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아라, 참아라, 그러면 언젠가 끝이 찾아온다. <아름다운 아이 - 이시다 이라>
5년 전 사진들을 본다. 나는 참으로 어리고 아름다웠구나. 지금의 나를 본다, 나는 참으로 어리고 아름답구나. 하지만 지금의 나를 생각하면, 마냥 어렵고 감사함이 부족하며 상당한 아쉬움이 떠오른다. 당시에는 모르고, 돌아보아야 보이는 것들. retrospect 는 늘 조금은 흐리고, 많은 낭만이 입혀진다. 그것이 보다 정확한 모습이라 하자.
김밥, 그 단순함의 아름다움 !
이불 세탁
바닥 청소
수면 잠
영화 드라마
책
카카오
비싼 밥 먹고 감정낭비하기엔 수입이 너무 적다.
돈이 없다. 돈이 없으니 순간 시간을 돌아보게된다. 내 얼마나 쉽게 편안하게 돈을 사용하였는지, 그리고 내 얼마나 시간을 낭비하였는지. 학비가 크게 느껴지기 시작하며 나의 '안되면 안되는거야' 태도의 금전적 값이 크게 느껴진다. 통장에 아쉬움이 없으면 상대적으로 나의 학비 또한 아쉬울 것이 없지만, 얄팍한 잔고를 보니 학비를 돌려 사용하고 싶다. 비싸도 고집하던 '품질'이 의심된다. 이왕 구입하는 것 좋은 것으로, 라는 태도를 생각하게된다. 음식도 저렴한 대량생산 아닌 소량생산 개인제배 유기농, 식당도 건강하고 깨끗한 곳, 가구도 편안하고 예쁜 것, 필요치 않은 옷도 기분을 위해 선뜻 구입. 참으로 쉽게 썼다, 돈. 물론 나의 생활들을 돌아보게 되지만 무엇 하나 후회되는 것은 없다. 이렇게 잘 지냈으니, 없는 잔고로도 새로운 '잘'을 찾아서 지내면 된다. 조금 적게 먹고 적게 입고, 외식도 쇼핑도 줄이면 되는 것. 그렇게 통장에 뚫린 커다란 구멍을 작은 구멍으로 좁히자. 방세 학비는 줄일 수 없으니, 식비 쇼핑비를 줄이면 된다. 내가 먹고 쇼핑하는 것 외에 하는게 무엇 있겠는가.
배부르고 따듯하고 깨끗하고 편안했다. 이 모든 것의 상당 부분이 돈인 것이다. 편안한 마음의 기반은 금전적 편안함이더라. 돈 필요하다. 하지만 비효율적인 분배로, 부족함에 도착한 지금, 어쩔 수 없다. 돈 없어서 궁핍하고 이런거 .. 해보고싶었어. 진심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은행이 싫다, 그 더러운 사기성을 가리고있는 복잡함 !
시험이 지나고 냉동식품 몇가지와 약을 먹고 잤다. 늦은 밤 깨어 과일 몇가지를 다시 주워먹었다. 전기장판이 고장나 이불이 서늘하여 벽난로를 켜고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엄마가 그랜드 캐니언을 다녀오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룸메이트가 분주히 수다를 떤다. 라면을 하나 끓여먹고 카페에 왔다.
keep calm and carry on
진정하고 지속하라 ..
근래 건강이 제법 괜찮다. 운동도 꾸준히 하고있고 식사도 적당히 하다. 시험 전 몇 일 동안 흐트러지기는 했지만 윗몸일으키기도 야채과일 갈아 마시기도 꾸준히 하고있다. 식사 및 운동 기록을 매일 부지런히 기록하는 것이 큰 도움이된다.
누군가는 행복히 누군가는 불편히, 이렇게 저렇게 모두들 살고 죽는다. 못 살고 못 죽는 삶들이 아닌, 살고 죽는 삶들이다. 카페에 앉아있는 시애틀 거리의 노숙자들을 보니, 사회의 기생충 pest of society 라는 생각이든다. 저들은 사회에 어떠한 공헌을 하는가. 하지 않는다. 길거리를 더럽히고 종일 담배를 빨며 수고스러운 수다를 떤다. 저들이 하는 일의 이로움은 무엇인가, 없다. 노숙자를 위해 사회는 공공 거처를 마련하고 식사를 마련한다. 사회는 불필요함을 지속적으로 키우는 시스템을 굴리고있다. 사실상 공부를한다는 학생의 신분인 나도 사회적으로 이로움을 생성하지는 않는다. 나의 사회활동이라면 금전적 소비, 국제 경제 원동력의 미미한 일부분 정도. 저들이 사회의 기생충이라면 나 또한 마찬가지이다. 내가 사회의 기생충이 아니라면, 저들 또한 아닌 것이다.
경제적인, 공적인 관점에서 불필요한 존재들. 하지만 생물적 화학적으로 노숙자와 나의 차이는 0 zero 에 가깝다. 그들도 나도 같은 단백질과 분자들로 구성되어있고, 같은 호르몬을 분비하며, 같은 에너지원을 공유한다. 나에게 혼이 있다면 노숙자에게도 혼이 있을 것이다. 먹고 번식하고 너나나나 다르지 않은 존재. 내 어디 감히 위아래를 생각할 뿐더러 논하겠는가.
나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있는가, 열심히 살자. 겉 보기에 깔끔하고 무엇인가 부지런히 하는 듯한 나의 학생 삶이나 노숙자의 삶이나, 가치 차이가 없다. 이로움을 생성하는, 사람이 되자.
일곱시 기상. 일정이라곤 공부와 오후 약속인데 왜 이 시간에 일어나 이불 세탁을 돌리고 식사를하고 카페에 앉아있는지 .. 나는 '아침형 인간'인건지, 공부 시작도 전에 피곤한 것을 보면 그저 불면인건지 .. 오래 미루어둔, 정리해야 할 서류들이 몇가지 있다. 이번 방학은 어디 가지 말고 마무리 지어야지.
친구는 나의 감정을 모르겠다고 했다. 그럴도 것이 이야기 한 적도 없거늘 서운 할 만큼 내가 부족했다. 친구에 대해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지 싶다. 내가 얼만큼 그들을 소중히 여기는지, 그 정도를 생각 해 본 적도 없거니와 비교해 본 적도 없다. 나는 늘 느리어 늦다. 나의 감정을 인지하는 조차도, 상대의 아쉬움 후에 따른다.
고등학교 졸업무렴, 시애틀로 떠나오기 몇 개월 전부터 엄마는 마음의 준비를 하려하셨다. 너 떠나면 아쉬워 어떻게 지내니라는 말이 듣기가 싫어, 왜 ~ 아니야 ~ 등의 빈소리만 했던 나다. 참으로 엄마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구나, 않았구나 .. 이제와서 마음이 찡. 엄마 고마워.
이렇게 곰팡이가 예쁘게 내려 앉아야 장이 제대로 된 거예요. 이런 흰 곰팡이가 맛을 내는 역할을 해 줘요.
유월 중순이다.
5일 째 아프다. 약에 취햇다, 감각이 둔하고 어질어질. 방금 일어나 식사했지만 다시 자야겠다. 약에 취해 먹고자고를 반복하기가 몇 일 째인가 .. 이 유월에 벽난로를 켜고 잠들어 꿈에서는 눈이 내렸다. 몸이 얼음같이 차고 굳었다. 마침 전기장판이 고장이다. 몸에서 열이나 이불은 따듯한데 그 안에 있는 몸은 차가운 기이한 느낌을 안고 계속 잔다, 잠잠잠 ZZzz.
인간극장을 잔뜩 보았다. 사람들이 저렇게 어렵게 예쁘게 바쁘게 아프게 아름답게 사는구나 .. 나는 혼자 무엇을 했는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혼자라는 것이 더욱 싫고 이렇게 주저리 대는 것도 지겨운 요즘이다. 창준이가 가까이 있으니 아파도 마음이 편안하고 슬프지 않고 그저 아플 뿐, 서러운 눈물이 나지는 않는다. 재밌는 것은 약을 잔뜩 먹어서인지 졸리기도하지만 기분이 좋다. 무슨 인간극장이 이리 재미있는지.
좌우지간 왠 감기가 이리 길더냐. 그제나 어제나 오늘이나 증상의 호전이 없다. 앞으로 최소 3일은 더 아플지 싶다. 5년치 아플 것 아팠다고 치자.
유월 말이다.
아침 눈을 뜨니 벽난로가 여전히 타고 있다. 창 밖은 어둑하지만 아홉시를 훌쩍 지난 토요일의 아침. 새로운 하루가 아닌 어제의 연장선이라는 불만족스러운, 어제의 실수로 상쾌하지 않은 아침. 주말 장이 열리는 토요일, 옷을 챙겨입고 문을 나선다. 집보다 상쾌한 공기에 조금이나마 마음이 가벼워진다. 그렇게 몇 가지 식품을 돈과 교환하고 집. 룸메이트와 엉킨 동선에 다시 한 번 불편한 아침 .. 순간의, 오랜만의 패닉. 안되겠다 싶어 짐을 부랴 챙겨 카페로 이동한다. 사람들이 앉아 따듯한 음료를 마시는 공간에 오니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안하다. 공부를 한 시간 마치고 이제야 길게 숨을 쉰다. 인터넷으로 책을 한 권 주문해야겠다, 혹은 두어 권 ..
어제부터 긴 빗 줄기가 쏟아진다. 비는 조용한데 빗길을 달리는 바퀴들이 소란스럽다. 산책하는 진저는 소음을 피해 내 발에 가까이 걷는다 .. 그렇게 panic 의 토요일 아침이 지나 토요일 오후가 왔다. 여전히 카페에 앉아 공부 중. 녹차는 식은지 오래다. 동생과 한 집에서 생활하니 동선이 수업과 수면을 제외하고는 거의 같다. 밥먹는 시간 장소, 누구를 만나는지, 어디를 가는지 함께 움직인다. 각자 방에 있는 시간도 있지만 나의 방에서 책상을 공유하기에 작업도 함께다. 매우매우 베리베리 마냥 상당히 좋지만 각자의 시간도 필요하다. 오랜만에 카페에 앉아있으니 좋다. 와중 동생이 궁금하여 문자를 보내려 전화기를 꺼냈는데 문자가 와있다, 누나 우산 있냐며. 집에 언제오냐며, 우산들고 데리러 오시겠단다. 여전히 비가 길게 쏟아진다. panic 의 아침을 뒤로하고, 마냥 매우 베리 상당히 great 한 오후이다.
사실 동생과 이렇게 긴 시간 함께 있기는 처음에 가깝다. 십대 말 부터 집이 아닌 객지에서 학교를 다녔고. 주말마다 집에 갔지만서도 동생 또한 운동 스케줄이며 시외학교 기숙사 생활에 집에 없는 시간이 많았다. 고등학교를 졸업 한 후로는 유학이라는 생활에 집과 더욱이 멀어졌다. 물론 여름방학마다 청주에 돌아가기도하지만 동생 또한 기숙사 생활에 집에 없는 시간이 많았고 엄마 아빠와 함께 보내는 시간과 이렇게 둘이만 보내는 시간은 상당히 다르다. 워낙 말 수가 적은 녀석이여서 부모님과의 대화가 있는 동안은 나와 굳이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이렇게 둘 만이 지내다보니 이제서야 어느 정도의 대화량이 형성되었다, 이제서야 내 나이 스물 넷 에서야 동생과의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나는 그 동안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 왜 그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허튼 곳에 버렸는지. 왜 나의 아픔을 공유하지 않고 혼자 안고 쓰라리느라 나 자신을 낭비했는지. 그 시간 동안 내가 얼마나 가족들과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었을지를 생각하니, 숨이 길어지고 마음 구석이 묵직하다. 지난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 지혜로움이리라, 앞으로 행복한 날들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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