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이해인수녀의사모곡
카테고리 시/에세이 > 장르시 > 현대시
지은이 이해인 (샘터사,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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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도 너무 예쁘시다 '해인' 바다사람... 시집, 기도시집, 동시집, 시선집, 산문집 번역서를 이미 여럿 내시어 수녀시인으로 꽤나 이름이 보편적이다. 주제가 주제이니 만큼 상당히 감성 감동적이다. 일상적이지만서도 가장 특별한 것이 엄마가 아닐까 싶다. 책 곳곳에 삽화와 사진들또한 소소히 아름답다. 어머니가 생전에 직접 쓰신 편지가 첫 장들에 쓰여있는데 - 너무 예쁘다. 어머니께서는 수녀님께 존댓말을 쓰시며, 그녀를 '작은 수녀'라고 칭하신다. "우리 작은 수녀 참으로 감사해요." ...라시며 일상에 대해 자세히 글을 적으셨다.
수녀님의 시들은 보편적으로 어머니가 살아계실 적의 습관, 일상, 추억 혹은 떠나신 후의 그리움과 감성에 대한 글들이다. 말하기를 엄마가 있는 세상과 없는 세상은 무어라 설명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며 - 누가 나무라도 그 그리움을 떨칠 수가 없다고 하신다. 읽으며 내 엄마를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요, 엄마가 떠난 후의 세상을 상상해보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상상 - 상상 할 수 없는 세상이리라. 책을 읽고 꺼내두니, 엄마가 '어땠어?'라고 물으시더라. '좋았어'라고 대답하니 그저 웃으시는 엄마... 우리는 서로 각자의 같은 마음으로 책을 읽었을 것이다 - 하지만 엄마는 나의 마음에 플러스 알파로 나의 마음을 정확히 알면서도, 엄마의 마음 또한 알고계시리라. 아, 아름답지 않을 수 없는 삶의 조각이라.
평시 '시'를 딱히 좋아하지 않는데에 - 수녀님의 시는 아프지도 괴롭지도, 추상적이지도 않더라. 주제가 가장 아름다운 보편이니만큼, 글 또한 아름다운 보편이였다. 세상의 엄마들은 어찌 그리 닮았는지 .... 서로 누구 하나 대신 할 수 없는 모습마저 꼭 같다. 엄마 오래 사시도록 효도해야겠다.

더불어 이해인 수녀님에 대해

아 너무 예쁘시다................

1945년 해방연도에 출생
1964 고등학교 졸업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입회
1968 첫 서원
1968-70 한국천주교 중앙협의회 소임
1975 필리핀 성 루이스 대학 영문학과 졸업
1978-82 수녀원 교육팀에서 일하심
1985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 석사 졸업
1988-90 제 44차 세계성체대회 신심분과 소임
1990-91 수녀회 설림 60주년 준비위원으로 일하심
1992-97 수녀회 총비서로 소임하심
2000 - 부산 가톨릭대학 지산교정 인성교양부겸임교수


1981 제 9회 새싹 문학상
1985 제 2회 여성동아 대상
1998 제 6회 부산여성 문학상

기도하시는 수녀님 ............


이해인론 - <민들레의 영토>를 중심으로
金 涍 中


한번 읽어보고 나서 문득 다시 대하고 싶어지는 시가 있다면 그 시야말로 좋은 시임에 틀림이 없다.

 

그리고 그 시야말로 독자의 영상에 오래 ·남을 수 있는 시라고 한다면 이해인의 시는 바로 그러한 시에 속할 것이다. 그의 시는 결코 설득하려 든다거나 납득을 강요하지 않는다. 독자를 지나치게 의식하다 보면 흔히 궤변이 되기 쉬운 법인데 그런 흔적도 없다. 왜 시를 쓰는지 그 동기, 출발점이 분명하다. 그의 시는 한마디로 소재와 체험을 높은 차원으로 끌어 올려 작품화하기에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되는 과정에서 그는 언어와의 힘겨운 씨름을 하였으며 시의식이 얼마나 진지하고 투철한가 하는 것이 명백히 드러나 있다. 그의 첫시집 <민들레의 영토>의 서문에서 밝힌 박두진의 다음의 글은 이해인의 시가 왜 감동적일 수 있는지에 대하여 참고가 될 만하다.

 

클라우디아 이해인 수녀의 시작품을 처음 대했을 때 나는 무엇보다도 먼저 그의 감정적 진실에 놀라고 감동했다. …·中略……그 종교적 테두리를 방패로 한 순수긍정적인 소명감적인 헌신의 노래, 그러한 기구이기보다는 인간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깊은 갈등, 종교적 헌신으로 도달될 수 있는 영원한 법열과 인간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정직한 고민, 고독감, 슬픔 같은 것이울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인간. 인생, 청춘에 대한 결연한 결단, 전부를 향기로 바치고자 하는 이의 지순한 헌신의 각오가, 이 모두를 조화한 신에의 제사로, 그러한 영혼의 불꽃으로 타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1975년 12월 첫 시집을 낸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녀원의 깊은 담 안에서 시를 쓰면서 修道하고 修道하면서 시를 쓰는, 말하자면 詩作과 修道라는 이중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꾸준히 작업해 온 셈이다. 그는 현재까지 <민들레의 영토>(1976, 29판), <내 혼에 불을 놓아>(1979, 24판),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1983, 28판) 등 세 권의 시집울 내어 놀라울 만큼 독자의 수를 확보하고 있다. 독자의 수가 많고 판이 거듭된다 해서 작품의 질이 무조건 좋다고 단언 할 수는 없으나 그의 시가 그만큼 독자의 심금을 울릴 수 있는 순수한 호소력이 있음은 틀림이 없는 것이며 거기에 바로 시적 진실이 깃들여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의 시가 갖는 범상치 않은 표현과 종교적 체험의 고백, 그의 시가 지닌 진실성에 주목하면서 그의 시의 본질을 이해하려는 것이 본고의 의도이다.

 

편의상 그의 첫시집 <민들레의 영토>만을 가지고 논술해 보고자 한다.

 

이해인의 작품이 지니는 강한 전달성은 그의 정확한 視力에 연유한다고 보겠는데, 큰 욕심을 내지 않고 평범한 소재 속에서 그 소재의 뒷면을 들추어 시의 의미를 이끌어 낼 줄 알고 있다. 다시 말하면 巨視的이거나 조감적이기보다 근접적이고 미시적인 시각에 서 이해인은 때묻지 않고 빛 바래지 않은 포에지를 찾아내는 데 몰두하고 있는 것이다. 實在를 은폐하고 있는 감각의 베일을 뚫고 리얼한 實在에 도달하려면 이러한 치밀한 작업은 필수적인 것이다.

 

기도는 나의 옴악
가슴 한복판에 꽂아 놓은
사랑은 단 하나의
聖스러운 깃발

太初부터 나의 領±는
좁은 길이었다 해도
고독의 眞珠를 캐며
내가
꽃으로 피어나야 할 땅

애처로이 쳐다보는
人情의 고움도
나는 싫어

바람이 스쳐가며
노래를 하면
푸른 하늘에게
피리를 불었지

태양에 쫓기어
활활 타다 남은 저녁 노을에
저렇게 긴 江이 흐른다

노오란 내 가슴이
하얗게 여위기 전
그이는 오실까

당신의 맑은 눈물
내 땅에 떨어지면
바람에 날려 보낼
기쁨의 꽃씨

흐려오는
세월의 눈시울에
原色의 아픔을 씹는
내 조용한 숨소리
보고 싶은 얼굴이여

〈민들레의 領土〉

 

이 시의 核이 되는 단어는 ‘사랑’과 ‘고독’, 그것은 곧 성직자의 길, 나아가서 우리 인생 그 자체에 연결되는 단어이다. 한송이의 작은 민들레꽃에서 인간의 고뇌와 생활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던 것이다. 총 8연으로 된 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민들레에 대한 시인의 생각이 구체적으로 토로된 '민들레의 연가'를 살펴 보아야만 한다. 민들레의 연가는 곧 시인 자신의 노래이기 때문이다.

 

은밀히 감겨 간 생각의 실타래를
밖으로 풀어내긴 어쩐지 허전해서
날마다 봄하늘에 시를 쓰는 민들레

앉은뱅이 몸으로는 갈 길이 멀어
하얗게 머리 풀고 얇은 씨를 날리면
춤추는 나비들도 잘 비켜 가네

꽃씨만한 행복을 이마에 얹고
해에게 준 마음 후회 없어라
혼자서 생각하다 혼자서 별을 헤다
땅에서 하늘에서 다시 피는 민들레

 

이 노래는 이해인 수녀 혼자 불러 보는 노래라고 시인 스스로 말한다. 여기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민들레는 이 시인에게 독특한 의미를 가진 대상으로 쓰여진 자연적 심상 이다. 이 시인이 밝혀 놓았듯이 전설을 가지고 있는 민들레는 시인이 성직자의 길을 택하여 확고한 신념을 얻게 되는 과정에서 큰 의미를 던져 준 꽃이기도 하여 다음과 같이 술회하고 있다.

 

그 곳(광안리 수녀원)을 산책하던 어느 날 나는 극히 좁다란 돌틈을 비짐고 당당히 피어난 노란 민들레를 보고 “아. 어쩌면…”하고 솟구치는 기쁨에 몸을 떨면서 그의 정다운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넌 왜 고민하니 ? 나처럼 살면 되잖아. 네가 원하기만 하면 좁은 땅에 앉아서도 모든 이를 뜨겁게 사랑할 수 있어.” 그는 내게 노래를 주었다.

 

여기서 민들레가 준 노래란 바로 위에 인용한 <민들레의 영토>의 1,2연을 말한다. 우리는 이 술회 내용 속에서 그의 시가 창작된 배경과 과정의 비밀을 캐낸 셈이다. ‘기도는 나의 음악’에서 시사하듯이 그의 노래는 시요, 시는 곧 기도인 것이며 ‘가슴 한 복판에 꽂아 놓은/사랑은 단 하나의/聖스런 깃발’에서 표현되어 있듯이 그가 민들레를 보고 처음으로 발견한 것은 ‘사랑’ 그것이었다. 그 사랑은 ‘인간 모두를 사랑하되 하나를 갖지 않고 하나인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초연히 모두를 사랑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사랑이다.

 

그의 첫시집 이름이 <민들레의 영토>가 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다른 시인들은 예사로이 보아 넘기기 일쑤인 민들레가 이해인 시인에게는 개인적 상징으로 쓰여 그의 시세계를 독특하게 한다. 3,4연을 쓰게된 배경은 또한 다음의 그의 술회를 통해 암시받는다.

 

진한 향기를 뿜지 못하는 앉은뱅이의 촌스런 열등감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부모가 된 어릴 적 친구들이 홀연 눈부시게 나타나 야룻한 연민의 눈길로 나를 싸안을 때 나의 자존심은 더러 상처를 입기도 했다. 그런대로 뿌리를 내렸다 싶던 나의 신념도 가끔은 불확실했고 꼭히 만나야 할 애인의 모습은 오리무중일 때가 허다했다.

 

‘애처로이 쳐다보는/人情의 고움도/나는 싫어’에서 솔직히 토로하고 있듯이, 기독교 문화가 뿌리를 내린 지 얼마 안 된. 우리나라에서는 서양에 비해 성직자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음을 시사한다. 5연에 이르면, 修道의 길을 걸어가면서 겪는 인간적 고뇌와 갈등, 그것을 극복하기에 많은 忍苦의 세월을 흘려보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고통을 극복하고 초월자인 신에의 귀의를 통해 범상인으로는 맛볼 수 없는 기쁨을 얻게 된 순간이 적나라하게 토로된 것이 6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기 때문에 겪는 아픔과 시련을 겪어야 했음을 나타낸 부분이 7연이다.

 

확고한 詩意識 속에서 인간적인 고뇌라는 씨줄과 신앙적 차원이라는 날줄이 서로 얽혀 엮어지고 있다는 데서 이해인 시인의 시는 오늘날 현대시가 안고 있는 문제점인 난해성을 극복하고 있는 셈이다. 그의 시가 가진 빼어난 강점은 민들레와 같이 작고 하찮은 사물 속에서, 시인다운 감수성과 정서를 통해 이 세상을 이끌어가는 원초적인 힘인 사랑을 발견하고 노래했다는 점이다. 이 사랑은 그의 시 전편에 흐르는 주제인 바, 이것은 우리 삶의 궁극적 가치이기도 한 것이다. 그외 시 속에는 운율의식도 강하게 드러나 있다.

 

잊혀진 言語들이
웃으며 살아오네

사색의 못가에도
노래처럼 비 내리네

해맑은 가슴으로
窓을 열면

무심히 흘려버린
日常의 얘기들이

저만치 내버렸던
이웃의 음성들이

문득 정다웁게
빗속으로 젖어오네

잊혀진 記憶들이
살아서 걸어오네

젖은 나무와 함께
고개 숙이면

내겐 처음으로
바다가 열리네

<비 내리는 날>

 

총 8연으로 된 이 시에서 대부분 연의 끝부분이 ‘~네’로 끝남으로써 반복적 효과를 내고 있고 자수율도 3ㆍ4조 혹은 4ㆍ4조가 지배적이다. 시의 내용을 보더라도 그의 시의 주제가 대부분 사랑에 관심하고 있는 것처럼 이웃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표명되어 있다. 이 밖에도 〈맑은 종소리에〉, 〈가신 이에게〉 등에서 그의 운율 의식이 절묘하게 드러나 있다. 그의 시의 형식 가운데 특기할 만한 것은 기도문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점이다.

 

피게 하소서
주여

당신이 주신 땅에
가시덤불 헤치며
피흘리는 당신을
닮게 하소서

태양과 바람
흙과 빗줄기에
고마움 새롭히며
피어나게 하소서

내 뾰족한 가시들이 남에게
큰 아픔 되지 않게 하시며

나를 위한 고뇌 속에
성숙하는 기쁨을
알게 하소서

주여
당신 한 분
믿고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당신만을 위해
마음 가다듬는
슬기를
깨우치게 하소서

진정
살아있는 동안은
피흘리게 하소서
죽어서 다시 피는
목숨이게 하소서

<장미의 기도>

 

조용히 눈을 감고 읊조리면 그대로 하나의 기도가 되는 시이다. 기도에서 간절히 요청하고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과 삶과 슬기를 닮고 그대로 따르게 해 달라는 내용의 것으로 결곡한 求道者의 자세가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의 길을 굳건히 걸어 가려는 결의인 것이며 이 첫시집의 편집후기에도 표명되어 있다.

 

한번 써 놓고는 잘 돌아보지 않았던 글들을 하나씩 손질해 가면서 나는 詩를 쓴다는 게 얼마만한 아픔과 인내를 수반하는 것인지 새삼 절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또 하나의 修道의 길 바로 나 자신이 되어 가는 길이라는 것을--누가 뭐래도 시는 나에게 있어 생생한 기도의 체험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거짓이 아님을 확신합니다. 머지 않아 내가 主의 제단 앞에 엎디어 終身誓願을 하는 날, 나는 영원한 사랑의 악속과 함께 시와 더불어 살겠다는 決意 또한 새롭힐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해인 시인에게는 신앙과 시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詩作을 위해서는 마음과 생활과 언어와 자기를 갈고 닦아야 하며, 갈고 닦는다는 것은 인간 수양을 뜻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詩作을 위해서는 먼저 心身을 갈고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心身이 갈고 닦이면 저절로 생활에는 수양미가 발휘되고 그것이 시작품 속에 나타나게 되어 일종의 향기가 풍기는 것이다. 東西古今의 많은 詩聖들의 작품 속에는 그들 人格의 향기가 곱게 풍기고 있지 않은가?

 

洪允淑이 이해인 수녀에게 “수도자로서 가장 큰 기쁨인 終身誓願과 또 하나의 기쁨인 첫 시집, 그 두 개의 길에서 이중으로 그리스도를 만나는 기쁨을 享有한” 영광된 출발을 축하했던 이유도 위와 같은 문맥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의 시에 드러나는 또 하나의 특징은 기도문의 형식을 취한 산문시가 있다는 점이다. 즉 첫 시집 제3부의 〈큰 소리로 말씀치 않으셔도〉와 같은 시는 그러한 예에 든다. 여러 해 동안 쓴 것 1O편을 한 제목 안에 묶어 일련번호 1~1O까지 달아 놓은 것이다. 이 시편들은 제목이 암시하는 바와 같이 하느님께 고백하는 형식의 글이다. 이 속에서 시인의 돈독한 신앙, 구도자의 삶, 고난과 기쁨의 길을 동시에 걷고 있는 그의 생활 모습이 토로되어 있으며, 그와 같은 그의 삶을 그는 스스로 '행복한 아픔’(시편 3)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의 진솔한 마음의 결정체인 이 산문시편들은 자세히 보면 한용운과 맥이 닿아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물론 한용운과 이해인은 서로가 다른 종교적 차원에서 詩作을 이어 갔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궁극적 가치에 공통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한 일이다. 그의 시 전체의 주조를 이루고 있는 것은 ‘꽃밭에 물을 뿌리고 돌아오면/수백개의 촛불로'로 가슴이 타오르고 '내 생애가 한 번 뿐이듯/나의 사랑도 하나’뿐인 ‘당신 아닌 누구도 치유할 수 없는/不治의 병 사랑’을 앓는 수도자의 고뇌와 기쁨이다.

 

이해인의 自然觀은 앞으로 더 구체적으로 논의되어야 할 과제이지만 본고의 논의 범위 내에서만 언급해 본다면 전통적인 자연관과는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달리 구체적으로 말하면 자연에다 어떤 주관적인 해석을 가하고 주관에 의하여 변형시키기를 요구하기 때문에 동양적이 아니고 서구적이요 기독교적이다. 즉 자연을 기독교적 관점에서 보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자연을 유토피아나 이상향으로 정립하지 않은 이유를 알 수 있다. 기독교의 ‘천당'이 엄연히 존재하는 이상 자연을 유토피아나 이상향으로 설정할 수 없음은 당연 한 일이다.

 

그러므로 피조물로서의 자연에 감정이입시켜 시인 자신이 자연과 등식관계를 이루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시인 자신은 민들레가 되어 시로 표출되었음을 앞에서 살펴보았다. 그런데 이러한 경향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시인에게나 가능한 일이지만 전통적으로는 자연 자체를 정령이나 초월적 존재로 믿고 의존해 왔던 것이 지배적이다.

 

이해인은 삶의 진실을 노래했다는 데서 한국 여류시인 가운데에서 회귀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그의 시에 뛰어난 수사나 기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시의식이나 제작 의식이 소홀하지가 않다. 뿐만 아니라 모국어에 대한 깊은 애정과 그것을 현대시의 언어로 재창조하기 위해 무서운 집념을 지니고 정성을 기울여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 그는 언어와 정면 도전하고 있으며 아래의 글에서 이것이 증명된다.

 

시를 쓰는 사람이면 누구나 그러하듯 나 역시 가장 순수하고 진실한 글을 쓰고 싶었읍니다. 한가지 내가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는 것은 한마디의 단어도 거짓말은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내 상상과 체험의 한계를 벗어난 어떤 어휘도 나는 쓸 수가 없읍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나의 내면에 와 직접 부딪치지 않는 것은 언어화시키지 못합니다.

 

그에게는 시가 ‘불완전한 모습 그대로’ 그가 ‘하느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찬미와 감사, 참회와 소망의 언어’인 것이다. 시는 끝없이 ‘그를 초대하는 기쁨의 축제’이며 ‘혼자서만 즐기기 아까와 이웃까지 불러 모으게 하는 풍요한 삶의 축제’요 '구원의 십자가’인 것이다. 이렇게 시에 대한 투철한 인식과 더불어 겸손한 자세로 꾸준히 인내하며 작업하는 그 에게서 우리는 앞으로 더 순수하고 절실한 시를 기대할 수 있다. 이해인의 시는 아직 연구가 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나 앞으로 본격으로 연구된다면 기독교와의 관계, 신앙과 고독의 문제, 사랑, 시어와 스타일, 자연관, 이미지의 분석 등에 관심을 두고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金 涍 中 (효성카톨릭대 교수) 
 

자료 출처 이해인 수녀님의 홈페이지 http://haein.isamtoh.com/ 

Posted by water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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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감독 민규동 (2011 / 한국)
출연 배종옥,김갑수,김지영,유준상,서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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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종옥씨가 엄마이다. 얼굴만봐도 이제는 슬퍼 죽겠다. 죽겠다는 말이 조심스럽지만 슬퍼 죽겠다는 말이 자꾸 머릿 소게 맴돈다 , 정말 슬퍼서 죽을지도 모르겠다.. 너무나 전형적이고 평범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절절한 스토리. 십몇여년 전 '아버지'라는 책이 꽤나 흥을 했었다. 그 또한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병으로 생의 끝을 바라보는 아버지와 그의 가족들의 모습이다. 그 책을 읽으며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나지만 이 영화를 보며 쏟은 눈물만큼은 아니였을지 싶다. 이 영화를 책으로 보면 어떠할지 , 읽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말 그대로 '슬픈' 슬퍼서 괴롭고 힘들고 지치고 슬프고 눈물이 멈추지 않는 그런 이야기..
영화에 그 토록 나 자신이 개입된 이유는 그것이 연출의 목적이였으리라. 관객을 무엇보다 이입시켜 눈물을 흘려보자는 의도였으리라. 그것이 쉽게 당연한 것이 누구나 자신을 극중 캐릭터에 대입 할 수 있을 것이다. 극 중 인물들 - 엄마, 아빠, 딸, 아들, 누나, 동생, 할머니 가 주요 인물이라 싶다. 저 중 하나에도 맞지 않는 사람이 있겠는가.. 나만하여도 딸이고 누나이자 미래의 엄마.. 이다. 극 중 딸을 보며 내 모습과 다르지만 너무도 같음에 속이 많이 상하였다. 나 또한 엄마에게 아빠에게 의지하지만서도 가장 위로 해야 했을 시에 곁에 없었고 , 엄마의 아빠의 마음을 안다하지만 알지 못하였고 , 부모의 아픈 모습을 모두 꺼내 보고서야 마음을 돌린다. 나 또한 효도하고 싶고 미안하고 고마울 뿐이다. 극 중 엄마가 땅을 대하는 모습 또한 너무나 나의 엄마와 꼭 같다. 딸의 생활을 궁금해하고 안녕을 바라고 , 늘 뒤에서 웃고계셨으며 뒤에서 안아주셨고, 나보다 먼저 다가오셨다. 극 중 동생의 청각장애 또한 창준이의 것과 너무 흡사하다. 창준이 또한 편치 않았고 , 그에 대한 아픔은 엄마에게도 아빠에게도 남았다. 그렇게 그들은 아들 딸을 위해 속이 탔고 아팠으리라.
극 중 아빠 역을 보며 , 아빠의 타고있는 속 또한 보인다. 아내를 아끼고 소중시 여기지만 크게 개여하지 않고 , 거리를 둔 것처럼 여겨지는 것은 모든 아버지의 마음일 것이다. 일상이 피곤코 가정이 편안하고 모든 것의 중심이지만 그에만 메달릴수는 없는 것이 현실리리라. 의사이지만 아내가 아프다는 말에 쉽게 넘기려 약국으로 아내를 보낸 것이 얼마나 후회가 되었을까. 세심하지 못했던 것이 아니라 생활에 치였을 뿐이고 , 그러한 가족에 대한 배려가 없는 가장이 아닌, 가정을 보다 위하고싶어 사회에 열심하려다보니 한 순간 한가지를 잡지 못하였을 뿐이리라.



 

엄마가 떠나면 누가 아들과 아들의 여자친구를 아무 말 없이 받아주고, 누가 딸의 결혼을 준비 할 수 있겠는가. 엄마와 아빠는 비교 할 수 없는 두 기둥이고 공존치 않고서야 완전 할 수 없는 것이리라. 어제 엄마가 말하기를 결혼이란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것이라 하시더라. 결혼을 한다고 하여 나의 기준이 너의 것이 되고 , 우리의 사상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엄마의 뜻을 조금 넘어선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 그렇게 들리었다. 둘이 하나가 되는 것 - 조금은 , 솔직히 오래된 생각이라는 생각도 든다. 결혼이라는 결합 후에도 나 혼자서의 여행을 떠나고 싶고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을 것이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하지만 엄마의 뜻은 그런 것이 아니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또한 든다. 나는 나이지만 우리는 같은 곳을 바라보는 , 한 모습이 되어 한 그림을 이루는 , 둘이 항상 함께 모든 곳에 담겨지는 그러한 것을 엄마는 뜻한 것이 아닐까.
언젠가 누군가 나에게 사랑하는 것은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닌 ,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라는 말을 해주었다. 당시 나는 그보다 많은 것을 알고 느꼈다고 생각했고 , 이해하지 못했지만 어물정히 넘어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그 말의 뜻이 조금씩 이해가 되면서 그가 그런 말을 당시에 했다는 것에 되돌아보며 감사하곤한다. 나의 삶에 그러한 친구가 있었다는 것이, 하지만 그의 생각의 깊이를 내가 그만큼 몰라주었다는 것이 고맙고도 미안한 생각이 많이 든다.
이렇게 살며 여러 사람을 만나고 그들과 소중한 추억과 시간을 갖는 것이 삶의 임무이리라..

영화 중 남편 김갑수씨의 옷장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이야 말로 예술이다.. 셔츠에 맞추어진 자켓과 , 조심스럽게 그렇지만 너무나 능숙히 정돈되어있는 넥타이들 - 이를 아름다움이라 하지 않으면 무엇을 아름다움이라 할 수 있을까. 오랜 세월의 사랑을 아낌을, 그것이 습관이고 인생 자체임을 - 고심하였지만 쉽게, 어려운 일이지만 능숙하고 편안하게 표현되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하여 무엇이든 할 수 있을테지만 가장 주기 어려운 것이 정성이리라. 내 아무리 많은 시간을 준다하여도 그 모든 시간에 아낌과 심혈이 깃들기가 쉽겠는가. 엄마와 아빠의 모습, 나와 창준의 모습을 끊임없이 되돌아보며 영화를 보았다. 그 모습들이 너무나 닮아서 - 그 무심하지만 언제나 노력하는, 쉽게 잊지만 가장 쉽게 돌아오는, 끊임없이 생각하지만 가장 가슴의 바닥에 담아두는 그러한 것이 가족이리라. 이유가 필요없고 쉽게 눈물이 나고 가장 아름다우며 가장 괴로운 것이 가족이리라.
극 중 남편역 김갑수씨가 엄마가 먼저 떠나는 일은 오히려 다행이라는 말을 하신다. 그 만큼 고생을 덜고 먼저 편히 쉬는 것이 다행..이라고 하신다. 그렇다.. 그렇다 먼저 편히 쉬시어 얼마나 다행인가 , 하지만 살아서는 그렇게 쉬실 수 없으셨던 것일까 - 살아서는 함께하며 , 조금 더 함께 시간을 보내고 함께 , 나의 곁에서 쉬실 수는 없으셨을까. 그것을 허락하지 않은 것이 가족 모두의 죄책감이리라.







극 중 배종옥씨의 동생 역으로 유준상씨가 나온다. 험한 말과 행패로 자신의 살 또한 얼마나 불만족 스러운지를 끊임없이 표현한다. 언제나 부족하고 못마땅한 듯 돈을 바라고 바란다. 그래도 싫지만서도 , 연을 끊자는 말을 물 마시듯 쉽게 하면서도 끊어지지 않는 것이 혈연이리라. 그 또한 누나의 죽음 앞에서 호두과자를 건네는 동생이다. 혹여나 누나가 호두과자를 먹다가 목이 메일까 음료수를 꼭 건네야만 속이 편안한 , 그 또한 가족이다.




영화의 슬로건 "그 날 이후 우리는 진짜 가족이 되었습니다" 라는 말.. 어려움을 넘어야 애정이 깊어진다는 것이리라. 얼마 전 만난 친구가 한 이야기가 삼촌이 암에 걸리시자 가족이 하나가 되어 감사하다고 하더라. 삼촌의 암은 초기여서 수술을 하셨지만 재발 위험성이 아직 있으시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삼촌의 암이 가족을 만나게하고 서로의 염두에 두게하였고 그것으로 인해 가족의 가족됨을 느꼈다고 하였다. 교회를 중시 여기는 그는 그것이 하늘의 뜻이라는 말 또한 붙였다. 그렇게 우리는 어려울 수록 뭉치고 서로에게 의존하는가보다. 아픔 없이는 서로 또한 필요치 않은, 어쩌면 상당히 이기적이고 전혀 가족적이지 않은 개념이다. 하지만 그 모든 논리가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엄마가 아프면 이렇게 눈물 콧물이 나고 슬퍼 죽겠는데..




효도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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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쓰는 글, 간간히 글을 쓰는 일은 그냥 특정 이유 없이 여러모로 좋다. 참으로 무책임한 말들이지만 그냥 그러한 것들이 있다. 내일 월요일은 무려 공휴일, 긴 주말은 너무 달다. 주말이 그토록 싫던 날들이 이제 확실히 지났나보다. 굉장하다, 지금도 당시도 믿을 수 없을 따름. 금요일은 시험을 보고, OR 과 미팅을 하고, 조깅을하고 차 청소를하고, 영화등을 보았다. 토요일은 등산을하고 미사를 드리고 장을 보고 영화들을 보았다. 오늘은 개미스트리 페이퍼를 시작하고 생물 식물들에게 물을 주고, 이제 ACS 공부를 해야한다. 저녁에는 오랜만에 다운타운을 간다, 아 오랜만이 아니구나.. 아무튼, 옷을 환불하고 친구들과 맛있는 저녁을 먹기로 했다. 좋다.
그냥 별 이유 따위 정하지 않고 머릿 속의, 느껴지는 감정들을 받아들이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신기하다. 아직도 변한 내 자신이 어색하다. 물론 너무나 괜찮은 일이고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아직 완전한 자연스러움이 아닐 뿐. 꽃을 그리면서도 내가 꽃을 그리고 있다니 .. 나 자신에 익숙해 지는데에 짧지 않은 시간이 소요되고 있다. 크게 문제되는 일은 전혀 아니다. 이렇게 천천히 적응하는 것이 보다 완전한 적응, 그리고 나 자신이 되는 과정이리라.

건강의 상태를 정확히 알 수 없다. 어제 등산은 참으로 기이한 일이였다. 가장 자주 오른 산인데 그 토록 힘들다는 것이 너무나 이상하다. 특별히 춥지도 않았고 음식도 섭취하였는데 말이지.. 내일 다시 올라가 보아야겠다. 아무래도 근래 운동에 소홀하고 풀어진 마음가짐이 원인이리라 생각한다. 오늘은 14일 중 d 12일이다. 몇 일 동안 염두에 두고 지켜 볼 생각이다. 그 동안 기준이 사라진 듯 하여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중이다. 무튼 마음이 편안하니 무엇도 할 수 있게되어 너무나 다행이고 즐겁다.
어제는 엄마와 통화를 하였다. 나의 초등학교 친구를 종종 성당에서 만나시는데 너무나 좋아하신다. 딸이 가까이 없다고 아쉬워하신다. 어쩔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집착하지 않는 것은 현명이라고도하지만 냉소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어쩔 수 없음을 모르는 이는 없으리라. 그것이 실낱같은 희망이라기보다 괜한 투정이기도하고 그 또한 어쩔 수 없는 아쉬움의 표현이리라. 하지만 그에 대한 완전한 수용에는 어느정도의 냉소가 필요한 듯 하다. 그러지 않고서야 그리 미련이 없을 수는 없지 않을까. 이 아무렴 냉소이면 어떠리, 다만 나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 상처아닌 상처가 되는 것 같아 아쉬울 뿐. 나도 아쉽고 안타깝지만 그 정도는 확연히 다르다. 그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 혹은 마음 고생의 정도에서 크게 차이가 있다. 아, 나는 냉소적이구나, 나 자신에게 안타깝지 않지만 타인에게 미안하다, 라는 것이다.
간만에 주저리 주저리 글을 쓰니 글이 써지는구나.. 내일의 등산에 기대가된다, 건강이 최고라네. 어제 엄마와의 통화 중에서도 엄마는 건강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며, 건강이 바탕이 되어야 걸을 수 있고 그 후의 것들을 생각 할 수 있다며. 옳소 그렇소 건강이 최고라네. 그냥 요즘 나는 이렇게 그냥 산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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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오빠라 부르는 어머니...묶어놓았습니다
소녀가 된 어머니 보살피기... 외할머니, 저 잘하고 있는 걸까요
김수복 
11.04.19 
 

외할머니. 기다리던 휠체어가 집으로 배달되었습니다. 살면서 휠체어를 만져본 적이 거의 없는 저로서는 이틀에 걸쳐 그 조작법을 읽혀야 했습니다. 목욕을 하는 중에도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기 일쑤인 어머니이고 보니 저로서는 제가 아직 모르는 사고를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오늘 오전 날씨가 너무 좋아서 휠체어를 마당에 펴놓은 다음 어머니를 품에 안고 나왔습니다.

 저는 내심 "아따 꽃이 피었네, 좋다" 소리가 어머니의 입에서 나오기를 기대했습니다. 봄이 오고 꽃도 피면 휠체어를 반드시 장만해야 겠다고 생각한 원래의 목적이 사실은 그런 탄성을 듣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어머니는 한 말씀도 없이 그냥 잠들어 버리시는군요. 아니 사실은 제가 품에 안는 순간에만 잠시 깨었을 뿐 어머니는 내내 잠들어 있었습니다.

 이렇듯이 어머니는 일주일 중에 5일은 거의 하루 내내 주무시기만 합니다. 오줌을 누자고 이동식 변기에 앉히면 어머니는 거기서도 잠들어버립니다. 제가 잠시 한눈이라도 팔라치면 졸다가 그대로 굴러떨어지곤 합니다. 목욕통 안에서도 졸다가 물에 빠져 사경을 헤매게 됩니다.

 때문에 이부자리가 아닌 다른 장소에서는 항상 곁에서 지켜봐야 하고, 잠시라도 자리를 떠야 할 일이 있을 때면 보자기 두 개를 어머니의 겨드랑이 사이로 끼워넣어서 의자라든가 변기라든가 그때그때 적당한 기둥에 묶어놓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제 자신이 무슨 고문기술자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어서 암담해져 버립니다. 그러면서도 저는 아직 묶어놓는 것 이상의 좋은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중에 이틀 정도는 또 거의 잠을 안 자고 놀자고만 하십니다. 제가 잠이 쏟아져서 이제 그만 자자고 하면 눈을 '오꿈하게' 치켜뜨면서 아주 단호한 목소리로 놀다가 자겠다고 하십니다. 제가 강제로 품에 안아서 이부자리로 옮길라치면 새처럼 가녀리게 우는 목소리로 "으째 그러셔요, 으째 그러셔요" 하시는데 그럴 때면 저도 모르게 웃음이 쏟아져서 어쩔 줄 몰라하게 됩니다.

 "죽음을 알면 삶이 5천 배는 더 즐거워진다"

 외할머니. 오래 전부터 삶이 아득할 때면 들려오는 외할머니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사람이 죽음을 알면 삶이 5천 배는 더 즐거워진다는 말씀이지요. 언제 어디서 왜 그런 이야기를 들어야 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 외할머니께서 누군가에게 하시는 말씀을 옆에서 듣고 있었다는 것만 어렴풋이 기억할 뿐입니다.

 외할머니의 그 말씀을 들을 때는 아마 건성이었을 것입니다. 죽음이라는 테마를 만지작거리기에는 그때의 제 나이가 많이 어렸으니까요. 그런데 그날 이후 제 안에서 무엇이 어떤 작용을 했는지 외할머니의 그 말씀은 제 삶의 기둥이 되고 있었습니다. 절망이라는 단어가 눈앞에서 어른거릴 때면 으레 외할머니의 그 말씀이 머릿속을 흔들어대며 눈빛을 빛내곤 했으니까요.

 사람이 죽음을 안다는 게 무엇일까요. 조금씩 철이 들어가면서 저는 늘 목이 말랐습니다.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은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나. 그런데 외할머니는 제가 철이 들기도 전에 돌아가시고 안 계셨습니다. 가끔은 외할머니가 원망스럽기도 했습니다. '왜 그렇게 빨리 돌아가셨지?'하고 말입니다.

 세상은 온통 공부 잘해야 한다, 돈 많이 벌어야 한다, 출세를 해라 등 추상적인 충고와 조언만 할 뿐이었습니다. 외할머니처럼 그렇게 죽음이라는 아주 구체적인 사건을 가슴에 비수처럼 푹 꽂아주며 "여기에 삶의 비밀이 있다" 하고 말해주는 이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때는 외할머니에 버금가는 사람을 찾겠다고 산으로 들로 미친 듯이 쏘다니기도 했었지요. 그 즈음의 어느 날 산속에서 '도사'라고 불리는 어떤 사람이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눈을 보니 공부할 때가 되었다고, 그러니 자기를 따라와서 공부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따라가기에 앞서 무슨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냐고 여쭤보았습니다. 그러자 그 '도사' 말하기를 사람 마음을 읽는 게 중요하다는 거였습니다. 사람 마음을 제대로 읽을 줄 알아야 나중에 '철학관' 간판을 걸었을 때 금방 족집게로 소문나고 돈방석에도 앉고 그런다는 거였습니다.

 살아가기 팍팍해서 지푸라기라도 잡겠다고 찾아온 사람들에게 앞날의 방향을 점쳐주는 게 아니라, 찾아온 사람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다급한 게 무엇인지를 금방 감지해서 그것으로 족집게 소리를 듣는 그런 공부를 하라고 권했던 그 '도사'는 결국 자기가 '제자'로 삼고자 하는 애송이의 마음 하나도 읽지 못하고 있었던 셈이었습니다. 그것을 계기로 저는 더 이상 제 자신의 내부가 아닌 바깥에서 무엇을 배우겠다는 생각을 접고 말았습니다.

 "아이고 우리 오빠, 닭이라도 사다 드려야 쓰겄는디"

 외할머니.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져가는 어머니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간이 많아진 이즈막에 이르러서야 죽음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이를테면 어머니가 옷을 갈아입혀줘서 고맙다고 하실 때,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세 번 연거푸 고맙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씀하실 때 저는 어머니를 끌어안고 싶어집니다. 단순하게 그냥 껴안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 부러지도록 있는 힘껏 끌어안은 채로 마구 몸부림을 쳐보고 싶어집니다.

 몇 번인가 실제로 그렇게 해보기도 했지요. 그런데 생각했던 것보다 그리 큰 위안은 없이 매번 눈물만 나오려 하더군요. 그런데다 어머니는 또 "아이고, 이러지 마시오. 나 좀 살려주시오" 하고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애원을 하십니다. 그러면 저는 민망하고 머쓱해져서 다시는 이러지 말자고 혼자 맹세를 하며 어머니를 이부자리 위에 가만히 눕히게 됩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죽어서도 안 잊어 먹을라요, 이 고마움을…."

 죽어서도 안 잊겠다는 어머니의 이 말씀이 저를 숙연하게 합니다. 지난 3년여 동안 아마 3천 번은 들었던 것 같은데 들을 때마다 새로워서 한참 동안 멍해지곤 합니다. 도대체 죽어서도 안 잊겠다는 발언은 어떤 자신감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그렇습니다. 어머니는 지난 시기 그 어느 때보다 확신과 자신감에 차 계십니다. 아들은 의심할 필요 없는 오빠이고, 까마득한 과거에 돌아가신 당신의 친정어머니는 지금 어딘가에 살아 계십니다. 그리고 당신 자신은 아직 옷도 입을 줄 몰라서 아랫도리를 벗고 다니는 아주 작은 소녀입니다. '오빠'가 '소녀'를 안아다가 자리에 눕히거나 목욕을 끝낸 뒤에 머리를 말리고 있을 때 그녀는 또 이런 말로 저를 웃겨주십니다.

 "아이고 우리 오빠, 닭이라도 한 마리 사다 드려야 쓰겄는디."

 사 주고 싶으신 게 항상 닭인 것은 아닙니다. 수박도 사 주고 싶고 오징어도 사 주고 싶고, 풍천장어도 사 주고 싶고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사 주고 싶으신 것 같습니다. 그 중에도 유독 닭을 더 많이 언급하시는 이유가 무엇인지 저는 아직 모릅니다.

 아무튼 어머니가 그렇게 무엇을 사 주고 싶다 하실 때마다 저는 슬쩍슬쩍 장난기가 발동해서 파고들어가 봅니다. 무슨 돈이 있어서 닭을 사 온다는 것이냐고, 돈도 없으면서 거짓말이나 한다고 책망하는 투로 어머니를 놀려보는 것입니다. 그런 때 어머니의 말씀이 이렇습니다.

 "음마, 오빠도 참. 아, 우리 어머니한테 달라고 해야지요."

 그런 말씀을 하실 때의 어머니는 그렇게 진지할 수가 없습니다. 눈을 갸름하게 뜨고 고개를 살짝 틀어서 그것도 모르느냐는 듯이 정색을 하는, 너무도 진지하고 천진난만하기까지 한 그 표정에 저는 그만 헷갈려서 한참씩 눈을 깜빡이게 됩니다. '가만 있어, 외할머니가 지금 살아 계시는 건가?'하고 말입니다. 하긴 이런 어리둥절함이 제게는 그리 낯선 것도 아닙니다.

 오직 한 사람, 어머니에게서 받는 용돈이어야 합니다

 외할머니. 돌아가신 뒤의 외할머니는 살아 계실 당시의 외할머니보다 훨씬 자상하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외손자인 저를 맞아주곤 하셨지요. 제가 밤늦게까지 친구 집에서 놀다가 돌아오면 집 앞의 측백나무 밑에 앉아 계시다가 사르르 일어나시며 "아이고 너무 늦었다, 어서 들어가자"하시는 거였습니다. 저는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왜 이렇게 살아 계신 것처럼 느껴지는가, 의아하고 무서워서 처음에는 도망치기도 했지만, 차츰 익숙해져서 나중에는 일부러 늦게 길을 나서곤 했습니다.

 요즘은 어머니가 외할머니를 품에 안고 '정지간'으로 나가서 목욕을 시키던 날의 풍경이 수채화처럼 떠올라오곤 합니다. 때가 되면 가야 할 곳을 알고 살던 데를 떠난다고 하는 늙은 코끼리처럼 외할머니는 작은 보따리 하나를 들고 우리 곁으로 오셨었지요. 마치 "나 여기서 죽을란다, 괜찮지?" 하는 듯이 말입니다.

 5남 1녀 육 남매, 고만고만한 자식들을 씻기고 먹이면서 부엌일에 들일까지 하시느라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 친정어머니라는 또 한 명의 '아이'를 보살피는 어머니를 보면서 저는 아마 생각이 제법 깊어졌던 것 같습니다. '아이가 자라서 어른으로 살다가 다시 아이가 되는구나' 하는 인식의 순간에 느끼는 감정은 참으로 뭉클하고 거룩했습니다. 죽음이 죽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여태까지와는 다른 생을 예비하는 과정쯤으로 이해되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인지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흘린 눈물은 끈적이지 않고 담담했었다고 기억됩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외할머니의 꽃상여가 마당을 빠져나가던 날 별로 울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도 별로 울지 않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짠하다고 눈물을 많이 흘려주셨지요. 아들 집이 아닌 딸네 집에 와서 돌아가셨다고 말입니다.

 외할머니. 혼자서는 일어나서 앉지도 못하는 상황을 맞이한 이후로 어머니는 돈 쓸 일이 부쩍 많아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돈은 자식을 포함한 그 누구도 아닌 오직 한 사람, 당신의 어머니에게서 받는 용돈이어야만 하는가 봅니다.

 그러니 외할머니께서 지금까지 그래 오신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 아니 좀 더 자주 어머니의 꿈속을 방문해서 위로도 해주시고 용돈도 쥐어주고 그래주십시오. 어머니가 그 돈으로 오빠라는 이름의 아들에게 닭도 사 주고 수박도 사 주고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사 주실 수 있도록 꼭 그렇게 해 주십시오.

꿈에서 당신의 어머니를 만나 행복해하시는 어머니를 보며 나름 즐거워하는 외손자가 혹시 기도만으로는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귀에 미치지 못할까 염려되어 이 한 편의 작은 글로 부탁의 말씀을 드립니다.


출처 : 나를 오빠라 부르는 어머니...묶어놓았습니다 - 오마이뉴스



할머니, 엄마, 나, 삼대. . 할머니는 엄마를 나았고, 엄마는 나를 나았고, 나도 언젠가 생명의 엄마가 될 지도 모르겠다. 엄마라는 존재. . 엄마라는 단어만 생각해도 코 끝이 따뜻한 것이, 엄마 사랑해, 그냥 항상 미안해. . 근래 대학생들의 자살에 대한 이야기가 종종 들린다. 얼마 전 아빠 또한 나에게 이러한 철학은 옳지 않다며 전화너머 긴 위로의 말을 해주셨다. 분명 나는 자살의 생각이 없다고 말씀드렸지만서도, 아빠는 준비한 듯, 아니 마음의 쌓여있던 걱정을 봇물 터지듯 풀어놓으셨다. 듣기 싫었지만 얼마나. . 아빠의 진심이 느껴져 얼마나 속이 따뜻해지던지. . 이렇게 나는 너무나 존경스러운 부모님께서 길러주셨다.
세 해 전,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전, 누워계셨던 할머니, 따라서 어느 정도 예측 할 수 있었던 일이였으리라. 미국으로 오기 전의 여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갈 준비를 하던 여름, 당시 할머니는 누워계셨다. 병원에서 투석을 하던 할머니의 모습을 우리는 모두 보았다. 나는 투석이 무엇인지도 몰랐으며, 상상만으로도 무서운 과정을 조용히 누워 받으시는 할머니를, 곁에서 보았다. 그 해 여름, 병원에서도, 방에서도, 할머니는 늘 누워계셨고, 나는 그 곁에 눕는 것을 좋아했다. 가족들이 할머니와 함께했지만, 할머니 곁에 누웠던 사람은 나 뿐이였던 것 같다. 엄마도 앉아서 할머니의 손을 잡고 대화를 나누고, 다른 손주들도, 나만큼 할머니와 가깝게 지내지 않았던 것 같다. 할머니는 오랜 시간 나와 창준이 가까이에서 우리를 보살펴 주셨다. 다른 손주들과 우리 남매가 할머니 마음에 어떻게 다를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우리 남매가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오랜시간 함께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창준이는 사춘기 남학생이기도하고, 애교라곤 없는 무덤한 성격이여서 안기지 못했으리라. 아무튼 그렇게 할머니 곁에 누워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이하게도 아무런 기억이 나지를 않는다. 하루는 할머니께서 할머니의 사촌분들에 관한, 가족사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사실 나와는 먼 어른들 처럼 느껴져 누가누구인지, 무슨 이야기를 하셨는지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특별히 건강하라, 잘 지내라, 와 같은 조언따위의 말은 없었던 것 같다. 그저 일상적인 이야기. . 과일을 먹으며 우리는 그냥 그렇게 누워서 놀았다. 그 여름, 나는 4주 동안 제주도에서 일을하게 되었다. 따라서 할머니의 곁에 누워있을 수 없었다. 나는 하루도 빠짐 없이 할머니에게 전화를 드렸다. 할머니, 뭐해요? 로 시작해, 우리는 역시나 일상적인 이야기를 했다. 제주도는 비가 많이 온다느니, 청주는 뜨겁다느니. . 아이들이 나를 좋아한다, 할머니는 누워있지. . 점심은 아직 안 먹었다, 오늘은 엄마가 왔다갔다. . 등등.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해는 내가 미국으로 처음왔던 해이다. 내가 속상할까 걱정되었던 엄마는, 사실을 몇 주 후에 알려주셨다. 처음 소식을 접한 날, 겨울의 어느 날이였다. . 당시 엄마가 어떠한 문장으로 소식을 전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상한 기분이였지만 크게 놀라지 않았다, 예상된 일이였으니. . 특별히 슬프지도 않았다, 가슴이 아프다거나하는 느낌이 없었다. 오히려, 할머니가 나와 이 공간에 함께 계시다는 느낌을 짙게 받았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나고, 어느 일요일, 의자에 앉아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의자에 두 다리를 안고 앉아있었다. 갑자기 할머니의 기억이 나면서, 눈물과 울음이 터졌다. 그렇게 두어시간을 나는 의자에 앉아 꺼이꺼이 울었다. 갑자기 할머니가 생각날 이유도 없었고,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였는데, 그렇게 나는 속을 개우듯 울었다.
엄마, 엄마는 어땠을까. . 지난 해 여름 엄마를 만나, 엄마는 그 해 너무나 힘들었다고 이야기 하셨다. 딸을 미국에 보내고, 엄마마저 곁을 떠났으니. . 속이 속이 아니였으리라. . 엄마는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참으로 좋아한다. 함께 장을 보는 것, 엄마가 요리하는 모습을 내가 바라보는 것, 엄마의 음식을 맛있다며 먹어주는 것, 미사를 드리는 것, 엄마와 공원을 걷는 것, 함께 쇼핑을 하는 것, 나의 여름은 대부분 이러한 일들로 가득하다. 특별한 일이 없을 시에는 엄마와 장을 보거나, 음식을 먹거나, 거리를 걷는 시간들이 많다. 와중 우리는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한다. 그러한 나와의 모든 시간이 사라지고, 엄마마저 돌아가셨으니. . 나로써는 상상 할 수 없는 일이다. 
나의 증조할머니, 엄마의 할머니는 90이 넘어서 돌아가셨다. 늘 한복을 입고 지내셨으며 매우 마르고 작으신 분이였다. 담배를 태우셨고, 이빨이 많이 없으셨으며, 항상 머리를 쪽지로 묶으셨다. 지팡이를 짚고 걸으셨으며, 걷는 것을 무척이나 즐기셨다. 앉아계실 적에는 늘 한 무릎을 땅에두고 한 무릎을 세워, 그 위에 팔을 쉬게하셨다. 피부는 그을리신 듯 구릿빛이셨고, 얄팍하고 늘어진 주름들이 많으셨다. 눈은 작고 쳐지셨으며, 머리는 길고 가늘고 하야셨다. 담배를 좋아하셨고 공원을 좋아하셨다. 가끔 웃으셨으며, 말을 매우 씩씩하게 하셨다. 그렇게나 오랫동안 건강하게 사셨다는 것이, 당시 어린 나로써는 아무런 감흥이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상당히 대단하신 분이다. 언젠가 엄마가 증조할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하신 적이있다. 할머니가 늙으시어 몸에 기운 한 줌 없이 누워 계시던 중, 화장실에 가야한다며 몇 번을 가셔도 일을 보지 못하시더란다. 괴로우셨는지 부축을 받아가시며 화장실을 계속 드나드셨지만, 변을 밀어낼만큼의 힘이 없는 할머니는 일을 보실 수 없었다. 힘 없는 할머니는 괴로움을 안고 누워계실 수 밖에 없었더란다. 그런 할머니의 모습이 안쓰러워, 엄마는 장갑을 끼고 할머니의 항문에서 변을 꺼내셨단다. 그 작은 몸에서 얼마나 많은 변이 나오던지, 엄마는 매우 놀랐다고 한다. 그 동안 할머니는 얼마나 답답하고 지치셨을까. 엄마의 손길이, 얼마나 큰 체증을 내려주셨을까. 계산 할 수 없고, 결코 비교 할 수 없는 감정, 느낌들이였을 것이다.
증조할머니는 우리 집에서 돌아가셨다. 내가 본, 첫 사람의 죽음이였다. 엄마는 할머니의 죽음에 대해서 매우 편안히 이야기해주셨다, 엄마는 늘 죽음에 대해서 편안히 이야기하신다. 할머니는 누워계셨고, 조용히, 아픔이 없으신 듯 편안히 돌아가셨다고, 사람이 죽을 수 있는 가장 평안한 방법으로 돌아가셨다고 이야기 하셨다.
죽은사람의 길을 알지는 못하지만, 죽음을 맞이한 산 사람의 길은, 체험하였고, 보았다. 증조할머니의 죽음, 할머니의 죽음, 이외에도 할아버지들의 죽음들이 있었다. 죽음에 대해 특별히 두려움은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죽음보다 무서운 것은 삶이 아닐까라는 생각을한다. 기사 중 절망 앞에서, 할머니의 '죽음을 알면 삶이 5천배는 즐거워진다'라는 말이 기둥이되었다는 대목이있다. 아, 이 얼마나 멋진 기둥인가. 살면서 절망이란 많다, 죽으면 끝일거야라는 생각도들고, 끝이면 편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러한 어려움에도 우리는 죽지 않는다. 나를 죽이지 못 한 괴로움들을 뒤 돌아보며, 어떻게 내가 죽지 않았나라는 경이로움과 더불어, 사람이 죽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힘든가? 죽어라, 힘들다고 징징대려는 순간, 그럼하지마라는 생각은, 투덜거림을 조용히한다. 죽을, 하지 않을 마음도 없으면서, 모순적인 투덜거림은 시간과 에너지의 낭비일 뿐이다. 일을 어서 마치고, 뿌듯함을 만끽하는데에 시간을 사용하면 보다 즐거운 생활을 할 수 있다. 이렇게 의식의 가까운 곳에 죽음을 두는 것은 분명 생활에 영향을 미친다. 살아계신 할머니에게, 잘 해야지라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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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 쉬 파운드 미
감독 헬렌 헌트 (2007 / 미국)
출연 헬렌 헌트,콜린 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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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하고 재미있는 영화. 삶의 일상적인 어려움들과 문제들의 이야기, 소소한 즐거움의 가미로 멋지고 깔끔하게 연출. 감독이 직접 주인공을 연출하여 보다 흥미로운 영화. 중년의 학교 선생님인 주인공은, 이혼을 당하고, 양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임신을 하지만 유산을 하며, 새로운 사랑을 만난다. 이 모든 와중 그녀를 찾아온 친 엄마. 왜 자신을 버렸는지, 자신의 과거에 대해 솔직하고 간단한 이야기를 듣고싶어하지만, 잡다하고 거짓 이야기를 들려주는 친엄마. 40년만에 만난 사람이지만 엄마라는 연결고리는 쉽지만도 불편하지만도 않다.
아이를 매우 원하지만 아이를 가질 수 없는 그녀. 주위사람들은 입양을 권하지만 그녀는 싫다고 말한다. 자신은 입양되었고, 친아들이였던 그녀의 남동생. 양엄마가 자신과 동생을 바라보던 눈빛이 달랐다고 그녀는 이야기한다. 다른 것은 없다, 나는 너희를 동등히 사랑한다, 라고 엄마는 이야기하지만, 그녀는, 그녀의 기억은 달랐다고 이야기하며, 입양은 절대 싫다고 입장의 주인공.
엄마와 아이, 혈연과 길러주신 부모님의 인연, 가족과, 새로이 만들어가는 가정. 이렇게 작은 범위의 사람들에 대한, 소소하지만 그들의 세상의 전부인 사람의 이야기. 입양이라는 조금은 어려 울 수 있는 주제, 가족이라는 무거울 수 있는 주제이지만 재미있게 연출하였고, 눈물을 짜내려는 목적 또한 없는 영화. 매우 편하고 즐겁게, 유쾌하게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친엄마의 이야기가 거짓임을 알고 복합적인 감정의 주인공




유산후 상실의 주인공





억지로라도 임신을 하려는 주인공




아이를 왜 원하는지, 얼마나 원하는지에 대해 친엄마에게 이야기하는 주인공






결국 입양을한 주인공과 그녀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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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앤 차일드
감독 로드리고 가르시아 (2009 / 미국,스페인)
출연 나오미 왓츠,아네트 베닝,케리 워싱턴,사무엘 L. 잭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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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이 넘는, 꽤나 길고, 짧게 느껴지지만은 않는 영화 - 하지만 무엇보다 굉장한 주제, 엄마와 아이. 우리는 모두 한 시절 아이였고, 복 받은 이들은 사랑과 자비 그 자체인 '엄마'라는 분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선물을 받는다. 때로 슬프게 '엄마'의 존재가 없이 자라는 아이가 있더라도, '보호자'라는 존재와 자랄 것이라 믿는다. 엄마, 엄마, 엄마 - 단어만으로도 심장이 느껴지고 세상이 멈추는 듯 이목을 끄는 존재. 왜인지 코 끝이 싸하면서 미간이 좁아지는 생각 - 엄마 생각. 아플때 간절히 간절히 생각나고, 콩나물 국이 맛이 없을때도 생각난다. 누워있다가 생각나도, 추운 길을 걷다가도, 엄마도 이 길을, 이 추위를 걸었을텐데라는 생각이 들기도한다. 엄마는 내 나잇적 어땠을까, 엄마는 나 어릴적 어땠을까, 엄마는 엄마는 엄마는 어땠을까, 엄마는 지금 어떠한가. .
영화는 친모가 아닌 엄마의 모습들을 보여준다. 입양받은 아이, 입양 보내진 아이, 딸보다 편안한 가정부.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엄마의 마음, 아이를 책임질 수 없는 엄마의 마음, 아이에게 다가갈 수 없는 엄마의 마음, 그리고 그들의 아이들 - 딸들의 마음, 그리고 그 딸들이 엄마가 되는 과정. 피가 섞이지 않아도 모성은 통하고, 함께한 시간이 없어도, 피라는 이유만으로도 모성은 강하다. 우리에게는, 사람, 동물, 우주에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매우 많다. 그 중 하나가 모성이지 않을까 - 설명되지 않는 기운, 함께 시간을 보내지 않았지만, 나의 배에서 나왔다는 이유로 그것에 대한 감정이 생긴다는 것. 모성의 감정은 사랑이라는 말로 표현이 충분치 않다 - 나는 아이가 없기에, 엄마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내가 엄마를 대하는 마음은 분명 사랑으로 충분치 않고, 엄마가 나를 대하는 모습은 '사랑'이라는 단어에 함축되지 않는다. 그것을 절대적인 자비, 애정, 관심, 두려움, 소중함, 용기, 희망, 괴로움, 유일함, 괜찮음 - 그 모든 것일 것이다.
母性 "어머니로서 가지는 정신적 육체적 특성" (야후사전) 이란다. 모성, 모든 것을 함축하면서도, 엄마와 아이사이에만 가능한 고유함 - 신비하고 아름답지 아니한가. 엄마 - 모성해요. ㅋ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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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C abc


이름의 첫, 문장의 첫, 고유명사의 첫, 등등 대문자를 사용한다. 대문자와 소문자를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한글, 일어, 중국어에는 그러한 단어간의 우열이 없다. 중동지역의 언어들도 이러한 우열이 있는지 모르겠다. 왜 영어는 단어간의 이러한 차별을 두었으며, 이름들과 문장의 첫 단어들 에게 그러한 우등함을 대표하는 대문자를 사용하는지 모르겠다. 참으로 불필요하고 낭비적인 서열제도가 아닌가 싶다.
베게 또한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왜 머리에게만 높은 고도에서 잠을 자게하는가. 이는 중력을 고려 할 때 머리의 혈액순환을 오히려 방해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물론 사람이 얼굴과 머리를 중요시 한다는 것은 이해 할 수 있다. 머리가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먹을 수 있고, 생각 할 수 있게해준다. 생각해보면 이러한 것들은 가장 미니멀이 아닌, 부수적인 기능들이다. 이러한 것들에게 가장 우월성을 부여하다니, 이해 할 수 있지만 이상하다면 이상 할 일이다.
이럴때, 기억나는 문구 "엄마 나는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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