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와 사랑

저자
헤르만 헤세 지음
출판사
홍신문화사 | 1992-07-01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독일의 서정시인이자 소설가인 헤르만 헤세의 대표작. 골드문트와 ...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상상은 매 번 영상보다 아름답다 .. 감동의 감동, 감탄 존경 부러움.



... 왜 조각을 배우려 하는지 그 이유는 말씀들리 수 있습니다. 저는 여러 가지로 많이 생각해보았습니다. 저는 여러 가지의 얼굴과 형태를 보고 그것에 대해 사색을 많이 해보았는데, 그 가운데서 특별히 저를 괴롭히는 생각도 많았습니다. 어느 형태에든 일정한 형식, 일정한 선이 되풀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마와 무릎, 어깨와 허리가 서로 대응이 됩니다. 그리고 이런 무릎에 이런 어깨며 이마를 갖고 있는 사람은 그 본질과 정신적인 기조에 있어서 서로 같다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또한 어느 날 밤 해산을 하는 여인 곁에서 본 일이지만, 최대의 고통은 최대의 쾌락과 같은 표정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이 작품은 경건함과 밝음으로 가득 차 있고 엄숙하면서도 행복함과 평온함으로도 가득 차 있어. 그래서 사람들은 그 마음이 무척 밝고 명랑한 사람이 이 작품을 만들었을 거라고 생각할거야.

...

하지만 이 작품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는 비밀로 해두세. 겸손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나는 이렇게 말하하지 않을 수가 없네. 기교와 정성에 있어서는 결코 뒤떨어지지 ㅇ낳으나 그 진실성에 있어서는 자네에게 미치지 못하는 작품을 나는 많이 만들어 왔다고 말일세. 이런 작품은 두 번 다시 만들 수 없으리라는 것을 자네도 알걸세. 그리고 이건 비밀이야.

그렇습니다. 저도 작품이 완성되어 그것을 보면서 이런 작품을 두 번 다시는 만들 수 없으리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다시 방랑길에 오르려고 합니다.

... 왜 인간들은 그다지 바보스럽고 거칠며 생각이 모자라고 멍청할까? 왜 그들 모두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것일까? 생선 장수도 아낙네들도, 또 값을 깎는 손님들도 생선의 아가리가, 죽음의 공포에 떠는 눈깔과 버둥거리는 꼬리가 소름끼치는 단말마ㅡ이 절망적인 싸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그리고 신비롭고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고기의 참을 수 없는 변신이, 죽어가는 피부 위에 번지는 마지막 떨림이. 그러고는 숨이 끊겨 포만한 미식가의 식탁을 위해 비참한 토막 신세가 된다는 것을 왜 모르는 것일까? 인간은 그 모든 것을 눈치채지도 못한단 말인가? 그들은 아무것도 보지도, 눈치채지도 못하고 또 아무도 그들에게 그것을 말해주지도 않는구나! 불쌍하고 어리석은 고기가 그들의 눈앞에서 죽어가건나 스승의 성자의 얼굴에다 온갖 희망과 고귀함과 괴로움과 인생에서 겪는 음울한 공포를 놀랄 정도로 뚜렷이 나타내던 그런 것이 그들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듯, 그들은 아무것도 못보고 알아차리지도 못하는구나! 사람들은 모두가 자족하거나 쓸데없이 바쁘며 서두르고, 소리 지르고, 시시덕거리고, 트림을 하고, 소란을 피우고, 익살을 떨고, 한두 푼의 돈 때문에 다툰다. 그들은 모두가 흡족해서 자기 자신과 세상에 대해 만족하며 살아간다. 그들은 돼지다. 아니, 돼지모다 더한 바보들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런데 그 자신도 그들과 섞여 있었으며 그들처럼 만족을 느꼈고 아가씨들을 따라다녔으며 아무런 두려움도 없이 태연스럽게 접시에서 구운 고기를 집어먹었었다. 그러나 언제나 신들린 사람처럼 즐거움과 침착성을 잃었으며 자기 만족과 정신적인 나태를 떠나 고독의 한가운데로, 명상의 한가운데로 뛰어들어 고통과 죽음과 영위하는 일에 대한 미혹과 심연을 관찰했었다. 

아아, 인생은 그 두 가지가 다같이 얻어지고 그런 멋없는 양자택일에 의해 분열되지 않을 경우에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활이란 것을 희생시키지 않는 창조, 창조의 고귀함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생활, 그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말인가!

그것이 가능했던 사람도 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성실을 지키면서도 관능의 쾌락을 잃어버리지 않은 남편이나 가장이 있었으며, 자유와 위험을 잃을까 염려해서 가슴을 시들도록 내버려둔 안주자가 있었을까? 아마 그럴 수 있는지도 모르지만, 그는 아직 그런 사람을 보지는 못했다. 

이 지상에 현존하는 모든 것은 그렇나 이원적인 것과 대립에 근원을 두고 있다. 여자가 아니면 남자이고, 더돌이가 아니면 안주자이며, 이성적이 아니면 감정적이다. 숨을 들이마시면서도 내뱉고, 남자이면서도 여자가 되고, 자유를 원하면서도 질서를 바라고, 충동적이면서도 정신적이 되는 그런 양면을 동시에 체험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한 가지를 위해서는 다른 것을 잃는다는 값을 치러야 했으며, 그 한 가지는 다른 것만큼 중요하고도 열망할 가치가 있지 않는가! 그 점에 있어서 여자는 남자보다 훨씬 쉽기는 하다. 여자의 경우에는 스스로 그 쾌락으로 하여금 열매를 맺도록 하여 사랑의 행복으로부터 아이가 태어나도록 자연이 창조해주었다. 하지만 남성의 경우에는 그런 것 대신에 영원한 동경만을 주었을 뿐이다. 그 모든 것을 그렇게 되도록 만든 장본인이 신이라고 한다면, 신은 짓궂거나 적의에 차서 자신의 창조에 대해 심술궂게 웃고 있을까? ... 신이 인간의 결함과 동경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든 갖고 있지 ㅇ낳든, 그것이 악마의 씨앗인 원죄이든, 신의 창조에는 결함이 존재했다. 그렇다고 이런 동경과 불만이 원죄라고 해야 한단 말인가? 그리고 인간이 창조해서 신에게 제물로 되돌려준 모든 아름다운 것과 성스러운 것이 모두 그 원죄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었던가?


Posted by water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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