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hattan Project 에 대해서 생각하자면 그야말로 세계적인 - 굉장한 규모의 프로젝트이다. 주최는 United States Army Corps of Engineers. 무엇보다 당대 최고의 머리들을 한 자리에 모았다는 것 만으로도 상당한 역사적 현상이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과학자들 중 가장 대표적으로는 Albert Einstein, Enrico Fermi, Richard Feynman, J. Robert Openheimer, Harnold Urey, Neils Bohr, Linus Pauling, Ernest Lawrence, Theodore Hall, Rudolf Peierls, David Bohm, Mark Oliphant 등.
프로젝트는 미국이 주도하고 영국과 캐나다의 협동으로 이루워졌으며 2차 세계 대전 당시 최초의 원자폭탄 설계를 위한 프로젝트. 1939 즈음 시작된 프로젝트는 130,000 명 이상의 인력이 사용되었고 $2billion 의 자금이 투자되었다. 자금은 공장들과 연구소 인력 등에 사용되었으며 연구와 제작은 30 지역 - 공개와 비공개된 - 지역에서 행해졌다. 지역들은 미국, 영국, 캐나다 영토의 여러 곳에 위치. 연구는 상당한 경비와 보안 하에 진행되었지만 - 소련의 atomic spies 원자력 스파이들은 여전히 정보를 꺼낼 수 있었다고한다.
Manhattan Project 를 위해 설립된 미국과 캐나다 시설들의 위치.
당시 uranium-235에 대한 초기 연구가 한창 진행되었고 plutonium 이 발견되기도 한 시기이다. National Defense Research Committee 는 uranium 연구 - 그 중에서도 Uranium-235 isotope -에 상당한 투자를하기 시작했다. 또한 당시 University of Birmingham 의 Otto Frisch 와 Rudolph Peierls 는 Uranium 235 의 critical mass 에 대한 혁신적인 발견을 하였고 - 프로젝트에 참여하게된다.
진주만항 공격과 미국의 일본과 러시아에 대한 전쟁 선포 당시 uranium 235 와 uranium 238 분리 연구는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Earnest O. Lawrence 의 팀은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에서 electromagnetic seperation 을, Jesse Wakefield Beam의 팀은 Columbia University 에서 geseous diffusion 을 Philip Abelson 의 팀은 Carnegie Institution of Washington 에서 thermal diffusion 을 연구하였다. 또한 nuclear reactor technology 와 heavy water 에 대한 연구도 한창이였으며 이에는 Princeton University,University of Illiniois, University of Chicago 등 상당한 교육기관들과 인재들이 투자되었다.
연구, 제작, 과 실험을 위하야 상당한 숫자의 지역들이 연구소와 방사능 처리장으로 세워졌다. 지역에는 Oak Ridge, Los Alamos, Argonne, Hanford 가 있으며 캐나다에 위치한 기관들과 Heavy water sites 들 또한 도 상당수다.
미 대통령 Harry S. Truman 이 Atomic Energy Act of 1946 를 서명하는 모습 - United States Atomic Energy Commission 의 설립.
쉽게 볼 수 있다 싶히 - 본 연구들은 물리학의 가장 기본적인 분야들이며 물리라는 학문에 이렇게나 많은 기관들이 열을 올렸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과학의 발전은 항상 사회적인 압력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것 같다. 천문을 바라보던 갈릴레오에게 어떠한 사회적 압력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 본 물리 연구를 보아도 그러하고, 대부분 현대과학의 연구는 사회적 관심이 깊은 곳에 집중된다. 예를들어 환경 과학 또한 최근 굵어지는 환경적 문제들에 인해 투자가 높아지고 있고 - 상당수의 의학적 연구 또한 암이라는 '핑계'를 두고 이루워지는 경우가 많다.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연구에 대한 투자나 관심이 두어지지 않는 것이다.
맨하탄 프로젝트는 분명 물리적 연구에 상당한 기여를 하였다 - 하지만 그것은 많은 과학자들을 두려움에 몰기도하였다. 여기서 관심을 두어야 할 것은 과학자들의 두려움과 그것의 스케일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정치인들 사이의 gap 이다. 이러한 연구를 진행한다는 자체가 과학자들의 입장으로써 얼만큼의 긴장감 - 어떤 면에서 죄책감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투자의 규모를 보아서는 정치인들의 관심은 오로지 목적에 있고, 과학적 능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도 하지만 관심조차 드믈어 보인다.
확실히 Manhattan Project 는 과학과 사회의 융합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프로젝트 - 어쩌면 모든 과학 프로젝트의 prototype 이라고 생각되기 까지 한다. 어쩌면 아쉬운 현실 - 하지만 근래의 물리적 연구의 방향은 조금 다른 것 같기는 하다. 상당 부분 실용과학에 치우쳐있기는 하지만 parallel universe 나 string theory 에 대한 상당한 관심은 과학적 순수 사랑 - 우리 사회가 과학을 대하는 입장의 희미한 긍정적 관심이 아닌가 싶다.
자료 출처 http://en.wikipedia.org/wiki/Manhattan_Project#After_the_war
http://gk12.rice.edu/trs/science/Atom/man.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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