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 은 생명체의 생물적 기능의 끝을 말한다. 숨과 심장의 운동이 멈추고 생물적인 움직임이 멈추는 것. 죽음의 정의는 여러가지가 있으며 그의 정당성에 대한 의견들도 끊이지 않는다. 영적인 죽음 , 법적인 죽음 등 방면적으로 제각의 정의를 지니고 있다. 사후세계에 대한 의견도 다분.
죽음의 정의가 무엇이건 많은 - 아니 모든 것을 미화한다는 것은 사실인 듯 싶다. 대부분의 위인전을 읽자면 업적에 중심을 두는 경향이 이에 포함되지 않을까. 죽음은 풀리지 않았지만 마감되는 느낌. 어떠한 삶을 - 누구의 삶이라도 풀 수는 없을 것이다. 삶에 어찌 답이있을 수 있겠는가만 죽음이란 '어쩔 수 없는 마무리' - 본인을 그리고 모든이를 무능력케하는 독고적인 방법. 때로 죽고싶은 이유도 이 때문이 아닌가 싶다. 죽음은 용서받지 못 할 일들도 용서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 사라짐 소멸에는 그러한 기운이 있다. 내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 용서받을 수 있을까 싶어서 - 아쉬움이라는 안타까움으로 덮힐 수 있을까 싶어서.
박수 칠 때 떠나라는 것 - 가장 아름다울 때에 돌아서야 하는 논리...... 떠나가는 이의 모습에 어찌 더러움을 던질 수 있겠는가. 죽은이의 생은 삶이 아닌 전설이 되고 이야기가 된다. '이야기'라는 개념 자체가 삶과는 다르게 목적과 맥락이 있다 - 이야기와 삶은 같게 그것을 나누는 이들 사이에 특정한 인상을 심는다. 현재 나의 어려움은 고통이지만 시간이 흐른 상처의 아무름은 배움이고 경험이된다. 아픔은 승화가되고 시간은 미화의 역할을 한다.
어쩌면 너와나의 - '우리'를 죽인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일지도 모르겠다...... 모든 글이 한 방향을 흐르려 하는데 - 아 그만 써야겠다.

Posted by water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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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주말인데 왜 일찍 떠지는거야 라며 눈을 떴는데 화요일이더라. 어제 시험을 보고 꽤나 피곤했는지 일어나기 싫은 아침이였다. 근래 자신의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미루는 느낌이 든다. 일기를 쓴 지도 이미 긴 날들이 흘렀다. 벽에 걸린 달력은 1월이라는데 전화기는 아니란다. 벽을 믿고싶다는 것은 괜한 투정이리라.
끝나버렸다. 나 자신을 그렇게 괴롭히던, 지난 4년의 아픔이, 스르르 사라져버렸다. 비록 멀지않은 과거이지만, 나에게는 과거가 되어, 나와 하나가 아니다. 그 아픔들을 내려놓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던가. 하지만 그 철떡같은 인연은 의외로 한 순간 녹아버렸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과거에 홀로 남아있다. 더러웠고 아팠는데, 그렇게 혼자두고 걷고있자니 녀석이 쓸쓸해보이기가지 한다. 나를 그렇게 괴롭혔는데.. 미련이란 없다. 후회..또한 없다고 말 할 수는 없다. 생각하고싶지 않다.
시험 덕에 속이 좋지 않았고, 꾸준히 달리고 있으며, 친구가 한국에 갔고, 귀여운 친구를 사귀었고, 일기를 쓰지 않았고, 많은 영화를 보았고, 외식을 딱히 하지 않으며, 가까운 주말 여행이 가고싶다. raised by swans 를 들으며, 바질과 깻잎을 키우고, 가족에게 잘하려 노력 중이다. 이따금 눈이 붓는 아침들이 있으며, 주식은 고구마요 여름이 기다려진다. 근래 나의 모습 - 의욕이 작다. 특별한 것이 없어 지루하다. 어서 물 흐르는 계곡을 등산 할 수 있는 날 좋은 주말이나 왔으면 좋겠다. 단순한 것들에 기준을 두고 살리라.
변한 나의 모습이 어느정도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왠지 어색하여, '변한 자신'이라 칭하게된다. 그저 나 자신은 이런 사람이야.. 라고 완전히 느끼면 편하련만, 이전의 나의 모습이 기억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 뒤로하고 싶은데, 날이 흐려 그런지 싱숭생숭. 옆 집은 집을 비웠는데 왜 불을 켜고 나갔을까 .. 몇 일 째 켜져있는 녀석, 들어가 꺼버리고 싶다..


 

Posted by water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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