뼛속까지내려가서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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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나탈리 골드버그 (한문화,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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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작가소개를 읽자면, 작가는 작가이자 글쓰기 강사이다. 이 책을 쓰며 "미국인들의 글쓰기에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켰다"는데 .. 의심스럽지만 넘어가자.
"글쓰기에 도전해보고자 하는 이들이라면 꼭 읽어보아야 할 새로운 바이블로 떠올랐다출간된 후 20년 가까이 지났지만 독자들의 이런 열기는 식지 않아서 이 책은 현재에도 아마존 베스트셀러 상위를 점하고 있다."
라는데 .. 책이 많이 팔렸나보다, 음. '력명'이나 '바이블'로 설명될 정도의 책은 아니다.

내용적으로는 글을 쓰는 작가에게 도움을 주고자 쓴 글이다. 작가는 작가에게 글을 쓰는 방법을 가르치려한다. 읽으면서 동의하는 바도 있고, 공감하는 바도 있고, 인정 할 수 없는 바들도 있었다. 물론 내가 작가도 아닐 뿐더러 글쓰기 강사도 아니지만 글을 씀에 있어 옳고 그름을 따질 수는 없지 않을까. 물론 보편적인 기준이 있겠지만 전적으로 동의 할 수 없는, 그렇다고 전적으로 부정 할 수도 없는, 나에게는 어중간한 책이었다.

글을 쓰는 것을 즐기는 나에게 충분히 흥미로운 주제였다. 작가의 필독이라고는 전혀 할 수 없다. 오히려 문학을 한 단락 곱씹어 읽는 것이 훨씬 이로울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방법'을 서술한 책들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행복의 방법' '여행의 방법' '성공의 비법' 따위는 참으로 매력이 없다.

나의 동의 여부를 떠나, 공유하고 싶은 문구들은 제법 있었다.
더욱이 규칙적으로 달리기 훈련을 하게 되면, 이 훈련 자체가 저항감을 잘라내고 무시해 버릴 수 있는 또 다른 훈련이 된다. 당신은 계속 달린다. 이렇게 한참 동안 달리다 보면 당신은 어느새 달리기를 사랑하게 된다. 게다가 목적지가 보이게 되면 절대 중간에 포기
하지 않는다. 그리고 골인을 하고 난 후에는 다시 또 달려보고 싶다는 갈증에 사로잡힌다.
사실 글쓰기 뿐 아니라 모든 분야를 연습함에 있어서 그러하겠지만, 특정한 행위를 연습한다는 것에는 굉장한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그 행위와 그 행위에 대한 나의 태도의 관계이다. 내가 특정한 것을 연습 할 때에, 시작은 호기심이었을테고, 그것에 능숙해지고 숙련되기 위해 많은 연습을 할 것이다. 연습은 어려울 것이고 나는 처음의 호기심을 잃어가고 지칠 것이다. 이 때에 나의 그 순간적 감정을 무시하고 행동을 지속하다보면 호기심으로 시작한 지친 연습은 어느 사이에 사랑이 되어있을 것이다. 이것은 작가가 언급한 달리기에서도 마찬가지고, 글쓰기에서도, 모든 운동, 모든 업무에 공통된다고 생각한다. 




지금 나에겐, 1977년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부터 모아 놓은 용수철 노트가 내 키 높이만큼 쌓여있다. 마음 같아서는 이것들을 모조리 버리고 싶다. 습작 시절의 엉클어진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들키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나에게도 5학년 때 부터 쓴 일기장들이 열 권 정도 있다. 불질러버리고 싶은 마음이 수십번도 더 들었지만 그럴 용기가 없다기보다 특별한 이유가 없다. 쉽게 버리기에는 미련이 남고 불을 지르는 등 기이한 행위를 하기에는 동기가 없다. 아무튼 그렇게 나의 일기장들은 존재한다. 블로그를 쓰면서 일기장들이 멈추었구나, 잘된건지는 모르겠다.




"주말 내내 네 노트 읽느라고 혼났어. 아주 친밀한 글이더라. 하지만 어떤 글은 겁에 질려있고 불안감이 배어 있었지. 지금의 네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너의 모습이라고는 상상도 못할 아주 거친 에너지가 들어 있는 생경한 글도 읽었어. 그리고 지금 내 앞에 네가 다시 서있어. 육체를 가진, 하나의 인간으로서 너의 모습은 글과 또 달라."

노트들은 그러하다, 나의 모든 생각을 쏟아버리는 곳. 늘 느끼지만 글을 쏟음은 구토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특정 멈출 수, 막을 수 없는 행위. 깨끗과는 거리가 먼, 나의 악취나는 내면을 밖으로 버리는 현상.




우리는 스스로가 게으르며 불안정하고 자기혐오나 두려움에 쌓인 존재, 정말 말할 가치도 없는 존재라는 사실과 직면하는 순간을 경험할 필요가 있다. 그때 당신은 더이상 어디로도 도망을 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를 것이다. 이제 당신은 별수 없이 자신의 마음을 종이 위에 풀어 놓아야 하며, 그 가련한 목소리가 들려 주는 말을 경청해야 한다.
이런 쓰레기와 퇴비에서 피어난 글쓰기만이 견고한 글이 된다. 당신은 어느 것으로부터도 도망치지 않게 된다. 당신은 예술적 안정성을 지니게 된다. 안에서 울려나오는 목소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바깥에서부터 쏟아지는 어떤 비평도 무섭지 않다.

대학교 일학년 시절, 나의 대부분 글은 반복적인 내용이었다. 나 자신에 대한 혐오감, 그리고 그러한 혐오감에 불구하고 나를 살아가게하는 고마운 존재들. 내 자신에 대한 혐오감이 컸던만큼 그것을 넘어서고 세상에 남게해준 존재들에 대한 고마움도 컸다. 결과적으로 당시의 글들은 상당히 극적이다.
궁금한 것은 나의 이러한 자신 혐오감은 인간에게 보편적인 것일까? 대부분의 인구도 나와 같은 극적인 자신에 대한 더러움을 느꼈을까? 물론 그러한 경험으로써 내 자신의 감정적, 인지적 범위가 넓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만이 견고한 글을 쓰는 유일한 방법일까? 음, 아직 나는 많은 사람을 만나지 않았구나.




겁내지 말고 용기있게 무작정 뛰어들라.




작가와 작품은 별 개다

우리가 실존하고 있다는 생각, 그것은 착각이다. 우리는 우리가 쓰는 글이 견고하며 영구불변한 구조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우리가 쓰는 글은 순간이 만들어 낸 작품이다.

동의하는 바이다. '글을 쏟는다'는 생각을 참 자주하는데, 글을 씀은 나에게 피할 수 없다는 느낌을 준다. 글은 마치 음식을 먹고 소화하는 배출하는 과정처럼, 생활 속에서 인지하는 것들과 생각들을 소화하고 굳이 배출해야 한다. 글로 쏟아지지 않는 조각들은 쌓이고, 그것들은 스트레스가 되기도 한다. 이따금 바쁜 생활에 글을 오랫동안 외면하는 기간들이 있는데, 결코 편안한 상태는 아니다. 녀석은 나의 권한 밖의 기운을 가지고있다.




예술가로 살기란 절대 쉽지 않다. 예술가는 일을 하고 있지 않을 때조차도 절대 그 일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는 존재들이다. 하지만 나는 그래도 예술 작업에 얽매이고 창작에 대한 강박증에 빠지는 것이 술을 마시거나 초콜릿으로 배를 채우는 일보다 훨씬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창작에 대한 강박증은 무언가 가치 있는 길을 찾아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창작에 대한 강박증이라.. 그것이 다수 작가들의 동기인가?
개인적으로는 내가 모르는 것에 대한 궁금증이 강박증이랄까. 이미 존재하는 범위 내에서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너무 많다는 점이 슬프다. 더불어 내가 서술하는 표현의 정확성 따위에 강박증을 느끼기도하고.. 나에게 주어진 물건이나 생각들을 정리하고 싶은 강박증을 느끼기도한다.창작에 대한 강박증은, 나에게 없지 싶구나.





 
작가는 인생을 두 배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먼저 첫 번째 인생이 있다. 길에서 만나는 여느 사람들처럼, 건널목을 건너고 아침에 출근하기 위해 넥타이를 매는 그런 일상생활이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생활의 또 다른 부분이 있다. 모든 것을 다시 곱씹는 두 번째 인생이다. 이들은 글을 쓰기 위해 자리에 앉을 때마다 자신의 인생을 다시 들여다 보고 그 모습을 면밀하게 음미한다. 삶을 이루고 있는 재질과 세부 사항을 들여다본다.

음, 확실히 글을 쓰다보면 나의 범위가 넓어짐을 느낀다. 어떠한 체험을 했을때의 느낌과, 그것을 글로 서술하면서 생겨나는 느낌은 별개이다. 내가 a 를 보고 무엇을 느낀다. 그리고는 a에 대해 글을 적으면서, 연장선이지만 분명 별개의 감정과 경험을 느낀다. 그렇게 범위가 늘어나는, 글을 쓴다는 것은 분명 범위를 늘리는데에 효과적인 방법이다.






평범함과 비범함은 공존한다.

공감.




작가들은 위대한 애인이다. 작가들은 다른 작가들과 수시로 사라엥 빠진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글쓰기를 배우는 방법이다. 그들은 한 작가에게 다가가, 그가 쓴 모든 작품들을 통해 그가 어떻게 움직이고 휴식을 취하는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는지 완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될 때까지 읽고 또 읽는다.
자신에게서 빠져 나와 다른 누군가의 피부 속으로 옮겨 들어가는 것, 이것이 바로 사랑에 빠진 사람의 모습이다.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사랑하게 되는 능력이 당신 안에 있는 능력을 흔들어 깨운다는 뜻이다. 남의 글을 사랑하게 되는 것은 당신을 더 크게 해 줄 뿐 절대 남의 것을 탐내기만 하는 도둑고양이로 만들지 않는다. 다른 작가가 쓴 글이 아주 자연스럽게 당신 것으로 변해 가면, 당신은 글을 쓸 때 그것들을 활용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작위적이어서는 안된다. 위대한 연인들은 자신이 사랑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는다.
아아, 아름다운 글은 얼마나 행복한가. 글의 내용 뿐 아니라, 그것의 서술은 상당히 중요하다. not what you say but how you say it - 바로 그것. 작가의 위대함은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예술가는 외롭고 고통스러운 존재라는 생각 같은 것은 떨쳐버려라. 어차피 인간은 누구나 고통스럽다. 자신만이 고통스럽다고 생각해서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들 이유는 없다.







방안에 있는 고양이가 움직이는 물건을 응시하는 모습을 지켜본 적이 있는가. 고양이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으면서 동시에 모든 감각을 동원해서 보고, 듣고, 냄새를 맡는다. 당신이 거리에 나가 배워야 할 것이 바로 그런 고양이의 태도다.
주위 환경에 대한 인지도를 높히고, 관찰의 단위를 작게하라. 평범함에서 특별함을 찾고, 세밀한 단위에서 관찰하라는 것.






세상이란 언제나 흑백으로 갈라지는 곳은 아니다. 하지만 작가가 되고 싶다면 분명하고 확실하게 진술하는 것이 필요하다. "글쎄, 웃기는 소리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아마 그것이 푸른 말이었을 거라고 생각해" 이런 글은 곤란하다. "이것은 푸른 말이다"라고 자신있게 말하라.
아, 글쓰기에 기준이 있다면 이것일 것이다. 효과적인 전달.



파리에 갔을 때 발길 닿는 곳마다 카페가 많다는 사실에 나는 무척 놀랐다. 그곳의 카페를 보면서 손님을 서두르게 만드는 불친절한 미국 카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가고 싶다 파리.







충분하다고 느낄 때 한번 더

당신이 글을 밀고 나가 그저 적당한 종점에서 끝맺으려고 한다면, 그 글에는 당신의 진정한 숨결이 배어 날 수 없다. 글 쓰기는 자유를 향해 헤엄칠 수 있는 위대한 기회다. 그 기회를 놓치지 말라.

역시나 모든 분야에 적용 될 수 있는 습관 - 능숙함과 숙련됨을 원한다면 subject 대상에 대한 편안함 이상의 편안함에 도달해야한다.







나는 작가다. 작가는 많은 시간을 홀로 글을 쓰는 데 보낸다. 또한 사회라는 틀 속에서 예술가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우리를 더욱 외롭게 만들기도 한다. 모두가 아침이면 일터로 향하거나 각자의 일을 하기 위해 분주하다. 예술가는 제도가 만들어 낸 사회의 바깥에서 살고 있다.
음, 예술가는 사회제도의 바깥이라 .. 곱씹어 볼만한 주제이다. 일단보류.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천국이다

Gore Vidal 은 아주 멋진 말을 남겼다. "모든 작가와 독자들은 글을 잘 쓰는 것이 그들 모두에게 최고의 여행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여러분은 글을 '잘' 쓰는 것에 대해서도 염려하지 말라. 그냥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천국이니까.
글쓰기 강사여서 그러한가 - 상당히 긍정적인 태도이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특히나 글을 씀을 목적으로 두고 일부러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지옥일 수 있다는 것을 당연히 느꼈을텐데, 왜 그에 대한 언급은 없는가. 
오히려 Gore Vidal 의 말이 맞지 싶다 - 잘 쓰는 것이 최고의 여행이다. 잘 쓰이지 않은 글은 독자 입장에서도 안 읽은 만 못하는, 괴롭다.





일본에는 뛰어난 하이쿠를 적은 종이를 병에 담아 강이나 개울에 띄워 보내는 시인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이것은 작가란 모름지기 자기 작품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아주 의미심장한 우화다.

음, 확실히 가벼운 마음으로, 결과에, 최종적 완성에 연연하지 않고 쓰는 글이 과정도 즐겁고 결과도 만족스럽다.








자신이 쓴 글을 다시 읽어보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재확인하는 기회다. 왜냐하면 당신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글쓰기란 생활에 전혀 도움이 안되는 시간 낭비가 아닐까 하는 회의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신은 이제 자신의 소박한 인생에 매료되어 자리를 떠날 줄 모르게 된다. 평범한 존재를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 주는 것, 이것이 바로 예술이 가진 위대한 힘이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인생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이것은 예쑬이 가진 위대한 힘이기도하지만 지식이 가진 위대한 힘이기도하다. 아는만큼 보이는 것이, 평범함을 특별함으로 만들어준다는 말과 같은말이지 않은가. 배울수록 경이롭고 그에대한 감사함 appreciation 이 쌓이며, 새로운 차원의 삶을 지낸다.




만약 우리가 글쓰기를 통해 이런 경지에 오를 수 있다면, 우리는 우리를 계속 작가로 지켜 주는 골인 지점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경지 .. 하아, 나도 경지에 오르고 싶구나 하하.













Posted by water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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