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첫 주말. 시애틀은 일 년 중 9 개월 비가 내리고 여름은 가뭄이다. 뜨겁다, 해. 그립다, 비. 서울 날씨를 검색하니 36도란다. 올 해는 비가 많이 없나보다, 아직인건가. 그립다 장마와 소나기. 제주대학교에서 보냈던 두 해의 여름은 자주 떠오른다. 아이들, 나무, 노력이 많았다. 나와 무관치 않지만 불편치도 않은 드라마도 많았다. 시원하고 상쾌하고 편안하고 귀엽고 즐거웠다. 기억에 남는 사람을 만났고 고마웠다. 여전히 상당히 자주 궁금하다 어디서 무얼하고 지내시는지, 닮고 싶은 사람이다.
이틀 후면 동생이 간다, 걱정 반 안심 반. 함께 있어야 할 이유들이 있고 떨어져 지내야 할 이유들이 있기에 다행이고 아쉽다. 무관히 감사하다, 착한 든든한 고마운 나의 동생. 동생이 돌아가면 공부도해야하고 이사도 해야하고 계절 수업도 마무리에 가깝다. 많이 그립고 보고싶고 아쉬울 것이다. 녀석과 십수년 가까이 남매로 지내며 가까워 진 것은 이번 여름이 처음이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사랑하고 아끼고 의지하고 그리워했는데, 멀리 지낸다는 이유로 특별히 대화 혹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없었던 우리다. 참으로 기억에 남을, 2007년의 여름에 이어 내 생의 2번째로 행복한 추억이 될 여름이었다.
University of Cambridge 로 internship 을 떠난 친구가 사진과 정보들을 왕왕 전해준다. London 도 Cambridge 도 아름답다. 더불어 London Olympic 2012 이 한창인지라 더욱이나 부럽다.
카페에 공부를 조금이라도 하러 왔는데 생활을 정리하다보니 몇 시간이 훌쩍이다. 나의 20대는 여유롭다. 괜찮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판단보류. 아니 그냥 판단은 없다 하자.
동생이 오늘 자정 떠난다, 공항은 가지 않기로했다. 저녁은 이 달 말에 있을 동생의 생일 을 기념 할 겸 친구들과 룸메이트를 초대했다. 동양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룸메이트의 남자친구를 위해 미국식 음식을 살 생각이다. 케익도 살 것이다. 와인은 고민해본다. 동생에게 같이 가자니 안간단다. 미안한지 청소 핑계를 댄다. 조금은 서운하지만 그러려니한다.
친구를 초대하려 전화를 걸었는데 다이얼이 울리는 동안 무언가 올라오면서 눈물이 쏟아진다. 얼마만에 울어보는 눈물인가. 괜찮았는데, '동생가면 공부해야지' 라는 기대감마저 있었는데, 보내기 싫은 것이 아닌데, 각자 할 일을 오히려 하는 것이 맞고 그렇게 하고 싶은데, 눈물이 난다. 막상 보내면 괜찮을 것이라 친구그 위로해준다. 맞는 말이다. 멀리 보내는 것도 아니고 마음만 먹으면 비행기 한 번에 갈 수 있는 곳이다. 고마워서 눈물이 흐르나보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정확한 이유가 필요치 않다. 얼마만의 눈물인가, 반갑기마저하다. 그렇게 통화를 마치고 앉아있는 동안 여전히 무언가 뜨겁고 흘러 다른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음성사서함의 그녀 목소리만이 흐르고 친구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한 숨 한 번 쉬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전화를 받지 않은 친구는, 몇 분 후 그룹 대화방에서 축구를 보는 중이란다. 축구를 보고 있었구나. 무언가 나의 눈물이 작아지면서, 오늘이 다른 날과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별 일 아니다. 축구만큼의 별 일도 아니다.
어제 아침은 왠일인지 식욕이 좋았는데 어제 저녁부터 양이 급하게 줄었다. 따듯한 날씨 때문인지 싶었지만 오늘은 제법 선선함에도 불구하고 점심을 적게 먹었다. 숨이 길어지고 심박이 느려지고 마음이 편안하고 눈가가 풀린다. 편안하게 덤덤하게 괜찮은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다.
동생이 떠났다. 자정 비행기를 기다리는 하루는 기이하고 심한 긴장으로 집중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친구와 룸메이트들를 저녁에 초대하고 메뉴를 하나씩 준비한다. 동생이 같이 가지 않는다더니 미안했는지 같이 간다더니 할 일들을 생각하니 번거로운지 가지 않는단다. 미안한지 먼 곳이냐고 다시 물어본다. 괜찮다하고 문을 나선다, 미안한지 잘 다녀오라고 문자가 온다. 가게를 세 군데 들린다. 음료를 구입하고 식재료를 구입하고 조리된 음식도 구입하고 집으로 향한다. 음료를 냉장고에 넣고 음식들을 하나 둘 준비한다. 준비 끝. 저녁 시간은 멀었다.
동생은 5주 동안 사용한 이불 베게 쿠션커버 수건, 그리고 나의 세탁물들을 세탁한다. 세탁기와 건조기를 대여섯번 돌린다, 하루종일 돌린다. 친구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며 무엇인가 필요한지 나의 무릎을 킁킁거리는 강아지와 산책을 나선다. 친구의 남자친구와 문 앞에서 마주친다. 강아지와 셋이 산책을한다. 같은 집에 5개월을 지냈지만 이렇게 길게 이야기를 나눈 것은 처음인지 싶다. 학교, 인턴쉽, 고향, 가족, 일 등에 대해 소소한 이야기들을 주거니 받거니, 산책 길이 즐겁다. 착하고 좋은 사람들. 집에 도착하고 동생과 짐을 정리한다. 친구가 도착한다. 침대에 누워 한참 이야기를 나눈다. 이런저런 기회가 없었던 이야기들을 나눈다. 고맙고 미안하고 고마운 친구, 무엇 보다 소중한 시간과 추억을 나눈 친구.
마지막 친구가 도착한다. 기다리며 배가 고파진 우리들, 식사와 이야기를 나눈다. 다른 곳에서 다른 것들을 경험하고 지낸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눈다. 재미도지고 신기하기도하고 그냥 마음이 편안하다. 종일 혼자 안절부절 가만히 있지 못하고 진정하지 못하던 시간과 달리 세네다섯시간이 훌적 흐른다. 어느 새 떠날 시간이 다가오고 케익을 푸르려는 찰나 고모와 고모부가 도착하신다. 두 분을 안으로 초대한다, 계획치 않은 즐거운 서프라이즈. 에스프레소 케익에 초를켜고 노래를 부르고 사진을 찍고 케익을 나누어 먹는다. 그리고 시간에 밀려 떠난다, 굳바이. 급하게 안녕, 이게 나을 것이다. 접시들을 닦고 그릇들을 닦고 팬을 닦고 수저 포크 나이프 컵들을 모두 닦는다. 싱크대 식탁 조리대도 닦는다. 동생을 위해 만들어 둔 커리도 버리고 사 둔 태국 음식들도 버리고 밥솥의 밥도 버린다. 녀석이 아니면 먹지 않을 음식들, 모두 버린다. 남은 음식들을 접시에 정리하여 냉장고에 넣는다. 룸메이트들에게 부디 부엌의 모든 음식들을 먹어도 좋다고 메모를 남긴다. 끝.
슬플 수 아쉬울 수 어려울 수 있었을 밤인데 참으로 행복하다, 상당히 감사하다. 공항으로 향하는 동생에게서 문자가 온다, "thank you for everything"
thank you for ever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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