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 아니 내가 가벼운 것이 꿈이 참 많았다. 많은 꿈을 한꺼번에 안지는 않았지만 쉽게 하나에서 둘로 넘어가 지금의 내가 있다. 초등학교 꿈을 지키는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많으리라. 하지만 조금은 나의 옛 꿈들에 대한 예의 따위가 남는지 종종 생각이 나곤한다. 초등학교 1학년 쯔음 나는 외고관이 되고싶었다. 미국에 다녀온 경험이 있어서 그랬는지 국제적인 교류 따위 , 지금이야 이렇게 말하지만 당시의 머릿 속으로는 한국과 다른 나라들의 나눔 따위가 하고싶었다. 이러한 설명에 담임 선생님께서 거창하게도 '외교관'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셨다. 중학교 시절 나는 아나운서이고 싶었다. 방송에 나와 또박또박 한 줄 씩 소식을 전해주는 모습이 너무나 예뻤다. 근래의 아나운서는 나 어릴 적과 많이 다른 것 같다. 언제인가부터 아나운서라는 사람들이 '방송인'이라는 개념을 많이 이용하면서 , 아나운서의 고유성이 조금은 희석되는 것 같다. 무튼 나는 단정한 단발 머리에 수트를 입고 앉아 소식을 전하는 여자이고 싶었다. 고등학교 시절 심리학이 공부하고싶었다. 국내외로 봉사활동을 다니던 시절 , 고아원의 아이들이 너무나도 딱하게 여겨졌다. 특히나 한국의 고아원 아이들이 보다 지쳐보였다. 시설에 버려지거나 배치된 아이들은 부모가 있는 아이도 있고 그렇지 않은 아이들도 있었다. 경우에 따라 부모가 방문을 하기도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아이들의 마음이 상당히 불안한 것이 눈에 띄었다. 말이 많은 아이, 커튼 뒤로 숨는 아이, 손을 잡고 놓지 않는 아이, 관심의 중심이여야 하는 아이..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정신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이 대부분이였다. 물론 시설마다 다르고 , 한국의 전반적인 상황을 정확히는 모르겠다 - 하지만 그 아이들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그러한 시설은 제정적으로 부족한데 , 아이들의 정서는 의식주 , 교육 , 시설 정비 등 많은 것을 고려 한 뒤에나야 고려 할 수 있는 분야로 보였다. 심리학을 전공하여 세계의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 시스템, 제도 따위에 기여하고 싶었다. 이 때의 꿈이 가장 규모가 크고 조금은 체계적이지 않았던 것 같다. 대학에 와서도 심리학 사회항 철학 분야의 수업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나 자신이 너무 치우침을 느끼고 피로하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나는 전공을 이공계로 바꾸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사실 중학교 시절 아빠를 따라 한의대를 갈까라는 생각도 잠시 했지만 , 현 상황은 모르겠으나 당시 한의대는 의대보다 들어가기 어려운 전국 상위 1%에게도 장담되지 않는 곳이였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의약 분야의 학교에 나도 도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치대 약대 쪽을 고려한 결과 약대를 가기로 마음 먹었다. 그렇게 한 단계씩 지금의 약대 준비를 하고 있다. 내년 쯤이면 약대에 원서를 내야하고 , 서류원서가 붙으면 인터뷰도 보러 여행도 다녀야 할 것이다. 그 이전에 시험을 보아야하니 준비 중이다. 정리하자면 지금의 꿈은 약대를 졸업하여 관련직종에 종사하는 것이다. 조금 크게 꿈을 잡자면 FDA , USDA , 혹은 한국 식약청과 같은 국가관련일을 하고 싶다. 제도나 국가정 시스템 설림 등에 기여 할 수 있다면 뜻 깊을 것이다.
어느정도 구체성을 가진 지금 .. 아나운서의 꿈은 사실 특별히 상당한 규모이거나 야망적이다기보다 상당히 나이에 비해 현실적이였던 것 같다. 고등학교의 꿈이야 말로 dream big 을 상징 하듯 굉장한 꿈을 가졌던 것 같다. 그것이 이루고 싶었고 그에 비한 나의 무능함에 자책도 많이 했던 시절이다. 세상에 대해 바꾸고 싶었던 것이 참으로 많았고, 막연함과 막대함에 기가 죽어 가장 힘들기도 했던 시절.. 무튼 당시에 비해 상당히 체계적, 구체적이고 현실적인..현실적인가 하하, 목표를 세운 지금이다. 언젠가 친구가 말하기를 , 사람이 간사한 것이 나이가 드니 머리가 계산을 한다고 - 상황에 대해 마음가는 것 보다 머리가 먼저 그것의 실용성을 계산한다고 한다. 나 또한 그가 마찬가지 일 것이다. 체계적이여진 이유는 그것의 실현성을 가늠하기 위해서 일 것이고 , 나의 꿈 또한 나 자신에 대한 보람을 위한 것 - 이전의 세상을 위한 것과 상반되는 기준이다. 이렇게 세상보다 나 자신이 기준되는 꿈을 갖게되기까지 , 나의 꿈이 진화하였다. 사회적, 개인적, 소소하고 큰 압력에 의해 변하고 변하여 , 남은 것이 오늘의 나의 '꿈'이다.
시험 공부를 하고있는데 사실 시험의 내용이 어렵다기 보다 범위가 넓은 편이다. 생물, 화학, 수학논리, 언어논리, 리딩, 라이팅 분야가 있으니 - 학습해야 할 범위가 꽤 된다. 이것이 지능적 시험이기는 하지만 어쩌면 인내를 시험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계속 든다.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만 수 개월 혹은 일년 내외의 시간이 들고, 학교들을 알아보고, 원서를 작성하고, 인터뷰를 준비하고 하는 시간이 길다. 학교 자체 또한 합격이 되면 긴 세월을 수업을 들으며 보내야한다. 결국 졸업 후 나는 서른 즈음이 될 것이다. 나의 이십대를 학교에 이렇게 메달려 보내고 싶은가 , 그것은 아니다. 나도 여행이 하고싶다. 가고 싶은 나라들, 도시들의 리스트만 일곱 여덜 곳은 된다. 짧은 여행보다 사실 긴 머무름들을 바라지만 그러한 시간적 여유가 나에게는 없다. 방학 또한 쉴 수 있는 시간이 아니다. 시험준비를 해야하고, 다음 학기를 위해 서류적인 것들을 준비해야하고, 이사 할 집도 알아보고 - 여행의 여유는 나에게 주어진 것 보다 크다. 이러한 관문들을 하나씩 통과하면서 , 결국은 기다림, 노력, 시간, 정성 등 - 오랜 동안 투자해야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렇게 달을 채워 기울이기까지 .. 험하다기보다 긴 여행인 것 같다 - 나의 이십대여 행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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