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 Herald의 기사와, 관련기사인 연합기사를 읽고있자니 터무니가 없다.
기사 내용은 일본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는 인구가 방사능 피폭검사를 받지 않고 입국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방사능 검사 게이트"를 운영하고 있으며, 일본에서 들어오는 이들의 자발적인 검사를 하도록 하였단다. 일본에서 온 20%내외의 인구가 김포와 인천 공항에서 방사능 검사를 받았다고 한다. 지금까지 검사된 인구 중 허용수위 이상의 방사능 contamination이 된 이는 없다고 한다. "피폭자로 확인될 경우 별도의 격리된 공간이나 항공기를 이용해서 입국하도록 조치해 2차 오염의 가능성을 차단해야 한다" 고 국토해양위원회 권선택 의원이 주장했단다.
터무니 없는 일이다. contanimation - 오염이라는 언어 자체가 어이없다. 방사능을 감염되는 바이러스 혹은 세균 따위로 취급하는 듯 하다. 이는 방사능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음을 보여준다. 물론 기자는 과학자가 아님으로 이를 완전히 이해하는 입장이 아닐테다. 하지만 과학기자들은 분야별 별도의 공부를 하지 않는가. 그리고 이렇게 대중적으로 이슈화된 방사능 관련 정보라면 어느정도 깊이있는 이해를 해야한다. 하지만 이렇게 기본적인, 방사능이 어떠한 물질인지, 그것의 성분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기사를 쓰고, 그것을 번역하는 Korea Herald 역시 마찬가지로 터무니 없다.
"권선택 "일본發 입국자 80% 피폭검사 안받아"" 제목부터 기분 나쁘다. 대중의 관심을 끌려는 의원의 이름을 앞에걸고, 80 이라는 커다란 숫자를 걸고, 마치 피폭검사를 받아야한다는 것 처럼, 전제하에 터무니 없는 기준을 깔아두고 쓴 제목. 기사 중 피폭검사의 중요성 따위 또한 나타나있지 않으며, 그것의 기능 또한 설명되어있지 않다. 허용 수치가 어느정도인지, 다른 방사능 수치들과 어떻게 비교되는지, 유용한 내용이 전혀 없다.
언론이 신중해야 하는 이유는, 많은 이들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대중적인 매체일 수록 다수의 기준을 세울 수 있고, 그것은 나아가 집단의 기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글들을 이렇게 사전 조사, 연구 없이 쓰는 일은 혀용되서는 안된다.
언론 뿐 아닌, 권선택이라는 의원또한 마찬가지이다. 어떤 공부를 얼마나 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저러한 주장을 할 수 있다는 자체가, 참으로 용감하다. 대중의 관심을 끌고있는 주제에 대해, 저렇게 가볍게 머리를 스치는 생각을 툭툭 기자에게 던지다니. 공인의 말에 대한 책임을 조금이라도 느낀다면, 말하기 이전의 조사의 깊이가 그 만큼 있을텐데, 책임 의식 따위는 없는 듯 하다.

자료 출처 http://www.koreaherald.com/national/Detail.jsp?newsMLId=20110327000378
Posted by water_
,

Rattlesnake Ridge, 아래의 호수를 두고, 산을 올라가면 Rattlesnake Ledge trail을 따라 올라 갈 수 있음. 더 높은 고도까지 올라가는 trail 이 둘이 더 있는데, Rattlesnake Ledge는 2000ft 정도 되는 듯.  호수를 두고 올려다 본 산




다른 각도에서의 호수 - 하늘이 하얗던 오늘의 날씨. 비는 내리지 않았음. 오리들이 몇 거닐.




올라가서 바라본 아래의 풍경



올라가 바라본 호수의 풍경, 왼쪽으로는 주차장







신난 나의 만세





주차장에서 발견한 특이한 색의 잔디





역시나 즐거운 하이킹. Issaquah에서 대략 1시간 운전. 등산 소요시간 2시간 정도, 하산 1시간. 경사가 꽤 있어 힘들기도하지만 ledge trail은 그다지 길지 않아 큰 어려움은 없음. 다음에는 보다 높은 곳의 trail 을 도전 해보아야 할 듯.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정말이지 아름다움. 강한 바람과 빠질 수 있는 바위들의 깊은 틈이 있음으로 유의해야 할 것. North Bend는 Seattle 과 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환상풍경 제공. I-90에서도 멀지않아, Seattle 에 사신다면 쉽게 오실 수 있음으로 강력추천 !


Posted by water_
,

 
시월애
감독 이현승 (2000 / 한국)
출연 이정재,전지현
상세보기



전지현, 이정재 주연의 영화. Il Mare 라는 집과, 그의 우체통을 통한 로망스 스토리. 時越愛 시간을 초월한 사랑. Keanu Reeves 와 Sandra Bullock 주연으로 리메이크된 바가 있다.
이미 본 영화를 다시 보아도, 기억력이 부실한 탓인지 새롭다. 다만 한 가지, '하녀'를 본 지라, 이정재를 보며 하녀 속의 이정재가 기억이나 집중을 방해하였다. 외에는 다시 보아도 참으
로 아름다운 영화이다 - 시각적으로도, 내용도.


아, 너무 예쁘다. 일단 영화의 중심인 집 Il Mare 와 그 우체통. 안개가득한 풍경, 빛보다 새벽 혹은 해질녘의 풍경이 계속된다.




집 앞에 심어있는 한 그루 나무 - 잎이 풍성한 적이 없다. 늘 앙상하고 성탄 전구만 휭휭 감겨있다 - 예쁘다.


우체통과 은주 -  영화가 시각적으로 아름다운데에는 집의 풍경과 이정재와 전지현의 긴 기럭지였으리라



어둠 속의 집 풍경 - 성탄전구 감긴 나무와 혼자 불꽃놀이하는 은주. 어둠과 빛 - 역시나 멋진 풍경. 물론 이 집외에도 많은 장면들이 있고 장소들이 있다, 만화방이라던지, 방송국, 공사현장, 은주의 아파트, 집의 내부, 학교, 카페, 등등. 하지만 다 딱히 중요치 않다, 집의 풍경은 그 만큼 extraordinary 특별히 멋지다. 어둑키도하고, 시리기도한, 흐릿한 빛과 어둠의 풍경. 괜히 시원고 차가운 공기마저 느껴진다.




집, 바다, 능선의 실루엣, 아름답지 아니한가.




빨래를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은주의 말에 빨래를 한 성현 - 하아 환상풍경



바다로 뛰어들어가는 성현 - 하늘, 바다, 모래와 성현, 단조롭고 간단하고 낭만적인 풍경, 역시나 새벽빛의 조화




보랏빛 하늘 아래 집과 은주, 바다, 능선의 실루엣, 후우. . 숨 넘어감



잠시 등장 할 뿐이지만, Il Mare 의 풍경만큼 아름다운 제주도 산호사 해변의 풍경. 하아, 하늘, 물 모래 - 정말이지 아름다운 환상풍경이다.




개인적으로 왕 웃었던 장면, 비가 내리는건지 창문에 물을 쏟는건지. .





개인적으로 가장가장 좋아하는 장면 ! 밀물이 가득, 계닥마저 물에 잠기고, 사랑에 행운을 빈다며, 계단을 내려가 물고기를 놓아주는 장면. 아아아 물에 비친 집도, 경계 없는 하늘과 물도 아름답다.



우체통 앞에서 우는 은주. 역시나 하이얀 하늘에 모래와 능선과 집, 아아 간단하고 침착한 풍경.



해가 넘어가며 바라보는 집과 집 앞의 나무, 하아 역시나 멋진 집이다 Il Mare




마지막 장면, 은주와 성현 드디어 만나다




만났다, 크으 -

 

 


시각적 아름다움은 이쯤, 내용 또한 말 그대로 '환상' 적이다. 은주는 미래에 살고, 성현은 과거에 살고, 둘은 우체통으로 소통하며, 은주는 사랑을 위해, 성현에게 과거를 바꿔달라고 부탁하고, 성현은 은주를 도우려다 죽는다. 이를 안 미래의 은주는 과거를 다시 쓰기위해 우체통으로 달려가고 울고. . 결국 은주는 성현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고 성현은 은주를 찾아간다. 그야말로 판타지 소설이다. 이렇게 판타스틱한 내용을, 이리도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영상으로 그리다니 - 굉장해.
영화의 구성 또한 깔끔하며 의도적이다. 영화의 시작 장면인 은주의 이사장면은, 마지막장면이기도하다. 모든 일은 일어났지만 일어나지 않은 듯, 시간의 원점으로 돌아와버리는 구성 - 바라보면서도 뿌듯한 연출이다. 음악 또한 깔끔히 다시 사용되기도하고, 여러 버전들을 사용하기도 한다. 영화에 어울리게, 또한 매우 '한국'스럽다는 정서가 느껴지는 음악들이 부드럽고 편안하다.
전체적으로 조화롭고 깔끕하며 환상적이고 낭만적인 - 뿌듯한 영화.



Posted by water_
,

감독 마이클 앱티드 (1994 / 미국)
출연 조디 포스터,리암 니슨
상세보기

영화는 North Carolina Robbinsville 과 Charlotte 에서 촬영하였다고 한다. 영화 속의 호숫가 풍경, 그리고 그 밤 호수를 수영하는 Nell의 모습은 정말이지 아름답다. 평생을 엄마와 둘이 고립된 숲 속에서 생활하였고, 엄마의 죽음으로 Nell 은 혼자 살아가야한다. 세상을 만나 본 적 없는 그녀, 낮을 두려워하고, 영어도 아닌 자신만의 언어로 이해받지 못하는 말들을 한다. 영화는 넬의 다름을 강조한다. 그녀의 행동, 언어, 습성 등 문명이나 평범과는 거리가 멀다. 밤에 수영을하고, 공공장소에서 옷을 벗고, 팝콘을 처음 먹어본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Nell 은 현대인들과 다를 것이 없다. 그녀는 누구나 혼자임을 안다 - 엄마도, 동생도, 친구들도 각자임을 알고, 떠날 수 있는 존재들임을 안다. 죽음은 천국으로 떠나는 여행이고, 괴롭도록 그립지만 다시 만날 수 없음 또한 안다. 상대의 눈을 바라 볼 줄 알고, 마음을 열 줄도 안다. 사랑이 무엇인지도, 언제 필요한지도, 그녀는 모든 것을 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녀를 하대하고 다르게 취급한다. 그녀를 농담거리로 삼고, 과학적 예시로 삼으려 안달이다. 정녕 바보가 누구인지는 당연한 질문이다.

nature vs. nurture - 사람의 본성은 어디까지 이며, 양육의 영향은 어디부터인지. Nell 은 세상과 고립되어있던 존재임으로, 심리학계의 큰 주목을 받게된다. 그녀의 행동은 이해하기 어렵다. 거울을 보며 자신이 아닌 존재와 교감을 하고, 놀라면 빠르게 서성거리며 괴성을 지른다. 하지만 이해 할 수 없는 것은, 그녀는 혼자 산 것이 아니라 엄마라는 존재와 함께 생을 하였다. 그 동안 엄마의 행동을 보고 닮았을 텐데, 엄마는 문명과 접한 적이 있던 사람이였음으로, 엄마의 행동이 넬의 행동의 표본이 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한, 넬은 여러 트라우마를 겪는다. 이를테면 자신의 쌍둥이 동생의 죽음, 그리고 강간당하는 엄마의 모습이 그러 할 것이다. 이러한 충격이 그녀의 정신을 불안정케 하였을지 모르겠다. 여기서 다시 엄마의 역활을 의심해본다. 그녀는 왜 엄마로써 딸의 안정에 도움을 주지 못 하였을까. 주었다면 그것은 왜 그리도 미미하였을까. 넬은 엄마라는 존재와 살았다고 보기에는 너무나 야생에 가깝다. 물론 그것이 영화의 의도이지만 구성의 억지가 아닌가 싶다.

내용은 흥미롭고, 구성은 얼추 괜찮지만, 가장 멋진 점은 Jodie Foster의 연기이다. Nell 은 영어와 가깝지만 다른 자신만의 언어를 구사하고, 범위가 없는 자신만의 자유에 기준을 두고 생활한다. 이를 연기하기 위하여는 일상의 모든 습관을 버려야 했을 것이다. 걸음걸이, 손짓, 시선, 동선, 표정 등 Nell 의 것은 다르다. 새로움을 익히기 위해서는,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익숙함을 본인의 몸에서 지워야 했을 것이다. Foster는 이 점을 충분히 이해하였고 연기하였다.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지막 법정에서의 Nell 은 처음의 Nell과 달랐다. 그녀의 언어는 보다 영어에 가까웠으며, 행동 또한 일상인의 것과 흡사하였다. 마지막 장면의 능히 변화된 Nell의 모습을 보아하니, 법정의 장면도 의도 되었던 것이라 추측해본다. 그렇게 그Nell 은 우리와 달랐지만 같았으며, 가까워졌고 일부가 되었다. Nell 은 어느 누구와도 다르지 않았다는 - 나만의 의견이다.




Posted by water_
,
산에 다녀 옴. 6:40분 즈음 Issaquah 에서 출발, 도착시간 7:20.
I-90 East 를 타고 Exit 32, 좌회전, North Bend St 에서 좌회전, Mt. Si. Rd. 에서 우회전, 길 우측에 Mount Si 주차장 / Trailhead 사인을 볼 수 있음.
Issaquah에서도 그렇고 Seattle 에서도 꽤나 가까운 거리. Tiger Mountain 보다 조금 멀리 있고, 조금 더 높은 산. 확실히 조금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니 경치가 다르더라는. Tiger 와는 1200ft 가량 차이나는 듯.


Mt. Si의 나무들 - 얇고 곧다



왠만큼 올라가니 보이는 옆 산의 풍경.




누워서 휴식 - 날씨가 매우 좋았음. 얼마만의 파란 하늘인가 - Bellevue 는 오전에 비가 내렸다는데, 운전하고 가는 길 외에는 비를 만나지 않았음




앉아서 휴식 - 나무에서 눈이 녹아 계속 후두두둑 떨어짐, 무거운 부슬비의 정도



2.5 mile 정도 오르니 눈이 제법



종점이 보이기 시작. 돌의 이름은 Haystack - 녀석의 위를 올라가지는 않았지만, 위험을 감수하고 갈 수는 있다고 함, 하기야 안되는게 어디있으랴 -




따 먹은 고드름, 크 - 역시나 고드름은 환상의 맛. 상쾌 시원 사각, 설명불가.




정상에 다다를 수록 나무의 높이도 줄고, 수도 줄고 - 정상에서는 돌과 이러히 낮은 나무들이 드믄드믄




파란 하늘과 위풍당당 Haystack



옹기옹기 모여 대화를 나누는 단체, 대략 15분이 함께 오르신 듯. 등산 모임이 꽤나 있다는데, 재미있을 것 같다



정상에서의 풍경, 옆 산 - 구름보다 높은 우리



아래 마을들의 풍경 - North Bend는 인구수가 적어지는 시작인 듯. Seattle/Bellevue의 밀도가 Issaquah 쯤에서 조금 줄지만, Issaquah의 인구는 빠르게 상승세를 타고 있는 듯. 무성의하게 빠른 속도로 지어지는 집들을 보면 안타깝




Mt Si의 풍경. Wild Goats 산양들이 산다는데, 발자국이 아닌가 싶다



Mt. Si 바로 옆은 Little Si 가 있는데 - 녀석은 Mt. Si 의 1/2 정도의 높이. 눈이 심히 쌓인 경우에는 Mt. Si 보다 Little Si가 안전함으로 많은 이 들이 찾는다고.
내려오니 대략 3:10. 여섯 번 정도 쉬기도 했고, 우리를 추월하여 올라가는 일행들도 꽤나 많았다. 주차장에는 3등으로 도착했는데 내려 온 순서는 다른 듯. 내려오니 주차장의 차량 수가 30정도로 늘어있더라는. 주말이 아니지만 금요일이여서인지 꽤나 많은 이들이 산을 찾음. 운동량이 꽤나 되는 듯 - 오르는 trail이 꽤나 고불고불하여 왕복 8 mi 정도. 멀지 않음으로 분명 다시 찾게 될 것 같다.
날씨가 좋아 행복. 눈 녹은 모습 또한 매우 기대. 다음 만남까지 - 안녕하렴.



Posted by water_
,

Lent 사순절 사순시기

Liturgical calendar Ash Wednesday 부터 Easter 지지 46일 간의 시간. 성서에 다르면 예수님은 공적인 ministry 이전에 40일 동안 광야에서 금식, 기도를 드리며 사탄의 유혹을 견뎌냈다고 기록되어있다. Ash Wednesday 이름은 신자들이 하느님에게 후회와 비탄을 표현으로 이마에 재로 십자가를 그리는 것에서 유래. 2011년도 의 Ash Wednesday 3 9. Easter 4 22일이다. Easter 부활절은 예수님의 부활을 축복하는 날.


사순이라는 말은
40이라는 숫자에서 유래된 것. 40이라는 숫자는 노아의 홍수에서 나온다. 하느님이 죄인들을 벌하기 위하여 40밤과 40낮 동안 비를 내리셨다. 모세는 시나이 산에서 십계판을 받기 위하여 40일을 엄재. 광야에서 40일의 단식. 부활 후 40일 만에 승천. 40의 상징적 의미가 중요한 것. 속죄, 보속, 참회, 자신의 쇄신 등으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하여 준비한다는 상징적인 기간이 사순시기이다.


파스카의 축제를 준비하기 위한
40. 신자들은 받은 세례를 다시 생각하며 참회행위를 통하여 파스카의 신비체험을 준비. 사순절의 시작부터 부활 전야제 까지는 미사 중 알렐루야와 대영광송을 부르지 않는다. 사순절의 시작하는 수요일은 세계의 단식일이며 머리에 재를 얹는다. 사순 제 1, 2, 3, 4, 5 주일 성 주간이 시작. 6주일은 주의 수난 성지주일이라 부른다. 성주간은 메시아로써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으로 시작,


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광야에서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고 엄격히 단식하던 것을 본받아 자신의 희생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실천하는데 노력해야 함. 자신을 이기는 극기의 자세를 요구. 40일 동안 단식과 금육을 통해 절약한 것을 모아 두었다가 가난한 이웃들에게 나눠주어야 함.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기도, 미사참여, 사랑의 나눔 등을 실천.


단식의 의미
, 형식, 신자들의 의무에 관한 규정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묵상. 참된 그리스도 교인으로서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에 동참한다는 의미에서 행하는 단식은 초대 교회시대부터 사순절 기간과 사계의 재일 중 신자들이 지켜야 할 의무의 하나로 행해짐. 단식 규정은 상당히 엄격. 단식으로 절약된 양식은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는데 사용되도록.

자료 출처 http://www.catholic.or.kr/ 가톨릭인터넷 Goodnews 굿 뉴스

Vatican Holy See 바티칸 2010년 사순절 http://www.vatican.va/liturgical_year/lent/2010/index_en.htm

 

 

이번 사순 시기를 맞이하여, 성당에서 집중하여 기도 할 제안들을 나무에 걸어놓아 하나 들고 왔다. “Pray that all Christians may be light for the world by living out their faith in service.”  마침 방학인지라 금식에도 참여한다. 매일 김수환 추기경님의 말씀을 하나씩 찾아 적겠다. 비록 학교가 시작되면 일상으로 돌아 갈 테지만, 방학 동안 꾸준히 할 것을 다짐하고, 이 후 에도 추기경님의 어록과 기도, 묵상, 은 계속 잇겠다. 4 22일 까지니 일일일식을 해야겠다.

하루하루 김수환 추기경을 기억하며  

3/23 Wed

자신을 불태우지 않고는 빛을 낼 수 없다. 빛을 내기 위해서는 자신을 불태우고 희생하여야 한다. 사랑이야말로 죽기까지 가는 것. 생명까지 바치는 것이다. 그러려면 자기를 완전히 비우는 아픔을 겪어야 한다.

3/24

사랑 - 머리와 입으로 하는 사랑에는 향기가 없다. 진정한 사랑은 이해, 관용, 포용, 동화, 자기를 낮춤이 선행된다.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 데 칠십년 걸렸다."

3/25

 

3/26 Sat

"이웃과 절대로 등지지 말라. 이웃은 나의 모습을 비추어 보는 큰 거울 이다. 이웃이 나를 마주 할 때, 외면하거나 미소를 보내지 않으면, 목욕하고 바르게 앉아 자신을 곰곰히 되돌아 봐야한다."

3/27

"인간은 영원을 향해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빈 그릇은 영원을 향한 것입니다. 때문에 이 목마름은 '영원에의 동경, 향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3/28

"태양이 구름에 가려 빛나지 않을지라도 나는 태양이 있음을 믿습니다. 사랑이라곤 조금도 느껴지지 않을지라도 나는 사랑을 믿습니다. 하느님께서 침묵 속에서 계시더라도 나는 하느님을 믿습니다." 이 시는 제 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퀼른 땅에 군사용으로 건설된 지하동굴 속에 새겨져 있었습니다.

3/29

마더 테레사 수녀님의 기도 "오 사랑의 주님 ! 존경받으려는 ... 사랑받으려는 ... 칭찬 받으려는 . .. 명예로와지려는 ... 찬양 받으려는 ... 선택 받으려는 ... 인정 받으려는 ... 인기 끌려는 ... 욕망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소서."

3/30 Wed

약속을 지키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것이 인간입니다. 얼마만큼 사랑할 것인가?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 성할 때나 병들 때나 죽을 때까지 사랑한다고 약속하였습니다. 전적이고 조건 없는 사랑입니다. 결코 내 마음이 내킬 때에만 사랑하겠다. 기분이 좋을 때에만 사랑하겠다는 식이 아닙니다. 

3/31

세상은 시간적으로 새날이 오고 새해가 되었다고 해서 새로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과 정신이 '진실된 인간, 정의로운 인간, 사랑하는 인간'으로 달라질 때에 비로소 새로워집니다.

4/1

형제들을 부하게 만드시기 위해 당신 스스로 비우신 주님을 본받아 우리도 주님과 형제들에 대한 사랑으로써 남을 위해 자신을 비우는 그 가난을 본받게  하소서. 특히 가난한 자, 약한 자, 소외된 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그들에게 앞서 봉사하는 자 되게 하소서.

4/2 Sat

 

4/3

 모든 이와 모든 것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자기비움'을 거듭 묵상해야 합니다. 그분은 높은 분이었지만 낮아지고 부한 분이었지만 우리를 위해 가난한 자 되었는데 나는 거꾸로 낮은 자가 높이 오르고 가난한 자가 부하게 되어 주님과 '반대로 살게 되었구나'하는 생각을 자주합니다.

4/4

 

4/5

 

4/6 Wed

 

4/7

"아버지, 이 몸을 당신께 바치오니 좋으실 대로 하십시오. 저를 어떻게 하시든지 감사드릴 뿐, 저는 무엇에나 준비되어 있고, 무엇이나 받아들이겠습니다. 이 밖에 다른 것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내 영혼을 당신 손에 도로 드립니다. 당신을 사랑하옵기에 이 마음의 사랑을 다하여 제 영혼을 바치옵니다. 하느님이 네 아버지시기에 끝없이 믿으며 남김없이 이 몸을 드리고 당신 손에 맡기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저의 사랑입니다." 

4/8

땅은 더 이상 내려갈 수 없을 만큼 모든 것 아래에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땅을 딛고 살지만 땅의 고마움을 모릅니다. 뿐더러 땅에다 모든 더러운 것, 썩은 것을 다 버립니다. 그러나 땅은 자신을 열고 모든 것을 받아들입니다. 땅의 이 겸손을 배우세요. 그리하여 여러분이 겪은 모든 것, 병고, 고독, 절망까지 다 받아들이세요.  

4/9 Sat

고통은 참으로 우리를 괴롭히는 악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되도록 고통을 면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고통이 없을 때, 고통을 모르는 인간, 고통이 없는 인생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하느님을 더 찾고 모두가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 되겠습니까? 오히려 하느님을 잊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나 역시 고통이 없었다면 아마도 하느님을 전혀 찾지 않았을 것입니다. 고통이 없는 인생은 술에 물 탄 것처럼 싱겁고 아무런 깊이도 없을 것입니다.

4/10

당신 스스로 비우신 주님을 본받아 우리도 주님과 형제들에 대한 사랑으로써 남을 위해 자신을 비우는 그 가난을 본받게 하소서.  

4/11

이것은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고 오직 하느님만이 채울 수 있습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꿈입니다. 이 꿈의 실현이 인간의 구원입니다. 하느님은 우리 한 사람에게 이 꿈을 지니고 있습니다.  

4/12

 

4/13 Wed

평화를 깨뜨리는 모든 것을 이기고 없애야 합니다. 불화의 뿌리를 뽑아야 하고, 남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오만, 믿지 않으려는 불신, 용서할 줄 모르는 미움, 나만을 위하는 소유욕과 지배욕, 질투와 경잼심을 버려야 합니다.

4/14

 

4/15

하느님이 가난하다는 사실은 명백하게 알려져야 합니다. 하느님은 있는 자체이시나 아무 것도 갖지 않았습니다. 갖지 않았을 뿐 아니라 어떠한 소유물도 필요로 하거나 원하지 않았습니다.

4/16 Sat

겸손한 사람만이 인생을 값지게 사는 슬기를 배울 수 있습니다.  

4/17

주변에서도 건강에 대한 확신을 가지라고 권유해 주시는 분이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래 사는 것'보다 '기쁘게 잘 사는 것'이 더 소중한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4/18

 

4/19

 

4/20

내 이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차를 타는 사람이든, 걸어 다니는 사람이든, 교통법규를 성실히 지키고 실수 할 때에는 지체없이 용서를 먼저 청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4/21

 

4/22 Easter

 

 

기도, 묵상, 참회 - 속죄, 보속, 참회, 자신의 쇄신

3/23
하나씩 천천히 짚어보자.

속죄 상대방에게 지은 죄를 씻고 상호간에 범죄 이전의 유대를 회복하는 일. 그리스도교에서는 하느님을 거슬린 인간의 죄를 구세주 그리스도가 대신 보속하고 인류를 하느님과 화해시킨 일을 지칭한다. 구약성서에서 속죄는 야훼께 죄를 지은 이스라엘 백성이 야훼와 친교를 회복하는 일. 야훼 편에서는 자비의 행위, 이스라엘 백성 편에서는 야훼께서 지정한 특정 행위를 이행하는 일. 야훼께서 지시한 속죄예식을 통하여 자신의 죄를 벗었던 예에서 발전. 속죄제물을 바침으로써 야훼의 분노를 풀어드린다는 속죄사상은 퇴조. ‘야훼의 고난받은 종이 인간의 죄를 대신 보속해 준다는 예언을 믿기에 이르심. 야훼께서 인류의 죄를 그에게 지우셔서 그 몸에 채찍을 맞으므로 우리는 성하게 해주었고, 그 몸에 상처를 입으므로 우리의 병을 고쳐 준 것.’ 신약성서에서 고난받는 종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을 죄에서 풀어주셧고’ ‘우리를 당신과 화해하게 해주셨다이 속죄는 하느님이 베푸신 자비이며 진실한 대사제,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십자가의 피로인한 결과. 속죄개념은 속죄의 근본을 이루는 의화관념과 관련.

속죄를 그리스도의 구석사업과 관련지어 죄에 대한 보속이라고 본 관점이 있음.

보속 – satisfaction 넓은 의미로 끼친 손해의 배상 및 보환. 그리스도 신학에서는 죄로 인하여 하느님의 벌을 받음. 그리스도의 죽음이 세상의 죄를 충분히 보속한다고 주석한 데에서 비롯. 가톨릭 윤리신학상의 보속은 고백성사의 본질적 요건의 하나로 이미 지은 죄를 징계하는 벌, 영혼의 허약함을 치료하여 다시 범죄하지 않도록 하는 약. 세례 받기 전에 범한 죄는 성세성사로써 벌까지도 사하지만 세례 후에 범한 죄는 고백성사로 사하여진다. 그러나 죄의 벌까지도 사하여지는 것이 아니고 지옥벌만 사하여 질 뿐 잠벌은 남아있다. 잠벌이란 영원한 벌에 대하여 일시적인 벌, 혹은 연옥벌이라는 뜻이며, 우리는 자신이 기워 갚아야 하는 것이므로 자연히 보속이라는 것이 필요.

교회는 그리스도 보속이 우리에게 적용되어 당신들이 회개했다는 증거를 행실로써 보이시오라는  말씀대로 보속이 필요하다고 하였음. 구약성서도 죄는 용서받았으나 벌은 남아있는 경우가 많음. 원조는 은총상태로 회복되었으나 고통과 죽음은 며치 못했고, 모세의 불신은 용서받았으나 약속한 땅에서는 제외되었다. 신약성서에도 하느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그 행실대로 갚아 주실 것이다라 했고, ‘나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몸으로 채우고 있습니다라 하였다.

참회 – repentance 참회의 일반적 의미 과거의 범죄사실을 기억, 현재 죄의 상태에 있음을 인식적 요소와 죄를 지었음을 슬퍼하고 죄가 사해지기를 원하며, 죄를 혐오하는 의지적 요소를 포함하는 개념. 참회는 죄악의 상태에서 벗어남을 목적.

참회는 인간이 개인적 죄의 용서를 받아 의화되는 경우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관하여 역사적으로 문제가 되었음. 죄의 용서를 받기 위해서는 용서해 주시는 하느님의 행위와 교회의 대표자인 사제의 사죄 및 통회, 고백, 보속을 하는 참회자의 행위가 필요. 4자의 행위 중 죄의 용서라는 효과를 가져오는 실질적인 요건은 어느 행위인가 하는 문제가 그것. 아퀴나스에 의하면, 참회자의 행위는 성사의 재료요, 사제의 사죄는 형상, 인데, 양자는 동등하게 죄의 용서를 가져오는 유효한 원인작용을 이룸. 전체과정에서 최종적 원인작용은 하느님께 속하므로, 성사적 표시를 도구적 원인작용의 행사라 함. 성사를 받으려는 뜻을 겸한 상등통회를 한 참회자는 고해성사의 예식을 받기 전에 죄의 사함을 받았음을 인정. 성사는 예식 자체에 국한되는 개념이 아니라 발전해 가는 상태로 보아야 하므로 참회자의 첫 행위에서 성사가 시작되어 성사 예식 자체에서 절정에 달한다는 것.

자신의 쇄신 신도 개인, 수도회, 특히 교회가 그 모형인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 교회는 신인 (神人) 그리스도를 본받아 신인양성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교회는 신적 존재라는 점에서 오류가 있을 없으나 인적 (人的) 실재라는 점에서 교회 안에 과실과 죄악이 현존 있는 . 한편 교회는 인간 성화를 (聖化) 이룩하는 원죄를 가지고 있으며 성화되는 과정에서 있는 신자들을 포함. 따라서 거룩하지만, 순례하는 교회는 바로 죄인을 구하러 오신 그리스도의 뜻대로 죄는 거부하지만 죄인은 맞아들인다. ‘그리스도는 거룩하시고 무죄하시고 죄를 모르시며 다만 백성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오셨지만, 교회는 품안에 죄인들을 품고 있으므로 성스러운 동시에 항상 정화되어야 하며 회개와 쇄신을 끊임 없이 계속하는 것이다’.

교회가 계속 정화되고 쇄신되어야 이유는 근본적으로 그리스도의 구원 신비의 무한성에 대한 인간의 인식과 실천 능력의 유한성에 있다. 신자 각자의 차원에서 아니라 공동체의 제도적 차원에서도 반성과 쇄신이 계속되어야 . 복음에 대한 인간의 인식과 실천의 유한성 때문에 어느 특정한 시대나 지역이나 인간들의 제도나 방법이, 모든 시대의 인간들에게 복음을 선포해야 교회의 보편적 사명을 수행하는 도구로서는 본질적으로 불완전. 따라서 교회는 시대, 환경, 대상, 인물이 변함에 따라 구원의 진리를 정확하고 유효하게 선포하고 실천하기 위하여 방법을 쇄신, 제도를 개혁, 생활을 현실에 맞게 조정. ‘교회의 쇄신은 모두 본질적으로 교회사명에 대한 충실성에 있는 것이므로…나그네 길에 있는 교회는 인간적이며 현세적인 제도로서 언제나 필요한 혁신을 계속하도록 그리스도께 불리움을 받음’.

교회는 이러한 쇄신의 능력을 주님의 약속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미 갖추고 있다. 쇄신의 원리는 더욱 복음정신에 충실해야 한다는 . 위하여 교회는 신앙의 유산을 거룩히 보존하고 성실히 진술하기 전에 경건하게 들어야함. 신앙의 원천인 복음에로 돌아가야 거기서 쇄신의 방향을 찾을 있음. 원래에서 연역할 있는 방향은 전통과 진보의 조화. 초월성과 내재성의 조화, 다양성과 통일성의 조화, 내용과 표현의 일치, 대화와 협력의 자세 .

"자신을 불태우지 않고는 빛을 낼 수 없다. 빛을 내기 위해서는 자신을 불태우고 희생하여야 한다. 사랑이야말로 죽기까지 가는 것. 생명까지 바치는 것이다. 그러려면 자기를 완전히 비우는 아픔을 겪어야 한다."

무턱코 고른 첫 어록인데, 첫 날에 극히 적합하다. 나 자신의 희생, 이상향을 향한 노력. 사랑, 어쩌면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생명을 쉽게여겼고, 그것은 사랑을 위해서가 아니였다. 아무런 이유도 없었고 논리도 없었던 움직임들. 나 자신을 비우고 아픔을 겪고, 그것을 꺽어버리고 싶다. 하지만 이 모든 것, 바람 조차도 비워 버리리라. 옳은 것을 채우기 위해서는 모든, 나 자신 조차도 비워버리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것이 옳다.
딱히 오늘부터 해야지 - 라는 생각은 없었다. 그저 오늘 시험이 끝났을 뿐이고, 오늘 저녁부터 해야겠다 - 라고 마음이 생겨, 시작하였을 뿐.모레인 금요일 부터는 주말 여행을 계획하고 있어 매일 글을 올릴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펜과 김수환 추기경님의 책을 꼭 챙겨가 practice를 소홀하지 않겠다. 예수님은 40 일을 광야에서, 악마의 유혹과 싸우며 수행을 하셨다. 나는 주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나 자신을 싸우면 되는 것이기에, 비교 할 수 없는 practice이다. 할 수 있음을 기억하며, 꾸준한 의지를 기르겠다. 선을 그어놓으니 마음이 기이하게 편안하다. 즉흥적이고 매우 나쁘지 않은 시작이다.
22세, 나의 첫 사순시기라고 할 수 있겠다. 이 또한 비록 시작 또한 늦고, 학교와는 병행이 어렵겠지만, 완전하지 못하지만 나의 첫 노력임으로 보다 열심히 해야겠다. 사순에 대한 이해 또한 부족함으로 시작하였고, 여전히 부족하다. 인상 깊은 점은 가난한 이들과 나누어야 한다는 것, 나 자신을 비울 수 있다는 것.


3/24
사랑 - 머리와 입으로 하는 사랑에는 향기가 없다. 진정한 사랑은 이해, 관용, 포용, 동화, 자기를 낮춤이 선행된다.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 데 칠십년 걸렸다."

둘째날. 이른 아침 일어나 산에 다녀왔다. 집에 돌아와 내일 심부름을 하고 점심을 먹고가라는 할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먹을 생각을 하니 금식 이 후 처음의 식욕이 돋았다. 잠을자고 2000시 할머니의 전화에 다시 깨었다. 통화 후,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에 끓여져 있던 콩나물 국과 고구마를 먹었다 - 아아, 얼마나 미약한 나의 모습인가. 고민은 대략 2분에 불과하였다. 정신은 음식을 찾았고, 몸을 움직였다. 기도를 드리고 국과 고구마를 20분 가량에 걸쳐 먹었다. '먹어도 된다'라는 생각을 하니, 몸의 움직임을 멈출 수가 없었다. 판의 미로에서 요정의 말을 어기고 포도를 따아 먹은 오필리아의 모습이 나와 겹치며, 분노하던 요정의 모습이 생각났다. 아아, 미약한 나의 의지에 큰 실망이다. 이러한 극단적인 식단은 몸에 좋지 않다며 따위의 구차한 변명을 드는 나의 모습을 보며, 국을 떠 먹으면서도 아쉬웠다. 사람이란, 아니 나란 허용되는 범위가 생기는 순간 그 범위의 틀을 제 멋대로 정하는 것 같다.

다음 주에는 크로스 컨트리 스키 약속과, 등산약속이 있다. 둘 다 날짜가 정확히 잡히지는 않았지만, 절대적으로 굶기는 어려울 것 같다. 예상은 한 일이지만, 이유가 이유인지라, 그저 죄송 할 따름이다. 새로운 기준을 세워야 할 것 같다.
현대인을 위한 금식 방법을 다시 읽어보니 Ash Wednesday 와 Good Friday 에 금식을 하기로 되어있다.




3/26
"이웃과 절대로 등지지 말라, 이웃은 나의 모습을 비추어 보는 큰 거울이다. 이웃이 나를 마주 할 때, 외면하거나 미소를 보내지 않으면, 목욕하고 바르게 앉아 자신을 곰곰히 되돌아 봐야한다."

오늘 아침 눈을 뜬 순간 느낀 감정 - 실망과 죄책. 아아, 이유가 이유이니 만큼, 잘 해야한다는 생각에, 성스러운 일이기에, 보다 잘하고 싶었는데 눈을 뜨자마자 굉장한 무게와 실망감을 느꼈다. 저녁인 지금, 실망감은 커졌을 뿐. 나의 신앙심이 이렇게 쉽게 무너지다니. 도리에 맞지 않다. 자신을 보다 , 마음을 보다 의지를 보다, 굳게 심어야한다. 그것이 목적이고, 가장 어려운 일이다. 이렇게나 쉬워서야, 아무런 발전도 있을 수 없다.
격일 금식과, 격일 일일일식을 해야겠다. 애초 10일 가량을 굶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등산을 다닌 다는 것이 무리한 계획이였다. 다만 약속이 이렇게 빨리 잡힌 것이 계획의 변화를 일찍 불렀을 뿐. 합리화라 하여도 사실이고, 계획은 다시 세우면 되는 것이다. 아직 셋째날이지 않은가.
오전, 일어나 수녀님과 매리 제인에게 편지를 썼다. 패추릭에게 카드와 선물도 주었다. 옷장을 정리하여 옷 40 여 개를 기부하고 할머니 댁에 가 점심을 먹고 작은 고모에게 심부름을 다녀와, 성당에서 미사를 드렸다. 집에와 떡을 먹었다. 이야말로 실망스러운 일이였다. 나에게, 주님에게 좋지 않은 일이다. 성체를 모신 사실 조차 잊고, 나 자신을, 주님을 더럽히다니. 생각이 짧은 것을 떠나 없었다. 의지, 의지, 의지 - 자제하는 의지가 1보다 0에 가깝다. 1mm 라도 움직여야 할 텐데, 쉽지 않음은 불가능이 아님을 다시 기억하자. 할 수 있다.
이웃과 절대로 등지지 말라는 추기경님의 말씀. 나에게 사람이란, 커뮤니티란 즐겁기도 하지만 피하고 싶기도하다. 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 대화의 불필요함, 말의 복잡성 등이 이유에 포함된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서로로 인해 존재하고, 서로에게 밖에 의지 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미니멀의 인간관계가 아닌, 타인이 나를 대하는 태도로써 나 자신을 돌아 볼 수 있으려 - 이에는 노력이 필요하겠지. 상대의 태도를 관찰해야하고 분석해야하니, 나에게는 습관이 되지 않은 것이지만, 이롭겠지. 하지만 여전히 나는 이러한 프랙티스가 필요한 것인지 모르겠다. 나에게 어려운, 새로운, 편치 않은 일이기에 기억해보려 한다.

3/27
"인간은 영원을 향해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빈 그릇은 영원을 향한 것입니다. 때문에 이 목마름은 '영원에의 동경, 향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Rattlesnake ledge에 다녀왔다. North Bend는 가까우면서도 환상의 풍경이다. 새로운 아름다움의 발견에 감사할 따름. 아침에 일어나 기도로 시작하였다. 비록 짧은 기도였지만, 그러한 나의 모습에 감사함을 느낀다. 산에 다녀와 샤워를하고 고구마와 떡을 한 접시 먹었다. 금새 배가 구릉구릉하더니 배가 부르다. 이렇게 사람은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 기도와 작은 양의 목을 축이고 배를 채울 것이면 족하다. 이것이 이번 프랙티스의 가장 중요한 깨달음이다. 나 그 동안 얼마나 넘치고 풍족히 살아왔는가. 나 그 동안 얼마나 많은 낭비와 그로 인한 상처를 남겼는가. 부족히 사는 이들에 대한 배려의 결여였고 자만한 나의 옳지 못한 기준이였다. 새로운 기준이 필요한 것이다. 더럽고 부당한 것을 잊고, 미니멀하고 옳은 것을 보다 지향하는, 그러한 새로운 기준의 성립. 부활절 까지 이렇게 일일일식을 실천해야겠다. 물론 어려움도 있을테지만, 꾸준히 해보겠다. 할 수 있다.
수녀님에게 말씀 드린 것 처럼, 수녀님께서 일러주신 것 처럼,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걱정 주님께 맡겨두며, 기쁜 마음으로 주님의 부활을 준비해야겠다. 어제의 김수환 추기경님의 글이 다시 생각난다. 고립을 지향하는 것은 분명 옳지 않다. 많은 기준들이 모여, 가장 옳은 기준을 성립하는 것이다. 많은 기준들의 분포를, 가장 옳은 곳에 두는 것이 중요하다. 보다 옳은 이들과의 소통과 나눔이 필요하고, 그로 부터 배우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렇게 수녀님, 뿐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바른 것을 배우고, 바른 의견을 수용하며, 새로운 나를 성립 할 수 있다.
우리는 언제나 목마르다. 적어도 나 자신은 그러하다. 만족한다고 느끼기도 하지만, 늘 보다 나음을 바라고, 완벽 할 수 없음을 인지한다. 이렇게 부족한 나의 모습은 당연한 것이다. 우리는 영원을 향해 만들어졌다고 추기경님이 말씀하신다. 채워지지 않는 것은 언제나 존재한다. 그것을 주님으로, 성모님으로 채울 수 있을 것이다. 성인들의 길을 돌아보고, 그들의 배움을 이해하려 노력해야한다. 그렇게 부족한 나를 계속 채우고 비워야한다. 모든 것을 비우고, 오로지 주님의 기준으로 나를 채우리 - 할 수 있다, 아멘.

3/28
"태양이 구름에 가려 빛나지 않을지라도 나는 태양이 있음을 믿습니다. 사랑이라곤 조금도 느껴지지 않을지라도 나는 사랑을 믿습니다. 하느님께서 침묵 속에서 계시더라도 나는 하느님을 믿습니다." 이 시는 제 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퀼른 땅에 군사용으로 건설된 지하동굴 속에 세겨져 있었습니다."
어제 마침 'Schindler's List'라는 영화를 보아, 이 문구가 보다 와 닿는다. 주인공 쉰들러는 돈으로 할 수 있는, 그의 삶으로 할 수 있는, 그 무엇으로 할 수있는 가장 의미있는 일을 하였다 - 목숨을 구하였다. 전쟁의 풍경은 상상 할 수 없고, 보아도 믿을 수가 없다. 시대를 살았던 이들도, 들려오는 소문들을 믿을 수 없다하였고, 전해지는 이야기들도 너무나 터무니가 없어 헛 소문으로 취급되기도 하였다. 와중에 하느님을 믿을 수 있다는 것은. . Into the Wild 와 대조적으로, 하느님을 믿는 것은 환경에 충분히 좌우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연을 바라보고 있자면 하느님을, 굳이 하느님이라는 성서의 인물이 아닌더라도, 우리 이외의 존재를, 기운을 느낄 수 있다. 매일 피의 향을 맡고, 구토 악취 폭력 공포에 쌓여 산다면, 악마의 기운을 믿을지도 모르고, 역으로 하느님에게 더 메달릴지도 모르겠다.
무튼 오늘 문구의 중점은, 보이지 않는 것, 느껴지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인 것 같다. 믿음이라 - 단순하고도 어려운 감정이지 않은가 생각해본다. 나 자신을 믿는 일 또한 많은 시간, 노력, 용기, 훈련이 필요하다. 하느님을 믿는 일 또한 그러하다.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것은 습관과도 비슷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도움을 청하는 것이 익숙치 않아, 나 자신에게 의지하기 일쑤이고,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의 짐도, 나누는 방법을 몰라 혼자 짊어지기도 한다. 그렇게 하느님에게도 청하는 방법 또한 어색 할 수 있고 익숙 할 수 있다. 아직 나에게는 많은 것들이 어색하다. 혼자가 편하기도 하다. 하지만 살아 갈 수록 의지하는 방법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한다. 오늘 자동차 사고 후에도, 고모에게 도움을 청하니 도움을 받을 수 있었고, 지난 주 등산 계획 중에도 고모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의지가 어색하기도하고, 싫기도 하지만, 도움이란 받을 수 있는 것이고, 상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기도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렇게 나 자신이 얼마나 미숙한지를 기억하고, 도움을 청하는 방법을 조금씩 보다 익혀야 겠다고 생각한다. 의지하고 싶지 않더라도, 공존하는 것을 배우는 것 같다. 나 혼자 할 수 있다는 것은 자만감 일 수도 있겠다 싶다. 하느님 또한 마찬가지이다, 나 자신을 보다 비우고, 하느님의 기준을 보다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렇게 하느님께 의지하고, 맡기고, 나의 질문들과 고민들을 넘기면, 그 분은 나보다 옳은 올바른 기준으로, 정답을 주시리라.


3/29
마더 테레사 수녀님의 기도 "오 사랑의 주님 ! 존경받으려는 ... 사랑받으려는 ... 칭찬 받으려는 ... 명예로와지려는 ... 찬양 받으려는 ... 선택 받으려는 ... 인정 받으려는 ... 인기 끌려는 . .. 욕망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소서."
더러운 하루, 좋지 않을 뿐 더러 괴롭습니다. 오전에 등산을 다녀오고, 오후에 많은 음식을 먹었습니다. 필요 이상을 - 최소한을 지키려 했는데, 더불어 간식에 와인까지 마셨습니다. 미루어둔 많은 것들이 한 번에 몰려오듯, 그 동안 참았으니 괜찮을거라는 합리화로, 다짐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다짐의 무너짐은 한 두번이 아닙니다, 오늘은 더욱이나 어렵습니다. 약쟁이가 Overdose 로 죽은 친구를 바라보는 듯한 기분이 들어 두려웠습니다, 죽고싶지 않은데 - 나의 무너진 다짐들, 이 나를 죽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떠한 대안도 필요치 않다는 것을 압니다, 그저 멈추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 어렵네요. 당신을 기억하고, 당신의 기준, 당신의 희생을 몸소 닮으려 노력하지만 어렵습니다. 아아 어렵지만 할 수 있다고 , 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고. 하아, 다짐합니다 - 이 못난 버릇을 버리겠습니다. 다시는 절대로, 어떠한 합리화도 용납하지 않으리요 - 기도와 우정으로 노력하고 버리고 고치겠습니다 - 도와주실거라 믿습니다. 할 수 있고 할 것입니다, 이것이 나를 죽이도록 둘 수는 없습니다. 아멘 아멘 아멘.
이 모든 것이 욕심과 욕망때문이겠지요 - 옳지 않은 기준에 나를 맞추려는 더러운, 부질 없는 욕망. 옳은 것 만 따르겠습니다, 옳지 않은 기준은 버리고, 그것에 나를 맞추려는 더러운 움직임도 멈추겠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비우고, 모든 것을 비우고, 비우고 비워, 옳은 것 만이 가득 할 수 있도록, 넘칠 수 있도록, 나를 비우겠습니다. 아멘 아멘 아멘.


3/30
"
약속을 지키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것이 인간입니다. 얼마만큼 사랑할 것인가?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 성할 때나 병들 때나 죽을 때까지 사랑한다고 약속하였습니다. 전적이고 조건 없는 사랑입니다. 결코 내 마음이 내킬 때에만 사랑하겠다. 기분이 좋을 때에만 사랑하겠다는 식이 아닙니다. 
원하던 시간보다 일찍, 보험회사의 전화로 잠에서 깼다 - 아아 인내심의 시험. 따라서 오늘은 사순에 대한 기억으로 하루를 시작하려한다. 복잡한 일이 생겨도, 번거로운 일이 생겨도, 어려운 조건에서도 바른 마음가짐으로 판단커나 안정을 잃지 않도록. 오늘은 친구와 약속이 있다, 나가서 몇가지 일을 보러한다, 이렇게 하루하루 작은 일들로 체워지는 생활이 이상하다. 특별한 일이 없어도 이러한 소소한 일들이 나의 삶을 체우다니. 날씨가 부슬부슬 비가 내리며 하늘이 허옇다 - 전형적인 시애틀 날씨. 보험일만 아니면 꽤나 기분이 좋았을 날이다. 하아, 침착히 해결하면 되리라. 어제의 피로로 얼굴이 붓고 속이 좋지 않다. 입안은 모래를 씹은 듯하며 눈의 붓기가 무겁다. 미래를 기억하며, 곧 잊혀질 일들임을 기억해본다. 오랜만에 만나는친구라는 생각에, 기분이 조금 나아진다. 괜찮다 괜찮다 알 이즈 웰 - 기도로 승화 할 수 없는 일이란 없다. 아멘 - 약속을 지키는 일, 그은 선을 넘지 않는 일, 할 수 있다, 지킬 수 있다. promise 지키리 - 아멘.


3/31
"세상은 시간적으로 새날이 오고 새해가 되었다고 해서 새로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과 정신이 '진실된 인간, 정의로운 인간, 사랑하는 인간'으로 달라질 때에 비로소 새로워집니다."
어제 마신 커피 덕인지 잠을 한 숨도 잘 수 없었습니다. 뜬 눈으로 밤을 새며 낙서를하고 돈 보스코의 생애를 읽고, 영화를 보았으며 여러 생각도 하였습니다. 0530시가 되자마자 카페로 달려가 커피 한 잔과 스콘을 하나 먹었습니다. 커피로 이루지 못한 잠인데 다시 커피를 마시다니 - 참으로 어리석습니다. 속이 좋지 않습니다. 정말이지, OD 로 죽은 친구를 보는 듯, 아픔이 조금씩 나타나고 잇고 - 그것의 충격은 가히 말 할 수 없습니다. 잠을 못 잤더니 보다 지치는군요. 머리가 무겁고 눈을 똑바로 뜰 수 없습니다 - 아무래도 집에가서 자야 할 것 같네요 - 머리가 너무나 피곤합니다.
당신이라는 새로운 의지를 찾을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많은 것은 이론적으로 생각하는 여유의 시간 - 차분함이 조금은 생긴 것 같습니다. 밤 새 여러가지 잡념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 하지만 밤은 딱히 길지 않았습니다. 적당한 정도라 할까요 - 감사합니다. 변화 - 많은 이가 간절히 바라지만 , 실행에 있어 , 행동에 있어 변화를 주지 않고 결과적 변화를 바라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 또한 수 년을 그렇게 보냈고 , 이제는 몸이 지쳐 - 괴로움의 요동을 치기 시작하였습니다. 선을 긋고 약속을 하고 다짐을 하였습니다 - 더 이상 용납 할 수 없다고 - 안된다고. 이제 당신에게 의지하겠습니다. 당신과 마리아님과 묵주에 의지하여 나의 원동력을 찾겠습니다 - 나의 시간의 에너지의 주인을 당신으로 섬기겠습니다. 기도로 승화 할 수 없는 것은 없을테지요 - 도와 주실테지요 - 괜찮을테지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 아멘.
좀 잤다 - 마음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자고 일어나 최소한이 아니지만 밥을 먹었습니다. 최소한을 실천한다는 것 - 예외는 있어야하는 것일까요. 모르겠습니다. 자신을 합리화하는 모습이 너무 싫고, 물론 최선의 방법이 아니겠지만 마음만큼 강하지 못한 자신을 자주 느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약한 마음 모습 모두 주님에게 의지하여 맡기도 가벼운 마음으로 지내고 싶은데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기도로 나쁘지 않은 하루를 보내고있습니다. 약속을 하나 취소하였고 조금 쉬었습니다. 당신을 기억하는 하루를 보낼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몇가지 생산적인 일을하였고 괜찮을 수 있음을 기억하려 노력하고, 일부러 밖으로 나왔습니다. 아침 내내 내리던 비도 그쳤네요 - 내일은 약속이 하나 있습니다. 친구를 만나야 할 것 같습니다. 사람들을, 타인을 외면 말라던 김수환 추기경님의 말을 기억해봅니다.
새로운 날이 새로운 모습은 아니라는 추기경님의 말씀 너무나 옳습니다 - 몇 날이 지나고 몇 해가 지나도 변하지 못한, 버리지 못한 습관들 - 몹쓸 버릇들이 있습니다. 이것들을 당신에게 맡기고 저의 죄를 달게 받되 용서를 구합니다.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모두 당신의 손에 맡기겠습니다. 아무것도 욕심내지 않고 , 옳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당신께 묻고 - 당신의 기운을 따르겠습니다. 딱히 하느님에 대한 신앙이 많은 이들의 것과 같지 않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당신은 포용하고 수용하고 있을터라 믿습니다. 당신은 우리의 인지를, 인식을 넘어 , 저희의 범위와는 무관한 무한함이실테니까요. 감사합니다 , 노력하겠습니다, 맡기겠습니다, 아멘 - so be it.

4/1
사월이네요. 사순시기를 처음 접하던 방학 맞이하던 날 보다 마음이 많이 풀렸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밥도 먹고있고 간식도 먹고있고 , 굶음이 없으니 기도도 덜하네요. 몇 일 동안이지만 기복이 있고 흐름이 있네요. 달리기를 시작하기 위해 이것 저것 준비를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것을 시작한다는 듯 깊음과 더불어 당신을 보다 기억하겠다는 다짐 , 꾸준함 또한 기억해봅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비우어야하는데 쉽지 않습니다. 욕심을 버리는 것이 쉽지 않다는 말이 요즘 들어 세삼 느껴집니다. 그래도 포기않고 다짐에 다짐을 해 봅니다.
"형제들을 부하게 만드시기 위해 당신 스스로 비우신 주님을 본받아 우리도 주님과 형제들에 대한 사랑으로써 남을 위해 자신을 비우는 그 가난을 본받게 하소서. 특히 가난한 자, 약한 자, 소외된 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그들에게 앞서 봉사하는 자 되게 하소서."
비움 비움 비움 -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이번 사순시기에 깨닳았습니다. 우리가 , 내가 얼마나 적게 필요로하는지 , 아무것도 필요치 않다는 것을 깨닳았고, 가장 최소한으로도 살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잊기 쉬운 이 사실을 잊지 않도록, 기억하도록 도와주세요. 기도드립니다. 나를 위해가 아닌, 형제를 위해 산다는 것 - 저에겐 어려운 일입니다. 타인보다 자신이 무조건인듯 앞섭니다. 보다 너그럽고 관용적이며 포용적일 수 있는 모습이 되도록 , 노력하겠습니다. 다짐에 다짐에 다짐 - 실천을 전달하겠습니다.


4/3
"모든 이와 모든 것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자기비움'을 거듭 묵상해야 합니다. 그분은 높은 분이었지만 낮아지고 부한 분이었지만 우리를 위해 가난한 자 되었는데 나는 거꾸로 낮은 자가 높이 오르고 가난한 자가 부하게 되어 주님과 '반대로 살게 되었구나'하는 생각을 자주합니다."
어제 너무나 좋지 않은 하루를 보내었습니다. 다짐이 다시 무너졌습니다. 성당에서 7시간의 세미나가 있었는데 잠을 못 잤고 많은 유혹이 있었던 것이 원인이라고 핑계를 대봅니다. 하지만 근본적 원인은 제 자신임을 기억하며 크게 실망하였습니다. 미사도 드리고 성체도 모셨는데 죄스럽습니다. 마지막 날이라고, 다시는 안되리라고, 다짐해봅니다. 무려 문구도 읽지 않고 글도 쓰지 않았네요, 역시나 죄는 죄를 부릅니다.
오늘은 친구와 약속이 있어 글을 먼저 씁니다. 조금은 체계가 있는 하루이기도하고, 내일부터는 학기의 시작이기에 기대가 많습니다.
어제 아프리카와 자매를 맺은 본당들의 모임이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아프리카에 다녀왔고 그 곳의 본당들과 오랜 인연을 맺고 있습니다. 물과 같은 프로젝트들도 진행되고있고 꽤나 체계가 세워지고 있는 듯 합니다. 저 또한 언젠간 봉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만 졸업이 먼저 하고싶다는 생각도 듭니다. 하나하나 차곡차곡 정리된 삶을 살고싶습니다. 와중 늘 주님을 기억하고 기준으로 살고싶다는 생각 또한합니다. 그들의 미사음악은 참으로 흥겨웠습니다. 와중 쭈뻣쭈뻣 어색해하는 미국인들의 모습과 저의 어중간한 모습이 즐거웠습니다. 하느님의 단체에 이렇게 참여하는 것이 오랜만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초등학교 교리활동 이후로 미사 이외의 활동을 하지 않았네요. 수녀원에서도 미사만 참석 할 뿐, 사람들이, 사람들이 모이면 생기는 말들이 싫다며 늘 피하곤했는지, 옳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느님, 인도해주세요 - 비우겠습니다.

4/7
"아버지, 이 몸을 당신께 바치오니 좋으실 대로 하십시오. 저를 어떻게 하시든지 감사드릴 뿐, 저는 무엇에나 준비되어 있고, 무엇이나 받아들이겠습니다. 이 밖에 다른 것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내 영혼을 당신 손에 도로 드립니다. 당신을 사랑하옵기에 이 마음의 사랑을 다하여 제 영혼을 바치옵니다. 하느님이 네 아버지시기에 끝없이 믿으며 남김없이 이 몸을 드리고 당신 손에 맡기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저의 사랑입니다."

개강을 하여, 몇 일 소홀했네요 - 아직 부활절이 지나지 않았는데 말이지요. 사순시기나마 매일 당신의 뜻을 보다 되세겨 보려하였는데, 수업이라는 핑계로 마음이 나태해졌군요, 죄송합니다. 기도라고는 주님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 식사 전 기도 정도가 전부이네요. 다시 마음을 잡고 학교 생활 중에서도 당신을 기억 할 수 있도록 노력하리라 다짐합니다.
매일 김수환 추기경의 문구를 하나씩 읽으며, 그의 모습을 기억하고 닮으려는 것이 취지였는데 오늘의 문구는 경이의 감탄에 가깝네요. 그 중에서도 '어쩔 수 없는 사랑' 이라는 문구가 새롭게 와닿네요. 어디에서도 듣지 못한 태도인 것 같습니다. 저는 매일 당신께 이야기하고 고백하죠 - 노력하겠노라고. 당신을 향하겠노라고, 다짐하고 기억하지만 김수경 추기경님의 글은 자신의 능력과 힘이 아닌, 당신의 힘에 모든 것을 그야말로 맡기고, 자신은 어쩔 수 없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야말로 당신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태도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내가 나를 당신에게 맡기려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이미 당신에게 나를 맡겼기에, 나는 당신에게 드리고 당신의 손에 뉘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겠지요.
아, 참으로 아름다우신 당신이고 추기경님이십니다. 나의 삶에, 세계에 여러 영향들이 계시고 기준들이 있어주셔서 다행이고 감사합니다 - 그 중 가장 옳고 아름다운 것을 따르게 하소서, 맡기겠습니다. 놓겠습니다, 아멘.

4/8
"땅은 더 이상 내려갈 수 없을 만큼 모든 것 아래에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땅을 딛고 살지만 땅의 고마움을 모릅니다. 뿐더러 땅에다 모든 더러운 것, 썩은 것을 다 버립니다. 그러나 땅은 자신을 열고 모든 것을 받아들입니다. 땅의 이 겸손을 배우세요. 그리하여 여러분이 겪은 모든 것, 병고, 고독, 절망까지 다 받아들이세요."  

정말 울고싶네요. 하루 이틀도 아니고 몇 년째 다짐한 다짐들, 왜 여전히 지키지 못할까요. 내 자신을 놓겠다고 다짐하면서도 그것이 실현되지 않을 것이라는 안다는 듯이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왜 나는 자신을 놓지 못하고, 이렇게도 원하는데 나 자신을 당신에게, 우주의 기운에게, 만물의 손에 놓지 못할까요. .눈물도 나지 않아요. 몇 년 전까지만해도, 정말 낙엽 굴러다고 웃고 울었는데, 이제는 감정의 기복이 적어지고, 다짐의 무너짐에 대한 속상함도 줄어버렸어요. 감정의 '양'이 줄어버렸어요. 이렇게 무뎌져가는 자신의 모습이 싫은데, 이미 이렇게 되어버렸어요. 보다 자신을 조절하려는 것이 보여요 - 나의 움직임, 행동 하나하나를 조절하려는 모습. 자신을 놓겠다고, 노력하겠다고 다짐하지 않겠습니다. 당신이 알아서 저를 자유로 풀어주시리라 믿을게요. 나의 자유는 내가 주는 것이 아닌, 우주의 기운이 주는 것임을 그저 숨만 쉴게요, 그저 숨만, 숨만. 아무것도 하지 않겠어요 - 노력 따위도.
이 글을 처음 쓰기 시작하였을 때는 분명 정보전달적인 -이다 어투로 시작하여, 현재는 당신에게 빌고있는 대화형이군요. 음, 내 자신이 조금이라도 변하는 것인지 - 모르겠다. 내일 금식을 해야겠다, 나 자신을 위해, 우주를 위해, 자유를 위해. 누가 나를 제발 도와주었으면 좋겠는데, 도움을 요청 할 수가 없다. 어디에선가, 누군가가 말하기를, 왜 가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도움을 거부할까요? 역으로 도움을 거부하기 때문에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누구나 도움이 필요한 것이 사람이거늘, 자신감을 넘은 자만감이 사람을 궁지로 모는 것이 아닐까 - 이를 알면서도 궁지에서 나 자신을 가두고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는 나를. . 울지도 못하는 나를. .
절망까지, 이러한 처절함도 괜찮습니다 - 뭐 어쩌렵니까, 시간이 흐르는 것은 같고, 어떻게든 누구나 자신만의 방법들로 시간을 보냅니다.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실수이고 비겁하고 더럽지만 이러한 모든 모습들이 나의 일부이고, 나는 퍽이나 괜찮은 사람입니다. . 그럴거에요 아마. .


4/9
"고통은 참으로 우리를 괴롭히는 악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되도록 고통을 면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고통이 없을 떄, 고통을 모르는 인간, 고통이 없는 인생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하느님을 더 찾고 모두가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 되겠습니까? 오히려 하느님을 잊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나 역시 고통이 없었다면 아마도 하느님을 전혀 찾지 않았을 것입니다. 고통이 없는 인생은 술에 물 탄 것 처럼 싱겁고 아무런 깊이도 없을 것입니다."
추기경님의 글을 읽으며 - 정말이지 솔직하신 모습에 감사하고 존경스럽다. 고통이 없었더라면 하느님을 찾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씀, 추기경이라는 주목받는 위치에서 쉽게 할 수 있는 말은 아니다. 종교를 규탄하려는 수많은 이목이 있고, 반종교 지향적인 과학 단체들이 바다를 이룰 정도로 많은 오늘 날, 고통없이는 하느님을 찾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 매우 자극적이다. 하느님은 목발이다 - 라는 주장은, 반종교적인 주장들 중 주요 논리 중 하나인 것 같다. 그들은 종교를 나약한 이들의 정신적 자위정도로 여긴다. 나 또한 이러한 생각을 했었고, 고등학교 시절, 엄마와 부엌에서 이러한 대화를 나누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 엄마는 그러한 관점도 수용해야하며, 종교에 대한, 세상에 대한 공부를 더 해야한다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나 자신이 얼마나 아는 것 없이 당돌했는지 부끄러울 따름이다. 어찌되었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이지만, 자신의 위치에 따라 그것을 부정하거나 무시하기 마련인데, 솔직하게 글로 남길 수 있는 추기경님의 모습에 겸손해진다.
고통, 고통, 피하고 싶고 싫다. 하지만 이를 수용해야한다. 하지만 보다 큰 딜레마는 어디까지나 고통을 수용해야하는 것이냐 - 인 것 같다. 어려움, 고통 따위를 수용함으로써 나의 발전을 막는 것 같기도하다. 더러워도 괜찮다는, 고통도 나의 일부라는 생각에, 나 자신의 악에서 나를 보다 절실히 구하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모든 것을 놓으리라, 주님이 맡아 주시리라, 아멘 -

4/10
"당신 스스로 비우신 주님을 본받아 우리도 주님과 형제들에 대한 사랑으로써 남을 위해 자신을 비우는 그 가난을 본받게 하소서."
하아, 근래 아침마다 되뇌는 생각 - 비우자. 딱히 바쁘지 않은 생활, 수업의 내용도 어렵지만은 않은 듯 하여, 그 만큼 여유로운 마음을 보다 나를 필요로하는 이들을 위해 사용하면 좋을텐데, 특별히 중요치 않은 잡념들에게 빼앗기는 것 같아 속상타. 자신을 비우는 것, 나를 위함이 아닌 타인을 위하여, 내가 아닌 우주를 위하여, 이타적인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여길 수 있기를 바라며. 나의 그릇을 깨끗이 비워버리고, 타인을 위해 모든 것을 쏟을 수 있기를 - 아멘 so be it

4/11
"이것은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고 오직 하느님만이 채울 수 있습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꿈입니다. 이 꿈의 실현이 인간의 구원입니다. 하느님은 우리 한 사람에게 이 꿈을 지니고 있습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꿈이라. . 한 번 읽고는 무슨 말인지 이해 할 수 없었다. 오히려 하느님은 인간의 꿈이라 하면, 이루워 질 수 없는, 인간의 '아버지의 닮음'에 대한 끝 없는 동경을 말하는구나 싶었을텐데, 인간은 하느님의 꿈이라니. 하느님이 인간이 되기를 꿈꾸신다는 것일까. . (그것은 영화 nine 의 내용인데. . 인간을 꿈꾸는 god) 인간은 하느님의 꿈, 인간은 하느님의 꿈을 형상화하는 존재라는 뜻이 아닐가. 하느님은 꿈이 있었고, 그것을 우리 인간을 통해 실현한다는 뜻이 아닐까. 순간 나의 삶은 나의 꿈을 실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치지만, 추기경님의 말씀을 다시 기억해보면, 우리는 세상의 어떠한 것으로도 채울 수 없다고 말하신다. 우리 자신의 꿈들도 세상의 것이기에 우리를 채울 수 없는 것이요, 우리를 완전히 채울 수 있는 것은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그의 꿈을 실현하는 것 뿐이다.
이번 사순시기 동안 가장 집중하였던 것은 비움이였다. 나 자신을 비우고, 하느님으로 나를 채울 수 있는 것 - 추기경님의 어떠한 문구를 읽어도 같은 맥락인 듯 하다. 나로 가득한이 아닌, 나의 비움, 그리고 오로지 하느님과 타인을 위한, 내가 아닌 어떠한 매개체가 되는 것에 가까운 듯 하다. 이는 지난 특전미사 중 Father Kelvin의 말씀과 같은 맥락이다 - 우리는 영혼이요 육신이 아니고, 우리가 자신이라고 말하는 것은, 말 그대로 나의 몸이지, 완전한 내가 아니다. 하루하루 이어저 가는 점들 사이의 선을 보며, 사순시기도 부활절이 다가오고있다. 마지막까지, 시작의 마음, 초심을 잃지 않기를, 나를 보다 비울 수 있기를, 이러한 원함마저 비우기를, 아멘 so be it.

4/13
"평화를 깨뜨리는 모든 것을 이기고 없애야 합니다. 불화의 뿌리를 뽑아야 하고, 남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오만, 믿지 않으려는 불신, 용서할 줄 모르는 미움, 나만을 위하는 소유욕과 지배욕, 질투와 경쟁심을 버려야 합니다."
휴, 너무 사실이다. 남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마음은 오만이요, 믿지 못함은 불신이요, 용서치 못함은 미움이요, 나만을 위한 것은 소유욕과 지배욕이고, 질투와 경쟁심 또한 나의 나약한 모습이다. 물론 모든 사람의 마음에는 이러한 것들이 각자의 정도로 있으리라. 버리리라, 버리리라, 버렸느니라, 휙 휙 휙 슝슝슝
이미 모두 버렸다는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보자 - 휴 아멘 so be it
나쁘지 않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마음을 비운다는 자세가 매우 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타인에 대한 감정적인 관념들을 버리는 것이 가장 어렵다. 우편물 중 교통위반에 대한 비용을 내라는 편지가 있었다. 기분이 매우 나빴지만, 이 보다 큰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에 괜한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비록 이번 달 역시 한도를 넘은 통장내역이 나올테지만, 보다 위험하거나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 일이 충격이라는 것은 특별히 나쁘지 않은 일이다. 근래 많은 일이 즐겁다. 약속도 빈번하고, 입을 옷, 잘 수 있는 집, 쉴 수 있는 침대, 먹을 수 있는 식량, 만날 수 있는 사람들, 수업마다 귀여운 친구들이 있음에 감사하고 즐겁다.
이 즐거움의 이유는 두가지가 있는 것 같다, 첫 째 마음을 계속적을 비우려는 자세로 생활한다. 둘 째 수업에 즐거운 친구들이 있다. 마음을 비우는 것은 나의 실수에 너그러워지고, 보다 긍정적인 마음의 안정을 준다. 무엇인가를 해야한다는, 특정한 방법으로 해야한다는 기준이 사라지니, 마음이 편안하고 그저 쉬운 마음으로 생활 할 수 있다. 쉽게 잊을 수 있고, 쉽게 실천한다. 그저 생활의 시간적 단위들을 지내는, 보내는 기분이랄까. 마음이 비교적 가볍다. 친구들에 관해서는 길어질 것 같으니 다른 글로 적어야겠다. 감사할 따름. 내일이 시험임으로, 오늘은 공부를 해야한다, 하루를 무사히 지낼 수 있도록, amen - so be it


4/14
"하느님이 가난하다는 사실은 명백하게 알려져야 합니다. 하느님은 있는 자체이시나 아무 것도 갖지 않았습니다. 갖지 않았을 뿐 아니라 어떠한 소유물도 필요로 하거나 원하지 않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도 괜찮은 마음으로 하루가 시작되었다. 시험 때문인지 잠을 길게 잘 수 없었다. 0600시 쯤 눈을 떠, 샤워를하고, 빵에 계란을 입혀 먹고 공부를 하니 벌써 0830시가 가까워지고 있다. 일찍 일어나는 날에는 하루가 길고 딱히 마음이 편하지 않은데 오늘은 마음이 편안한 것이, 근래 얼마나 괜찮은 생활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정오에 유기화학 시험을 보고 온실에 화분에 물을 주고 은행에 들렸다가, 할머니 댁에 가기로 되어있다. 이렇게 주말이 불과 몇 시간 내로 다가왔다.
오늘 아침 문득 마주친 글에서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유학을 와, 졸업을 하고도 나라에 돌아가지 않고, 한국에서 하루도 빠짐 없이 일을하며 집으로 돈을 보내는 분이 계시다는 것을 읽었다. 하루도 쉬지 않고 한 달을 꼬박 일하면 120만원을 벌 수 있는데 그것은 베트남 돈으로 1000만원에 가까운 비용이라고 한다. 120만원을 버는 것이야 어렵지 않을 듯 해보이지만, 하루도 쉬지 않으신다니, 나로써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하루 수업 5시간 정도 듣고도 지쳐 주말을 입에 달고 지내는데, 하루도 쉬지 않는다니. . 120만원을 버는 것 보다 어려운 것은 그것을 쪼개 자신의 생활비를 사용하고 가족의 것을 남기는 것이지 않을까 싶다. 한국 지방의 가장 저렴한 방값도 30만원 정도 하지 않는가. 기본 생활비 또한 최소한 30만원 정도 들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60만원 보내기도 빠듯 할 듯 하다. 하지만 베트남 돈으로는 꽤나 큰 돈이 되니, 그것에 보람을 느끼는 것이리라.
이에 비해 나의 생활비는 터무니 없이 많이 나간다. 방값부터 시작하여, 학비, 기름값, 식비, 기본적인 것 외에도 입는 것, 차에 들어가는 돈, 취미생활로 들어가는 돈 등이 한 달 생활비가 꽤나 드는 것 같다. 줄인다고 하여도 방값을 제외하고도 60만원 정도는 족히 쓰는 듯 하다.
하느님은 가난하셨다. 그는 어떠한 것도 원하거나 필요로 하지도 않으셨다. 나는 학벌을 위해 유학을 왔고, 괜찮은 집에 살고 있으며 무려 차도있다. 취미생활을 위해 옷과 도구들을 '필요'로하다는 이유로 그것들을 구입하고, 내가 가진 물건들에 집착하는 일도 흔하다. 나의 가장 큰 집착은 책. 솔직히 방에 있는 책들 중 읽지 않은 것도 수두룩하다. 하지만 흥미로운 책을 보면 갖고싶다. 방에 두면 언젠가는 읽게되는 것이 사실이기는 하나, 정말 원한다면 도서관에서 충분히 빌려서도 볼 수 있는 것들이다. 나의 지식을 위한다는 이유로, 밑줄을 치고싶고, 소유하고 싶고, 언제든지 돌아가서 읽고 싶을 때에 읽고싶다는 이유로 책들을 하나 둘 씩 사다보니 어느세 오선반을 가득 채운다.
또한 기본적인 것을 제외하고 드는 가장 큰 지출은 옷. 딱히 많이 사는 것은 아닌데 한 달에 한 두 장 정도는 사게된다. 계절에 따라 사는 옷들이거나, 운동복이 다수. 옷의 세계를 사실 이해하기 어렵다. 옷이 비싸 마땅한 이유는 어느정도 이해 할 수 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이 아닌, 부수에 가까우니, 특별히 저렴하지 않아도 된다. 책은 보다 들어가는 노력에 비하여 저렴하다고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책은 보다 널리 보급되야 하는 것임으로 어느정도 이해 할 수 있다. 이러한 관계가 어떠한 시스템에 의해서 의도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생각은 이러하다. 어찌되었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책과 옷을 적게 사는 것이다. 지금도 최소한으로 줄인다고 생각하지만, 예수님은 '아무것도' 없으셨고, 모든 것 그 자체이셨다. 이 처럼 나의 관념을 바꾸면 새로운 지향을, 방향을, 생활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본다.
일찍 일어났더니 역시나 눈이 따끔거린다. 어서 시험을 마무리하고 할머니 댁에 가서 맛있는 식사를 먹고 한 숨 자야겠다. 휙 쿵 - 아멘 so be it.

4/16
"겸손한 사람만이 인생을 값지게 사는 슬기를 배울 수 있습니다." 
배움이라는 것, 겸손이 유일한 방법이다. 겸손하지 않으면 자신으로 가득차, 그야말로 자만하여 나 이외의 것을 수용 할 수 없다. 나 자신을 비울 수 있는 방법은 겸손 뿐이다. 나 자신의 부족함을 인지하고, 인정하고, 그것을 원망치 않고, 보다 옳은 것을 비울 수 있는 여유를 자신에게 허락해야만 무엇이든 배울 수 있고 수용 할 수 있다.
오늘은 토요일, 특전미사에 가는 날이다. 벌써 부활절이 가깝게 다가왔다. 사순시기 동안 비움에 중점을 두고 기도를 하였고, 뿌듯하지만은 않은 날들도 많았다. 반 정도는 뿌듯하지 않고, 반 정도는 뿌듯했던 것 같다. 하지만 net 포괄적으로 전체를 고려했을때, 나의 현재 마음은 시작에 비하여 보다 편안하다. 이것이 100%기도와 비움에 인한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매우 큰 부분이 비움으로 부터 오는 행복임은 확실하다. 그것은 나에게 긍정과 편안 - 곧 필요한 모든 것을 선물해 주었다. 이렇게 나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순의 마무리를 향하는 오늘, 바른 자세로 특전미사를 드리겠다. 나는 비우려 노력했고, 그 노력마저 버리며,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었다, 아멘 so be it.

4/17
"주변에서도 건강에 대한 확신을 가지라고 권유해 주시는 분이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래 사는 것'보다 '기쁘게 잘 사는 것'이 더 소중한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수녀님도 그렇게 말씁하셨지요, 부활을 '기쁘게' 맞이 할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를 하자고. 그렇게 우리는 아픔을 지향하면서도 기쁨을 향하는군요. . 아프고도 기쁜, 그런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 자만하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자만하지 않도록 비워주세요, 비우겠습니다, 비웠습니다. 부활이 훌쩍 다가왔네요. 당신의 못 박히심을 기억하며. . 감사합니다, 아멘 so be it

4/20
"내 이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차를 타는 사람이든, 걸어 다니는 사람이든, 교통법규를 성실히 지키고 실수 할 때에는 지체없이 용서를 먼저 청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게으른 나의 시간이 흐르고 흘러, 부활에 가까워 졌네요. 글이 길어 수정이 어렵군요, 다른 포스팅으로 옮기겠습니다.



자료 출처
http://www.catholic.or.kr/ 
김수환 추기경 잠언집 바보가 바보들에 (산호와 진주)



자료는 다시 쓴 것임으로 오타 혹은 내용의 오류가 있을 수 있음.


 

 

Posted by water_
,
솔직하라고 괜찮다고, 챙피하지 않다고, 챙피해도 속상한 것 보다 내키는 말은 하는거라고 - 말은 하지만 정작 나느은, 에이 - 별거 아닐거야 라며 삭히고 있. 그래 솔직히 행복해 보이고 부럽기도하고 부끄럽기도하고, 왜 그랬는지 미안한 마음도 있고 보고도 싶고, 그냥 기억으로 두고싶은 마음도 있고, 뻔 할 것 같다는 생각 - 핑계인지 두려움인지 모르겠어. 나도 이런 식상한 기분들 속에 다 있더라.




Posted by water_
,
 

낭만 浪漫 물결 랑() 흩어질 만

실현성이 적고 매우 정서적이며 이상적으로 사물을 파악하는 심리 상태. 또는 그런 심리 상태로 인한 감미로운 분위기.

젊은 시절의 낭만
정열과 낭만이 넘치던 학창 시절
낭만에 젖다
윤태는 달이나 별이나 또는 숲과 사슴 같은 낭만 대신에 어떻게 하든지 비집고 살아나가야 하겠다는 의욕으로 은연히 흥분해 가기 시작했다.

낭만적

현실적이 아니고 환상적이며 공상적인. 또는 그런 것.
낭만적 성향
낭만적 분위기
그는 낭만적인 목소리로 시를 낭독했다. 
양 떼를 몰고 저 비단길을 오르는 것도 상당히 낭만적으로 보일지도 몰랐다.


낭만 - 사전적 영어 번역은 Romance. "Romance is the pleasurable feeling of excitement and mystery associated with love."

한글과 영어에는 분명한 벽이 있다. 낭만과 로망스는 결코 같지 않기 때문. 로망스는 에로스의 사랑이고, 낭만은 소녀의 가을이다. 낭만 낭만 낭만, 흩어지는 물결이다. 낭만, 어린 시절의 추억에만 부를 수 있는 이름 인 것 같다. 어느정도 나이가 들어 머리가 커지고, 더러움을 안 후로 부터는, 낭만이라는 아름다운 수식어를 쓸 수 없게된다. 낭만, 의 시절이 분명 있었고, 그것은 지났다. 지금 나에게 흩어지는 물결 따위의 환상은 없다. 낭만, 그립다 - 다시 만나고 싶다. 깨끗함이 얼마나 소중한지, 지나고야 알겠다 - 모든 것이 그러하더라.





자료 출처: 다음, 위키피디아

Posted by water_
,





그다지 좋지는 않다. 할 일이 많지만 틈이 없는 정도는 아니인지 울고싶은 마음이 스믈스믈 피어 오를 정도 - 점심약속을 거절하고, 집에서 차려 섭취. 후식의 쿠키엔크리무 아이스크림을 퍼먹퍼먹 하며 드는 생각은 - 내 당뇨가 아닌 것이 참으로 감사하다. 그 얼마나 고생이였을까.
오늘도 키 크신 바리스타 그대는 일을 하고 계신다. 평상시와 다른 시간에 왔는데도 우연히 일을하고 있으시니 신기하구나. 눈이 마주치면 민망한 것에는 아무런 이유가 없다. 그야말로 괜한 감정. 커피 음식 따위를 잔뜩 사가는 이들을 보며 바리스타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분명히 깨끗하지 않은 음식이고 영양적으로도 부실한 - 음식이라기 보다 잡동에 가깝다. 이러한 문화의 구성원들을 보며 바리스타들의 머릿 속을 상상해본다. 아 정리조차 되지 않는 잡념이 지저분하다.
오랜만에 인간생물을 만나니 기분이 참으로 기이하구나 -






'일상, 단상 > 단상과 일상 2011'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솔직한 마음  (0) 2011.03.24
낭만에 대하여  (0) 2011.03.23
때로 느끼는 허무함, 자연 부조화  (0) 2011.03.21
Sun shines sunshines 해는 햇빛을 햇빛  (0) 2011.03.21
느림의 필요  (0) 2011.03.21
Posted by water_
,

Seattle Food Tours

음식 2011. 3. 21. 16:19


http://www.seattlebitesfoodtours.com/
http://www.seattlefoodtours.com/
http://www.savorseattletours.com/


전반적으로 Pike Place Market 중심인 듯, 가격은 30-50$ 내외. 맛있는 음식과 Seattle의 다운타운을 체험 할 수 있는 즐거운 방법!


'음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애틀 자취생의 집 식사 재미있는 요리 놀이, 채식으로의 전환  (0) 2012.04.22
Cafe Ladro, Issaquah Highlands WA  (0) 2011.04.01
스시  (0) 2011.03.13
Panera Bread Bowl Soup  (0) 2011.03.11
음식을 대하는 자세  (0) 2011.03.11
Posted by water_
,




누구나 때로 허무함을 느낀다. 그것이 나를 눌러 생활을 불가능케 하던 날들도 있었다. 오늘 문득 약국의 앞을 지나가면서 이를 잠시 느꼈다. 하지만 그것이 이전에 느꼈던 절망감과는 많이 달랐음을 또한 느꼈다. 이러한 때에 나 자신이 변했음을 비로소 알 수 있다. 같은 감정에 대한 나의 반응이 다른 것이다. 이와 같은 불행에 덤덤 할 수 있는 자신이 생소키도하고 신기할 따름이다. 내적인 것들에 집중하여 외적인 것들에게 신경 쓸 여지가 없던 -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였던 - 오히려 반감을 가지고 있던, 불과 몇 년 전의 나의 모습을 기억한다. 외적인 것들에 내적인 것들을 때로 무시하는 현재 나의 모습을 바라본다. 어느 것이 나은 것인지는 구분 할 수 없다. 다만 보다 편안한 구석에 정착하고 싶을 따름. 비교적 당시의 나와 현재의 나 중 현재의 내가 편안하다. 나 자신의 안락 - 이 외의 것들은 모두 부수적이고 중요하지 않다.
잠이 올 듯 오지 않을 듯 - 영화를 한 편 보고싶지만 딱히 볼만한 것이 없다. 비 소리가 듣고싶은데 비가 내리지 않는다. 이것 저것 좋다 - 싶은 것이 없는 것을 보니 반 정도 졸린가보다. 나를 웃게하는 것들에 대한 생각을 해본다. 가족 친구 자연 - 사실 자연만큼 즐거운 것은 없다라고 감히 말 할 수 있다. 가족 - 자연만하지 못하다. 물론 인간이 자연과 본인들을 분리하여 생각하는 것은 필요치 않은 보편이지만, 인간관계란 자연과 거리를 갖게 만드는 그러한 기가 있다. 사람들 또한 자연이거늘 - 그들, 우리들에게는 자연적이지 않은 어떠한 기운이 있다는 것이다. 비록 가족과 친구들에게서 즐거움을 느끼고, 그들이 없다면 나 또한 없으리라. 하지만 그들에게는 피곤함, 어려움, 번거로움, 안타까움, 속상함 - 한 마디로 '싫음'이라는 것이 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자연에는 싫음이란 없다. 그것은 부드러우며 그 어려움 조차도 '좋음'의 일부이고 조화이다.
이는 사람에 대한 반감에서 나오는 나의 편협적인 편린이다. 분명 자연에도 어려움이 있고 그것이 싫을 수가 있는 것이거늘 - 사람이 싫다 - 라는 말을 나는 이렇게 둘러둘러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몇 년 전에는 찾을 수 없던 '미안함'이라는 감정이 생겨 - 불편하기 그지없다.



'일상, 단상 > 단상과 일상 2011'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낭만에 대하여  (0) 2011.03.23
음 충동의 월요일, 스벅에 앉아  (0) 2011.03.22
Sun shines sunshines 해는 햇빛을 햇빛  (0) 2011.03.21
느림의 필요  (0) 2011.03.21
오래 사용함의 철학  (0) 2011.03.21
Posted by water_
,


1월 중순의 햇살 가득했던 오후


Oh sun of spring, where art though - the clouds are in attempt of my murder.
아아아 어제는 해가 떴건만 오늘의 구름은 나의 죽음을 노리고있다. 3월의 말 - 산 속의 역동적 연둣빛 봄의 생기를 일상에서 찾을 수가 없다. 회색 구름과 선선한 카페의 공기는 봄보다 겨울의 것과 흡사하다. 태양계의 에너지, 기운의 원천인 태양은 왜 연약한 빛으로 나를 비추는가. 녀석의 뜨거운 폭발과 열정은 언제쯤 만날 수 있는 것일까.
입안의 모래밭은 다행히도 사라졌다. 보다 의식적이고 나쁘지 않은 주말을 보내고있다. 다만 온기가 많이 그리울 따름 -
어젯 밤 왜인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의 정석과 같은 감정을 느꼈고 나를 '웃게'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오늘은 약국을 보며 허무함을 느꼈고, 스타벅스 키크신 바리스타 그대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눈을 치켜뜨고 남의 피자를 빼앗아 먹는다 - 웃기는 사람이다. 또한 어제 성당 미사가 끝난 후 양말 그는 Adagio 를 건반으로 연주하는 환상을 선사했고, 그 순간에 내가 있었다. 아 - 참으로 괜찮은 주말이 아닐 수 없다. 데니스 카일 크리스 -
목소리가 작은 사람들을 좋다 - 늘 그랬다. 시끄러운 것은 마구 싫다.
Posted by water_
,


개인적으로 느림의 지향은 느림자체의 매력도 있지만 신중함의 지향이다. 신중함이 부족하다. 즉흥적인 즐거움은 그야말로 충돌적이고 어떠한 방향으로 튈지 모르는 호기심 가득한 흥분의 움직임이다. 그것의 즐거움은 나름의 환상이지만 치우침을 인지하며 - 균형의 필요를 느낀다. 천천히 걷는 것, 느리게 대답하는 것, 바라 볼 대상에 대해 먼저 생각하는 것 등을 연습해야한다.
눈이 피곤하고 목이 뻗뻗하며 허리가 아둔하다. 때때로 느려야겠다고 다짐하지만 쉽게 잊고 즉흥적인 선택을 하는 일이 있다. 몸에 베인 속도를 바꾼다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바른 방향은 계속되어야하고, 이상에 대한 갈망 또한 포기해선 안된다. 바르지 않은 것이 평균이 되어 기준이 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매일 아침 깊은 숨을 쉬고 지향하는 바를 기억해야 함을 - 다짐해본다.



 

Posted by water_
,




물건들을 오래 사용하며 그것들을 보다 이해 할 수 있음을 배운다. 대표적으로 자동차, 노트북, 신발. 오랜 시간동안 한 사물을 바라보고, 함께하고, 그것의 아픔들을 이해하고 고쳐주기 위하여 노력 할 때에, 새 물건들에게 느낄 수 없는 깊이가 생긴다.
자동차는 얼추 10년의 세월을 달렸다. 기계들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한 순간 죽는 경우보다 한 부분씩 아프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녀석이 아팠던 부분들이 있었다면 와이퍼, 브레이크 플루이드, 브레이크 패드, 타이밍 벨트, 쿨러, 배터리. 만약 녀석이 아프지 않았더라면 이러한 부분들이 녀석 안에 있는지, 무얼하는 것들인지 인지 조차 하지 못하였을 것이고, 알려는 노력 또한 하지 않았으리라.
노트북은 얼추 3년의 세월을 살았다. 그 동안 나에게 무한한 정보를 찾을 수 있도록 하였고, 상당량의 글을 읽고 쓸 수 있도록 도와 주었다. 지난 3년간 영화관에서보다 이 녀석을 통해 본 영화가 훨씬 많으리라. 세상과 소통 하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였고, 먼 곳의 가족의 얼굴을 보여준다. 이 녀석을 켜지 않은 날은 손에 꼽힐 정도이고, 여행 중, 공항에서, 집, 학교, 카페, 많은 곳에서 나와 함께하였다. 컴퓨터와 주인의 관계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여러 켤레의 신발들이 있고 각각의 세월 모두 다르다. 길게는 5년의 것이 있고, 짧게는 1년의 것이 있다. 어려서는 매일 같은 신발을 신었고, 발이 자라면 새로운 신발을 샀다. 이제는 각 신발의 특성과 용도를 이해하고, 그에 따라 하루에도 몇 켤레의 신발을 신기도한다. 극장에 갈 때에 신는 신발, 학교, 산, 체육관 등, 장소에 따라 다른 신발들을 신는다. 이렇게 여러 신발들을 이용하며, 그것들의 편안함과 불편함을 인식하고 이해하고, 다음 신발을 살 때에 이를 참고한다.
이렇게 어떠한 것들을 이해한다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다. 특히나 그것들을 오랜시간 체험하며 느끼고 배우는 것들은, 경험 없이는 결코 느낄 수 없다. 비닐 봉투며, 종이컵, 나무 젓가락, 플라스틱 포크 등 일회용이 난무하는 세상이다. 심지어 핸드폰의 수명또한 1년을 평균한다. 제 수명을 체우고 떠다는 물건들은 극히 드믈며 그것을 이해하는 이들 또한 드믈다.
이에 연관지어 느끼는 점은 인간관계 또한 마찬가지라는 것. 너무나 쉽게 떠나버린 이들이 있다. 그들에 대한 이해는 가족과 오랜 친구와 같은 이해와 비교 할 수 없이 얕다. 이에대한 후회라기 보다 미안함 따위가 남는다. 당시 나는 그들을 이해 할 수 있고, 이해했다고 생각했기에, 나에게는 적합치 않다고 떠났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고 자만이였음을 이제야 비로소 인지한다. 이제야, 오래됨을 경험하고나서야, 그것들을 상대적으로 이해하고있다.
지나간 것에 대한 후회보다는 내일의 나음을 지향하는 것이 바람직하리라 생각한다. 보다 나은 모습의, 혹은 배움을 바탕으로 보다 의식적인 나의 선택들은, 나뿐 아닌 나의 환경과 타인들에 대한 배려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아름다운 것들을 지향하는 철학을, 쉽지 않겠지만 이상향을 향한 방향은 멈출 수 없다.
온고지신



'일상, 단상 > 단상과 일상 2011' 카테고리의 다른 글

Sun shines sunshines 해는 햇빛을 햇빛  (0) 2011.03.21
느림의 필요  (0) 2011.03.21
오늘 내일 어제 자신 기분 - 꿈  (0) 2011.03.18
좋아하는 글귀  (0) 2011.03.16
Music and Heartbeat 음악과 심박  (0) 2011.03.15
Posted by water_
,




자신만의 취향으로 가득한 카페를 차리는 꿈은 - 많은 이들의 꿈이다. 나 또한 같은 꿈을 꾼다. 이름도 지었다  L'delicione 크 - 어제 L'apartment 를 보고, 방금 지은 것이다... 바뀔 확률은 99%정도로 적당히 잡자.


책 - 과학, 환경, 철학 위주, 소설 사양, 대여가능, 장르불문 기부환영
음식 - 미정 (가장 중요)
차 - 커피 사양
음악 - 멜로 일렉트로닉, 소프트 락, 하드코어 헤비메탈 롹 월요일, 서태지 꺄
면적 - 30평 이내, 공간의 활용을 보여주마, 붙어 붙어 모여 모여
인테리어 - 미정
직원 - 외모위주




'일상, 단상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걸어도 , 뛰어도 인생이다" running  (1) 2011.04.01
음식 eating  (1) 2011.03.29
자발적 가난 - 적은 것의 덕  (0) 2011.03.16
Finance  (0) 2011.03.13
Raspberry Field 라즈베리 밭  (0) 2011.03.10
Posted by water_
,

영화를 두 편 째 보고있다. 기분이 꽤나 좋지 않다. 오전에 받았던 산의 환상 기운은 순간적인 효과였을 뿐이었나보다. 나 자신을 잃은 것 같아 퍽이나 슬프다. 만족스럽지 않은 하루들에 내일을 기대하는 밤들을 다시 보내고 있다. 딱히 속이 상하지는 않지만 돌아가고 싶을 뿐. 나의 말들은 솔직함이고 그녀의 말들은 배려 없는 실수로 들린다. 오랜만의 대화가 전혀 반갑지 않다. 오히려 멀어짐에 대한 나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하는 셈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나만의 굴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가질 수 없는 것이 갖고 싶더, 간편한 것으로 대체하려 하지만 불가능일 뿐 더러 터무니 없는 일이다. 가질 수 없다는 것 - 물론 내가 그은 선들을 지워버리면 충분히 가질 수 있는 것들이다. 많은 수의 다른 사람들이 갖고 있는 것이기도 하고 매우 흔한 것 - 하지만 나에게 내가 허락하지 않을 것.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는, 모든 것을 버려야한다는, 철학도 사상도 아닌 한 순간의 잡념. 모든 것을 태워버리고 소멸하고 싶다 - 그럼 좀 쉴 수 있지 않을까.

'일상, 단상 > 단상과 일상 2011' 카테고리의 다른 글

느림의 필요  (0) 2011.03.21
오래 사용함의 철학  (0) 2011.03.21
좋아하는 글귀  (0) 2011.03.16
Music and Heartbeat 음악과 심박  (0) 2011.03.15
Sunday  (0) 2011.03.14
Posted by water_
,

오늘 산에서 멋진 영국발음 노인분을 만났다. 꽤나 산을 열심히 다니 신 듯 하다. 미국에는 70년대에 오셨다고 - 당시에는 Sailing을 즐겨 섬들 주의를 길게는 몇 개월씩 항해하셨다고 하신다. 무튼 노인분께 등산코스 추천을 받았다. 잊어버릴까 무려 적어왔다. 하나하나 찾아보아야 겠다.

*자료 출처 링크에는 추가적 정보들과 사진이 있다.


Snow Lake
Snoqualmie Pass - Mt. Baker - Snoqualmie National Forest - North Bend District
매우 많은 사람들이 찾는 유명한 하이크. 여름 주말에는 최다 200명 가까이 등산. 다행이도 주중에는 사람이 거의 없음. 사람이 많은 것에는 이유가 있음. 초보와 상급 등산 코스가 모두 있고, 호수 자체가 상당히 아름다움. 사슴, 염소, 새 등의 동물들이 찾기도 함. 초여름에의 wildflowers 산 꽃들이 많이 피고 연말 즈음 Huckleberry 허클베리가 많이 핌.

자료 출처 http://www.wta.org/go-hiking/hikes/snow-lake-1








Shi Shi Beach
Olympic National Park
이름이 마구 사랑스럽다 - 샤이 샤이 비치. 등산이라기보다 Trail 트레일인듯 싶다. 해안 숲과 바닷가. 허가증을 받고 캠핑을 할 수 있으며, 캠핑 시, 주위 동물들이 있기 때문에 음식물 보호에 대한 규율이 엄격하다.

자료 출처 http://www.nps.gov/olym/planyourvisit/shi-shi-beach-olympic-wilderness.htm



Victoria - 가장 추천하셨다
British Columbia - Vancouver Island
캐나다의 영토임으로 여권을 지참해야한다. Victoria는 Vancouver Island 의 가장 남쪽 - 미국과 가까운 마을이다. 따라서 Ferry 배를 타고 가야한다. 바다로 둘려쌓여있고 공원들이 많아 쉽게 찾을 수 있다. 어려운 등산 코스로는 Mt. Finlayson 과 Mt. Douglas 가 있다. 일년의 날씨의 변화가 크지 않고 준수하기 때문에 하이킹을 언제나 즐길 수 있다. 많은 Park 공원들은 Rainforest 우림지역 이다. 
초급 Trail 트레일 : Galloping Goose Trail, East Sooke Regional Park, Sooke Potholes Provincial and Regional Parks
중급 Trail 트레일 : Mount Douglas Regional Park, Gowlland Tod Provincial Park
상급 Trail 트레일 : East Sooke Regional Park: Coast Trail, Goldstream Provincial Park: Mt. Finlayson

자료 출처 http://www.hellobc.com/en-CA/SightsActivitiesEvents/AirLandActivities/Hiking/Victoria.htm 







Lake Crescent
Olympic National Park
Port Angeles 의 서쪽으로 위치한 아름답고 깊은 호수. 하이킹, 트래킹, 캠핑, 여름에는 수영 가능, 배 또한 탈 수 있음. Marymere Falls 라는 폭포가 있으며 Mt. Strom King 에서의 등산이 가능. Pyramid Peak 은 2600 ft (792m) 까지 올라가며, Aurora Creek은 3220 ft (981m), Barnes Creek 은 4200 ft (1280m) 까지 올라 갈 수 있지만 현재는 일부만 유지 됨. Old growth Forest 를 가로지르는 하이킹 코스들이 많고 아름다운 호수의 전경을 감상 할 수 있음.

자료 출처 http://www.nps.gov/olym/planyourvisit/visiting-lake-crescent.htm


Sequim
North of Olympic National Park
Olympic National Park의 북쪽에 위치, 국립 공원과 바다의 가운데 위치한 마을. 해안을 따라 산책로들이 많으며 편리하고 아기자기한 시설들을 갖춘 소소하고 아름다운 마을. 자전거, 카약, 골프, 등을 즐길 수 있음. Valley 지형의 여러 농장들이 위치. 특히 Lavender, 딸기, Raspberry 라즈베리, 와 Blackberry 블랙베리 농장들이 있음. Olympic National Park와 매우 가깝기 때문에 이 곳에서 지내면서 국립공원을 몇일 간 체험하여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

자료 출처 http://www.visitsun.com/


Cape Alva
Olympic National Park
초급 부터 상급까지의 하이킹 코스들이 있음. old-growth 와 temperate 준수한 rain forest 우림지역임. 해안을 따르는 코스들이 있음. 지역 특유의 식물들과 동물들이 다양. 상당히 많은 수의 야생동물들이 해안을 따라 생활. 바다, 절벽, 섬 등의 전경. 고도가 높지않아 대체적으로 어렵지 않은 코스들. 눈 따위의 날씨에 크게 제한을 받지 않으나 얼음에 유의할 것. 캠핑 또한 가능.

자료 출처 http://www.n2backpacking.com/my_hikes/washington/cape%20alava%207_98D.htm
http://www.seattlepi.com/getaways/020499/hike04.html 





(Little Si)
Mt. Si
Snoqualmie Valley - North Bend
Washington 워싱턴 주의 하이커라면 한 번 쯤은 올랐을 것이다. 초 봄에 가장 눈이 먼저 녹는 산임으로, 많은 등산객들이 한 해의 등산을 시작을 이 곳에서 한다. Si의 경관은 그야말로 아름답다. Upper Snoqualmie Valley, Puget Sound basin, 그리고 그것들을 넘어선 Washington의 전경을 볼 수 있다. 총 4167 ft (1270m)의 고도까지 오를 수 있으며, 출발지점의 고도가 대략 700ft (213m) 정도 된다. Little Si 는 작은 버전의 Mt. Si 라고 할 수 있겠다. 꽤 되는 경사에 많은 이들이 Mount Si가 눈으로 덮인 겨울 동안 Little Si를 찾기도 한다.

자료 출처 http://www.wta.org/go-hiking/hikes/mount-si 
http://www.mountsi.com/littlesi.htm








Rattlesnake Ledge Lake
North Bend
Rattlesnake Lake 와 snoqualmie River Velley를 전경으로 아름다운 Trail 그리고 하이크. 유명하고 큰 절벽이 있으며 돌들과 숲의 전경 또한 아름다움. Valley를 지나 Mount Si 또한 보임. 고도 1175 ft (358m). Seattle 시애틀과 멀지 않아 많은 쉽게 찾을 수 있음. 어렵지 않고 길지 않지만 아름다운 하이크 등산 코스. 자전거와 말은 출입을 금지함.

자료 출처 http://www.wta.org/go-hiking/hikes/rattle-snake-ledge
http://www.gonorthwest.com/Washington/Activities/Hiking/rattlesnakeridge.htm


 


모든 지역에서 유의해야 할 점은 많은 trail 들이 7월까지 문을 열지 않는다. 산에는 6월이 지나 까지도 눈이 있고, 안전을 위하여 산행을 통제하고 있다. 따라서 사전적으로 정보를 조회해야한다.

또한 정보를 찾을 수 있는 곳이라며 Washington Trails Association 을 추천해 주셨다. http://www.wta.org/ 


Posted by water_
,
학교 집 학교 집의 제한적인 동선 - 벗어나고 싶다. "어디로든 갈래 나 어디로, 이 곳은 이 곳은 아니야" 2주만에 Tiger Mountain을 올랐다. 지난 주간 비가 떨어지는 것이, 이것이 봄인지 늦 가을인지 알 수가 없었으나 - 산은 봄을 맞아 생명으로 가득하더라

 



입구부터 Lush 라는 형용사가 떠오르며, 환상의 생녹색이 시작



무려 날씨도 좋았다



촘촘하고 사랑스럽게 돋고계시다



물의 역동적 흐름



하, 파란하늘 -  얼마만인가



벌써 힘들. . 저질 체력



여기가 현실인지 환상인지 -



오래된 이끼의 짙녹색이였던 숲이, 싱싱한 신생이끼로 덮혀 그 밝음이 환상이다. 짙은 이끼와 연두의 대조가 뚜렷하다. 옛과 새로움의 공존이라 -



하늘에 빠질 것 같



돌 위에도 이끼의 싱그러움



지난 주간 비가 무겁게 내렸다. 비가 많이 내려, 흠뻑 물을 먹은 흙 땅은 힘이 없다고한다.. 이러한 때일 수록 나무들이 뿌리채 뽑히기도 쉽고, 물을 잔뜩 먹은 나무들도 무거워 꺽이기 쉽다고한다. 많은 나무들이 이처럼 꺽였음을 볼 수 있었다. 벌건 속내가 꺽인지 얼마 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온통 환상이끼



이 곳을 극락이라 하나보다



신났다



등산을 하는건지 사진촬영을 하는건지. .



나무들이 많이 쓰러졌다



많이 많이. .




많이 많이 많이 - 평상시도 이렇게 많은 나무가 쓰러져 있다



나뭇가지 위 뿐 아니라 낮은 땅에도 온통 Lush Green의 환상





배 내미는 나무





나무도 쓰러진다

나무도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면 쓰러진다






이 녀석은 옆 나무가 쓰러지며 상처를 낸 듯 하다, 역시 벌건 속내를 내놓고 있다



붉은 속내가 생초록과 대조되며 아름답다



나뭇가지 위에도 이끼



눈이 아직 소량 남아있다, 혹시나 싶어 아이젠을 들고 올라갔는데 사용하지 않았다



기다란 환상이끼 -



환상이끼와 사진촬영



꽤나 올라와 아래 마을들이 보인다



이끼의 종류도 다양 가지가지



 



눈도 있고 계단도 있고



먼 산에는 눈이 많이


옆 산 나무 위에도 눈들이 아직



정상의 돌

 



하산


 



그녀는 등산



환상 싱그러운 이끼




공포 초췌러운 나



나무가 초록타니



돋는다



퐁퐁퐁




땅에서도 솟는 이끼



환상 색감



높은 산이 아닌데도 많은 이들이 종종 이렇게 팩을 메고 등산을 한다. 보다 높은 산을 등산 할 것을 준비하여 트레이닝 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 녀석들은 처음 본다 - 한 포기 밖에 만난 적이 없는 드믄 녀석들



하산 - 하늘은 여전히 환상

살아있는 풀들을 만나고 돌아오니 살아있음을 기억하게 된다. 하산길은 많이 뛰었다 - 등산화를 신고 달리니 충격흡수가 전혀 되지 않아 관절에 무리가 간다. trail running 운동화를 사야겠다. 오랜만에 환상적인 풍경에 세상은 아름다움을 느낌. 봄의 등산은 아름다움 - 환상과 현실사이의 존재하지 않는 경계

Posted by water_
,
후쿠시마 원전소 폭발이 기사거리가 되고있으며 사회적 이슈가 되고있다. 텔레비젼을 보는 일이 거의 없지만 우연히 Fox News 와 YTN 을 보았다. 이것이 객관성이 있는 언론인지, 국민들의 혼란을 일으켜서라도 시청률을 높히기 위한 왜곡과 드라마화인지는 쉽게 알 수 있다. 원전소와 가까운 거리, 대략 30km 반경 내에서 대략 2.5시간을 보냈을 경우, 받는 방사선량은 X ray를 찍는 것과 유사하다는 보도가 있었다. 하지만 현재 일본 뉴스에서 나오는 거의 모든 정보는 도쿄전력회사에서 제공하는 정보임으로 왜곡이 심할 것을 예상한다. 안전하다는 의견과 미국 서부지역도 바람의 영향에 따라 방사선 접근을 주위해야 한다는, 두 극적인 의견 사이에서 어느 것이 옳은지 갈피를 잡기란 쉽지 않다.

와중 가장 혼란스러운 점은 General Electrics의 입장이다. CEO 라는 사람 Jefferey Immelt 라는 사람의 인터뷰를 보는 와중, 그의 철학을 알 수 있다. 'General Electrics는 이번 사고에 대한 책임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그는 예 아니오라는 명확함을 보이지 않았고, 법적의무와 각 발전소의 개성과 운영방침은 다르다는 점, 본사는 모든 안전수치들을 'suggest' 제안 하였을 것이라는 점 등, 말만 많고 핵심은 없는 헛소리를 해대었다.

Jefferey Immelt를 검색하는 와중 14일 기사에 그가 최근 보너스를 받았다는 글을 읽었다. 무얼 잘해서 받았느냐 - 회사의 성장에 기여했다는 이유란다. Immelt는 2001년 부터 GE의 CEO자리를 맡았다. 또한 올 해 Obama 정권의 The CEO to head an advisory council on jobs and competitiveness 직위를 하사하였다.

후쿠시마의 원전발전소 사고로 GE의 주가는 어제 2.2-3.6% 하락하였다.

와중 또 하나의 발견은, GE가 후쿠시마의 원전소를 디자인코 설계턴 35년 전, 설계에 위험을 인지하고, 이에 이이를 제기하고, 항변을 하였지만, 결국 사직한 GE 과학자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이는 GE가 후쿠시마 원전소 디자인의 위험성, 비완전성을 알면서도 보완하지 않은 설계를 하였다는 뜻 일 수 있다. 기사를 요약하자면:

35년 전 Dale B. Bridenbaugh와 그의 두 동료들은, 그들이 검토하던 nuclear reactor 원전소 'The Mark 1' 의 디자인이 위험한 사고로 이어질 수 있음을 인지하고 General Electric에서 직업을 사직하였다. 수십년 동안 Mark 1 이 cooling power 열을 식히는 힘을 잃었을 경우, 거대한 압력을 어떻게 받아 들일지가 논란의 중심이 되었다. 그리고 바로 오늘 날, 이 질문이 실재로 실헙되고 있다. 후쿠시마의 6개 원전소 중 금요일의 지진으로 폭발하고 방사선을 유출한 5개의 발전소들은 Mark 1 들이다.
Bridenbaugh 와 ABC News의 인터뷰 중, "우리가 1975년에 발견한 문제들이 이것이다. Containment 봉쇄를 디자인 할 시에 그들은 냉각제가 없을 경우의 Dynamic loads 동력의 짐을 고려하지 않았다." .....GE는 ABC News에게 말하길 발전소들은 "40년이 넘도록 증명되고 신빙성있는 성능을 입증하였다" 그리고 9.0 의 지진에도 "performed as designed 디자인된 대로 성능을 보였다"고 말하였다.


이 처럼 GE는 보완 할 수 있었던 디자인을 보완하지 않았고, 그들의 책임에 대하여도 냉소적이다. GE는 후쿠시마 외, 미국에도 원자력 발전소들의 디자인을 제공해왔다.

한국언론의 보도들을 읽어보려 다음에 General Electrics 와 GE를 검색해보니, 지진 이후의 기사는 약 10개 내외가 떴다. 내용들은 후쿠시마의 발전소가 이전에도 방사선 유출의 기록이 있다, GE의 주가 하락, CEO Immelt 의 보너스 등이였다. 일본 지진을 참사라느니 방사선 유출을 2차 대전 이후의 악몽이라는이 온갖 드라마틱한 용어들로 소설을 쓰는 기사들이 GE에 관한 기사들은 많이 쓰지 않았다.

와중 14일 기사 중 흥미로운 것을 하나 발견하였다. GE 가 한국을 세계적 최대 생산기지로 선택했다는 것이다. 내용인 즉:
GE는 한국 초음파 생산공장을 GE의 전 세계 생산기지 중 최대 규모로 확대하기로...GE 헬스케어 코리아 로랭 로티발 Rotival 사장은 기존 성남 공장에 5000만 달러 약 56억원을 투자, 생산시설 확충하려한다...지난해 보다 30%늘린 8000여대의 초음파 장비 생산...한국을 GE 생산기지중 세계 1위로 올릴 것....신규 생산 라인을 세우고 연구개발 생산 인력 늘릴 예정... 이하 생략.



기사를 읽는 순간, 한국 언론이 GE의 책임에 대해서 심히 묻지 않는지의 이유를 짐작해보며, 기분이 급격히 더러워진다.

분명 지진과 해일로 인한 인명피해가 훨씬 큼에도 불구하고 방사선 유출이라는 보다 이해하기 어렵고 알려진 바가 드믄, 아이디어를 이용하여 기사를 쓴다. 기사들은 사실과 멀기도하며 가깝기도하고, 그것은 쓰는 이 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한 이슈화되는 아이디어 중 상업적 타격이 생길만한 부분을 제외하고, 혼란을 빗기 쉬운 부분만을 이용하여 기사를 쓴다는 것이 참으로 씁쓸하다.

물론 모든 것은 나만의 추측임으로 사실과 무관 할 수 있다 - 사실과 무관하였으면, 바래본다.



자료 출처 http://abcnews.go.com/Blotter/fukushima-mark-nuclear-reactor-design-caused-ge-scientist/story?id=13141287
http://www.huffingtonpost.com/2011/03/14/ge-ceo-accepts-bonus_n_835639.html
http://abcnews.go.com/Blotter/fukushima-mark-nuclear-reactor-design-caused-ge-scientist/story?id=13141287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3/14/2011031402261.html

Posted by water_
,
귀농
[歸農] <명사> 다른 일을 버리고 농사를 지으려고 돌아감. <반의어> 이농(離農). 귀농-하다 <자동사><여불규칙활용>


귀농 - 생각해보면 기이한 단어이다. 때로 사람들은 '귀농'이라며 도시생활을 등지고 농사짓는 삶을 선택한다. 하지만 왜 이 것을 '귀농'이라 하는가. 이는 분명 농사로써의 삶을 선택하는 것 아닌가. 애당초 농사와 관련이 없고 시골에서 자라지 않은 사람들도, 마치 그곳으로 '돌아간다'라는 의미를 부여하여 굳이 농사를 시작하는 일을 '귀농'이라 부른다. 물론 인류는 자본사회 이전의 농민사회로 시작하여, 본디 우리의 대부분 조상들은 농사를 지었다. 이러한 보다 포괄적인 관점 - 개인이 아닌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 '인구'가 이러한 생활방식으로 돌아간다면 '귀농'이라는 의미는 적합 할 것이다. 하지만 개인의 단위에서 마저 이 특정 단어가 사용되는 것은 이해 할 수 없는 일이다.

'귀농'이라는 단어에 대한 반감이 있는 것은 전혀 아니다. 의미가 왜곡되는 일에는 이유가 있을 것임에 - 그것이 궁금 할 뿐.

시골이나 농사의 삶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왜 그것에 대해 있지도 않았던 소속감을 느끼는가. 이는 현대사회에 대한 반감에서 나오는 것이라 추측한다. 본디 자신의 근본, 유래가 현대생활이라고 느끼지 못하는 마음에 - 자신의 origin 근원은, 사실과 무관터라도 농민사회에 있다고 느끼는 것. 이러한 현대적 사회에 대한 정서적 불만족은, 정서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시대 때문이리라. 사회적 의식이 채 변화하지 않음에도, 현재 시대는 사람들의 의식과 무관히 빠르게 '발전'이라는 명목으로 움직인다. 이러한 움직임 속에서 다수의 사람들은 의식 중 혹은 무의식 중에, 이와 동의치 못하고, 본인의, 사회의 본질은 시골 - 농민사회에 있다고 여긴다.

굳이 '귀농'이라는 단어가, 보다 포괄적인 범위로 사용된다고 하여 나쁠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와중 소외되는 단어가 있자면 '농사'이다. '귀농'이 주는 어감과 '농사'가 주는 어감은 다르다. '귀농'은 현대사회를 뒤로하고, 평안과 소소함을 향해 다가가는 현대인의 의식적인 선택 따위의 연상적 의미가 있다. 반면 '농사'에는 지긋히 나이가 드신 어르신들, 혹은 그곳 이외의 것을 접해보지 못 한 이들의 객리적인 연상이 떠오른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나와 같은 연상을 할 지는 모르겠다. 이 모든 것은 분명 나만의 해석이지만 나의 의식의 보편성을 믿어본다. 이렇게 분명 '농사'로 불려져야 할 행위들이 '귀농'이라는 와전으로, 괜한 로망따위를 연관시킨다.

농사와 귀농, 다를 것 없지만 분명 다른 두 의미, 그리고 그보다 다른 둘에 대한 인식이, 바른 기준을 따랐으면 싶다. 사람들의 '인상'에 대한 얄팍한 자존심에, 단어의, 행위의 의미가 와전되고 비하되는 행위는 참으로 덕되지 못하다.


'농사'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니

농사
갈아 농작물을 심어 가꾸고 거두어들이는 일. ~를 짓다. <동의어> 농공(農功).농사 물정 안다니까 피는 나락 홱 뺀다 남의 아첨하는 말이나 비꼬는 말을 제대로


농공
은 또 왠말인지 - 나는 모르겠다. 이는 다음 기회에 연구해 보아야겠, 다 -





자료 http://kr.dic.yahoo.com/ 

Posted by water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