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오늘 3박4일의 꾸르실료 교육을 마치고 집에 오셨다. 다음 주는 아빠 차례라고 한다. 우리 본당에서 엄마와 아빠만 다녀오셔서 본당 분들이 많이 신경을 써주셨다. 다녀온 엄마가 참으로 기쁘고 좋아하신다. 어떠한 것인지 검색을 해보았다.

꾸르실료 Cursillo
꾸르실료란 스페인어로 과정 (course) 를 뜻 함. Curso 와 짧다 (short) 그리고 접미사 =illo의 합성어로써 단기과정 a short course 라는 뜻.
스페인은 전통적인 가톨릭 국가였고 19세기 동안 3번의 내전으로 무질서와 혼란이 가득했다. 이렇게 비 非 그리스도화된 모습의 세상에서 신앙심 깊었던 모습을 되찾으려 - 스페인의 청년들이 스페인의 수호성인 야고보  Saint Jacob 성인의 무덤이 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Santiago de Compostela 로 성지순례를 시행하기로하고 - 성지순례의 효율적 진행을 위하여 봉사자 교육 프로그램인 '순례자들을 위한 상급반 꾸르실료'를 실시했다고 함. 성지순례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꾸르실료를 준비한 봉사자들은 꾸르실료를 교회운동으로써 발전함. 1963년 꾸르실료 운동은 교황 바오로 6세로부터 교회 내 신심 운동으로 인정받아 '평신도가 중심이 된 교회운동'으로 자리잡았음.
꾸르실료 운동은 교구의 사도직 활동의 일환으로 교구장 산하에 있는 공인된 교회 운동이며, 하나의 방법이다. 꾸르실료에서 그리스도와 접촉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과 일치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다른 형제들과 결합하고, 그리스도께 헌신하며, 참다운 크리스찬이 되기로 결심한다. 크리스찬의 기본을 생활화하게 하는 것 - 진솔한 회개와 회심을 통해 하느님과 만나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와 친교를 나누며, 이웃과의 만남으로 모든 형제, 자매가 진정한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고 형재애를 나눔.

"꾸르실료 운동의 기본사상」이라는 책에 꾸르실료는 "꾸르실료가 지닌 방법에 의해서 사람들이 크리스찬으로서 기본을 살아갈 수 있도록 그리고 함께 나누며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교회 운동이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또한 꾸르실료는 "꾸르실리스따인 우리들 각자가 우리들의 소명을 알아내어 완수하도록 도와주고 복음으로 그들의 환경을 누룩처럼 변화시킬 핵심적인 크리스찬 그룹의 탄생을 촉진한다"라고도 정의하고 있다.
따라서 꾸르실료는 꾸르실리스따가 지닌 고유한 카리스마에 합당한 방식으로 교회의 사도적 사명에 동참하고자 하기 때문에 분명 사도적 영성을 나누고 있고 그럼으로 꾸르실료 영성은 사도적 영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꾸르실료의 귀납법적 사고방식이 강조되는 것은 꾸르실료가 어떤 이론이나 논리보다도 삶이 먼저이어야 함이 강조되는 것이기에 꾸르실료는 바로 삶이다. 
꾸르실료 운동의 이념적 핵심은 크리스찬적 삶이다.
그것은 단순히 이론이 아니라 생활로 체험하는 것이고 거기에는 막연한 어떤 관념이 아니라 실제적 신념이 포함되어야 하며 생활이 바로 신앙적 표현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크리스찬으로 활동하는 것" 보다는 "크리스찬인 것"에 더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

꾸르실료는 강의와 조별나눔과 같은 교육적 프로그램을 포함하지만 교육의 차원보다는 '회심을 위한 3박4일의 피정'에 가깝다고 함. 꾸르실료는 매일미사, 묵상과 성체조배, 강의와 조별 나눔, 조별 발표, 레크리에이션 등 일반적 피정 프로그램과 유사함. 꾸르실료의 일정에 대해서는 묻거나 나누는 것이 금지되어있는데 이는 피정에 대한 집중도와 효과를 높히기 위함일 뿐. 가톨릭 내에서의 청년성서모임 연수, Marriage Encounter (ME), 선택 (Choicr)등의 프로그램 내용을 비밀로하는 것과 비슷한 이유.
꾸르실료는 교구별로 진행되며 해마다 11월경 일정을 확정하고 본당 울뜨레야 간사님을 통해 공지됨.


무지개와 De colores 라는 문구가 공식 로고인 듯. 


노래하는 수탉 singing rooster 의 모습도 검색 중 많이 볼 수 있었음.



꾸르실료를 마친 엄마를 마중나온 신부님과 본당분들 그리고 아빠와 창준 :)) 이후에 나에게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녀와야지십다. 수고한 엄마와 수고 할 아빠에게 박수와 기도와 응원을 ~




자료 출처 http://www.cursillo.or.kr/index.php 
http://www.gungigol.or.kr/06_gungigol/oldurea/oldurea_04.htm
http://www.jsrsys.com/cursil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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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 계
감독 이안 (2007 / 미국,중국)
출연 양조위,탕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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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계를 다시 보았다... 크, 멋지다. 야하다기보다 무서워서 돌린 부분들이 많았다.

둘의 시작


새디스트의 눈


아무것도 모르고 그녀에게 선물을 하며 미소아닌 미소를 띄고있는 새디스트


대학생, 나의 나이인 그녀 - 대단하다. 참혹하게는 아닐지라도 분명히 자신을 떠난 아버지. 전쟁이라는 국가적 혼란,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학업. 미미하게만 느껴지는 자신, 이에 무엇을 더해야 그녀의 선택을 이해 할 수 있을까. 어쩌면 그저, 놓아버린 논리로 이해하는 것이 옳을까. 이는 분명 그녀의 영화이다. 사회적 배경을 멋지게 반영하지만, 이는 분명 그녀의 선택과 길에 대한 이야기다. 생각지도 못한 반전 - 철저히 그녀가 그를 사랑하지 못할거라고 방심했던 나는 단순하고 순진한걸까. 첩보영화로만 열심히 보고있는데 순간 로망스가 되어버린 저 반지전달의 장면. 뱀처럼 그녀를 들어와 심장까지 뚫고 - 그의 마음을 똑같이 잡으로 매일 노력한다던 그녀. 자신이 피와 눈물을 흘려야만, 자신의 살아있음을 느끼고 만족을한다는 그 사람. 그 순간에 당신들이 들어와 그의 뇌를 쏴 죽여, 그의 피가 몸에 쏟아지는 상상을 한다는 그녀 - 그런 사람을 사랑 할 수 있을까..
만일 선배는 그녀에게 키스를 3년 전에 했더라면, 이야기는 달랐을까. 그녀의 연기가 현실이 아닌 연기였다면, 그는 그녀를 사랑했을까. 결과적으로 그녀를 추궁하려 조차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 - 정확히 알 수 없는 감정들에 이야말로 여백의 미라 할 수 있겠다. 적절한 범위, 아니 관객에게 넘길 수 있는 완벽한 범위이다. 하아, 무서웠고 아름다웠고 멋지다.


사진 출처 http://maddown.tistory.com/tag/%EC%83%89%EA%B3%84%EC%A4%84%EA%B1%B0%EB%A6%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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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분명 사랑을 하고 있나보다, 속이 너덜너덜, 기다리는 한 순간 순간이 어렵고, 시간이 빠르고 느린 것이,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새벽 0600시가 지나서야 잠에 들어, 세 시간 정도의 잠에서도 그의 모습이. . 다시 나를 깨우더라. 눈을 뜨고 화장실도 잊고 컴퓨터를 켜고 확인한 사실은 더 큰 충격. . 가슴이 비수가 꽂힌다는 것이 . . 정신이 나의 머릿 속에 있지 않다. 머리에 우주를 넣었다 빼었고, 정신을 차렸고, 허탈한 웃음을 짓고, 다시 충격. . 샤워를 하면서 주저리 주저리 혼자 무어라 이야기를 했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실소같은 웃음 짓던 기억만. .
결혼이면 어떠하고 이혼이면 어떠하냐, 이지아건 누구건 아무런 상관 없다. 하지만 십년이 넘는 역사를 한 순간에 알게 되다니. . 머릿 속의 모든 신경이 소스라쳐 놀라버렸다.. 나는 무엇을 해야하지 안절부절, 하지만 정작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해야하는 일도 없다, 그저 그의 입장을 기다리는 것 뿐. . 사람 마음이 세속적인 것이, 어제까지만해도 그의 마음이 먼저였다. 그가 이 모든 것을 굳굳히 담담히 솔직히 받아주리라, 이 또한 지나리라, 라고 생각했지만, 그녀가 인정한 사실들을 듣고는 나의 마음이 상해 괴롭다. 어떻게 그런 눈빛으로 공연을하고, 인터뷰를하고, 그러한 말들을 할 수 있는지. . 그의 모습, 수 많은 장면들, 순간들이 머릿 속에 끊임없이 재생된다.
와중 창 밖은 구름과 하늘, 옆집과 나무, 모든 것이 어제와 같다. 불과 15시간 정도 지났을 뿐, 세상은 변하지 않았지만 나의 마음은 머릿 속은 안정과 멀다. 나도 모르게 숨을 계속 참고있다, 크게 숨도 쉬어보고 허리도 펴 앉아보고, 억지로도 웃어보지만 목구멍부터 심장 밑까지 기다란 병이 들어간 듯, 비어있는 느낌, 목소리도 나올 것 같지 않다. 한국은 새벽인지 사람들이 한 둘 잠이들기 시작해, 조금씩 조용하다. 그곳은 새벽 0600시. . 내가 어제 잠든 시간이구나. . 여전히 붐비는 사이트의 서버는 다운. . 잠 못드는 이들이 매우 많다.
친구는 Life goes on, 이 또한 지나리라고 이야기해준다. 내가 어제 썼던 내용. . 그래, 그런데 이 순간이 길게, 빠르게만 느껴지는구나. 시간의 속도가 이상하게 움직인다, 무엇이 무엇인지, 여기가 누구인지, 언제 이렇게 시간이 지났는지, 왜 이만큼 밖에 지나지 않은 것인지 아무것도 이해 할 수가 없다. 나의 23년의 삶, 상처. . 많았던 상처. . 대부분 나 자신이 나에게 낸 상처들이다. 다른 이에게 당했다는 기분, 드믈게나마 느껴보았지만, 이번이 가장 크고 아프다. 목구멍에는 풍선이 들어가 있는 듯 먹먹하고, 마음은 공기로 가득찬 듯 비어있다. . 기억속 그의 표정들, 그 눈빛들이 조작되고 있다. . 무엇을 믿어야 할지 모르겠고, 기준이 없다. 분명 사생활이니만큼 그럴 수 있다고 생각도 하지만 그 만큼 우리에게 치밀했던, 짧지 않은 세월이 믿을 수 없을 뿐이다.
"그도 사람이다"라는 말, 가장 듣기 싫은데 가장 가까운 친구들이 하는 말들. . 그래 그는 사람이다, 하지만 저 말은 너무나 듣기싫다. 그는 다를거라는, 대중의 전제적 인식을 표현하고, 팬들은 그를 우월화한다는 전제적 인식이 깔려있다. 그는 다르다, 라는 생각 그 것이 이리도 보편적일 줄이야. . 더불어, 싫은 것은 사람은 완벽 할 수 없다, 혹은 사람의 본성은 옳지 않음이 있다라는 것을 전재하는 것도 싫다. 완벽하지 않은 것이 사람인가, 완벽하지 않은 것은 완벽이다 - 그것이 자연의 아름다움이지 아니한가. 이러한 나의 편협한 의견과 상반되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 평시라면 수용 할 수 있겠지만 지금의 나는 분명 날이 서있다. 저 말을 들을 때 마다 감정이 솟고, 제발 더 이상은 듣고 싶지 않다.
십년이 넘는 세월동안 자신의 일부 모습을 숨겨왔다는 것. . 그것이 과연 사람다운 것일까? 그야말로, 저것이 사람인가. . 라는 의구심은 나만이 드는 것일까. 나는 믿지 못하겠다, 어떻게 그 세월동안 그러한 모습으로 우리를 대할 수 있는지. .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숨김을 떠나. . 거짓이였다는 충격. . 이야말로 완벽이지 않은가. 우리는 완벽하게. . 완벽하게 믿었는데. . 분명 누군가가 있을거야, 라는 생각도 수 없이 했고, 그것이 우리의 놀이이기도 했지만, 이렇게 나타날 줄은 몰랐다. 이렇게 마무리되지 않은 오랜 세월이 있었다니 믿을 수가 없다. 더해 이해 할 수 없는 것은 왜 이혼과정이 그리도 오래 걸렸는가하며, 왜 아직까지 정리되지 않았는가. . 나의 예상을 완벽하게 빗나간 그의 생활에, 그야말로 속이 너덜너덜하다. .
그가 집을 짓는다는 동네에 카페를 차리고 싶었고, 그의 소리에, 움직임에, 철학에 너무나 큰 위로를 받았고, 나에게 굉장한 기운, 에너지를 선물한 그이기에, 분명 알지 못하는 사이이지만, 감사하고 나 모르게 많이 사랑했나보다. 연예인이라는 사람을 내가 사랑한다는 것. . 그를 연예인으로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대중의 눈에 그는 분명 연예인이고, 이것은 분명 연예인의 스캔들. 이러한 사회적 일에 내가 이렇게 큰 반동을 느낀다는 것이 이상하기도 하지만, 그라는 것에 이해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이것은 한 시대의 스타와, 그의 팬, 그리고 그의 스캔들이지만, 나에게는 너무나 개인적으로 다가와, 내가 세상과 멀지 않구나 느낀다. 음악을 만드는, 음악의 문화를 만들고 즐기는 한 사람을 이토록 사랑하는 나를 보며, 나 또한 문화의 일부이고 대중의 부분이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은 것이 이러한 감정일까. . 내가 부모님에게 거짓말을 하였고, 그것이 들통났을때, 부모님의 마음은 이보다 녹았으리라. . 이보다 휴짓장같고 튿어졌으리라. . 물론 비교 할 수 없는 정도이겠지만, 이게 믿음이고 사랑인가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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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을 흐르는 사랑
감독 대런 아로노프스키 (2006 / 미국)
출연 휴 잭맨,레이첼 웨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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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의 번역이 재미있군, The Fountain 에서 천년을 흐르는 사랑으로. . 분명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삶과 영원, 영생에 대한 영화. Pi 와 Black Swan의 감독의 작품. 흥미롭게도 Pi 다음, 그리고 Black Swan 이전의 작품인데, 대중성이 딱 그 정도인 것 같다 - 둘의 사이. 평범하지만은 않은 구성. 주인공은 연구원이기도하며, 여왕의 충성스런 기사이기도 하고, 영생의 신적존재이기도 하다. 세가지 이야기의 옴니버스 구성은, 과거, 현재와 미래를 상징한다. 각자 사랑을 위한, 영생에 대한 동경을 그린다. 죽은 별에 도달하면 영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죽음으로 인한 영원을 그리고 있다. 영원에 대한 동경은, 어쩌면 죽음에 대한 동경과 같을지도 모르겠다. 죽음이 다가오는 그녀, 그것을 맞이 할 준비를 하는 와중, 주인공은 그녀의 병을 고치려, 그녀의 마지막 순간들을 그의 연구실에서 보낸다. '죽음은 질병이며, 모든 질병처럼 고칠 방법이 있을 것'이라는 그의 믿음. .
죽음은 영원을 향할 것이라는 믿음. 나무를 이용한 비유, 삶을 대하는 자세, 등 철학적이기도 하지만 난해하지만은 않은 내용. 그 보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은 연출. 전반적으로 선명한 색을 많이 사용하지 않는다. 검은우주, 흰색을 입은 그녀, 뉴트럴 neutral 한 색의 나무, 금빛이 흔히 사용된다. 나무의 상징 또한 멋지가 표현되었다. 나무의 살아있는 촉들, 그리고 그것이 죽으며 순감 말라가는 모습의 표현. 주인공의 표정, 그녀를 그리워하는 마음에 손가락에 반지를 문신으로 세기는 모습. 영생을 허겁지겁 마시고, 결국은 자연의 흙과 풀이되어버리는 결과. 감독에게 가장 큰 박수를 보낸다.


"Our bodies are prisons for our souls. Our skin and blood, the iron bars of confinement. But fear not. All flesh decays. Death turns all to ash. And thus, death frees every soul."
" He said... death was his father's road to awe."
"You pull me through time."
"Death is a disease, it's like any other. And there's a cure. A cure - and I will find it."


space traveler 주인공


나무와 주인공


그녀 앞에 앉은 주인공


영생의 나무


살아있는 나무의 촉


영생의 꿀을 마시는 주인공


영생의 꿀은 풀과 흙을 만들었다


죽은 그녀를 묻은 주인공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녀



잃어버린 결혼반지를 대신하여 그녀가 선물한 펜과 잉크로 문신을 세기는 주인공


그리움, 고통, 슬픔, 외로움, 자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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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투 더 와일드
감독 숀 펜 (2007 / 미국)
출연 에밀 허쉬,빈스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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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투 더 와일드, 인투 더 와일드, 인투 더 와일드.
영화의 전개에는 서두가 없으나 주인고잉 바라는 점은 하나이고 분명하다. 주인공은 명문 대학교를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고, 대학원비를 대주겠다는 부모님을 뒤로하고 떠난다. 차르 타고 떠난다, 일단 서쪽으로. 모든 돈을 기부, 물질적인 것들을 떠나고 싶은 욕망. 사회의 규율에 대해, 직업이란 현대사회의 창조물이라는, 그 따위의 것은 필요 없다는 주인공. '영혼의 혁명' spiritual revolution을 향하여, 걷고, 일을하고, 사람을 만나고, 혼자임을 바라고, 야생에서의 생활을 바란다. 야생 열매를 먹고, 작고 큰 동물들을 먹는다. 물을 마시고 얼음을 녹여 마시고, 물을 데워 목욕을 한다.  돈을 불태운다. 책을 읽으며 일기를 쓴다. 아기가 있는 짐승을 쏘지 못한다.
부모에 대한 반항감, 사회에 대한 저항. 젊은이의 열정이라기에, 그의 것은 너무나 뜨겁다. 열정과 이성의 중심따위는 없다. 그에게 이 자유에 대한 욕망은 열정이자 이성이고, 모든 것이다. 가족도, 인연도, 여자도, 어떠한 것도 그는 마다하고 '단순한 아름다움' simple beauty를 향하여 계속 걷는다. 그를 만나는 이들은 그에게 가족이 있느냐며, 가족이 되자며, 사랑을 하자며 그를 설득하려 하지만, 혼자의 길을 떠나는 주인공.


사과에게 대화를 하며 씹어먹는 모습. 나도 사과가 먹고싶다.



두려움이라던 물에서 카약을 질주하며, 멕시코까지 내려간다. 국경도 막을 수 없는 것이다.




두려움도 부수고, 국경도, 사회적 인식도, 가족의 틀, 친구의 우정, 돈의 허용범위, 법, 모든 것을 버리고 부순다. 그것들을 깨고 자신만의 이야기 story 를 쓰러 그는 움직인다. 아파도 다쳐도 괴로워도 슬퍼도, 자연에 대한 기쁨이 모든 것을 용서하는 듯 하다. 멕시코에서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북쪽으로 향한다 - 알라스카. 그야말로 횡량함을 찾아 떠나 움직이는 주인공. 아무것도 누구도 없는 곳에서 자신의 내적 혁명을 향한다.
알라스카에서 '매직 버스'를 발견하고, 그곳에서의 생활. 커다란 동물을 잡아 먹으로 쏘지만, 그것은 구더기로 엉망이되고 먹을 수 없게된다. 인생의 최대의 실수라며, 인간에게 혀용되지 않은 야생의 범위에, 괴로움을 느낀다. 그 동안 자신이 깨트린 수 많은 범위들, 하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불가능이라는 제한. 하지만 그러한 벽에 부딫히면서도 그는 기뻤으리라 - 자연의, 야생의 단조로움에, 극단적임에, 그는 기뻤으리라.
"calling each name by its right name - by its right name" 제 것의 올바른 이름으로 부르는 것. 우리는 돈을 행복이라하고, 직업을 필수라하고, 사람을 사랑이라고 한다. 가정을 안정이라하고, 종교를 평화라하고, 권력을 힘이라한다. 착각이다. 모든 것은 본질이 있으며, 그것을 제대로 간과하여 보는 것에 우리는 익숙치 않다. 그것의 영향에 집중하는 경향이 훨씬 크고, 그 영향은 작은 일부일 경우가 허다하다. 극 중, 모든 것을 떠나고 주인공은 자신을 위하여 Alexander 라는 이름을 짓는다. 죽음 앞에서 그는 본명인 Christopher 로 자신을 칭한다. 그렇게 그는 떠났지만 그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던 것이다.
"when you forgive, you love." 용서는 사랑이라한다. 용서는 사랑 - 괴로워도, 미워도, 싫어도 수용 할 수 있는 것이 사랑이리라.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는 일은 쉽고, 더러운 것을 받아드리기는 어렵다. 어려운 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사랑이리라 - 사랑이 아니면 그 어떠한 것으로 더러움을 어려움을 괴로움을 부정을 세상에서 외롭지 않게 하겠는가.
그는 삶의 행복은 인간관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하였고, 죽음의 순간에서 남긴 문구는 'happiness is not real unless shared' 나누지 않은 행복은 사실이 아니다. 혼자임을, 횡량함을 갈망하여 알라스카까지 갔지만, 그 또한 loneliness 외로움에 대하여 글을 썼다. 외로움이란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 - 뛰는 심장과 같은 것이리라.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부정이거나 인식하지 못한 아둔함이지 않을까.
"not to be strong, but to feel strong" 자신감이라는 말을, 어감 때문인지, 딱히 좋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뜻을 보면 매우 중요한 것임을 알 수 있다 - 자신을 믿는 마음. 자신감이 때로 싫은 것은, 그것과 자만감의 경계가 모호하고, 둘을 넘나드는 것이 너무나 쉽기 때문이다. 자신을 믿되, 자신으로 가득차면, 타인과 옳은 기준들이 들어올 틈이 없음으로, 자신을 믿되 겸손이라는 마음으로 늘 자신을 다시 비워야한다. 강할 순 없다, 강할 수록 상대적으로 강한 이가 있으며, 우리는 영원을 향해 늘 움직인다. 하지만 강하고 싶지 또한 않다, 그저 자신을 믿는 마음이 강할 수 있으면  - 하는 바람이다. 그 만큼 나를 믿고, 사랑하고, 수용하면 강함도, 약함도, 용기도, 굉장함도, 이러한 특정 형용사 따위는 모두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면 족하다, 나에 대한 믿음.
틀을 벗어난 그의 모습에서, 편리함을 추구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서, 간단함을 아낄 줄 아는 모습에서 - 나 안의 그러한 것들 또한 자극을 받는다. 자유, 자유, 자유, 자유 도전 창조. 미니멀한 삶에 대한 동경을,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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