에 대한 반감같은 것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동안 왜 음악을 접하지 않았는지 모르겠구나. 좋은 음악을 발견하여 상쾌하구나!

1439시
긍정 밝고 싶은데 시간이 필요한지 쉽지않다 휘유 ~ 오랫동안 차분함을 동경했고 지금도 그러한 마음이 있다. 동경과 별개로 밝고 싶은데에, 기운을 노력을 내자 화이팅:)


8/3 수요일 1237시 요가 다녀 온 더운 여름의 오후
이런 저런 글을 읽고 있다 - 열정적으로 한가지에 몰입하여 크게 상처받은 이들과 '라이트'라는 이름으로 거리를 두고 바라본 이들의 대립아닌 대립의 현상을 보고있다. 안타깝다. 같은 틀 안에 있지만서도 한 측이 우월시되고, 상황이 바뀌자 상대 측이 일어나 비웃는 - 어느 쪽이 잘했다라는 말은 못하겠지만 개인적으로 열정을 라이트보다 응원한다. 열정을 지나 집착을 둔 이들도 있지만 그것은 한 순간 광기가 아니였을 것이다. 모두의 시작은 열정이였고 의지였고 점점 나도 모르는 시간 동안 깊어져 버렸을 것이다. 보다 사랑하는 쪽이 지는 쪽이라고 - 사랑한 만큼 아픈거라고, 하지만 쉽게 아끼고 쉽게 버리는 그러한 마음 편안함이 과연 긍정적인 것일까. 한 가지에 메여 세상을 볼 수 없음은 어리석음이지만 한 가지를 진심으로 정성을 다하여 아끼는 것은 결코 후회 할 일은 아니리라.
나의 기준이였던 그가 더이상 그 자리에 설 수 없었을 때에 - 아팠지만 그 또한 지나갔고, 설명 할 수 없이 허망했지만 이제는 괜찮다. 깨진 그릇은 붙여도 자욱이 남고 물도 샌다고 한다 - 그 의 모습 또한 마찬가지이지만, "처음부터 하나씩 내가 노력할게"라는 말에 다시 희망이 일어난다.


8/5 금요일 1440시 등산 다녀 온 더운 여름의 오후
할리스에 앉아있다 - 나의 피씨방 할리스. 금요일인데 의외로 사람이 없어 이것저것 인터넷을 뒤적이며 휴식 중. 책은 들고 왔지만 할 마음은 전혀 없었음. 이번 방학동안은 그냥 쉬어야겠다고 다짐. 옛 친구들의 일상을 보고있자니 동떨어진 듯한 기분. 얼마 전 미용실에서도 아저씨가 왜 여기사람 안 같죠? 라며 자꾸 어디서 왔냐고 묻더라. 청주에서 태어나 오늘까지 살았는데 외지사람 같다는 것이다. 휘유 - 사실이 나의 마음도 그러하다. 창 밖을 보고있자면 나의 동네가 분명한데 사람들은 무언가 나와는 다른 - '사람들'이라는 뭉치로 보이고 나는 속 할 수 없는 기분. 외로움 타령이라기보다 없는 듯한 소속감, 누구도 나를 제외하지 않았지만 내 자신이 나를 끌어냈음을 문득 기억하게된다. 냉소의 결과는 여기인가보다. 결과적으로 아쉬우면서도 과정에 있어서 나는 왜 늘 밖이고 싶은 것일까. 딱히 궁금치는 않은 질문. 지금에까지 이러한 고민을 하고 싶지는 않다 - 아.
그나저나 오늘 아침 오랜만에 등산을 다녀왔다. 문을 나서 몇 걸음 걷는 순간 '나오기를 잘했다'라는 생각이 들더라. 역시나 운동이라는 것이 상쾌하고 유쾌하고 즐거운 것. 우암산은 어렵지 않고 익숙하여 너무나 편안하다. 산을 참 오랜만에 들렸음에도 불구하고 이전보다 시간이 많이 줄어들었다. 정상에서 쉬고 내려오는데까지 한시간 반도 걸리지 않더라. 내일도 꼭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날이 뜨거워 밖에 나가고 싶지 않다. 뜨거움 따듯함은 좋지만 피부가 상할까 걷기가 싫은 것 뿐. 여름이니 마땅히 뜨겁고 덥다. 등산다녀온 옷들을 빨아 옥상에 널었는데 바싹 말라있을 생각을 하니 기쁘고 상쾌하구나 야호!


8/6 토요일 2158시 조금은 졸린 밤
오늘은 - 오전에는 우암산을 올랐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해 정상에 가까왔지만 도다르지 못하고 내려왔다. 집에 돌아오니 엄마가 외숙모할머니께서 서리태 콩을 삶아다 주셨다며 콩 국수를 해주셨다. 혼자 쇼핑을하고 돌아와, 오후에는 창준이와 성당에 미사를 드리고 맥도날드를 먹고싶어하는 창준을 위해 배달서비스를 했다. 일본 드라마를 몇 편 보고 집에서 창준이와 휴식한 하루였다. 서울을 올라간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하루이기도하다. 나의 성격에 대하여 아직도 불편함을 느끼고 타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는 것이 불편하다. 아직도 어느 정도가 맞는 것인지 기준을 모르겠다. 딱히 생각치 않고 싶지만 괜찮음의 선을 모르겠으니 .... 혹시나 남에게 폐나 상처가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된다.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을 보니 나의 성격이 참 변하였구나 싶다. 하지만 변하지 않은 점들은 여전히 .. 괜찮으리라 생각이 들면서도 미안키도하고 내 자신이 불편하다.
내일은 아빠가 꾸르실료 교육을 마치시는 날이다. 많은 것이 순조롭게 무사히 진행되고 있어 감사한 여름이다. 집에서 오래 쉬었고 마음이 편하였고 나 자신에게 솔직하려 무엇보다 노력했으며 - 아쉬움도 많이 남지만 의식적으로 노력한만큼 뿌듯하기도한 여름이다. 이 여름이 끝나지 않았으면 - 싶기는 처음이다.

시간이 흐른다 - 싫을 정도로 인지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시애틀로 돌아갈 날이 다가 올 수록 거부하고싶다. 정중히 - 싫습니다 - 라고 거절하고싶지만 내가 끊은 비행기표, 내가 선택한 생활이기에 나는 수긍하며 돌아갈 것이다. 이러한 분명함 와 중 달리고 싶고 떠나고 싶은 마음 .... 토닥이며 가라앉힐 나의 자그만 마음. 너에게 미안하지만 나도 그러고 싶지만 안되 - 라며 사그리는 마음.
'내년 여름은 꼭 떠나야지'라며 여행을 다짐한다. 사실 아직 가족 휴가가 남아있고 올 겨울은 동부를 갈 것이기에 여행에 대한 미련은 아닌 것 같다. 일상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가까운 듯 싶다. 매 해 반복되는 여름방학과 휴가 같은 것이 아닌 - 오랜만에 나의 생활에 쌩뚱맞음이 그립다. 한동안 익숙한 것들에 집착하였다. 고등학교를 졸업 한 후로 그러했다. 편입도 다른 곳으로 가고싶지 않았고 떠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변화가 오랜만에 그립나보다. 이사를 하는 것이 큰 변화일테니 어쩌면 모든 것이 순조롭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돌아가서의 일상은 사실 상상 할 수가 없다 - 겪지 않은 공간에서의 생활일테니 새로움의 시작이다.
이러한 새로움을 바란다면 돌아가고싶어 맞을텐데 이 여름을 연장하고 싶은 마음은 무엇일까. 나 자신이 양방향으로 동시에 달리고 있음을 느낀다. 늘 모순의 연속이지만 이 정도는 아니다. 하고싶지만 하고싶지않아 - 사이에서 해야하라고 생각하면 하고싶어라고 느낀다. 그렇게 어느 정도 이성이 감성을 이끌 수 있는 경우들이 대부분인데 - 근래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서술해 놓으니 더 이상하구나. 결과적으로 딱히 의견이 없는 것이 맞겠다. 그래 '요즘 별 생각 없습니다'라고 마무리하자. 흐르는 시간에 맡겨서 그냥 흘러버리자. 의도도 없고 갈망도 없는 - 그저 흘르는 - 내가 가장 바라던 생활이지 않은가. 근래 공부도 놓아버렸다. 집에서 쉬는 일이 너무나 좋고 편하여 쉬고있다. 그야말로 '류'한 생활이구나 - 나는 지금 가장 행복한 순간에 있구나. 감사합니다 :)

사실 - 하고 싶은 말이 상당히 .. 아니 조금 많아 아니 있어. 하고 싶은 말들이 있었어 하지만 이야기 할 기회를 만들지 않은 것은 두려워서였을까. 이유가 무엇이었든 이제, 지금의 상황에서 그냥 솔직하게 얘기할게 그냥 다 얘기 해볼게.
무엇보다 '미안하다'라는 생각을 참 많이했어. 식상한 생각이고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그랬거, 미안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 무엇보다 내가 떠나려 했을때 네가 너무나 쉽게 단념하는 모습에 - 내가 잘못한 것이 많았구나 싶었어. 그렇게 쉽게 나를 보낼만큼, 단 한 번 한마디로도 잡으려 하지 않는 모습에, 내가 그동안 얼마나 내 주장만 세웠는지, 너와 소통을 일방적으로했는지 그제서야 알았고 뒤돌아 생각하도 그 순간이 가장 절실히 말해주고있어. 제법 시간이 지났지만 나의 지난 선택들은 돌릴 수 없으니 계속 미안 할 수 밖에 없더라.
제법의 시간동안 괘나 자주 생각이 나더라. 이상하리만큼 생각이 나던 때들도 있었고, 덜 떠오르던 시간들도 있었어. 무튼 아직까지도 나를 떠나지 않아 - 생각들. 문득문득 왕왕 떠올라, 지난 모습들이지만 좋았던 편했던 모습들. 그렇지만서도 이러한 이야기들을 나누기란 어려웠어. 왜일까 .. 내가 변했다고 느끼기도 했어. 이전의 나의 모습에 비해서 내 자신이 싫었고 부끄러웠어. 갈수록 이전의 나의 모습을 떠올리며, 나 얼마나 어리고 당돌했는지 후회도 많이했고 점점 부끄러워졌어. 지금의 나의 모습을 떠올려도, 이전에 비해 세상적인 모습, 감정을 무시하는 나의 태도들을 보면서 지금의 모습에도 자신을 가질 수가 없엇어. 돌아가고싶기도했지만 그럴 수는 없는 것이고, 나은 모습이고 싶은데 시간이 필요했어. 어쩌면 보다 나음을 지향하는 모든 순간들도 나 자신의 모습이고 이 또한 함꼐 공유 할 만큼 우리가 편안했으면 좋을텐데 - 떠나 온 지금 그 만큼 네가 편하지만은 않더라.
궁극적으로 지난 시간들 동안 하고싶었던 말은 미안하다는 말이였어. '다시'라는 것 참 많이 생각했어. 다시, 이번은 더 나을까 - 혹은 데자뷰, 같은 상황의 반복일까. 상당히 무척 궁금하고 생각도 수십백번 했을거야. 하지만 자신이 없어. 나는 상황의 절반일 뿐, 그래서 무섭기도 해. 아직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가 없는 것은 왜인지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그럴 수 있겠지. 언젠가는 편안히 이야기도 나눌 수 있겠지. 네 마음은 왜인지 편할거라 생각되는데 - 그랬으면 좋겠다. 그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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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준

일상, 단상/꿈 2011. 7. 28. 21:13

sk 가 해킹당하여 만인이 분노하는 가운데, 오랜만에 나의 싸이월드를 찾았다. 분노의 열기가 뜨거워서인지 투데이가 무려 17 ........... 왠 기록 하하. 둘러보는 와중 이전에 쓴 글을 다시 읽자니, 이전에도 느꼈지만 오늘도 느끼는 바는, 아래 글은 몇 번을 읽어도 내 생에 쓴 글 중 가장 만족스러운 글 조각이다. 날짜를 보니 2008년의 글, 내가 졸업하던 해이구나, 3년 전의 단상이다. 창준이를 염두에 두고 쓴 글이다.
이번 주도 창준 이외에는 만난 친구가 없구나. 아 - 수영장에서 우연히 만난 동기 정도?


창준과 시립 수영장에서 수영을 마치고 아빠엄마가 오기를 기다리는 중 - 식혜 한 캔 나누어 마시며 비를 피하고 있다. 창준은 갤럭시로 게임 중, 나는 self entertain 중. 수영은 즐겁다.



hi,

 

faith has never been my greatest strenghts, but i have never once doubted my faith in you. much love and prayers go out to you with every hour of my day. my hopes live on with your existance. there can never be a greater blessing than your being. my only wish is for you to smile without effort throughout your time. myself cannot even understand the level and amount of strength you provide. it's as if your being is my own. understand all standards, but help yourself to only attain the rightful ones. dirty yourself as disgustingly possible so to learn how to clean yourself from the filth. know that only you can bound your possibilities. i pray that your inevitable troubles of life cut you deep as it can because i know you're strong enough to heal from whatever pain may come. i pray that your days are filled with as much sunshine possible because i know you deserve even much more than all the blessings of the stars. recognize that you are we and them and us and all. but also recognize that you are you and no other. may wisdom accompany you through your every highs and lows. the beauty of you now is beyond my explanation, but may you also realize the potentials you must reap. my mornings shine and i owe it all to you. you alone can glister my time. remember that i am and will always be with you. remember that you are in my every thought. i mean every word with only the deepest honesty and sincerity.

this is merely the tip of my heart for language is too slender to describe the whole. love is an understatement, but best of my options. with that said, never forget that you are loved beyond imaginable.

 

 

b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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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ater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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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후 처음만난 영성친구 ! 이박삼일 친구들과 여행아닌 여행. 다시는 마시지 않으리 알코올.... 졸업 후 특별히 변한 친구는 없는 것 같다 헤헤. 여름이 끝나지 않았으면이라는 생각을 한다 .............. 즐겁고 행복하다 즐겁고 행복하다 고맙다 고맙다

Posted by water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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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 근래 듣고있는 10cm의 유난히 가사가 좋은 good night. 밤, 잠. .
현재 4/21 0243시, 이유있는 불면으로 밤을 샐 듯 싶다. 쏟아지는 기사들에 허무할 뿐이고, 느릿하던 카페도 놀란 사람들로 붐비어 서버 다운. . 그야말로 한도초과이다. 머릿 속에 우주를 넣어때 꺼낸 듯 한 두어시간이 지나가고, 정신을 차려보니 밤은 까맣고 조용하기만 하더라. 고개를  들어 세상을 똑바로 보라던, 잡 설들에 휘청이지 않도록 정신을 가다듬는다. 급 속도로 쏟아지는 글들이며 기사들, 수 만명이 소설을 쓰고 있다. 읽을 필요도 없을 뿐 더러, 부추겨서는 않되는 글들이, 무서운 속도로 올라오는 인터넷의 공간. . 한 걸음 물러서서 시간이 가라앉힌 진실만을 읽으리. . 
솔직히 나는 비교적 냉소적으로, 덤덤히 받아들이리라 생각했다. 그의 나이 40이고, 두 사람이 사랑하여 함께 생활한다는 일, 얼마나 아름다운가. 당연한 일이고, 충격이라기엔 너무나 기쁠 일이다. 하지만 이혼이라니. . 정도 모르고 토해내는 루머들, 역겹다. 앞뒤도 맞지 않는 기사들에, 혼란 속에서 움직이는 사람들. 그 와중, 정치적 소식을 덮으려는 양치기소년 언론의 수작 플레이라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면, 그 간 국민들이 얼마나 당했는지를 알 수 있다. 일단 의심해야하는 언론의 보도들, 연예스캔들에 바로 정치기사로 눈이 간다는 사람들 - 다행인지 안타까워야하는지, 감정이 복합적이다. 물론 실속있는 기사를 쓰는 언론인들도 물론 많다. 어디나 옳음과 옳지 않음은 공존하고, 한 쪽으로 치우치거나, 한 단면만을 바라보는 것은 옳지 않다. 하지만 지금 관심을 안고 있는 것은 분명 옳지 않은 언론을 이용하고 농락하는 더러운 기자들의 펜이다. 속이 상한다. 그가 아닌 어떤 사람이더라도, 이러한 농락을 당하는 것은 옳지 않다.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추측인지, 거짓인지, 오해인지 알 수 없지만,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전달하는 기자들은 기자의 자격이 없을 뿐 더러 인격의 저질이다. 그의 명성을 이용하여 어떠한 목적을 취하려는 이들의 속이, 싫다.
나의 벽에 붙어있는 그의 모습을 보며. . 그를 연예인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연예인 - 그를 어떠한 인물이나 사람으로 생각하기보다는, 그의 음악과 공연, 사상들을 나에게 기운을 주는 에너지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의 멜로디, 가사, 철학, 삶의 방식들 - 나에게 허용된 범위 내의 그의 모습에서 즐거움을 느끼기도하고, 무엇보다 큰 위로를 받았고 늘 그러하다. 나에게 소중한 덩어리, 그의 음악을 듣던 시간, 글을 읽던 시간, 위로 받았던 기억들, 감사하는 마음, 우리가 함께 모여 그라는 것을 공유 할 수 있도록 시발점이 되어준, 한 시대의 사상을 그려준, 나에게 동경을 알려준, 그 기운의 에너지의 덩어리가 부디 어디에서든 편안한 마음이였으면 좋겠다. 그 뿐이다, 그가 편안 할 수 있었으면. 그가 나에게 위로가 되었듯, 나 또한 어떠한 에너지의 일부가되어 위로이고 싶다.
혼란의 폭풍이 지나고, 시간이 사실만을 정화하여 주었으면 바래본다, 느린 음악으로, 마음을 달래며.


10cm good night
오늘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은 고요하고도 거친 밤공기, 바람소리, 달빛에
너의 평화롭진 않았을 것 같은 어지럽고 탁한 긴긴 하루, 너의 새벽, 빈 창가

나쁜 기억에 아파하지 않았으면, 숱한 고민에 밤새우지 않았으면
Mmm good night

또 나쁜 꿈에 뒤척이지 않았으면, 빗물소리에 약한 생각 않았으면
팔베개, 입맞춤, 따뜻한 한 이불, 나긋한 숨소리, 이젠 함께 아니지만
눈물과 외로움, 슬픔과 괴로움, 하얗게 지운 듯 깊은 잠 예쁜 꿈속에
Mmm good night


Posted by water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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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
감독 토드 케슬러 (2008 / )
출연 제시 맥카트니,엘리자베스 하노이스
상세보기

정말 - 그야말로 가장 전형적인 스토리, 그래도 볼만한 이유는 공감일까. 딱히 멋진 구도나 연출도 아니였는데 말이지 -

Walk to Remember 와 똑 닮은 스토리라인 - 다만 아픈 것은 남자 주인공이고, 둘은 연극 대신 화학 랩 파트너이다.

전형적인 Campus queen, 엄마아빠의 공주 - Natalie와 남신경 안써, 자유의 영혼 Keith. 죽음을 준비하고 있는 Keith , 명문대 입학을 앞둔 Natalie. Keith는 말하기를 - 나는 죽음을 앞두었고, 너는 너무 잘났다. 너는 모든 것을 가졌고, 나는 아무것도 없다. 너에게도 인생의 장난같은 구차함을 , 얼마나 엿같을 수 있는 것인지 보여주고 싶었다. 아무런 기대도 없었다 - 삶은 별 볼일 없는 것이고, 사나마나 그따위 것 궁금하지 않다. 그런데 너.. 네가 모든 것을 이상하게 했다. 너, 너는 너무 굉장했고, 나, 나는.. 시간이 조금 갖고싶어졌다.
사람의 마음에 욕심을 심는 것 - 아무것도 바라지 않던 ,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수용했던 Keith 에게 , 기대를 심은 Natalie. 세상이 내일 멸망하더라도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을 거라던 - 꼭 사과나무만이 사과나무는 아니다.

"...and you, you are so amazing. and i, i just wanted a little more time."



Natalie의 이야기를 듣는 Keith의 표정을 보라 - 아유


청소년의 진지함은 남보기엔 귀엽지만, 본인들에게는 정말이지 진지하다, 정말




모든 것을 안다는 듯, 능글맞게 농담놀이를 즐기는 Keith




"i made love to you"





"...and you, you, are so amazing. and i, i just wanted a little more time."



Posted by water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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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mum training : 3/wk , 60 min/training 

 
4/1 Friday

오늘 구입 : 운동화 양말 긴 바지 반바지 민소매 운동속옷 아이팟 스트렙 - 각자에 대한 소감은 차차 사용하며 특별한 것이 있다면. .
큰 틀의 목표는 9월에 10K를 뛰는 것. 아직 시간적 거리적 개념이 없어 특정한 시간을 목표로 두지는 않았음. 조금씩 운동을하다보면 어느 정도 감각과 합리적인 , 구체적인 목표를 세울 수 있을 듯.
준비물을 갖추고 운동 시작 - day 1


(60분 러닝머신 후 혈액순환 활발한 나의 모습 , 사진은 보정한 것임 , 정말루. .)
비가 오는 관계로 , 첫 날이기도 하고 , gym으로 향함. 머신에서 8분 걷고 35분 동안 5mi/hr (8.04 km/hr) 로 조깅 - 처음 시작한지 10분 정도 몸이 서늘한 것이 상당히 냉함 느낌을 받아 이상하다고 생각. 30분 정도 지나니 땀이 나기 시작, 냉기는 사라짐. 40분 즈음 왼쪽 발목에 미미한 통증이 느껴져 바로 걷기. 첫 날 부터 괜한 무리로 부상을 입으면 곤란하기에 - 엄살일지 몰라도 일단 60분의 나머지는 빠른 페이스로 걸음. 그렇게 한시간 총 3.21mile (5.16km). 기계의 단위가 mile 이여서 직접 변환을 해야하고, 달리는 중 어느정도의 감이 확실히 잡히지 않아 불편. 드디어 달리기를 시작하다니 - 신남.


4/4


(60분 러닝머신 후 혈액순환 나의 모습 - 혈관 터질 듯)
오늘도 gym 에서 달림. 첫 날의 40분 쉬지않고 달리기와 다르게 오늘은 오래 뛰지 않아도 힘듦을 느낌. 뛰기 전 바나나를 먹은 것이 원인일까. . 무튼 15분씩 3번 달리, 나머지 시간 걸음. 꾸준히 해야하는데 일주일 4일을 잘 지킬 수 있을지가 의문.



3.25mi 이면 5.23km - 달리는데에 41분이 걸렸다. 5K 달리는데에 얼추 이 정도의 시간이 든다는 것일텐데 - 아직 성적에 연연할 단계는 아닌 듯 하지만 보다 열심히 훈련해야겠다고 다짐. 더불어 오른쪽 무릎에 때로 통증을 느낀다. 의식적으로 오른쪽 발 안쪽으로 달리면 덜하다. 똑바로 달리는 것이 얼마나 의식적이고 어려운지를 새삼 깨닳. 화이팅 숭숭




4/7 Thursday


어째 속도가 느려졌는가. .
5km = 3.1068 mi
5km를 30분 내로 줄여야 겠다 - 머신으로 달리다보니 페이스 조절이 충분히 가능 - 평균 5mi/hr로 두고 뛰는데 속도를 높혀보아야겠다.
10km = 6.2137 mi


달리다 잠시 걸으며 셀카 놀이 - 혈액순환이 원만하군아


나와 같은 gym을 다니는 매시 - 짜식


오랜만에 요가를 하고, 러닝머신도 60분. 13분 정도 마다 1분씩 쉬는 습관. . 꾸준히 달려야하는데 왜 자꾸 쉬고싶은지. 3번째 음악이 끝나면 쉬고싶은 충동. 오른쪽 무릎과 발목에 때로 통증이 있었고 왼쪽 종아리 근육이 상당히 뭉쳣었는데 그것들이 모두 덜 하다. 의식적으로 바르게 뛰려고 노력해서 그런가 - 체중을 보다 중심으로 모으려하고 발 뒤꿈치부터 앞꿈치까지 닿도록 의식에 두고있다. 또한 러닝머신으로 달리면 보폭이 짧게 달리는 것이 습관된다기에, 보다 넓은 보폭으로 사뿐히 뒤는 것도 의식에 두고있음.
확실히 아침에 운동을 해 두니 종일 마음이 편안하고, 하루를 맞이하는 기분도 색다르다. 요가 또한, 달리기와 병행해서 그런지 다리가 보다 튼튼하여 중심도 잘 잡히고, 달리기 전에 요가를 하니 몸이 풀리는 것이 둘의 병행은 매우 바람직한 것 같다.


4/10 Sunday
근래 게으르다. . 무튼 gym으로 향하여 달리기 시작. 오늘은 속도를 조금 높혀 평상시의 5mi/hr 에서 5.3mi/hr 로 달려보았다. 딱히 나쁘지 않음, 무릎과 발목의 통증이 가신 것에 대해 매우 뿌듯. 중간 휴식 6 분, 총 35분 정도 달렸을 와중 울렁거림을 느낌. 달리는 중 몸이 서늘한 것이 컨디션이 좋지 않음. 러닝 머신에서 내려와 사이클 40분 정도 천천히 밟고 귀가.



러닝머신에서 내려와 사이클링하는 나의 모습, 혈액순환 매우 활발 - 울렁거리는 사람치고는 표졍이 나쁘지 않군. . 엄살이였나

어제 그제 좋지 않았던 속, 헌혈 이후 약간의 현기증 등 덕에 최상의 컨디션은 아닌 듯. 운동보다 기본 건강이 먼저임을 기억해야한다, 아무리 트레이닝을 하더라도, 아니, 트레이닝 자체가 기본체력 없이는 무리인 것이다. 기본적인 잠, 영양소, 정신적 건강이 안정을 찾아야 운동도 좋은 컨디션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듯 하다. 무튼 60분을 채우지는 못하였고 시간도 확인하지 않고 내려왔지만, 간만에 운동을 다녀오니 좋군아 -


6/28 Tuesday
근래 뛰지 않는다. 9월의 마라톤은 뛸 수 없을 듯 하다.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하여야기 때문에 비행기를 8월 말로 바꾸었다. 9월은 시애틀에서 지낼 듯 싶다. 물론 시애틀에서도 뛸 수 있음으로 상황은 지켜보아야 함. 집에오니 마음이 편안한 것이 쉬고싶어지어 뛰기가 어렵다. 언젠가는 다시 뛰리라 .. 일단 쉬고 ,

Posted by water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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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nt 사순절 사순시기

Liturgical calendar Ash Wednesday 부터 Easter 지지 46일 간의 시간. 성서에 다르면 예수님은 공적인 ministry 이전에 40일 동안 광야에서 금식, 기도를 드리며 사탄의 유혹을 견뎌냈다고 기록되어있다. Ash Wednesday 이름은 신자들이 하느님에게 후회와 비탄을 표현으로 이마에 재로 십자가를 그리는 것에서 유래. 2011년도 의 Ash Wednesday 3 9. Easter 4 22일이다. Easter 부활절은 예수님의 부활을 축복하는 날.


사순이라는 말은
40이라는 숫자에서 유래된 것. 40이라는 숫자는 노아의 홍수에서 나온다. 하느님이 죄인들을 벌하기 위하여 40밤과 40낮 동안 비를 내리셨다. 모세는 시나이 산에서 십계판을 받기 위하여 40일을 엄재. 광야에서 40일의 단식. 부활 후 40일 만에 승천. 40의 상징적 의미가 중요한 것. 속죄, 보속, 참회, 자신의 쇄신 등으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하여 준비한다는 상징적인 기간이 사순시기이다.


파스카의 축제를 준비하기 위한
40. 신자들은 받은 세례를 다시 생각하며 참회행위를 통하여 파스카의 신비체험을 준비. 사순절의 시작부터 부활 전야제 까지는 미사 중 알렐루야와 대영광송을 부르지 않는다. 사순절의 시작하는 수요일은 세계의 단식일이며 머리에 재를 얹는다. 사순 제 1, 2, 3, 4, 5 주일 성 주간이 시작. 6주일은 주의 수난 성지주일이라 부른다. 성주간은 메시아로써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으로 시작,


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광야에서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고 엄격히 단식하던 것을 본받아 자신의 희생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실천하는데 노력해야 함. 자신을 이기는 극기의 자세를 요구. 40일 동안 단식과 금육을 통해 절약한 것을 모아 두었다가 가난한 이웃들에게 나눠주어야 함.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기도, 미사참여, 사랑의 나눔 등을 실천.


단식의 의미
, 형식, 신자들의 의무에 관한 규정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묵상. 참된 그리스도 교인으로서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에 동참한다는 의미에서 행하는 단식은 초대 교회시대부터 사순절 기간과 사계의 재일 중 신자들이 지켜야 할 의무의 하나로 행해짐. 단식 규정은 상당히 엄격. 단식으로 절약된 양식은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는데 사용되도록.

자료 출처 http://www.catholic.or.kr/ 가톨릭인터넷 Goodnews 굿 뉴스

Vatican Holy See 바티칸 2010년 사순절 http://www.vatican.va/liturgical_year/lent/2010/index_en.htm

 

 

이번 사순 시기를 맞이하여, 성당에서 집중하여 기도 할 제안들을 나무에 걸어놓아 하나 들고 왔다. “Pray that all Christians may be light for the world by living out their faith in service.”  마침 방학인지라 금식에도 참여한다. 매일 김수환 추기경님의 말씀을 하나씩 찾아 적겠다. 비록 학교가 시작되면 일상으로 돌아 갈 테지만, 방학 동안 꾸준히 할 것을 다짐하고, 이 후 에도 추기경님의 어록과 기도, 묵상, 은 계속 잇겠다. 4 22일 까지니 일일일식을 해야겠다.

하루하루 김수환 추기경을 기억하며  

3/23 Wed

자신을 불태우지 않고는 빛을 낼 수 없다. 빛을 내기 위해서는 자신을 불태우고 희생하여야 한다. 사랑이야말로 죽기까지 가는 것. 생명까지 바치는 것이다. 그러려면 자기를 완전히 비우는 아픔을 겪어야 한다.

3/24

사랑 - 머리와 입으로 하는 사랑에는 향기가 없다. 진정한 사랑은 이해, 관용, 포용, 동화, 자기를 낮춤이 선행된다.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 데 칠십년 걸렸다."

3/25

 

3/26 Sat

"이웃과 절대로 등지지 말라. 이웃은 나의 모습을 비추어 보는 큰 거울 이다. 이웃이 나를 마주 할 때, 외면하거나 미소를 보내지 않으면, 목욕하고 바르게 앉아 자신을 곰곰히 되돌아 봐야한다."

3/27

"인간은 영원을 향해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빈 그릇은 영원을 향한 것입니다. 때문에 이 목마름은 '영원에의 동경, 향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3/28

"태양이 구름에 가려 빛나지 않을지라도 나는 태양이 있음을 믿습니다. 사랑이라곤 조금도 느껴지지 않을지라도 나는 사랑을 믿습니다. 하느님께서 침묵 속에서 계시더라도 나는 하느님을 믿습니다." 이 시는 제 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퀼른 땅에 군사용으로 건설된 지하동굴 속에 새겨져 있었습니다.

3/29

마더 테레사 수녀님의 기도 "오 사랑의 주님 ! 존경받으려는 ... 사랑받으려는 ... 칭찬 받으려는 . .. 명예로와지려는 ... 찬양 받으려는 ... 선택 받으려는 ... 인정 받으려는 ... 인기 끌려는 ... 욕망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소서."

3/30 Wed

약속을 지키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것이 인간입니다. 얼마만큼 사랑할 것인가?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 성할 때나 병들 때나 죽을 때까지 사랑한다고 약속하였습니다. 전적이고 조건 없는 사랑입니다. 결코 내 마음이 내킬 때에만 사랑하겠다. 기분이 좋을 때에만 사랑하겠다는 식이 아닙니다. 

3/31

세상은 시간적으로 새날이 오고 새해가 되었다고 해서 새로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과 정신이 '진실된 인간, 정의로운 인간, 사랑하는 인간'으로 달라질 때에 비로소 새로워집니다.

4/1

형제들을 부하게 만드시기 위해 당신 스스로 비우신 주님을 본받아 우리도 주님과 형제들에 대한 사랑으로써 남을 위해 자신을 비우는 그 가난을 본받게  하소서. 특히 가난한 자, 약한 자, 소외된 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그들에게 앞서 봉사하는 자 되게 하소서.

4/2 Sat

 

4/3

 모든 이와 모든 것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자기비움'을 거듭 묵상해야 합니다. 그분은 높은 분이었지만 낮아지고 부한 분이었지만 우리를 위해 가난한 자 되었는데 나는 거꾸로 낮은 자가 높이 오르고 가난한 자가 부하게 되어 주님과 '반대로 살게 되었구나'하는 생각을 자주합니다.

4/4

 

4/5

 

4/6 Wed

 

4/7

"아버지, 이 몸을 당신께 바치오니 좋으실 대로 하십시오. 저를 어떻게 하시든지 감사드릴 뿐, 저는 무엇에나 준비되어 있고, 무엇이나 받아들이겠습니다. 이 밖에 다른 것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내 영혼을 당신 손에 도로 드립니다. 당신을 사랑하옵기에 이 마음의 사랑을 다하여 제 영혼을 바치옵니다. 하느님이 네 아버지시기에 끝없이 믿으며 남김없이 이 몸을 드리고 당신 손에 맡기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저의 사랑입니다." 

4/8

땅은 더 이상 내려갈 수 없을 만큼 모든 것 아래에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땅을 딛고 살지만 땅의 고마움을 모릅니다. 뿐더러 땅에다 모든 더러운 것, 썩은 것을 다 버립니다. 그러나 땅은 자신을 열고 모든 것을 받아들입니다. 땅의 이 겸손을 배우세요. 그리하여 여러분이 겪은 모든 것, 병고, 고독, 절망까지 다 받아들이세요.  

4/9 Sat

고통은 참으로 우리를 괴롭히는 악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되도록 고통을 면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고통이 없을 때, 고통을 모르는 인간, 고통이 없는 인생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하느님을 더 찾고 모두가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 되겠습니까? 오히려 하느님을 잊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나 역시 고통이 없었다면 아마도 하느님을 전혀 찾지 않았을 것입니다. 고통이 없는 인생은 술에 물 탄 것처럼 싱겁고 아무런 깊이도 없을 것입니다.

4/10

당신 스스로 비우신 주님을 본받아 우리도 주님과 형제들에 대한 사랑으로써 남을 위해 자신을 비우는 그 가난을 본받게 하소서.  

4/11

이것은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고 오직 하느님만이 채울 수 있습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꿈입니다. 이 꿈의 실현이 인간의 구원입니다. 하느님은 우리 한 사람에게 이 꿈을 지니고 있습니다.  

4/12

 

4/13 Wed

평화를 깨뜨리는 모든 것을 이기고 없애야 합니다. 불화의 뿌리를 뽑아야 하고, 남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오만, 믿지 않으려는 불신, 용서할 줄 모르는 미움, 나만을 위하는 소유욕과 지배욕, 질투와 경잼심을 버려야 합니다.

4/14

 

4/15

하느님이 가난하다는 사실은 명백하게 알려져야 합니다. 하느님은 있는 자체이시나 아무 것도 갖지 않았습니다. 갖지 않았을 뿐 아니라 어떠한 소유물도 필요로 하거나 원하지 않았습니다.

4/16 Sat

겸손한 사람만이 인생을 값지게 사는 슬기를 배울 수 있습니다.  

4/17

주변에서도 건강에 대한 확신을 가지라고 권유해 주시는 분이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래 사는 것'보다 '기쁘게 잘 사는 것'이 더 소중한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4/18

 

4/19

 

4/20

내 이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차를 타는 사람이든, 걸어 다니는 사람이든, 교통법규를 성실히 지키고 실수 할 때에는 지체없이 용서를 먼저 청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4/21

 

4/22 Easter

 

 

기도, 묵상, 참회 - 속죄, 보속, 참회, 자신의 쇄신

3/23
하나씩 천천히 짚어보자.

속죄 상대방에게 지은 죄를 씻고 상호간에 범죄 이전의 유대를 회복하는 일. 그리스도교에서는 하느님을 거슬린 인간의 죄를 구세주 그리스도가 대신 보속하고 인류를 하느님과 화해시킨 일을 지칭한다. 구약성서에서 속죄는 야훼께 죄를 지은 이스라엘 백성이 야훼와 친교를 회복하는 일. 야훼 편에서는 자비의 행위, 이스라엘 백성 편에서는 야훼께서 지정한 특정 행위를 이행하는 일. 야훼께서 지시한 속죄예식을 통하여 자신의 죄를 벗었던 예에서 발전. 속죄제물을 바침으로써 야훼의 분노를 풀어드린다는 속죄사상은 퇴조. ‘야훼의 고난받은 종이 인간의 죄를 대신 보속해 준다는 예언을 믿기에 이르심. 야훼께서 인류의 죄를 그에게 지우셔서 그 몸에 채찍을 맞으므로 우리는 성하게 해주었고, 그 몸에 상처를 입으므로 우리의 병을 고쳐 준 것.’ 신약성서에서 고난받는 종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을 죄에서 풀어주셧고’ ‘우리를 당신과 화해하게 해주셨다이 속죄는 하느님이 베푸신 자비이며 진실한 대사제,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십자가의 피로인한 결과. 속죄개념은 속죄의 근본을 이루는 의화관념과 관련.

속죄를 그리스도의 구석사업과 관련지어 죄에 대한 보속이라고 본 관점이 있음.

보속 – satisfaction 넓은 의미로 끼친 손해의 배상 및 보환. 그리스도 신학에서는 죄로 인하여 하느님의 벌을 받음. 그리스도의 죽음이 세상의 죄를 충분히 보속한다고 주석한 데에서 비롯. 가톨릭 윤리신학상의 보속은 고백성사의 본질적 요건의 하나로 이미 지은 죄를 징계하는 벌, 영혼의 허약함을 치료하여 다시 범죄하지 않도록 하는 약. 세례 받기 전에 범한 죄는 성세성사로써 벌까지도 사하지만 세례 후에 범한 죄는 고백성사로 사하여진다. 그러나 죄의 벌까지도 사하여지는 것이 아니고 지옥벌만 사하여 질 뿐 잠벌은 남아있다. 잠벌이란 영원한 벌에 대하여 일시적인 벌, 혹은 연옥벌이라는 뜻이며, 우리는 자신이 기워 갚아야 하는 것이므로 자연히 보속이라는 것이 필요.

교회는 그리스도 보속이 우리에게 적용되어 당신들이 회개했다는 증거를 행실로써 보이시오라는  말씀대로 보속이 필요하다고 하였음. 구약성서도 죄는 용서받았으나 벌은 남아있는 경우가 많음. 원조는 은총상태로 회복되었으나 고통과 죽음은 며치 못했고, 모세의 불신은 용서받았으나 약속한 땅에서는 제외되었다. 신약성서에도 하느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그 행실대로 갚아 주실 것이다라 했고, ‘나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몸으로 채우고 있습니다라 하였다.

참회 – repentance 참회의 일반적 의미 과거의 범죄사실을 기억, 현재 죄의 상태에 있음을 인식적 요소와 죄를 지었음을 슬퍼하고 죄가 사해지기를 원하며, 죄를 혐오하는 의지적 요소를 포함하는 개념. 참회는 죄악의 상태에서 벗어남을 목적.

참회는 인간이 개인적 죄의 용서를 받아 의화되는 경우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관하여 역사적으로 문제가 되었음. 죄의 용서를 받기 위해서는 용서해 주시는 하느님의 행위와 교회의 대표자인 사제의 사죄 및 통회, 고백, 보속을 하는 참회자의 행위가 필요. 4자의 행위 중 죄의 용서라는 효과를 가져오는 실질적인 요건은 어느 행위인가 하는 문제가 그것. 아퀴나스에 의하면, 참회자의 행위는 성사의 재료요, 사제의 사죄는 형상, 인데, 양자는 동등하게 죄의 용서를 가져오는 유효한 원인작용을 이룸. 전체과정에서 최종적 원인작용은 하느님께 속하므로, 성사적 표시를 도구적 원인작용의 행사라 함. 성사를 받으려는 뜻을 겸한 상등통회를 한 참회자는 고해성사의 예식을 받기 전에 죄의 사함을 받았음을 인정. 성사는 예식 자체에 국한되는 개념이 아니라 발전해 가는 상태로 보아야 하므로 참회자의 첫 행위에서 성사가 시작되어 성사 예식 자체에서 절정에 달한다는 것.

자신의 쇄신 신도 개인, 수도회, 특히 교회가 그 모형인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 교회는 신인 (神人) 그리스도를 본받아 신인양성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교회는 신적 존재라는 점에서 오류가 있을 없으나 인적 (人的) 실재라는 점에서 교회 안에 과실과 죄악이 현존 있는 . 한편 교회는 인간 성화를 (聖化) 이룩하는 원죄를 가지고 있으며 성화되는 과정에서 있는 신자들을 포함. 따라서 거룩하지만, 순례하는 교회는 바로 죄인을 구하러 오신 그리스도의 뜻대로 죄는 거부하지만 죄인은 맞아들인다. ‘그리스도는 거룩하시고 무죄하시고 죄를 모르시며 다만 백성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오셨지만, 교회는 품안에 죄인들을 품고 있으므로 성스러운 동시에 항상 정화되어야 하며 회개와 쇄신을 끊임 없이 계속하는 것이다’.

교회가 계속 정화되고 쇄신되어야 이유는 근본적으로 그리스도의 구원 신비의 무한성에 대한 인간의 인식과 실천 능력의 유한성에 있다. 신자 각자의 차원에서 아니라 공동체의 제도적 차원에서도 반성과 쇄신이 계속되어야 . 복음에 대한 인간의 인식과 실천의 유한성 때문에 어느 특정한 시대나 지역이나 인간들의 제도나 방법이, 모든 시대의 인간들에게 복음을 선포해야 교회의 보편적 사명을 수행하는 도구로서는 본질적으로 불완전. 따라서 교회는 시대, 환경, 대상, 인물이 변함에 따라 구원의 진리를 정확하고 유효하게 선포하고 실천하기 위하여 방법을 쇄신, 제도를 개혁, 생활을 현실에 맞게 조정. ‘교회의 쇄신은 모두 본질적으로 교회사명에 대한 충실성에 있는 것이므로…나그네 길에 있는 교회는 인간적이며 현세적인 제도로서 언제나 필요한 혁신을 계속하도록 그리스도께 불리움을 받음’.

교회는 이러한 쇄신의 능력을 주님의 약속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미 갖추고 있다. 쇄신의 원리는 더욱 복음정신에 충실해야 한다는 . 위하여 교회는 신앙의 유산을 거룩히 보존하고 성실히 진술하기 전에 경건하게 들어야함. 신앙의 원천인 복음에로 돌아가야 거기서 쇄신의 방향을 찾을 있음. 원래에서 연역할 있는 방향은 전통과 진보의 조화. 초월성과 내재성의 조화, 다양성과 통일성의 조화, 내용과 표현의 일치, 대화와 협력의 자세 .

"자신을 불태우지 않고는 빛을 낼 수 없다. 빛을 내기 위해서는 자신을 불태우고 희생하여야 한다. 사랑이야말로 죽기까지 가는 것. 생명까지 바치는 것이다. 그러려면 자기를 완전히 비우는 아픔을 겪어야 한다."

무턱코 고른 첫 어록인데, 첫 날에 극히 적합하다. 나 자신의 희생, 이상향을 향한 노력. 사랑, 어쩌면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생명을 쉽게여겼고, 그것은 사랑을 위해서가 아니였다. 아무런 이유도 없었고 논리도 없었던 움직임들. 나 자신을 비우고 아픔을 겪고, 그것을 꺽어버리고 싶다. 하지만 이 모든 것, 바람 조차도 비워 버리리라. 옳은 것을 채우기 위해서는 모든, 나 자신 조차도 비워버리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것이 옳다.
딱히 오늘부터 해야지 - 라는 생각은 없었다. 그저 오늘 시험이 끝났을 뿐이고, 오늘 저녁부터 해야겠다 - 라고 마음이 생겨, 시작하였을 뿐.모레인 금요일 부터는 주말 여행을 계획하고 있어 매일 글을 올릴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펜과 김수환 추기경님의 책을 꼭 챙겨가 practice를 소홀하지 않겠다. 예수님은 40 일을 광야에서, 악마의 유혹과 싸우며 수행을 하셨다. 나는 주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나 자신을 싸우면 되는 것이기에, 비교 할 수 없는 practice이다. 할 수 있음을 기억하며, 꾸준한 의지를 기르겠다. 선을 그어놓으니 마음이 기이하게 편안하다. 즉흥적이고 매우 나쁘지 않은 시작이다.
22세, 나의 첫 사순시기라고 할 수 있겠다. 이 또한 비록 시작 또한 늦고, 학교와는 병행이 어렵겠지만, 완전하지 못하지만 나의 첫 노력임으로 보다 열심히 해야겠다. 사순에 대한 이해 또한 부족함으로 시작하였고, 여전히 부족하다. 인상 깊은 점은 가난한 이들과 나누어야 한다는 것, 나 자신을 비울 수 있다는 것.


3/24
사랑 - 머리와 입으로 하는 사랑에는 향기가 없다. 진정한 사랑은 이해, 관용, 포용, 동화, 자기를 낮춤이 선행된다.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 데 칠십년 걸렸다."

둘째날. 이른 아침 일어나 산에 다녀왔다. 집에 돌아와 내일 심부름을 하고 점심을 먹고가라는 할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먹을 생각을 하니 금식 이 후 처음의 식욕이 돋았다. 잠을자고 2000시 할머니의 전화에 다시 깨었다. 통화 후,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에 끓여져 있던 콩나물 국과 고구마를 먹었다 - 아아, 얼마나 미약한 나의 모습인가. 고민은 대략 2분에 불과하였다. 정신은 음식을 찾았고, 몸을 움직였다. 기도를 드리고 국과 고구마를 20분 가량에 걸쳐 먹었다. '먹어도 된다'라는 생각을 하니, 몸의 움직임을 멈출 수가 없었다. 판의 미로에서 요정의 말을 어기고 포도를 따아 먹은 오필리아의 모습이 나와 겹치며, 분노하던 요정의 모습이 생각났다. 아아, 미약한 나의 의지에 큰 실망이다. 이러한 극단적인 식단은 몸에 좋지 않다며 따위의 구차한 변명을 드는 나의 모습을 보며, 국을 떠 먹으면서도 아쉬웠다. 사람이란, 아니 나란 허용되는 범위가 생기는 순간 그 범위의 틀을 제 멋대로 정하는 것 같다.

다음 주에는 크로스 컨트리 스키 약속과, 등산약속이 있다. 둘 다 날짜가 정확히 잡히지는 않았지만, 절대적으로 굶기는 어려울 것 같다. 예상은 한 일이지만, 이유가 이유인지라, 그저 죄송 할 따름이다. 새로운 기준을 세워야 할 것 같다.
현대인을 위한 금식 방법을 다시 읽어보니 Ash Wednesday 와 Good Friday 에 금식을 하기로 되어있다.




3/26
"이웃과 절대로 등지지 말라, 이웃은 나의 모습을 비추어 보는 큰 거울이다. 이웃이 나를 마주 할 때, 외면하거나 미소를 보내지 않으면, 목욕하고 바르게 앉아 자신을 곰곰히 되돌아 봐야한다."

오늘 아침 눈을 뜬 순간 느낀 감정 - 실망과 죄책. 아아, 이유가 이유이니 만큼, 잘 해야한다는 생각에, 성스러운 일이기에, 보다 잘하고 싶었는데 눈을 뜨자마자 굉장한 무게와 실망감을 느꼈다. 저녁인 지금, 실망감은 커졌을 뿐. 나의 신앙심이 이렇게 쉽게 무너지다니. 도리에 맞지 않다. 자신을 보다 , 마음을 보다 의지를 보다, 굳게 심어야한다. 그것이 목적이고, 가장 어려운 일이다. 이렇게나 쉬워서야, 아무런 발전도 있을 수 없다.
격일 금식과, 격일 일일일식을 해야겠다. 애초 10일 가량을 굶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등산을 다닌 다는 것이 무리한 계획이였다. 다만 약속이 이렇게 빨리 잡힌 것이 계획의 변화를 일찍 불렀을 뿐. 합리화라 하여도 사실이고, 계획은 다시 세우면 되는 것이다. 아직 셋째날이지 않은가.
오전, 일어나 수녀님과 매리 제인에게 편지를 썼다. 패추릭에게 카드와 선물도 주었다. 옷장을 정리하여 옷 40 여 개를 기부하고 할머니 댁에 가 점심을 먹고 작은 고모에게 심부름을 다녀와, 성당에서 미사를 드렸다. 집에와 떡을 먹었다. 이야말로 실망스러운 일이였다. 나에게, 주님에게 좋지 않은 일이다. 성체를 모신 사실 조차 잊고, 나 자신을, 주님을 더럽히다니. 생각이 짧은 것을 떠나 없었다. 의지, 의지, 의지 - 자제하는 의지가 1보다 0에 가깝다. 1mm 라도 움직여야 할 텐데, 쉽지 않음은 불가능이 아님을 다시 기억하자. 할 수 있다.
이웃과 절대로 등지지 말라는 추기경님의 말씀. 나에게 사람이란, 커뮤니티란 즐겁기도 하지만 피하고 싶기도하다. 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 대화의 불필요함, 말의 복잡성 등이 이유에 포함된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서로로 인해 존재하고, 서로에게 밖에 의지 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미니멀의 인간관계가 아닌, 타인이 나를 대하는 태도로써 나 자신을 돌아 볼 수 있으려 - 이에는 노력이 필요하겠지. 상대의 태도를 관찰해야하고 분석해야하니, 나에게는 습관이 되지 않은 것이지만, 이롭겠지. 하지만 여전히 나는 이러한 프랙티스가 필요한 것인지 모르겠다. 나에게 어려운, 새로운, 편치 않은 일이기에 기억해보려 한다.

3/27
"인간은 영원을 향해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빈 그릇은 영원을 향한 것입니다. 때문에 이 목마름은 '영원에의 동경, 향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Rattlesnake ledge에 다녀왔다. North Bend는 가까우면서도 환상의 풍경이다. 새로운 아름다움의 발견에 감사할 따름. 아침에 일어나 기도로 시작하였다. 비록 짧은 기도였지만, 그러한 나의 모습에 감사함을 느낀다. 산에 다녀와 샤워를하고 고구마와 떡을 한 접시 먹었다. 금새 배가 구릉구릉하더니 배가 부르다. 이렇게 사람은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 기도와 작은 양의 목을 축이고 배를 채울 것이면 족하다. 이것이 이번 프랙티스의 가장 중요한 깨달음이다. 나 그 동안 얼마나 넘치고 풍족히 살아왔는가. 나 그 동안 얼마나 많은 낭비와 그로 인한 상처를 남겼는가. 부족히 사는 이들에 대한 배려의 결여였고 자만한 나의 옳지 못한 기준이였다. 새로운 기준이 필요한 것이다. 더럽고 부당한 것을 잊고, 미니멀하고 옳은 것을 보다 지향하는, 그러한 새로운 기준의 성립. 부활절 까지 이렇게 일일일식을 실천해야겠다. 물론 어려움도 있을테지만, 꾸준히 해보겠다. 할 수 있다.
수녀님에게 말씀 드린 것 처럼, 수녀님께서 일러주신 것 처럼,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걱정 주님께 맡겨두며, 기쁜 마음으로 주님의 부활을 준비해야겠다. 어제의 김수환 추기경님의 글이 다시 생각난다. 고립을 지향하는 것은 분명 옳지 않다. 많은 기준들이 모여, 가장 옳은 기준을 성립하는 것이다. 많은 기준들의 분포를, 가장 옳은 곳에 두는 것이 중요하다. 보다 옳은 이들과의 소통과 나눔이 필요하고, 그로 부터 배우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렇게 수녀님, 뿐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바른 것을 배우고, 바른 의견을 수용하며, 새로운 나를 성립 할 수 있다.
우리는 언제나 목마르다. 적어도 나 자신은 그러하다. 만족한다고 느끼기도 하지만, 늘 보다 나음을 바라고, 완벽 할 수 없음을 인지한다. 이렇게 부족한 나의 모습은 당연한 것이다. 우리는 영원을 향해 만들어졌다고 추기경님이 말씀하신다. 채워지지 않는 것은 언제나 존재한다. 그것을 주님으로, 성모님으로 채울 수 있을 것이다. 성인들의 길을 돌아보고, 그들의 배움을 이해하려 노력해야한다. 그렇게 부족한 나를 계속 채우고 비워야한다. 모든 것을 비우고, 오로지 주님의 기준으로 나를 채우리 - 할 수 있다, 아멘.

3/28
"태양이 구름에 가려 빛나지 않을지라도 나는 태양이 있음을 믿습니다. 사랑이라곤 조금도 느껴지지 않을지라도 나는 사랑을 믿습니다. 하느님께서 침묵 속에서 계시더라도 나는 하느님을 믿습니다." 이 시는 제 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퀼른 땅에 군사용으로 건설된 지하동굴 속에 세겨져 있었습니다."
어제 마침 'Schindler's List'라는 영화를 보아, 이 문구가 보다 와 닿는다. 주인공 쉰들러는 돈으로 할 수 있는, 그의 삶으로 할 수 있는, 그 무엇으로 할 수있는 가장 의미있는 일을 하였다 - 목숨을 구하였다. 전쟁의 풍경은 상상 할 수 없고, 보아도 믿을 수가 없다. 시대를 살았던 이들도, 들려오는 소문들을 믿을 수 없다하였고, 전해지는 이야기들도 너무나 터무니가 없어 헛 소문으로 취급되기도 하였다. 와중에 하느님을 믿을 수 있다는 것은. . Into the Wild 와 대조적으로, 하느님을 믿는 것은 환경에 충분히 좌우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연을 바라보고 있자면 하느님을, 굳이 하느님이라는 성서의 인물이 아닌더라도, 우리 이외의 존재를, 기운을 느낄 수 있다. 매일 피의 향을 맡고, 구토 악취 폭력 공포에 쌓여 산다면, 악마의 기운을 믿을지도 모르고, 역으로 하느님에게 더 메달릴지도 모르겠다.
무튼 오늘 문구의 중점은, 보이지 않는 것, 느껴지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인 것 같다. 믿음이라 - 단순하고도 어려운 감정이지 않은가 생각해본다. 나 자신을 믿는 일 또한 많은 시간, 노력, 용기, 훈련이 필요하다. 하느님을 믿는 일 또한 그러하다.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것은 습관과도 비슷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도움을 청하는 것이 익숙치 않아, 나 자신에게 의지하기 일쑤이고,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의 짐도, 나누는 방법을 몰라 혼자 짊어지기도 한다. 그렇게 하느님에게도 청하는 방법 또한 어색 할 수 있고 익숙 할 수 있다. 아직 나에게는 많은 것들이 어색하다. 혼자가 편하기도 하다. 하지만 살아 갈 수록 의지하는 방법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한다. 오늘 자동차 사고 후에도, 고모에게 도움을 청하니 도움을 받을 수 있었고, 지난 주 등산 계획 중에도 고모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의지가 어색하기도하고, 싫기도 하지만, 도움이란 받을 수 있는 것이고, 상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기도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렇게 나 자신이 얼마나 미숙한지를 기억하고, 도움을 청하는 방법을 조금씩 보다 익혀야 겠다고 생각한다. 의지하고 싶지 않더라도, 공존하는 것을 배우는 것 같다. 나 혼자 할 수 있다는 것은 자만감 일 수도 있겠다 싶다. 하느님 또한 마찬가지이다, 나 자신을 보다 비우고, 하느님의 기준을 보다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렇게 하느님께 의지하고, 맡기고, 나의 질문들과 고민들을 넘기면, 그 분은 나보다 옳은 올바른 기준으로, 정답을 주시리라.


3/29
마더 테레사 수녀님의 기도 "오 사랑의 주님 ! 존경받으려는 ... 사랑받으려는 ... 칭찬 받으려는 ... 명예로와지려는 ... 찬양 받으려는 ... 선택 받으려는 ... 인정 받으려는 ... 인기 끌려는 . .. 욕망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소서."
더러운 하루, 좋지 않을 뿐 더러 괴롭습니다. 오전에 등산을 다녀오고, 오후에 많은 음식을 먹었습니다. 필요 이상을 - 최소한을 지키려 했는데, 더불어 간식에 와인까지 마셨습니다. 미루어둔 많은 것들이 한 번에 몰려오듯, 그 동안 참았으니 괜찮을거라는 합리화로, 다짐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다짐의 무너짐은 한 두번이 아닙니다, 오늘은 더욱이나 어렵습니다. 약쟁이가 Overdose 로 죽은 친구를 바라보는 듯한 기분이 들어 두려웠습니다, 죽고싶지 않은데 - 나의 무너진 다짐들, 이 나를 죽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떠한 대안도 필요치 않다는 것을 압니다, 그저 멈추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 어렵네요. 당신을 기억하고, 당신의 기준, 당신의 희생을 몸소 닮으려 노력하지만 어렵습니다. 아아 어렵지만 할 수 있다고 , 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고. 하아, 다짐합니다 - 이 못난 버릇을 버리겠습니다. 다시는 절대로, 어떠한 합리화도 용납하지 않으리요 - 기도와 우정으로 노력하고 버리고 고치겠습니다 - 도와주실거라 믿습니다. 할 수 있고 할 것입니다, 이것이 나를 죽이도록 둘 수는 없습니다. 아멘 아멘 아멘.
이 모든 것이 욕심과 욕망때문이겠지요 - 옳지 않은 기준에 나를 맞추려는 더러운, 부질 없는 욕망. 옳은 것 만 따르겠습니다, 옳지 않은 기준은 버리고, 그것에 나를 맞추려는 더러운 움직임도 멈추겠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비우고, 모든 것을 비우고, 비우고 비워, 옳은 것 만이 가득 할 수 있도록, 넘칠 수 있도록, 나를 비우겠습니다. 아멘 아멘 아멘.


3/30
"
약속을 지키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것이 인간입니다. 얼마만큼 사랑할 것인가?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 성할 때나 병들 때나 죽을 때까지 사랑한다고 약속하였습니다. 전적이고 조건 없는 사랑입니다. 결코 내 마음이 내킬 때에만 사랑하겠다. 기분이 좋을 때에만 사랑하겠다는 식이 아닙니다. 
원하던 시간보다 일찍, 보험회사의 전화로 잠에서 깼다 - 아아 인내심의 시험. 따라서 오늘은 사순에 대한 기억으로 하루를 시작하려한다. 복잡한 일이 생겨도, 번거로운 일이 생겨도, 어려운 조건에서도 바른 마음가짐으로 판단커나 안정을 잃지 않도록. 오늘은 친구와 약속이 있다, 나가서 몇가지 일을 보러한다, 이렇게 하루하루 작은 일들로 체워지는 생활이 이상하다. 특별한 일이 없어도 이러한 소소한 일들이 나의 삶을 체우다니. 날씨가 부슬부슬 비가 내리며 하늘이 허옇다 - 전형적인 시애틀 날씨. 보험일만 아니면 꽤나 기분이 좋았을 날이다. 하아, 침착히 해결하면 되리라. 어제의 피로로 얼굴이 붓고 속이 좋지 않다. 입안은 모래를 씹은 듯하며 눈의 붓기가 무겁다. 미래를 기억하며, 곧 잊혀질 일들임을 기억해본다. 오랜만에 만나는친구라는 생각에, 기분이 조금 나아진다. 괜찮다 괜찮다 알 이즈 웰 - 기도로 승화 할 수 없는 일이란 없다. 아멘 - 약속을 지키는 일, 그은 선을 넘지 않는 일, 할 수 있다, 지킬 수 있다. promise 지키리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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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시간적으로 새날이 오고 새해가 되었다고 해서 새로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과 정신이 '진실된 인간, 정의로운 인간, 사랑하는 인간'으로 달라질 때에 비로소 새로워집니다."
어제 마신 커피 덕인지 잠을 한 숨도 잘 수 없었습니다. 뜬 눈으로 밤을 새며 낙서를하고 돈 보스코의 생애를 읽고, 영화를 보았으며 여러 생각도 하였습니다. 0530시가 되자마자 카페로 달려가 커피 한 잔과 스콘을 하나 먹었습니다. 커피로 이루지 못한 잠인데 다시 커피를 마시다니 - 참으로 어리석습니다. 속이 좋지 않습니다. 정말이지, OD 로 죽은 친구를 보는 듯, 아픔이 조금씩 나타나고 잇고 - 그것의 충격은 가히 말 할 수 없습니다. 잠을 못 잤더니 보다 지치는군요. 머리가 무겁고 눈을 똑바로 뜰 수 없습니다 - 아무래도 집에가서 자야 할 것 같네요 - 머리가 너무나 피곤합니다.
당신이라는 새로운 의지를 찾을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많은 것은 이론적으로 생각하는 여유의 시간 - 차분함이 조금은 생긴 것 같습니다. 밤 새 여러가지 잡념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 하지만 밤은 딱히 길지 않았습니다. 적당한 정도라 할까요 - 감사합니다. 변화 - 많은 이가 간절히 바라지만 , 실행에 있어 , 행동에 있어 변화를 주지 않고 결과적 변화를 바라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 또한 수 년을 그렇게 보냈고 , 이제는 몸이 지쳐 - 괴로움의 요동을 치기 시작하였습니다. 선을 긋고 약속을 하고 다짐을 하였습니다 - 더 이상 용납 할 수 없다고 - 안된다고. 이제 당신에게 의지하겠습니다. 당신과 마리아님과 묵주에 의지하여 나의 원동력을 찾겠습니다 - 나의 시간의 에너지의 주인을 당신으로 섬기겠습니다. 기도로 승화 할 수 없는 것은 없을테지요 - 도와 주실테지요 - 괜찮을테지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 아멘.
좀 잤다 - 마음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자고 일어나 최소한이 아니지만 밥을 먹었습니다. 최소한을 실천한다는 것 - 예외는 있어야하는 것일까요. 모르겠습니다. 자신을 합리화하는 모습이 너무 싫고, 물론 최선의 방법이 아니겠지만 마음만큼 강하지 못한 자신을 자주 느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약한 마음 모습 모두 주님에게 의지하여 맡기도 가벼운 마음으로 지내고 싶은데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기도로 나쁘지 않은 하루를 보내고있습니다. 약속을 하나 취소하였고 조금 쉬었습니다. 당신을 기억하는 하루를 보낼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몇가지 생산적인 일을하였고 괜찮을 수 있음을 기억하려 노력하고, 일부러 밖으로 나왔습니다. 아침 내내 내리던 비도 그쳤네요 - 내일은 약속이 하나 있습니다. 친구를 만나야 할 것 같습니다. 사람들을, 타인을 외면 말라던 김수환 추기경님의 말을 기억해봅니다.
새로운 날이 새로운 모습은 아니라는 추기경님의 말씀 너무나 옳습니다 - 몇 날이 지나고 몇 해가 지나도 변하지 못한, 버리지 못한 습관들 - 몹쓸 버릇들이 있습니다. 이것들을 당신에게 맡기고 저의 죄를 달게 받되 용서를 구합니다.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모두 당신의 손에 맡기겠습니다. 아무것도 욕심내지 않고 , 옳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당신께 묻고 - 당신의 기운을 따르겠습니다. 딱히 하느님에 대한 신앙이 많은 이들의 것과 같지 않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당신은 포용하고 수용하고 있을터라 믿습니다. 당신은 우리의 인지를, 인식을 넘어 , 저희의 범위와는 무관한 무한함이실테니까요. 감사합니다 , 노력하겠습니다, 맡기겠습니다, 아멘 - so be it.

4/1
사월이네요. 사순시기를 처음 접하던 방학 맞이하던 날 보다 마음이 많이 풀렸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밥도 먹고있고 간식도 먹고있고 , 굶음이 없으니 기도도 덜하네요. 몇 일 동안이지만 기복이 있고 흐름이 있네요. 달리기를 시작하기 위해 이것 저것 준비를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것을 시작한다는 듯 깊음과 더불어 당신을 보다 기억하겠다는 다짐 , 꾸준함 또한 기억해봅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비우어야하는데 쉽지 않습니다. 욕심을 버리는 것이 쉽지 않다는 말이 요즘 들어 세삼 느껴집니다. 그래도 포기않고 다짐에 다짐을 해 봅니다.
"형제들을 부하게 만드시기 위해 당신 스스로 비우신 주님을 본받아 우리도 주님과 형제들에 대한 사랑으로써 남을 위해 자신을 비우는 그 가난을 본받게 하소서. 특히 가난한 자, 약한 자, 소외된 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그들에게 앞서 봉사하는 자 되게 하소서."
비움 비움 비움 -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이번 사순시기에 깨닳았습니다. 우리가 , 내가 얼마나 적게 필요로하는지 , 아무것도 필요치 않다는 것을 깨닳았고, 가장 최소한으로도 살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잊기 쉬운 이 사실을 잊지 않도록, 기억하도록 도와주세요. 기도드립니다. 나를 위해가 아닌, 형제를 위해 산다는 것 - 저에겐 어려운 일입니다. 타인보다 자신이 무조건인듯 앞섭니다. 보다 너그럽고 관용적이며 포용적일 수 있는 모습이 되도록 , 노력하겠습니다. 다짐에 다짐에 다짐 - 실천을 전달하겠습니다.


4/3
"모든 이와 모든 것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자기비움'을 거듭 묵상해야 합니다. 그분은 높은 분이었지만 낮아지고 부한 분이었지만 우리를 위해 가난한 자 되었는데 나는 거꾸로 낮은 자가 높이 오르고 가난한 자가 부하게 되어 주님과 '반대로 살게 되었구나'하는 생각을 자주합니다."
어제 너무나 좋지 않은 하루를 보내었습니다. 다짐이 다시 무너졌습니다. 성당에서 7시간의 세미나가 있었는데 잠을 못 잤고 많은 유혹이 있었던 것이 원인이라고 핑계를 대봅니다. 하지만 근본적 원인은 제 자신임을 기억하며 크게 실망하였습니다. 미사도 드리고 성체도 모셨는데 죄스럽습니다. 마지막 날이라고, 다시는 안되리라고, 다짐해봅니다. 무려 문구도 읽지 않고 글도 쓰지 않았네요, 역시나 죄는 죄를 부릅니다.
오늘은 친구와 약속이 있어 글을 먼저 씁니다. 조금은 체계가 있는 하루이기도하고, 내일부터는 학기의 시작이기에 기대가 많습니다.
어제 아프리카와 자매를 맺은 본당들의 모임이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아프리카에 다녀왔고 그 곳의 본당들과 오랜 인연을 맺고 있습니다. 물과 같은 프로젝트들도 진행되고있고 꽤나 체계가 세워지고 있는 듯 합니다. 저 또한 언젠간 봉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만 졸업이 먼저 하고싶다는 생각도 듭니다. 하나하나 차곡차곡 정리된 삶을 살고싶습니다. 와중 늘 주님을 기억하고 기준으로 살고싶다는 생각 또한합니다. 그들의 미사음악은 참으로 흥겨웠습니다. 와중 쭈뻣쭈뻣 어색해하는 미국인들의 모습과 저의 어중간한 모습이 즐거웠습니다. 하느님의 단체에 이렇게 참여하는 것이 오랜만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초등학교 교리활동 이후로 미사 이외의 활동을 하지 않았네요. 수녀원에서도 미사만 참석 할 뿐, 사람들이, 사람들이 모이면 생기는 말들이 싫다며 늘 피하곤했는지, 옳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느님, 인도해주세요 - 비우겠습니다.

4/7
"아버지, 이 몸을 당신께 바치오니 좋으실 대로 하십시오. 저를 어떻게 하시든지 감사드릴 뿐, 저는 무엇에나 준비되어 있고, 무엇이나 받아들이겠습니다. 이 밖에 다른 것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내 영혼을 당신 손에 도로 드립니다. 당신을 사랑하옵기에 이 마음의 사랑을 다하여 제 영혼을 바치옵니다. 하느님이 네 아버지시기에 끝없이 믿으며 남김없이 이 몸을 드리고 당신 손에 맡기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저의 사랑입니다."

개강을 하여, 몇 일 소홀했네요 - 아직 부활절이 지나지 않았는데 말이지요. 사순시기나마 매일 당신의 뜻을 보다 되세겨 보려하였는데, 수업이라는 핑계로 마음이 나태해졌군요, 죄송합니다. 기도라고는 주님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 식사 전 기도 정도가 전부이네요. 다시 마음을 잡고 학교 생활 중에서도 당신을 기억 할 수 있도록 노력하리라 다짐합니다.
매일 김수환 추기경의 문구를 하나씩 읽으며, 그의 모습을 기억하고 닮으려는 것이 취지였는데 오늘의 문구는 경이의 감탄에 가깝네요. 그 중에서도 '어쩔 수 없는 사랑' 이라는 문구가 새롭게 와닿네요. 어디에서도 듣지 못한 태도인 것 같습니다. 저는 매일 당신께 이야기하고 고백하죠 - 노력하겠노라고. 당신을 향하겠노라고, 다짐하고 기억하지만 김수경 추기경님의 글은 자신의 능력과 힘이 아닌, 당신의 힘에 모든 것을 그야말로 맡기고, 자신은 어쩔 수 없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야말로 당신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태도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내가 나를 당신에게 맡기려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이미 당신에게 나를 맡겼기에, 나는 당신에게 드리고 당신의 손에 뉘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겠지요.
아, 참으로 아름다우신 당신이고 추기경님이십니다. 나의 삶에, 세계에 여러 영향들이 계시고 기준들이 있어주셔서 다행이고 감사합니다 - 그 중 가장 옳고 아름다운 것을 따르게 하소서, 맡기겠습니다. 놓겠습니다, 아멘.

4/8
"땅은 더 이상 내려갈 수 없을 만큼 모든 것 아래에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땅을 딛고 살지만 땅의 고마움을 모릅니다. 뿐더러 땅에다 모든 더러운 것, 썩은 것을 다 버립니다. 그러나 땅은 자신을 열고 모든 것을 받아들입니다. 땅의 이 겸손을 배우세요. 그리하여 여러분이 겪은 모든 것, 병고, 고독, 절망까지 다 받아들이세요."  

정말 울고싶네요. 하루 이틀도 아니고 몇 년째 다짐한 다짐들, 왜 여전히 지키지 못할까요. 내 자신을 놓겠다고 다짐하면서도 그것이 실현되지 않을 것이라는 안다는 듯이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왜 나는 자신을 놓지 못하고, 이렇게도 원하는데 나 자신을 당신에게, 우주의 기운에게, 만물의 손에 놓지 못할까요. .눈물도 나지 않아요. 몇 년 전까지만해도, 정말 낙엽 굴러다고 웃고 울었는데, 이제는 감정의 기복이 적어지고, 다짐의 무너짐에 대한 속상함도 줄어버렸어요. 감정의 '양'이 줄어버렸어요. 이렇게 무뎌져가는 자신의 모습이 싫은데, 이미 이렇게 되어버렸어요. 보다 자신을 조절하려는 것이 보여요 - 나의 움직임, 행동 하나하나를 조절하려는 모습. 자신을 놓겠다고, 노력하겠다고 다짐하지 않겠습니다. 당신이 알아서 저를 자유로 풀어주시리라 믿을게요. 나의 자유는 내가 주는 것이 아닌, 우주의 기운이 주는 것임을 그저 숨만 쉴게요, 그저 숨만, 숨만. 아무것도 하지 않겠어요 - 노력 따위도.
이 글을 처음 쓰기 시작하였을 때는 분명 정보전달적인 -이다 어투로 시작하여, 현재는 당신에게 빌고있는 대화형이군요. 음, 내 자신이 조금이라도 변하는 것인지 - 모르겠다. 내일 금식을 해야겠다, 나 자신을 위해, 우주를 위해, 자유를 위해. 누가 나를 제발 도와주었으면 좋겠는데, 도움을 요청 할 수가 없다. 어디에선가, 누군가가 말하기를, 왜 가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도움을 거부할까요? 역으로 도움을 거부하기 때문에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누구나 도움이 필요한 것이 사람이거늘, 자신감을 넘은 자만감이 사람을 궁지로 모는 것이 아닐까 - 이를 알면서도 궁지에서 나 자신을 가두고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는 나를. . 울지도 못하는 나를. .
절망까지, 이러한 처절함도 괜찮습니다 - 뭐 어쩌렵니까, 시간이 흐르는 것은 같고, 어떻게든 누구나 자신만의 방법들로 시간을 보냅니다.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실수이고 비겁하고 더럽지만 이러한 모든 모습들이 나의 일부이고, 나는 퍽이나 괜찮은 사람입니다. . 그럴거에요 아마. .


4/9
"고통은 참으로 우리를 괴롭히는 악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되도록 고통을 면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고통이 없을 떄, 고통을 모르는 인간, 고통이 없는 인생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하느님을 더 찾고 모두가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 되겠습니까? 오히려 하느님을 잊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나 역시 고통이 없었다면 아마도 하느님을 전혀 찾지 않았을 것입니다. 고통이 없는 인생은 술에 물 탄 것 처럼 싱겁고 아무런 깊이도 없을 것입니다."
추기경님의 글을 읽으며 - 정말이지 솔직하신 모습에 감사하고 존경스럽다. 고통이 없었더라면 하느님을 찾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씀, 추기경이라는 주목받는 위치에서 쉽게 할 수 있는 말은 아니다. 종교를 규탄하려는 수많은 이목이 있고, 반종교 지향적인 과학 단체들이 바다를 이룰 정도로 많은 오늘 날, 고통없이는 하느님을 찾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 매우 자극적이다. 하느님은 목발이다 - 라는 주장은, 반종교적인 주장들 중 주요 논리 중 하나인 것 같다. 그들은 종교를 나약한 이들의 정신적 자위정도로 여긴다. 나 또한 이러한 생각을 했었고, 고등학교 시절, 엄마와 부엌에서 이러한 대화를 나누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 엄마는 그러한 관점도 수용해야하며, 종교에 대한, 세상에 대한 공부를 더 해야한다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나 자신이 얼마나 아는 것 없이 당돌했는지 부끄러울 따름이다. 어찌되었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이지만, 자신의 위치에 따라 그것을 부정하거나 무시하기 마련인데, 솔직하게 글로 남길 수 있는 추기경님의 모습에 겸손해진다.
고통, 고통, 피하고 싶고 싫다. 하지만 이를 수용해야한다. 하지만 보다 큰 딜레마는 어디까지나 고통을 수용해야하는 것이냐 - 인 것 같다. 어려움, 고통 따위를 수용함으로써 나의 발전을 막는 것 같기도하다. 더러워도 괜찮다는, 고통도 나의 일부라는 생각에, 나 자신의 악에서 나를 보다 절실히 구하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모든 것을 놓으리라, 주님이 맡아 주시리라, 아멘 -

4/10
"당신 스스로 비우신 주님을 본받아 우리도 주님과 형제들에 대한 사랑으로써 남을 위해 자신을 비우는 그 가난을 본받게 하소서."
하아, 근래 아침마다 되뇌는 생각 - 비우자. 딱히 바쁘지 않은 생활, 수업의 내용도 어렵지만은 않은 듯 하여, 그 만큼 여유로운 마음을 보다 나를 필요로하는 이들을 위해 사용하면 좋을텐데, 특별히 중요치 않은 잡념들에게 빼앗기는 것 같아 속상타. 자신을 비우는 것, 나를 위함이 아닌 타인을 위하여, 내가 아닌 우주를 위하여, 이타적인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여길 수 있기를 바라며. 나의 그릇을 깨끗이 비워버리고, 타인을 위해 모든 것을 쏟을 수 있기를 - 아멘 so be it

4/11
"이것은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고 오직 하느님만이 채울 수 있습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꿈입니다. 이 꿈의 실현이 인간의 구원입니다. 하느님은 우리 한 사람에게 이 꿈을 지니고 있습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꿈이라. . 한 번 읽고는 무슨 말인지 이해 할 수 없었다. 오히려 하느님은 인간의 꿈이라 하면, 이루워 질 수 없는, 인간의 '아버지의 닮음'에 대한 끝 없는 동경을 말하는구나 싶었을텐데, 인간은 하느님의 꿈이라니. 하느님이 인간이 되기를 꿈꾸신다는 것일까. . (그것은 영화 nine 의 내용인데. . 인간을 꿈꾸는 god) 인간은 하느님의 꿈, 인간은 하느님의 꿈을 형상화하는 존재라는 뜻이 아닐가. 하느님은 꿈이 있었고, 그것을 우리 인간을 통해 실현한다는 뜻이 아닐까. 순간 나의 삶은 나의 꿈을 실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치지만, 추기경님의 말씀을 다시 기억해보면, 우리는 세상의 어떠한 것으로도 채울 수 없다고 말하신다. 우리 자신의 꿈들도 세상의 것이기에 우리를 채울 수 없는 것이요, 우리를 완전히 채울 수 있는 것은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그의 꿈을 실현하는 것 뿐이다.
이번 사순시기 동안 가장 집중하였던 것은 비움이였다. 나 자신을 비우고, 하느님으로 나를 채울 수 있는 것 - 추기경님의 어떠한 문구를 읽어도 같은 맥락인 듯 하다. 나로 가득한이 아닌, 나의 비움, 그리고 오로지 하느님과 타인을 위한, 내가 아닌 어떠한 매개체가 되는 것에 가까운 듯 하다. 이는 지난 특전미사 중 Father Kelvin의 말씀과 같은 맥락이다 - 우리는 영혼이요 육신이 아니고, 우리가 자신이라고 말하는 것은, 말 그대로 나의 몸이지, 완전한 내가 아니다. 하루하루 이어저 가는 점들 사이의 선을 보며, 사순시기도 부활절이 다가오고있다. 마지막까지, 시작의 마음, 초심을 잃지 않기를, 나를 보다 비울 수 있기를, 이러한 원함마저 비우기를, 아멘 so be it.

4/13
"평화를 깨뜨리는 모든 것을 이기고 없애야 합니다. 불화의 뿌리를 뽑아야 하고, 남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오만, 믿지 않으려는 불신, 용서할 줄 모르는 미움, 나만을 위하는 소유욕과 지배욕, 질투와 경쟁심을 버려야 합니다."
휴, 너무 사실이다. 남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마음은 오만이요, 믿지 못함은 불신이요, 용서치 못함은 미움이요, 나만을 위한 것은 소유욕과 지배욕이고, 질투와 경쟁심 또한 나의 나약한 모습이다. 물론 모든 사람의 마음에는 이러한 것들이 각자의 정도로 있으리라. 버리리라, 버리리라, 버렸느니라, 휙 휙 휙 슝슝슝
이미 모두 버렸다는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보자 - 휴 아멘 so be it
나쁘지 않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마음을 비운다는 자세가 매우 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타인에 대한 감정적인 관념들을 버리는 것이 가장 어렵다. 우편물 중 교통위반에 대한 비용을 내라는 편지가 있었다. 기분이 매우 나빴지만, 이 보다 큰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에 괜한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비록 이번 달 역시 한도를 넘은 통장내역이 나올테지만, 보다 위험하거나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 일이 충격이라는 것은 특별히 나쁘지 않은 일이다. 근래 많은 일이 즐겁다. 약속도 빈번하고, 입을 옷, 잘 수 있는 집, 쉴 수 있는 침대, 먹을 수 있는 식량, 만날 수 있는 사람들, 수업마다 귀여운 친구들이 있음에 감사하고 즐겁다.
이 즐거움의 이유는 두가지가 있는 것 같다, 첫 째 마음을 계속적을 비우려는 자세로 생활한다. 둘 째 수업에 즐거운 친구들이 있다. 마음을 비우는 것은 나의 실수에 너그러워지고, 보다 긍정적인 마음의 안정을 준다. 무엇인가를 해야한다는, 특정한 방법으로 해야한다는 기준이 사라지니, 마음이 편안하고 그저 쉬운 마음으로 생활 할 수 있다. 쉽게 잊을 수 있고, 쉽게 실천한다. 그저 생활의 시간적 단위들을 지내는, 보내는 기분이랄까. 마음이 비교적 가볍다. 친구들에 관해서는 길어질 것 같으니 다른 글로 적어야겠다. 감사할 따름. 내일이 시험임으로, 오늘은 공부를 해야한다, 하루를 무사히 지낼 수 있도록, amen - so be it


4/14
"하느님이 가난하다는 사실은 명백하게 알려져야 합니다. 하느님은 있는 자체이시나 아무 것도 갖지 않았습니다. 갖지 않았을 뿐 아니라 어떠한 소유물도 필요로 하거나 원하지 않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도 괜찮은 마음으로 하루가 시작되었다. 시험 때문인지 잠을 길게 잘 수 없었다. 0600시 쯤 눈을 떠, 샤워를하고, 빵에 계란을 입혀 먹고 공부를 하니 벌써 0830시가 가까워지고 있다. 일찍 일어나는 날에는 하루가 길고 딱히 마음이 편하지 않은데 오늘은 마음이 편안한 것이, 근래 얼마나 괜찮은 생활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정오에 유기화학 시험을 보고 온실에 화분에 물을 주고 은행에 들렸다가, 할머니 댁에 가기로 되어있다. 이렇게 주말이 불과 몇 시간 내로 다가왔다.
오늘 아침 문득 마주친 글에서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유학을 와, 졸업을 하고도 나라에 돌아가지 않고, 한국에서 하루도 빠짐 없이 일을하며 집으로 돈을 보내는 분이 계시다는 것을 읽었다. 하루도 쉬지 않고 한 달을 꼬박 일하면 120만원을 벌 수 있는데 그것은 베트남 돈으로 1000만원에 가까운 비용이라고 한다. 120만원을 버는 것이야 어렵지 않을 듯 해보이지만, 하루도 쉬지 않으신다니, 나로써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하루 수업 5시간 정도 듣고도 지쳐 주말을 입에 달고 지내는데, 하루도 쉬지 않는다니. . 120만원을 버는 것 보다 어려운 것은 그것을 쪼개 자신의 생활비를 사용하고 가족의 것을 남기는 것이지 않을까 싶다. 한국 지방의 가장 저렴한 방값도 30만원 정도 하지 않는가. 기본 생활비 또한 최소한 30만원 정도 들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60만원 보내기도 빠듯 할 듯 하다. 하지만 베트남 돈으로는 꽤나 큰 돈이 되니, 그것에 보람을 느끼는 것이리라.
이에 비해 나의 생활비는 터무니 없이 많이 나간다. 방값부터 시작하여, 학비, 기름값, 식비, 기본적인 것 외에도 입는 것, 차에 들어가는 돈, 취미생활로 들어가는 돈 등이 한 달 생활비가 꽤나 드는 것 같다. 줄인다고 하여도 방값을 제외하고도 60만원 정도는 족히 쓰는 듯 하다.
하느님은 가난하셨다. 그는 어떠한 것도 원하거나 필요로 하지도 않으셨다. 나는 학벌을 위해 유학을 왔고, 괜찮은 집에 살고 있으며 무려 차도있다. 취미생활을 위해 옷과 도구들을 '필요'로하다는 이유로 그것들을 구입하고, 내가 가진 물건들에 집착하는 일도 흔하다. 나의 가장 큰 집착은 책. 솔직히 방에 있는 책들 중 읽지 않은 것도 수두룩하다. 하지만 흥미로운 책을 보면 갖고싶다. 방에 두면 언젠가는 읽게되는 것이 사실이기는 하나, 정말 원한다면 도서관에서 충분히 빌려서도 볼 수 있는 것들이다. 나의 지식을 위한다는 이유로, 밑줄을 치고싶고, 소유하고 싶고, 언제든지 돌아가서 읽고 싶을 때에 읽고싶다는 이유로 책들을 하나 둘 씩 사다보니 어느세 오선반을 가득 채운다.
또한 기본적인 것을 제외하고 드는 가장 큰 지출은 옷. 딱히 많이 사는 것은 아닌데 한 달에 한 두 장 정도는 사게된다. 계절에 따라 사는 옷들이거나, 운동복이 다수. 옷의 세계를 사실 이해하기 어렵다. 옷이 비싸 마땅한 이유는 어느정도 이해 할 수 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이 아닌, 부수에 가까우니, 특별히 저렴하지 않아도 된다. 책은 보다 들어가는 노력에 비하여 저렴하다고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책은 보다 널리 보급되야 하는 것임으로 어느정도 이해 할 수 있다. 이러한 관계가 어떠한 시스템에 의해서 의도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생각은 이러하다. 어찌되었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책과 옷을 적게 사는 것이다. 지금도 최소한으로 줄인다고 생각하지만, 예수님은 '아무것도' 없으셨고, 모든 것 그 자체이셨다. 이 처럼 나의 관념을 바꾸면 새로운 지향을, 방향을, 생활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본다.
일찍 일어났더니 역시나 눈이 따끔거린다. 어서 시험을 마무리하고 할머니 댁에 가서 맛있는 식사를 먹고 한 숨 자야겠다. 휙 쿵 - 아멘 so be it.

4/16
"겸손한 사람만이 인생을 값지게 사는 슬기를 배울 수 있습니다." 
배움이라는 것, 겸손이 유일한 방법이다. 겸손하지 않으면 자신으로 가득차, 그야말로 자만하여 나 이외의 것을 수용 할 수 없다. 나 자신을 비울 수 있는 방법은 겸손 뿐이다. 나 자신의 부족함을 인지하고, 인정하고, 그것을 원망치 않고, 보다 옳은 것을 비울 수 있는 여유를 자신에게 허락해야만 무엇이든 배울 수 있고 수용 할 수 있다.
오늘은 토요일, 특전미사에 가는 날이다. 벌써 부활절이 가깝게 다가왔다. 사순시기 동안 비움에 중점을 두고 기도를 하였고, 뿌듯하지만은 않은 날들도 많았다. 반 정도는 뿌듯하지 않고, 반 정도는 뿌듯했던 것 같다. 하지만 net 포괄적으로 전체를 고려했을때, 나의 현재 마음은 시작에 비하여 보다 편안하다. 이것이 100%기도와 비움에 인한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매우 큰 부분이 비움으로 부터 오는 행복임은 확실하다. 그것은 나에게 긍정과 편안 - 곧 필요한 모든 것을 선물해 주었다. 이렇게 나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순의 마무리를 향하는 오늘, 바른 자세로 특전미사를 드리겠다. 나는 비우려 노력했고, 그 노력마저 버리며,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었다, 아멘 so be it.

4/17
"주변에서도 건강에 대한 확신을 가지라고 권유해 주시는 분이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래 사는 것'보다 '기쁘게 잘 사는 것'이 더 소중한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수녀님도 그렇게 말씁하셨지요, 부활을 '기쁘게' 맞이 할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를 하자고. 그렇게 우리는 아픔을 지향하면서도 기쁨을 향하는군요. . 아프고도 기쁜, 그런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 자만하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자만하지 않도록 비워주세요, 비우겠습니다, 비웠습니다. 부활이 훌쩍 다가왔네요. 당신의 못 박히심을 기억하며. . 감사합니다, 아멘 so be it

4/20
"내 이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차를 타는 사람이든, 걸어 다니는 사람이든, 교통법규를 성실히 지키고 실수 할 때에는 지체없이 용서를 먼저 청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게으른 나의 시간이 흐르고 흘러, 부활에 가까워 졌네요. 글이 길어 수정이 어렵군요, 다른 포스팅으로 옮기겠습니다.



자료 출처
http://www.catholic.or.kr/ 
김수환 추기경 잠언집 바보가 바보들에 (산호와 진주)



자료는 다시 쓴 것임으로 오타 혹은 내용의 오류가 있을 수 있음.


 

 

Posted by water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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