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자발적 가난"이라는 문구를 스쳤다. 그에 대하여 생각하며, 그것에 대한 갈망을 기억. 나는 얼만큼 스스로 가난에게 다가 갈 수 있을까.
부자가 천국에 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뚫기보다 어렵다고 하였다. 확실히 생활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욕심은 욕심을 부른다'는 것. 검소한 생활을 하자면 충분히 검소하게 살 수 있다. 쇼핑에 맛을 들이면 그 달의 통장잔고는 바닥에 바닥을 긴다. 이렇게 약간은 극적인 행동에서 볼 수 있듯이 생활의 패턴은 습관적이기도하고 충돌적이기도하다. 둘 중 어느 것이 나으냐고 묻는다면, 솔직하게 둘 다 좋다. 검소한 생활도 때로 필요코, 충돌적 구매에도 즐거움이 있다.
'자발적 가난' - 내 자신에게 '소량'이라는 양적 제한을 두는 것. 이는 참으로 덕되는 일이다. '많음'은 자본사회의 대표적 성향이다. 특히나 미국에서는 '많다'와 '싸다'는 극을 이루는 마케팅 방법이자 경쟁방법이다. 참으로 역겹다. Starbucks는 Trenta라는 와인 한 병이 들어가고도 남는 커피 사이즈를 만들어냈고 All you can eat sushi 따위가 흥을 친다. '질보다 양'이라는 아이디어는 죽어 마땅하다. 미국은 만들어지는 40%의 음식을 버린다고 한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것이 모든 식당에서의 음식은 배가 부르고도 남는 양이고, '버림'이란 그야말로 습관적이다.
마켓에서의 일이다 - Self scan 직접 스캔하여 물건을 계산하는 카운터가 있다 - 그 곳에는 비닐 봉투들을 배치해 두었다. 비닐봉투는 뭉큼씩 배치되어 있고, 한 카운터에 뭉치가 거의 사용되고 약 10-20 장 정도의 비닐봉투 뭉치가 얇게 남아있다. 직원은 그 비닐봉투 뭉치를 버리고 새로운 50-80 장 정도의 새로운 비닐봉투 뭉치로 바꾼다. 도대체 그 비닐봉투를 버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 자원의 소중함을 모르는 낭비는 이렇게 보편적인 이들의 정신에 기준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음식 또한 마찬가지이다. 너무나 쉽게 버려지는 음식 - 적게 그리고 맛있게 먹는 것은 덕이요 많이 먹는 것은 어리석음이다. 나에겐 쉽지 않은 습관개선이지만 노력하고있다.
이 모든 것이 의식적 생활을 위함이요, 나와 환경의 공존을 위함일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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